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현상금 견인 도시 연대기 2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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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톰과 헤스터의 얼음도시속 모험들, 1편보다 흥미로운 SF동화로의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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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블렛 - 22 Bull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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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레옹, 하지만 음악과 가족애만 남은 힘빠진 느와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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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하면 딱 떠오르는 문학 작품으로 <동물농장>이 생각난다. 정치우화 풍자의 고전으로 불리는 그 작품은 '조지 오웰'을 전 세계인에게 알리며 지금도 무수히 회자되는 작품이다. 아이들 책부터 어른들 책까지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아는 이라면 그 '동물농장'(1945)은 그의 생애 마지막 즈음에 쓴 작품임을 알게 된다. 물론, 마지막 작품은 1948년 발간된 디스토피아 세계를 풍자한 억압과 통제의 진수를 보여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을 그린 <1984>다. 이 '1984' 역시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한 개인 아니, 그 사회가 어떻게 지배되고 억압적으로 운영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고전이다. 이렇게 조지 오웰하면 '동물농장'과 '1984'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작품들이 있었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동물농장'의 조지 오웰, 그는 누구인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에릭 아서 블레어가 본명이며, 조지 오웰은 필명이다. 1903년 부모가 인도 주재 영국 공관에 있던 시절 출생했다. 영국의 이튼학교(사립학교)에서 공부한 후 미얀마의 인도 왕립 경찰에서 대영제국의 경찰간부로서 식민지 버마에서 근무했다(1922~1927). 이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게 된다. 『버마 시절』이 바로 그 작품이며,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뒤,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하층 계급의 세계에 뛰어들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1933)을 발표한다.

1936년은 오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인데, 그해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 등을 담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을 썼고, 1936년 스페인내전이 터지자 인민전선 정부를 위해 싸웠고 이를 계기로 '정치적 글쓰기'의 성향이 뚜렷해진다. 바로 스페인에 프랑코의 파시즘이 발흥하자, 공화국편 민병대 소속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그 경험을 기록한 『카탈로니아 찬가』(1938)를 펴내면서,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입장을 정리해 나간다. 이외에도 여러 편의 르포와 소설을 통해 예리한 시대정신을 가진 작가의 면모를 보여 주었고 1945년에는 드디어 러시아혁명과 스탈린에 체제를 풍자한 우화인 『동물농장』을 출간하면서 명성을 얻게 된다. 1950년 1월, 지병인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도 『1984』를 완성하면서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고발하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그는 50년이 안 된 짧은 생애동안 비판적 견지의 삶을 주시하며 임팩트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그중 강호가 읽어 본 것은 대표작인 <동물농장>과 <1984> 그리고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이렇게 세 편이다. 또 저번에 켈렉해놓고 못 읽은 작품중에는 <버마 시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카탈로니아 찬가>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나는 왜 쓰는가>를 컬렉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출간한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조지 오웰과 관련된 두 번째 책이다. 책 값도 18,000원으로 비싼편이라, YES24상품권으로 컬렉하게 됐다. 그렇다면 이 책 <나는 왜 쓰는가>는 무슨 책일까? 떡하니 표지에 붙은 것을 보면 조지 오웰의 에세이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의 모든 것을 담다.

그렇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 29편을 묶은 책이다. 오웰은 생전에 11권(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의 책을 낸 것 말고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당시 오웰은 엄청난 분량의 에세이와 칼럼, 서평을 썼다고 한다. 특히나 그의 에세이는 예리한 통찰, 특유의 유머와 통쾌한 독설로 유명한 작품인데, 그간 소문으로만 혹은 일부 발췌 번역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좀더 풍부한 조지 오웰의 명문들을 한국어 텍스트로 만날 수 있게 '한겨레 출판'에서 이번에 출간된 것이다. 모두 29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21편이 국내 초역으로 보기 힘든 레어급의 에세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 이번 에세이 선집은 오웰이 썼던 에세이 가운데 '이한중' 역자가 29편을 뽑아 씌어진 순서대로 엮은 책이다. 조지 오웰이 맨처음 발표한 글인 부랑생활 체험기 '스파이크'에서부터 마지막 집필 원고인 '간디에 대한 소견'까지 오웰이 글을 쓴 순서대로 엮었으며 29편의 에세이를 통해 오웰 삶의 각 국면에 대한 세세한 이해, 정치적 입장, 현실에 대한 작가로서의 태도 등 인간 오웰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소개다. 또한 수록된 적잖은 에세이들이 자전적 요소를 띠고 있는데, 인간에 대한 남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 사건들, 오웰 자신이 삶의 전환적 순간이라 했던 사건들이 책 곳곳에 담겨져 있다.

