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다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시가 내게로 왔다 1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얇은 시집이 5000원이라니...' 눈이 올 것 같은 겨울날이었다. 유독 창문이 큰 찻집 귀퉁이에 먼지가 뽀얀 시집 한 권을 빼어 들며 내가 뱉은 첫 마디가 시집의 가격이었다. 어느새 내가 시를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다니... 그 날 내 삶이 얼마나 쓰게 느껴지던지 마시던 커피 대신 맹물을 한잔 마시며 시집의 먼지를 닦고 품에 안았다. 가슴이 조금은 데워지는 느낌, 참 서럽도록 바쁘게 산 시간이었다. 한 편의 시조차도 사치처럼 느끼면서...

김용택은 말한다. 누렇게 색이 바랜 오래된 시집, 그 시집 갈피마다에서 젊은 날이 걸어나온다고. 김용택과 더불어 세월을 지낸 시들은 어느새 그를 닮았고, 여전히 시집 가득 섬진강 강바람 냄새가 난다. 그 바람을 타고 소중한 사람들이 이 한 권의 시집 속에 맨살을 부비며 같이 숨쉬고 그들의 시가 곱게 쌓여간다. 난 그렇게 한 편의 시로 가슴을 데워주는 그들을 사랑한다. 운주사 산등성이 와불님의 팔을 베고 눕고싶다는 정채봉을 사랑하고, 어린 눈들이 녹아 사라짐이 안타까워 살얼음을 만드는 안도현도 사랑한다. 갈대의 작은 몸부림도 쉽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신경림도 사랑하고, 섬진강 비릿한 삶의 냄새를 아프지 않게 읊어내는 김용택도 사랑한다. 그리고... 몰래 불문과 수업을 들으며 이성복 선생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그 시절의 나도 사랑한다.

가끔 시를 가르치면서 오래도록 고민한다. 또 이 시를 이렇게 마음대로 토막을 내야 하는 것인지. 고기의 가시를 발라주는 것이라고 위로하면서도 매번 펄펄 살아있는 물고기를 단칼에 죽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미 죽어버린 시를 매번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아닌지 참 많이 망설인다. 고등학교 때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분석하던 문학 선생님이 싫어서 귀를 막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꼭 그 때의 문학선생님이 되어 버렸으니...

한 편의 시로 데워지는 가슴, 그런 가슴들이 등을 맞대고 몸 부비며 사는 세상, 나도 그렇게 데워진 가슴으로 그 고운 세상을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