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충걸 작가의 [질문은 조금만]을 읽었다. 부제는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이다. 인터뷰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인터뷰어에게 털어놓게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누군가 나에게 지나온 삶의 여정을 물어봐주고 지금까지 이룬 일에 대한 칭송과 더불어 그러한 개인적 또는 공적 과업을 이루기까지의 지난한 시간들이 어떠했는지 묻게 되는 것 말이다.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술을 한 잔 하게 되면 아주 어색한 관계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얘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안물안궁의 TMI까지 낱낱이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다. 듣고 있다보면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사적인 얘기까지 해주는 것일까란 의아함과 더불어 약간의 지루함이 더해질 때 쯤, 자신의 얘기에 더 집중하라는 듯이 저 깊은 마음의 심연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툭하니 던지는 경우가 있다. 마시던 술이 홀딱 깨듯이, 마시던 물에 사래가 들리듯이 깜짝 놀라게 되지만 상대방의 눈을 보니 어렵게 진심을 토로하는 것이 보여 '뭐라고요' 라는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몇 알 남지 않은 집중력을 끌어모아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인터뷰는 대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말을 맘편히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인터뷰집과는 다르게 구성조차도 통상적인 인터뷰어의 이름과 질문에 이어지는 인터뷰이의 이름과 대답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마치 인터뷰어인 저자 개인의 에세이의 중간에 인터뷰이의 생각과 의견을 인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어떤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불현듯 인터뷰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 그 내용을 삽입하고 또 다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부제에 쓰인 것처럼 이번 인터뷰집에는 최백호(지금의 노래), 강백호(마운드의 토르), 법륜(다름의 평등함), 강유미(마음속의 완구 공장), 정현채(파도 속의 영원), 강경화(최초의 이름), 진태옥(백자의 마음), 김대진(캠퍼스의 호로비츠), 장석주(소년의 심장), 차준환(얼음의 꽃), 박정자(죽음의 왈츠)님 등 총 11명과의 대화가 실려 있다. 연예인, 예술가, 운동선수, 공무행정가, 디자이너, 교수, 종교인에 이르까지, 20대의 청년에서 80대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대를 넘나든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인터뷰이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이미 이름을 알린 유명한 분들이고, 나이가 많은 분들은 그동안 이룬 업적들이 많고 놀라워 아마도 꽤 많은 이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을 것이다.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성공한 유명한 이들을 보면서 아주 단순하게도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나처럼 재능이 없지 않다거나, 나처럼 게으르지 않았다거나, 나처럼 운이 나쁘지 않았다거나 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아무 근거없는 생각 말이다. 어째서 이런 편견이 자리잡게 된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들이 이룬 성과의 현재의 명성을 막연히 부러워해서 작은 터럭이라도 묻은 흠을 내고 싶은 편협한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지금까지 이룬 성과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지금의 직업을 대한 생각을 토로하는 내용들을 읽다보면 결국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와 똑같은 고뇌와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못나 보이는 자신을 한탄하는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어떤 부분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툭하니 내뱉는 것처럼 인터뷰이들은 인터뷰어의 질문의 의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버텨온 자신을 날것의 말로 들려준다. 이러한 자기 일에 대한 만족과 자신감은 상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그가 어떻게 지금까지 성실히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인터뷰이들의 삶에 대한 성실함과 진실함이 인터뷰어의 문학적 묘사와 곁들어져 있기에 부제에 담긴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라는 표현이 우리 삶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어떤 세계 안에서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의 결핍을 들추어야 할 것이다. 각자는 자기가 맛본 세계의 유일한 중심체, 그가 겪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한 완전한 이해는 없다. 그 마음의 극단으로 다가가 더 깊이 엿본다 해도 모든 글자는 감상적인 암호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타인이 그리는 사람이 아니고, 그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니까.(8)"


#질문은조금만 #이충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6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