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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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 연인이다.” 그런 연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작가 이주헌이 말하는 미술은 이렇게 착하고 예쁜 연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처음 이주헌의 책을 보았다. 그 당시 나에게 미술은 상처이고 아픔이고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미술은 나에겐 4B 연필의 가격이었고, 간절한 그리움 대신 포기란 단어를 가슴에 묻기로 결심한 최초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림을 다시 가슴팍에서 살려낸 사람이 이주헌이었고, 한동안 난 그를 미워했다. 그가 소개하는 쉽고 즐겁고 행복한 그림 속의 산책을 사치라 여기면서도 난 도서관 어귀 이주헌의 책들 앞에 서서 그의 책 속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사랑하고 그 그림을 결코 배반하지 않은 한 인간의 치열한 정열을 엿보고 있었다.

<지식의 미술관> 일단 이주헌의 책이란 점에서 난 고민하지 않고 읽었다. 마그리트의 <골콘다>는 일상에 젖어 힘들어하던 나에게 상식을 넘어서는 일탈이 주는 묘한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다. 데페이즈망 말도 어려운 용어가 피 흘리는 석고상으로 쉽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이주헌스럽다 생각을 했다. 김재홍의 <거인의 잠>은 그 어떤 민중 문학보다 강열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내 무릎을 덮고 있던 클림트의 <키스>에서 남성과 여성의 공존을 읽어냈다. 남성과 여성의 누드가 전해주는 이야기며,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이 전해주는 그림의 정체성, 그림 이전에 또는 그 배후에 가려져 있는 진실들까지... 쉽지 않은 많은 내용을 잘 정리해서 전하고 있는 책이었다. 그 덕분에 이번 가을도 그림과 더불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난 20년을 접어둔 가슴 속 포기를 다시 만나고 있다. 10대에 꿈꾸던 그림을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그림과 친해지면서 배우고 있다. 지움과 비움의 아름다움을 조금 아주 조금 알아간다. 움켜쥐고만 살았던 삶, 놓으면 없어질 것 같았던 치열한 욕심 속에 30년 넘는 생을 살다가 지금은 이젤 앞에서 삶을 철학을 배우고 있다. 데생을 하면서 선으로 가득채운 면들을 지우개로 적당히 지워야 더 아름답다란 것을 알았고, 그림 속 색의 조화를 살리는 것은 아무 색도 지니지 않은 투명한 물의 조화며 더불어 너무 과한 색은 지워내야 더 곱다란 것도 알았다. 삶도 이렇게 지우고, 비워야 조화롭다고 아직은 많이 어색한 나의 그림이 가르쳐주고 있다. 다시 만난 연인같은 그림... 이주헌에게 그림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 연인이고, 나에게 그림은 내가 결코 버릴 수 없는 그리운 연인인 것 같다. 이젤 앞에서 어색하게 색을 섞는다. 그렇게 내 삶도 섞어간다. 고맙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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