특히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오웰은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라고 자신의 명확한 작가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본 에세이는 조지 오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작품으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사상이 오롯이 담겨져 있어 각 장마다 그만의 사유를 통한 고찰과 성찰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에세이는 의미가 크다. 그래서 그가 걸어왔던 인습과 관성을 거부해 온 오웰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29편의 에세이집을 통해서.. 깊어가는 이 가을에 지적 사유의 텍스트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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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F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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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부터 단아하고 우아함의 대명사 절대 욕을 안할 것 같은 착한 이미지의 여배우 '수애'가 생애 첫 스릴러물에 도전하면서 화제가 된 영화, 여기에 여러 작품에서 나왔지만 그래도 2003년작 <올드보이>에서 냉철한 카리스마를 보이며 민식이 형님을 15년간 만두만 먹인 이우진역의 '유지태'.. 이 둘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스릴러 영화가 바로 <심야의 FM>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소재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스릴러 장르와는 비주얼부터 다르다. 한정된 공간 그 조그만 라디오 부스안에서 연쇄 살인마와 전화 통화를 하며 극의 몰입과 긴장감을 이끌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범인은 초반부터 밝혀진다. 어느 순간부터 스릴러가 이제는 소위 까놓고 시작하기 시작했다.

수애, 유지태 투 톱의 스릴러물 <심야의 FM>

그러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왜? 왜? 왜?  즉, 그 범인의 범행 목적에 포커스를 맞추며 관객들과 퍼즐맞추기 게임을 즐기는 식이다. 주인공과 그 범인은 무슨 관계였길래 이 지경까지 온 것인가?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이것이 요즈음 한국영화에서 주로 선보이는 스릴러 장르에서 차용하는 플롯들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영화도 그런 점에서 비켜가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심야의 FM>은 그렇게 툭 던져놓은 떡밥을 물고 풀어가는 과정속에서 적당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며 스릴러적 기본 요소에 꽤 충실히 다가섰다. 중반 이후 라디오 부스를 벗어난 추격씬등 반전에 대한 부담없이 담백하게 마무리 짓는 등.. 그래서 별반 다를 것 없는 스릴러같지만 그래서 더욱더 다른 스릴러와 차별화가 느껴지는 영화 <심야의 FM>.. 먼저, 시놉시스는 이렇다.

5년 동안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한 심야의 영화음악실 DJ 선영(수애).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으로 높은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악화된 딸의 건강 때문에 마이크를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노래부터 멘트 하나까지 세심하게 방송을 준비하는 그녀… 하지만 마지막이어서인지 무엇 하나도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걸려오는 정체불명의 청취자 동수(유지태)로부터 시작되는 협박!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그가 이야기하는 미션을 처리하지 않으면 가족들은 죽는다. 물론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그 놈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는 채 가족을 구하기 위해 홀로 범인과 싸워야 하는 선영! 그렇게… 아름답게 끝날 줄만 알았던 그녀의 마지막 2시간 방송이 악몽처럼 변해 그녀를 조여 오기 시작하고, 가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선영과 정체불명의 청취자 동수의 피 말리는 사투가 시작된다.



라디오 DJ와 스토커의 두뇌 게임, 그 진실은 어디에?

