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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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님아, 내님아 물을 건너지마이소. 보이소. 님아 내가 다 알지만 그래도 물을 건너지는 마이소. 알았지예. 이 세상이 더럽고, 힘들고, 던적스럽고, 슬퍼도 그래도 여기서 나랑 같이 살아예. 알았지예. 님아! 물을 건너지마이소. 알았지예”  

 

  기르던 개에게 날개를 달아주던 한 아이는 그 개에게 물려 죽고, 그 어미는 TV에서 아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도 도망을 쳐야하는 세상. 의붓 여동생을 상습적으로 강간하던 아버지를 아들이 21Kg 절구로 때려죽여야하고, 오늘의 친구들을 미끼로 내일을 살아야 하는 청춘들이 버티어야하는 세상. 모범 소방공무원은 불구덩이 속에서도 보석 덩어리를 허리춤에 숨겨 삶을 살아가야 하고, 베트남에서 돈 몇 푼에 이 땅까지 시집 온 한 여인은 차가운 바다를 헤집고 고철을 찾는 고단한 삶으로 명을 잇고, 폐기선 귀퉁이에서 먹는 초코파이 하나에 감동해야하는 세상. 돈이 필요한 누군가는 자신의 신장을 뜯어 팔고, 돈을 훔친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그 신장을 새로 달아야하는 세상. 학교 보낸 딸아이는 크레인에 짓이겨 돌아오고, 그 아비는 딸자식 명과 바꾼 보상금을 몰래 받아 고향을 등져야하는 세상...  이런 세상의 한 귀퉁이 딱 그 아이 키만큼 슬픈 비석은 갈매기의 똥으로 눈물을 대신 흘리고, 돌덩어리로 굳은 소녀는 해망 바닷가 언덕에서 머리를 푼다.

 

“그래도 물을 건너지 마이소. 저 파미르 고원 꼭대기 닮은 맵고 독한 파뿌리도 달걀하나 훠이훠이 풀면 둥글게 둥글게 맛나지 않소. 그러니 님아! 나랑 파같이 달걀같이 부둥켜 살게 물 건너지 마이소.”  

 

  김훈은 나에게는 고단하게 달려온 우리 역사의 한켠을 참 담담하게도 표현하는 잔인한 작가였다. 과거의 삶 속에 살면서도 항상 오늘을 이야기하는 작가, 그가 보여준 어제는 곧 다가올 우리의 오늘이었고 그래서 조금은 무서웠다. 언제나 영웅이었던 사람을 한 인간으로 우리 앞에 세우고, 가야금의 선율이 왜 슬픈지를 한 악공의 처절한 삶으로 알려주었다. 잊고 살았던 전쟁을 살리어 내고 치욕의 역사를 바로 눈앞에 펼쳐 보인다. 어쩌란 말인가? 다 지났는데... 그런데 그것이 오늘이란다. 그 옛날 원효가 먹은 바지락의 맛이 지금 우리가 먹는 것과 다를까? 작가는 또 이렇게 날 몰아세운다. 진짜 슬픈 이야기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전하는 사람! 나에게 김훈은 그런 사람이다. 그를 따라 자전거 여행이나 하면 좋겠구만... 그의 소설은 항상 맵다. 엉엉 울면 바보 같다고 할 것 같아서 돌아서서 컹컹거리며 숨을 고르고 몰래 물 한 잔 삼키면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괜찮다고 우겨야 할 것 같이...

<공무도하> 그는 말한다. 다 안다고. 더럽고, 비열하고, 던적스럽고, 슬프고, 힘들다는 것... 말도 안 되는 세상이고, 말로 할 수도 없는 세상이란 걸... 그래도 건너지 말고 살자고 한다. 김훈이 세상을 향해 뜯는 공후소리가 참 맵다. 그의 소설은 나에게 또 맵다.

 

  피울음을 토하며 죽어가는 태양과 그 울음으로 가득한 하늘이 가엾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노을이 토해내는 해망의 해안가 넋 놓은 울음소리가 깊고, 맵고, 아프다. 책장을 덮고도 한참이 아프다. 물 한 잔 삼키며, 꿀꺽 목에 걸리는 삶을 넘겨본다. 계란하나 맛나게 풀어서 파한뿌리 대강 뜯어 넣고 라면하나 끓여서 먹어야겠다. 꿀꺽 그렇게 삶을 또 넘겨야 겠다.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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