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에서 지식인의 앙가주망을 읽다...


지승호 고종석의 인터뷰집 잡담
순식간에 읽히는 재밌는 책이다.
막 꺼낸 뜨거운 감자라서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고종석 씨도 말을 감칠맛 나게 하신다.
책을 읽다말고 크게 웃기도 했으니ㅋㅋ

책이 읽히는 걸 넘어서서
선명하게 보인다고나 할까
나의 고민, 생각들과
맞닿아 있는 얘기들이
지승호와 고종석의 인터뷰 행간에서
성숙한 통찰력으로 흐른다.
앙가주망이라든가
엽관운동 등
즉,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와 관련한 우려들은
우리가 자주 가슴 아프게 목격하곤 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던 합리적 이론과
이성들을 어떻게 성숙시켜 가는지,
아니면
시간과 환경에 따라 퇴행하고 마는지
알기위해서라도 그들의 책을 읽는다.

~빠 의 심리를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정치인이나
단체에겐
~빠 순정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니까.

이 책 끝에서 공감 가는 얘기가 나온다.
‘집단은 결코 생각하지 못한다‘고
개인과 얘기해보면 말이 통하는데
집단이 되면 생각을 안 한다.고

나는 개인주의자이기에 이 문제를
늘 고민한다.
그리고 합리적 이성은 우리 시대에 여전히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나에게 정치적 감수성(?)을 다시 일깨워주는 책이다.

강준만의 강남좌파2와
지승호 고종석의 잡담을
동시에 읽으니까
현실을 이해하는데 시너지 효과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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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를 계기로 더 늦기전에 문재인 정부가 1500만 촛불시민의 뜻을 되새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6.11월 셋째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박근혜정부 퇴진 촛불은 국회에서 탄핵 찬성이 결정된 뒤로도 꺼지지 않고, 이게 나라냐.라는 시민들의 불만 속에서 혁명 수준의 대한민국의 완전한 변화를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패딩이 필수 방한복이었을 만큼 혹한에도 촛불시민은 전국구였고, 대학생부터 노인층까지 각계각층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주축으로 국민의 생명을 저버린 실정과 국정농단의 책임을 묻고, 정경유착의 비리를 저질렀던 삼성 이재용을 구속시키는 퍼포먼스와 함께 수많은 구호로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를 촛불로 밝았던 광화문이었다. 그런데 문재인과 문재인정부 정치인들은 그때 촛불민심을 잊은 걸까 . 그때 촛불과 함께 했다면, 그 현장의 간절하고 처절했던 국민의 염원을 담은 정치를 하기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할텐데, 왜 현정부 정치 세력은 서민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 부재하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걸까.

촛불정국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조국 사태로 무능력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 책임을 문정권을 지지했던 국민들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들이 넘겨준 권력으로 제대로 정치를 못하고 있는 문재인정부에게 물어야 하는가! 아니면 왜 그렇게 엉터리로 하고 있냐고 비판조차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국민들 중엔 친노ㆍ친문 뿐인가. 그렇지 않은 국민들이 더 많다는 걸 더 늦기전에 깨달았으면 한다.

조국 사태로 친노문이 항상 말하던 상식이 바닥을 드러냈지만,
친노ㆍ친문이 그토록 말하던 상식이 사모펀드라는 경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음과 동시에 교육 기회의 불공정을 저질렀다는 조국을 지키는 것이라는 데는 새삼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그때 친구한테서 서초동 가자는 카톡이 왔지만 씹어버린채 일본으로 가버렸다.