이렇게 영화는 잘 나가던 아나운서 출신의 고선영(수애)이 뉴스 방송에서 '정신줄 놓은 사법부'라는 클로징으로 좌천돼 맡게된 라디오 DJ.. 그것이 어느덧 5년이란 긴 세월동안 인기를 구가하며 그녀는 대한민국의 심야 그것도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책임져온 달콤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녀가 유학차 아니 휴식차 해외로 가기위해 마지막 방송을 앞둔 날.. 모종의 전화가 걸려온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선영씨 당신 집에 침입해서 여동생과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협박한다. 물론, 처음에는 장난이려니 넘어가지만 휴대폰 너머로 보이는 영상을 보고 그녀는 깜놀한다. 그리고 그 영상통화로 인질범과 선영은 라디오 연결 게임을 한다. 즉, 이 인질범 한동수(유지태)는 내가 당신을 DJ로써 얼마나 좋아하며 동업자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떠나면 되냐며 근 5년간 틀었던 명곡중 그때 그때 선곡해 틀라고 주문한다. 만약 이를 어길시 여동생은 물론 모두 죽인다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이에 선영은 장난이 아님을 눈치채고 마지막 방송을 위해 준비해둔 모든 자료를 내팽긴 채.. 그놈이 원하는 선곡대로 방송을 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작업이 쉽지가 않다. 수년 전의 노래를 찾아내려는 과정속에 진정 자신을 좋아해 마지막 방송을 보러온 순박하면서도 무언가 음침한 분위기의 스토커 남자가 당시 음악은 무엇이며 멘트는 무엇이었다고 가르쳐준다. 극에서 어찌보면 중요한 인물이다. 마지막까지 대활약?을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인질범 동수의 의도대로 방송이 나가자 수애는 그놈의 의도를 서서히 캐려한다. 물론 둘은 계속 영상전화로 연결한 상태다. 그런 가운데 라디오 방송이 잘못되고 있음을 안 PD가 방송에 훼방을 놓으면서 인질로 잡혀있던 여동생이 죽게된다. 이때부터 수애는 반 미쳐가 패닉상태에 빠지고 더이상 부스 안에서 라디오를 진행못하고 중계차를 동원해 자기 집으로 달려간다. 물론 그 중계차 안에서 계속 라디오를 진행한 채 말이다. 라디오가 중지되면 모두 죽기에...

하지만 이미 달려간 집에서는 아이들은 물론 살인마 동수는 자리를 뜬 상태다. 그리고 계속 걸려오는 전화, 그가 이끄는대로 어떤 행선지로 가게 된다. 물론 경찰은 동수가 전에 벌어졌던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임을 알고 이미 추적을 하고 있는 상태다. 이제 수애에게 남은 건 오로지 두 딸의 행방과 살아 있는지의 여부다. 결국 차로 추격끝에 그놈의 아지트에 도착한 선영, 이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그녀는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또 그녀의 어린 두 딸은 과연 살아 남았을까.. 또 위기에 처할때 그를 도와준 이는 누구였을까.. 마지막에 그런 그림들이 정석대로 그대로 펼쳐진다. 아주 그것도 솔리드하면서 담백하게 말이다.



소 영웅주의에 빠진 사이코패스 스토커, 한동수

이렇게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딱히 영화 전체적인 구도나 플롯만 놓고보면 크게 반향을 일으킬 소재가 아닐 수 있다. 라디오 방송의 DJ를 사랑했던 아니, 딱 잘라 말한다면 사랑보다는 그녀가 진행하는 그 음악에 매번 심취해 현실과 환상을 구분 못하는 어느 한 미친 사이코패스적 스토커의 살인적 행위라 볼 수 있다. 즉, 여기서 동수는 당신과 나는 동업자라 말하면서 그 룰을 깨면 안 된다면서 그녀의 방송을 저지한 것이다. "왜 날 두고 가려고 하는가.. 계속 방송을 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이런 동수의 성정 밑바탕에는 그가 틀어달라고 주문했던 명곡과 명화에 깊은 관련이 있다.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브>의 '트래비시'를 모티브로 <볼륨을 높여라>, <퐁네프의 연인들>의 대사와 음악등이 곳곳에서 차용돼 극의 분위기를 한층 돋군다.

