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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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 파아란 하늘이 너무도 고와서 들고 있던 손수건을 돌돌 말아서 하늘을 향해 던져 본 적이 있다. 그 손수건이 하늘에 닿아 금방이라도 파아란 가루가 쏟아질 듯해서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떨어지는 손수건에는 하늘에서 묻어 온 듯 희망이란 물이 곱게 들어 있었다. 그때 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취업을 준비하는 고민 많은 졸업반 대학생이었다. 다 큰 여학생이 무슨 유치한 장난이라고 할까봐 사람들이 없을 때만 조심스럽게 던지고 받고를 반복했다. 그해 가을 난 그렇게 하늘과 친해졌고 파아라니 그렇게 평화스럽고 싶었다.


  책을 덮으며 작가는 나에게 묻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는지, 아침의 냄새를 맡아 본 것은 언제였으며, 맨발로 풀밭을 거닐어 본 적은 기억이나 하는지 그리고 내가 그렇게 가을의 파란 하늘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는 그 기억을 알고나 있는지. 서른의 문턱을 넘으면서 내가 잊고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갑자기 쏟아져 내렸다. 그 옛날 내가 그토록 원하던 파아란 하늘이 쏟아지듯.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를 살펴본다. 마치 깊이 숨겨두어 잊고 지내던 손수건이라도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희망에...

  작가는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참된 의미와 진실을 여러 사람들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며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도 더불어 알려준다. 그 누구보다 작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에 응어리지듯 맺혔다.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인간은 창문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같다고, 태양이 밖에 있을 때는 반짝이고 빛이 나지만, 어둠이 드리울 때 스테인드글라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안의 빛에서 나타난다고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실패를 알고, 고통을 겪고, 상실을 경험하며, 깊은 구덩이에 빠져 길을 찾아 헤맨 이들이라고...누군가가 “오늘은 뭘 했니?”라고 나에게 물어 본다면 난 급하게 내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를 찾을 것이다. 하다못해 책 한 페이지라도 읽어야 될 것 같아 바둥거릴 것이다. 오후 내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베토벤의 음악만을 들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을 나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난 여전히 내가 오늘 무엇을 했는가를 고민하는 그렇고 그런 사람 중의 하나로 섞여 살아가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를 다 듣고도 하루아침에 날 바꿀 자신도 용기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유난히 맑은 가을! 오늘 출근길에는 손수건 하나를 돌돌 말아서 나가야 되겠다. 파아랗게 예쁜 이 가을의 하늘을 향해 손수건을 던지곤 목을 빼고 꽤 오랫동안 쳐다보아야 되겠다. 내가 던진 손수건이 희망이란 이름으로 하늘과 함께 와르르 쏟아질지도 모르니... 혼자서 기분 좋게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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