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이어서 계속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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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으로서의 정의를 거부한 선의가 더 큰 문제는 진영 내부의 오류 교정 가능성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스스로 무너지는 길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구도하에선 자기 진영이 잘할 수 있는 길과 방법을 찾기보다는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 반대 진영 역시 같은 행태를 보임으로써 ㅡ적대적 공생 관계ㅡ가 형성되는 가운데, 국가와 사회는 엉망이 되고 만다.
이런 이분법적 전쟁에서 이긴 진영의 ㅡ승자독식ㅡ체제는 한국 특유의 지역주의, 연고, 정실 네트워크와 결합하면서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을 ㅡ이분법 소용돌이ㅡ로 끌고 들어간다. 막스 베버는 ㅡ정치는 관직을 파는 직업ㅡ이라고 했는데, 진보냐 보수냐 하는 건 이런 ㅡ관직 판매ㅡ의 하위 개념이 되고 만다. 역대 모든 정권에서 반대편의 비난을 받은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도 다를 게 없다. 임명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대선 승리 기여와 관련된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이권 배분이었다.
홍세화는 ㅡ촛불에 힘입어 기적처럼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이들 중 적잖은 정치 예비군에게 공공 부문의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생겼다며 정서적으로 끈끈히 연결돼 있는 이들 사이에도 일종의 ㅡ우리가 남이가!ㅡ의 문화가 있다ㅡ고 말한다. 사회적 신뢰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각종 시민운동ㆍNGO 단체들마저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생존과 성장의 밥그릇 크기가 크게 달라지는 상황에서 진보의 가치를 밥그릇에 구겨넣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ㅡ가치 추구자ㅡ와 ㅡ이권 추구자ㅡ를 양분해서는 안되겠지만, 다만 그 어떤 이분법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이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치에 대한 평가를 재조정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의도적인 자기기만일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관성일 수도 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밥그릇과 전혀 무관한 감정과 나름의 도덕 체계에 의해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겉보기엔 순수하지만 반대편에 대한 증오나 적대감을 수반할 경우 ㅡ권력 감정ㅡ을 누리려는 욕망으로 볼 수도 있으니, 넓은 의미의 ㅡ밥그릇 전쟁ㅡ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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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강준만 교수의 이런 섬세한 지적질 참 유용하다고 본다. 맞다 우리는 신이 아니라 흔들리기 쉽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욕망덩어리 인간이기 때문에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감정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결국 갈등을 초래하니까. 문제 해결에 접근할 때 내가 아닌 니 문제야 라고 하기보다는 나를 포함한 우리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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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에서 선악 이분법은 잔인하다.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는 바로 이런 ㅡ밥그릇 전쟁ㅡ으로 인한 ㅡ분열 구조ㅡ에 있는 것이지, 그 어떤 진영이 승리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어느 한 진영이 상대 진영을 완전히 압도해버린다면 ㅡ분열의 사회적 비용ㅡ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이상 그 어떤 정치와 개혁도 분열 비용을 넘어서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만다. 이걸 직시하는 게 진정한 ㅡ애국ㅡ이다.
조국 사태의 와중에서 나타난 선악 이분법은 보기에 끔찍했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 판가름이 나는 것이라는 이런 선악 이분법은 잔인하다.
최정표는 ㅡ기득권의 성이 너무나 단단하다. 불평등은 이미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다.ㅡ고 한다. 이 고착 구조를 깨는 일은 새로운 사고의 틀을 가진 청년 세대가 힘을 갖는 것밖엔 없다. 돈도 명성도 없는 청년들이 정치를 경유하지 않고선 힘을 갖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정치를 해야 할 청년들은 정치를 멀리 하고, 제발 정치를 그만두었으면 하는 기성세대는 정치에 목숨을 건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치는 바뀌지 않고, 그로 인한 정치적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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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아 부끄럽다 우리가 20대 때 기성세대를 째려봤던 그 눈초리가 바로 나를 향하고 있으니. 그 기성세대에서 진일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지금 20대한테 부끄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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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은 ㅡ검찰 개혁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렇게만 해가지곤 사회가 좋아질까 그런 생각이 든다며 사회적 불평등이나 세대 갈등처럼 진짜 개혁이 필요한 부분은 별로 관심을 못 받고 있다.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다른 중요한 일도 많다.ㅡ고 했다.
