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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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제법 가을을 닮은 바람이 불어온다

늘어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을 다잡기 위해 팔월

끝자락부터 책읽기를 다시 시작하고 만난 책 중 가을에

읽으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살롱 드 경성 (김인혜 지음, 해냄 펴냄)"이라는 책인데 제목과 표지가

주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상당해 당장 펼쳐들 수 밖에 없었다.

삼십대가 시작되면서 나는 종종 그림을 보러 외출을 하곤 했었다.

미술은 전공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삼십대

시작부터 그림이 좋아져 전시 소식이 있는 곳을 찾아 길을 나서곤

했는데 그때 만난 화가 중 박수근의 그림에서 멈칫하곤 했다.

책의 목차에서 화가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 하곤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누어 펼쳐지는 이야기로 우리가 알고 있던 작가나

화가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이 등장해 더 흥미진진했다.

시대와 배경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눈맞춤을 하는 동안 가을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상, 백석, 정지용 시인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에는 한국 근대 미술을

끌고 온 화가들이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낯선 이름의 화가들이 그 시대와 배경을 통해 영감을 얻거나 문인들의

모습 또는 그들의 작품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 작품을 빛나게 했다.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채워준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이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 관한 부분에서 문득 박수근의 그림이 보고 싶어져

서둘러 양구로 향했다.

책으로 우선 두 사람의 인연을 읽고 출발해 그런지 이번에는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그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입구부터 아련하게 오래전 박수근의 그림을 처음 본 날이 떠올랐다.

책과 문학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며 <몽실 언니>를 만나고, 박수근의

그림 <기다림> 속 아이를 업은 소녀의 모습이 몽실이를 닮아 그림을

보는 내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났다.

책을 들고 입장해 <나무 아래>를 관람하는 동안 처음 그림을 그리던

화가의 연습 노트와 박완서의 소설에 등장하는 PX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대까지 천천히 그림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책을 읽기 전 선입견이 있었다.

그림에 대해 어렵게 서술한 책이 아닐까, 전문가만 읽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우려와 달리 시인이나 작가 그리고 화가들의 일상을 쉽게 풀어

내어 그림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배경을 잔잔하게 서술해 읽는 내내 더 많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렬한 여름의 열기로 이성과 감성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팔월,

소진한 기력과 열정을 되살려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예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로 작용했던

그들의 열정, 때때로 냉정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던 순간순간을

보며 가을을 걸어낼 힘을 얻었다.

슬프지만 결코 암울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그들의 시간, 그 시간을

이어걸을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라 오래 기억이 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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