일본에 간다고 했더니 또 한 친구는 노재팬하는데 일본엘 가냐고 했다. 일본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오사카 교토쪽도 노재팬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고, 일본인들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정치인들이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를 왜 국민들 사이를 갈등으로 조장하는 것인지. 우리나라 대일수출수입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데 쇄국적 국수적 민족적 시대착오적인 노재팬을 한단 말인지. 또한 그 와중에 노동 52시간 유연화를 통해 노동자에게 고통 부담을 고스란히 떠넘기려는 것들을 나로선 납득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ㅡ보수는 북한을 적으로 종북빨갱이로 낙인 찍는 것으로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돌리게 하고, 진보는 일본을 적으로 친일매국노로 매도하는 것으로 정치적 관심과 에너지를 분산시키려는 것인가ㅡ

그리고 친대기업 정책들을 보면서 문재인정부에 대해 실망했다. 이 부분은 강준만의 강남좌파2에서 자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비스마르크가ㅡ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ㅡ라고 했듯이,
문재인정부가 이번 조국 사태를 기회로 다시 촛불민심의 뜻을 되새기며, 촛불민심에는 절대로 친노ㆍ친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상기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고종석ㆍ지승호의 잡담에선 많은 새로운 정치적 대안들과 상상력을 제시하고 있다. 86세대가 아닌 젊은층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그들의 뜻을 담아내려면 양당구도가 아닌 다당제가 필요하다고 고종석은 제안하고 있다. 선거 개혁을 통해 독일식 내각제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것과 비례대표제 연동률을 높혀 투표율에 의해 국회의원석을 결정하는 것과 국회의원 세비를 줄이고 국회의원수를 대폭 늘려서 국민을 위해 국회의원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등...

그리고 미군철수 문제에 대한 현실적 감각이 필요함을 얘기하고 있다.
논객이라고 말하는 인터넷 지식인들의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에 대한 것도 흥미롭고, 인터넷상에서 상대방에게 가하는 언어폭력들에 대한 것들도 많이 공감이 갔다.

참 귀한 잡담인듯 잡담 아닌 잡담!
재밌게 스윽 읽히지만, 고민들이 많이 남는다.
이런 귀한 잡담엔 뭔가 리액션이 자연스럽게 나오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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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에로티즘을...

지금 내 몸은 에로티즘 공부를 원하고 있다.
먼저, 과거에 거칠게 읽었던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해되는 대로 정리를 해 보려 한다.
에로티즘 공부도 종국에는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지고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포용을 목적으로 한다. 내 자신에게 너그러울 때 타인에 대한 공감도가 커질 수 있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참 이상하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에로티즘 공부만큼은 간절하다. 그러니 만사 제쳐두고 이 책을 읽어나갈 수밖에..
<<에로티즘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다>>첫 페이지 서문의 제목이다. 과거엔 이 말이 관념적인 문구로 읽혔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잦은 짝사랑(?) 을 경험하다 보면 이보다 현실적이고 현재적인 말이 또 없다. 에로티즘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공포로 여겨지는 죽음을 실제로 경험토록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로티즘을 통해 잠시나마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결국 공포로 느껴지는 죽음을 체험한다는 의미중복적인 일깨움이다.
ㆍ <<어떤 한 존재와 다른 존재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으며, 거기에는 단절이 있다. 그 심연은 다른 말로 죽음이라고 할 수도 있다.>>존재를 사람으로 치환해 보자. ..어떤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으며, 거기에는 단절이 있다..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 즉 죽음에 뛰어들지 않고서 그 심연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그 죽음으로 파고(뛰어) 들게 하는 에너지는 무엇일까? 바로 사랑의 정열이다. 사랑의 정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에로티즘을 야기한다. 그 에로티즘으로 인해 심연은 걷어내지고 두 사람은 비로소 불연속성의 복잡함에서 연속성의 단순함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얼마나 하고 사느냐 말이다. 이것이 사람과 삶과 죽음을 연속선상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의미 있는 일을 저지러길 주저하게 됐을까? 에로티즘 공부가 끝날 때쯤이면 나는 이 해답을 가져 갈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ㅡㅡㅡ2007.12.11 독서노트에서
ㅡㅡㅡㅡ
밑줄긋기 ㅡㅡ
-우리는 가장 단순한 존재조차도 겪어야 하는 복제 또는 결합을 벗어나지 못함에 괴로워하며 수많은 파도 중의 하나처럼 개체이면서 동시에 전체일 수 있는 존재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음을 괴로워한다.
존재의 연속에 대한 이러한 향수는 모든 사람에게서 세 가지 형태의 에로티즘으로 나타난다.

