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나올 정도로 파란 침묵이 밀려왔다.' 잠시 책을 덮고 머뭇거렸다. 파란 침묵을 말하고 있다니... 살면서 많이 힘이 든다고 느끼던 시절 우연히 새벽에 잠에서 깨어 냉장고 문을 연 적이 있다. 물이라도 마시면 좋아질거라 왠지 그럴 거라 여기면서... 냉장고 불빛 탓인가 거실을 가득 채우던 푸르름, 그 을씨년스런 공기가 오히려 얼마나 신비스럽던지. 물을 따르다 말고 물 잔에 담긴 파란 어둠을 한 입 가득 삼키고 울어버린 기억이 난다. 그때 마신 파란 어둠 탓인지 살면서 만나는 많은 상처들을 난 쉽게 파랗다고 느끼게 되었다. 검푸른 멍자국 같이... <키친>이라는 글 속에 가득 묻어나는 푸른 상처들이 역자가 말하듯 [상처 깁기]의 바늘땀 같이 아프게 다가왔다. 책을 덮으니 하얀색 표지마저 푸르게 느껴질 정도로... 자그마한 도자기 인형같은 글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처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몸부림이 소박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더불어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참 잔잔하게 다가왔다.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처음이었고, 조금은 강하게 현실은 비꼬는 글들이 아닐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잃어버림에 대한 상처를 참 조용하게 풀어가고 있었다.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를 잃은 미카게와 아버지겸 어머니를 너무도 어이없게 잃어버린 유이치, 그리고 형과 연인을 같이 잃어버린 히라기, 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사츠키... 잃어버리기와 잊어버리기와 이겨내기를 힘들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너무 슬프면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너무 슬퍼서 세일러복을 입어야 하고, 너무 아파서 조깅을 해야하고, 그리고 방법을 몰라 도망을 가보는 푸른 아픔들이 책장에 가득했다. 그리고 조용하게 자신들의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키친>은 적당히 사람을 우울하게 또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죽은 자를 가슴에 담고 견디어내는 산 자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들을 위해 녹차를 한 잔 엷게 우려 마신다. 조금은 떫은맛이 오래 오래 입안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