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플레저
클레어 챔버스 지음, 허진 옮김 / 다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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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챔버스의 [스몰 플레저]를 읽었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에게 삶에 대한 조언을 건낼 때, 자기 자신이 행복한 것이 중요하고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외적 요소와는 무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삶의 무게를 짊어지느라 원하는 삶을 택하지 못하고 견디며 살아갈 것이다. 혹자는 용기가 없어서라고 지금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배제한 이기적인 선택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된다.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갈망이 뼈와 피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나타나 이기적인 모습에 질타를 던진다. 어느 누구도 나의 귀에 대고 ‘그런 선택은 옳지 않다고, 왜 너 밖에 모르냐고’ 비판을 가하지 않아도 샤워를 하다가 잠을 자려고 뒤척이다가 자기 자신의 법정을 세우게 된다. 오늘 나는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것일까? 


이 소설이 195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주인공 스위니 진은 39살의 미혼 여성이지만 꽤나 나이가 지긋한 중년으로 그려진다. 당시에 비해서 평균 수명이 상당히 길어진 지금에 견주자면 39살은 여전히 활기가 넘치고 관리를 잘했다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도 보일 수 있기에, 진에 대한 사회의 평균적 시선에 대한 괴리감에 비해 진이 하워드를 만나 느끼는 감정은 시대가 달라진다 해도 여전할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준다. 당시의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가족들과 흩어지거나 전사로 인해 이별을 감당해야 했던 것처럼, 진 또한 전쟁의 직접적인 여파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엄마와 단둘이 살아간다. 지방의 작은 신문사의 기자로 일하는 진은 어느 날 뜬금없는 제보를 받게 되고 ‘처녀생식‘이라는 믿기 힘든 취재를 맡게 된다. 진은 처녀생식을 주장하는 그레첸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알게 된다. 그레첸의 주장만으로는 기사화할 수 없기에 사실 검증을 위한 취재가 시작되고, 진은 엄마를 돌보고 신문사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지루한 일상 속에 그레첸의 가족사에 개입하여 균형이 깨진다. 


진에게 보인 그레첸의 친밀함은 그녀의 처녀생식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딸 마가릿과 그레첸의 주장을 알고도 결혼한 남편 하워드까지 확장된다. 진은 취재를 빌미삼아 그레첸의 가족과 만나는 기회가 늘어나고 그럴수록 자신의 부재를 못견뎌하는 엄마와의 긴장상태는 높아지기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진이 엄마를 돌보기 위해 신문사 사람들과의 소소한 모임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몹시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숨통이 막혀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진의 엄마는 진의 희생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진을 더욱 압박해오기만 한다. 이웃집에 사는 멜섬 부인의 방문을 이용하지 않으면 여가 시간을 활용할 수 없는 진의 처지는 몹시 안타까우면서도, 만일 자기 만족을 위해 엄마를 혼자 버려둘 경우 진이 감당해야 할 양심의 가책은 어쩌면 진 혼자만의 고민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나 진의 부재 중에 엄마가 물에 담가둔 손수건을 널다가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섬망 증세까지 보일 때, 오히려 진에게는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음을 만끽하며 느끼게 되는 죄책감은 우리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다. 엄마의 퇴원이 조금이라도 늦춰져 하워드와의 꿈같은 시간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소소한 욕망을 과연 누가 탓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진은 순간 순간 그러한 생각에 빠지는 자신을 질책한다. 


진은 그레첸이 병원에서 딸과 마가릿과 함께 의사들에게 검사를 받아 과학적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과정 중에 그레첸이 마가릿을 갖게 된 시기가 심한 관절염으로 병원에 몇 달 동안 입원했던 기간임을 알게 된다. 여자 아이들만 입원한 병동에서 그리고 간호사들과 수녀님들의 주의집중 가운데 남자를 만나 성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불가능해 보였기에, 진은 그레첸과 함께 입원해 있던 다른 소녀들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그레첸과 가장 가까웠던 마사를 찾게 되고 그레첸에게 마사의 소식을 전해주고 나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지금도 일부 사회에서는 터부시되는 동성애를 감추고 있던 그레첸은 마사와의 재회를 통해 하워드와의 결별을 선언하게 되고 딸 마가릿을 배려하지 못한 그레첸의 이기적인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게 된다. 그레첸은 처음에는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그려졌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앞 뒤 가리지 않는 폭주를 감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용되어, 아무렇지 않은 듯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진에게 부탁한다. 


젊은 시절 유부남과의 철없던 불장난으로 불법 낙태까지 감행했던 상처깊은 진은 첫인상과는 다르게 점점 더 매력적이고 사려깊은 하워드에게 속 깊은 비밀까지 털어놓으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레첸의 뜻밖의 커밍아웃은 진에게 하워드와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당시의 빡빡한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진은 어처구니 없는 그레첸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만일 하워드가 이미 아내로서 여자로서 받아들 수 없는 그레첸과의 부부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면, 진은 아마도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워드는 그레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용기를 내어 진과의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린다. 하지만 진이 그레첸의 주장처럼 마가릿의 탄생은 처녀생식이 아닌 숨겨져 비밀을 드러낸 것처럼, 진을 만나러 가는 하워드의 발걸음은 비극적 반전으로 마무리 된다. 소설을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페이지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극적 반전은 첫 페이지의 내용은 도대체 왜 이런 기사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의 의아함이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해소되는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개인 전화기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는 우리의 삶에서 편지 쓰기의 기술은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사려 깊게 잘 쓴 편지는 받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기쁨을 가져다주고 전화 통화와 달리 읽고 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어 매트에 봉투가 떨어지는 소리와 친한 친구나 먼 친척의 필체를 알아보는 전율은 그 무엇도 비할 수 없다. 

전화기는 새된 소리로 외치면서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감독관이다. 전화는 떼를 쓰는 아기처럼, ‘당장 나를 어떻게 좀 해!’ 라고 비명을 지른다. 반면에 편지를 읽고 답하는 -혹은 답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받는 사람의 편의에 달려 있다. 그리고 우푯값으로 겨우 3페니만 내면 랜즈엔드에서 존오그로츠까지 편지를 보낼 수 있으니 누군가의 하루를 기쁘게 만들기에 이보다 더 저렴하거나 좋은 방법은 없다.(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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