김재용도 조국 사태와 관련해 ㅡ정치적 논쟁 대부분이 도덕과 사법의 영역 등에 집중됐다며 국민 삶과 직결되는 사회경제적 정의나 불평등, 계급 간 격차 같은 문제는 도대체 누가 대표하는지 의문 ㅡ 이라고 한다. 그리고 김재용은 조국 사태에서도 ㅡ운동과 구호ㅡ로 단련된 386세대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ㅡ86세대는 ㆍ부패ㆍ 보다 ㆍ무능ㆍ이 문제다. 86세대가 변해야 한다. ㆍ구호를 외치던 세대ㆍ에서 ㆍ정책 세대ㆍ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강준만은 이들이 조국 사태를 왜 이렇게 보는지 그 이유를 가용성 편향, 즉 휴리스틱으로 밝히고 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엄연히 객관적 사실fact이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이 단순히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관습 등을 통해 내리는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판단을 가리켜 휴리스틱이라고 했다. 휴리스틱은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합리적인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근거다. 그래서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위험하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일부러 찾기보다는 당장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가져다 쓰는 이용가능성을 말한다. 그래서 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대체로 경제적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법을 지지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계급이 높을수록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말했다. 존 에드워드는 ㅡ지난 수십 년 동안 민주당이 끊임없이 저지른 죄악은 (남에게 과시하는 걸 좋아하는) 속물근성이었다ㅡ고 주장했다. 캔자스가 보수주의의 성소가 된 것도 결정적인 건 민주당의 위선에 대한 분노였다고 한다.
사실 민주당은 정치 참여에서부터 정치자금에 이르기까지 부자 유권자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어서 사실상 그들에게 발목이 잡힌 상태이기 때문에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을 만드는 게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가난한 사람들마저 공화당에 표를 던진 이유에 대해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2004년 ㅡ민주당의 여피화YUP를 지적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정치인들은 수사적 진보성을 전투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실천으로 연결되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정치적 불신과 혐오를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진보적 정치인들은 중ㆍ하층의 민생을 생각하는 것처럼 전투적인 말은 많이 하지만, 그것에 대해 직접 접촉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동질적인 동료 압력이나 교류로 인해 자신에게 중요한 게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개혁적 정책을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정책을 주요 의제로 삼는다.
노무현 정권 때 가장 중요한 입법으로 내세웠던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 즉 4대 개혁 입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입법이 민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국회는 파행을 거듭했고, 결국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 때 부동산 정책은 결과적으로 대실패였다. 그로인해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의도가 정의롭고 선하면 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괜찮은가? 민심은 이명박근혜 정권을 선택했다.
이젠 달라졌을까 진보세력의 386형 강남 좌파 마인드는 여전하다.이들이 다 서울이나 서울 근처에서 사니 눈에 보이는 게 서울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악의 반反지역균형발전 정권이 되기 위해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데도, 이렇다 할 반발이나 저항이 없다. 이들은 여전히 개혁 정책을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정책을 최우선 의제로 삼고 있다. 검찰 개혁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게 그 좋은 예다. 민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법조 개혁을 하더라도 ㅡ유전무죄有銭無罪 ㆍ무전유죄無銭有罪ㅡ부터 깨부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사회 신뢰를 좀먹는 암 덩어리인 전관예우를 방치하는 데엔 보수나 진보가 한통속이어서 이 문제엔 별관심이 없다고 한다.
검찰 개혁 이상으로 열을 올려야 할 민생 관련 거악巨悪은 도처에 널려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가 1,449명인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 민생 문제에 있어서는 ㅡ무정부상태ㅡ라고 한다. 정치적 사건보다 훨씬 중요한 민생 사건엔 냉담한 걸까?
2017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209명으로 2016년에 비해 10% 가까이 늘었다. 주 5일 노동 기준 매일 9명이 산업재해로 죽어나간다는 것과 정부가 대기업 편을 들기 때문에 대기업일수록 산업재해로 인정 받기가 어려워 통계보다 실제는 훨씬 많다는 것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 10년간 하청노동자 12명이 죽었다. 이건 국가가 공모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할 수 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정부에서 ㅡ무재해 사업장ㅡ 인증을 받았으며, 원청인 서부발전은 무재해 사업장이라며 정부에서 5년간 산재보험료 22억여 원을 감면받고 직원들에게도 무재해 포상금이라며 4,770만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정치적 사건을 둘러싼 갈등엔 수백만 명의 인파가 모이면서도 이런 절박한 민생 문제엔 무관심한 걸까? 라고.
2019년 10월 16일 한겨레에 ㅡ세입자 보호 방치하는 국회, 민생 말할 자격 없다.ㅡ라는 사설이다. ㅡ지난해 기준 전국의 무주택 가구 비율이 39%에 이른다. 수도권은 46%로 절반에 육박한다. 주택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는 ㅡ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ㅡ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대표적인 ㅡ민생 법안ㅡ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는 세입자가 많다. 이들을 위한 정치와 행정은 무능했고 무책임했다. 정책 결정을 하는 정치ㆍ행정 엘리트들이 피눈물 흘리는 세입자의 처지였다면, 과연 그런 사태를 그대로 방치했을까? 민생을 외면한 가장 큰 책임이 문재인 정권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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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면서
지금 현실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말 해야할 때 침묵하는 자가 비겁한 자이듯,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서 알아보고 잘 못 됐다면 유턴이라도 해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점에 이 책이 현재 사회를 정확한 통찰력으로 보여줘서 다행이다.
많은 촛불시민들이 강남좌파2를 정독하고 시대에 맞게 고통이 따르더라도 변화해서 진정한 진보進歩로 거듭나야 할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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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