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이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닭가슴살의 맛 같이 퍽퍽한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탈출'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일의 빡빡한 스케줄에 몸을 맡겨야 하고,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벨이나 알림벨은 지겹긴 하지만 그것이 들리지 않으면 그 나름대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고,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딱딱하게 정형화 된 길을 걸으며 그에 따른 역할 또한 완벽히 수행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이 현대인이 처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현대인들이 때때로 꿈꾸는 것처럼, 갑갑한 삶에서 잠시의 여유를 찾기 위해 한적한 교외로 차를 달리는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의 주인공들이 있다.

 오래된 친구사이이자 각자 전문직에 종사하며 그럴듯한 삶을 살고 있는 엔리코, 루이자, 아르투로, 마르게리타는 한적한 교외에 별장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자인 알레시오를 앞세워 투리기 라는 지역 근처의 '윈드 시프트(Wind shift)'로 향한다. 얼마 후면 근사하고 격조있는 건물을 자신들의 휴식처로 삼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도시를 떠나면서도 자신들의 발목을 붙잡는 골치 아픈 일에 대한 불만을 동시에 지닌 채 떠나는 그들. 그러나 그들의 들뜬 예상과 달리, 갑자기 일어난 작은 사건으로 일해 고장난 차와 함께 전화도 연결되지 않는 깊은 숲속에 '불시착'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험악하게 변한 하늘은 거센 비와 돌풍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질퍽한 진흙길을 따라 민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그들은 극한의 상황에 몰린 나약한 인간답게 서로에 대해 분노의 날을 세운다.

 한참을 헤맨 끝에 그들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민가를 찾지만 그 곳의 분위기는 이상하다. 도시의 그것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실내장식이나 도구들은 둘째 치고,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양새가 마치 인간이 자급자족 하던 시대의 인디언 같은 것이다. 가까스로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불청객 일행은 그들의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되고, 다소 원시적인 분위기의 이 곳을 벗어나기 위한 다음날의 노력이 불발되면서 결국 3일 가까이 이 곳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도시인과 인디언 같은 사람들. 이 대조적인 두 단어만 보아도 과연 이 책이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것인가 눈치 챌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가 자유로운 삶과 얽매여 있는 삶, 이 두 가지 모습의 대립을 생각하지 않을까.

 숲속의 인디언 같은 무리를 이끄는 라우로는, 도시에서 온 일행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진정성'에 대해 묻는다. 지금 도시에서 그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람냄새가 증발해 버린 빡빡함으로 가득찬 삶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하는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그저 그런 상투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 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묻는다. 그러나 엔리코를 포함한 다섯명 모두 그 물음에 진솔하게 답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쩌면 단 한번도,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삶에 솔직하려 했던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고 싶어도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삶에 보폭을 맞추느라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라우로는, 그들에게 먼저 자신의 삶에 솔직해지기를 권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해지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을 알고 난 후에는 삶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원하는 삶을 이루려는 에너지를 가지도록 노력하라 조언한다. 라우로의 퉁명스러운 조언은, 처음엔 다섯명 모두에게서 튕겨져 나오지만, 숲속에서 3일간 서로 좋게 혹은 나쁘게 부딪히며 지낸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드디어 그 효력을 발휘한다. 드디어 자신의 삶을 움직이는 운전대를 바로잡은 그들은 그 숲속을 빠져 나오자 마자 고심했던 다짐들을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그들의 다른 삶이 펼쳐지는 처음 순간에,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는다.

 사실,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달리 책의 흐름은 그다지 교과서적이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불만, 불신, 질투 등의 감정으로 점철된 그들만의 소모전으로 꽤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묘한 동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퍽퍽한 현대를 살아가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용 쓰는'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 이 책을 읽고 한번쯤 자신의 삶에 솔직해지고,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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