즉 육체의 에로티즘,
심정의 에로티즘,
그리고 신성의 에로티즘에 대해 차례로 언급하겠다.
내가 그것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존재의 고립감에 존재의 연속감을 불러일으켜주는 것들은 바로 그것들이기 때문이다.--15쪽
-나의 의도는 방대한 에로티즘을 그것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어둠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것이었다.
과연 이 엄청난 일을 존재의 깊은 곳, 존재의 심연을 건드리지 않고 해낼 수 있을까?

에로티즘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폭력의 영역이며 위반의 영역인데...
우리에게 가장 폭력적인 것은 죽음이다.
불연속적 존재인 우리는 불연속적 존재로 남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반해, 죽음은 그것을 여지 없이 짓밟아 버린다.
불연속적 개체란 언젠가 갑자기 소멸하고 마는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용기가 우리에게는 없다. ...폭력이 없이 생식을 하는 존재는 상상할 수 없다.
불연속에서 연속으로의 추이는 존재의 전적인 참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폭력, 또는 폭력에 연결된 어떤 막연한 불안이 전 존재를 휘감는다.
불연속적 존재에 가해지지 않는다면 어떠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의 추이도 상상하기 어렵다.- -육체의 에로티즘은 대상을 범하는(?) 죽음에 가까운(?) 살해에 가까운(?) 행위일 것이다. -16,17쪽

에로티즘은 존재의 가장 내밀한 곳, 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건드린다. 정상(正常) 상태로부터 에로 상태로의 추이는 불연속적 질서, 또는 형태적 존재의 상당한 와해를 전제한다. 이 와해라는 말은 에로 행위와 관계 깊은 방탕이라는 친숙한 표현을 생각나게 한다.

어떤 에로 행위든 에로 행위는 정상적 상태의 상대방--폐쇄적 존재로서의 구조--을 파괴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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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시민과 지식인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잡담 65~92쪽을 읽어보자

공희준이 유시민을 비판했다고 까이고,

진중권이 조국 사태에 대해 비판했다고 까이고,

김규항이 민중을 동원해 정치적 힘으로 활용하는 것은 다 도찐개찐이라는 글을 썼다고 까이고,

기본적으로 친노친문이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수의 의견과 비판이 전무하게 한다면 그게 말이 되나.

문재인정부가 정치를 잘하면 박수치고 싶은 한 사람이지만, 내편 네편의 선악구도의 단조로운 세계관으로 비판에 부정적인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티비시민토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어렵고 고통스러워하는 서민들의 청원을 들으면서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친노친문 정치인들도 시민의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안간힘을 써서라도 돌아서는 시민들의 맘을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국도 결국 공감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라는 비판이 있듯, 지금 친노친문들이 현안 문제들의 핵심 원인을 파악하고 공부하지 않고, 시민과 지식인들이 힘들게 하는 비판을 내로남불식으로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받아친다면 진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잡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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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이 말하는 김규항은
언행일치를 중심에 둔 지식인이다.
그렇기에 세상과 불화하는, 적어도 주류와 불화하는 지식인이다.
적지않은 지식인들은 현실에 추상적 도전은 할지언정 김규항이 말하는 구체적 도전을 하는
지식인은 그닥 많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 드골이 앙드레 말로를 오른편에 앉혀놓고
ㅡ나는 세속성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기분이다ㅡ 라고 했듯이,
지식인들이 장식적 기능을 한다고.

김규항은 교양이란 ㅡ그지없는 진보ㅡ 라며,
보수적인 교양이란 없다고 한다.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욕망이며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고.

지식인의 위선을 지적하는데
이 위선은 강준만의 강남좌파2에 나오는
캐비어좌파들의 위선과 맞닿아 있다.

김규항의 신간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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