그렇다면 여기 연쇄 살인마 한동수의 악마적 기질의 근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선영의 라디오 방송을 5년간 열혈적으로 청취하면서 그녀가 내뱉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며 그녀의 말속에서 그는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영화에서 발견하고 라디오를 통해서 자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 사회적 인격장애로 표출돼 영화 <택시 드라이브>에서 사회의 악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고민 때문에 불면증에 걸린 택시 운전사 바로 '트래비시'로 그는 변모한다. 그리고 그 택시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 선영의 라디오 멘트에서 선택 취사하는 비뚤어진 자기애적 감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감성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 즉 쓰레기를 처단하는데 쓴다. 

이른바 소 영웅주의 빠진 사이코패스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중심에 자신과 연장선에서 동업자로 생각해온 선영에게 눈길을 돌려 이렇게 심야에 인질극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질극은 기존의 스릴러 장르와는 다르게 이리저리 동선을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공간 라디오 부스와 어둠속에 갇힌 집안, 그리고 그들을 연결시키는 전화 통화, 어찌보면 은밀한 라디오의 속성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시키는대로 또 그 이유도 모른 채 달려간 중반까지는 나름 몰입감과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다른데 볼 틈이 없다. 왜 이 남자가 이토록 그녀에게 매달렸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개된 장소가 아닌 어찌보면 비공개의 장소에서 자신의 치부를 하나하나씩 꺼내드는 연쇄 살인마 한동수..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이 냉혹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오대수를 그렇게 파국으로 이끌며 끊임없이 던진 질문과 죄의 추궁, 그냥 툭 내던진 어떤 말에 대한 단죄,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살인자와 숨겨진 사정과 피해자의 과거까지.. 어떻게 보면 그 <올드보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우진에서 좀더 진일보한 사이코패스로 변모된 한동수는 그래서 더욱더 닮아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수애의 연기 또한 좋았다. 첫 스릴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DJ로서의 역할은 물론 중반 이후 딸을 구하기 위한 몸을 사리지 않는 싱글맘의 처절한 사투는 분명 이 배우가 강단이 있음을 보게 된다. 기존의 이미지를 불식시킬 정도로 말이다.



올 가을 색다른 스릴러를 원한다면 <심야의 FM> 강추!!

아무튼 오랜만에 괜찮은 스릴러물을 본 것 같다. 간만에 딴데 안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목을 집중시켜 적절한 긴장감과 동선을 유지시킨 스릴러도 간만이다. 항상 범인은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마지만,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가는 재미와 극의 주인공과 무슨 관계인지 알아가는 재미, 또 그들의 사투는 어떻게 마무리되고 반전은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재미 등 스릴러는 이렇게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영화다. 대신에 기존에 잔혹한 스릴러였던 <악마를 보았다><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는 분명히 느낌이 다르고, 그 비주얼적 잔혹의 강도는 그것보다 약한 편이다. 하지만 잔혹이 약하다해서 스릴감이 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전적인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스릴러적 상황이 깨고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긴장과 서스펜스, 그것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속도감있게 유지한 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즉,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감있게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스릴러가 지향해야 할 기본적 요소이자 색다른 맛으로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여담으로, 강호가 읽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 2편 <인 더 풀> 소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첫 장 '도우미'편에서 섹시하고 아주 잘 나가는 도우미가 있다. 그런데 그 도우미는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고 바라본다는 예의 그 스토커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리며 '이라부'를 찾아간다. 이때 이라부 정신과 의사는 스토커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이렇게 말이다.

   
  스토커란 관계망상의 일종인데, 처음에는 현실도피에서 시작되는 거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이 세상 다른 사람 탓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거지. 죄의식이 하나도 없어. 요컨대 자신만의 거울을 가지고 있는 거지. 거기에 비치는 자신은 너무 멋지고, 이성의 눈길을 끌어야 마땅하고, 남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거지. 그러니까 자신을 의심하지 않아. 자의식과잉이라고 할까.  
   

그렇다. 바로 여기 극중 '한동수'가 이런 스토커였던 것이다.  
대신에 그는 단단히 미친 놈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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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블렛 - 22 Bullet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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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팬들에게 아니 전세계 영화 팬들에게 ’장 르노하면 레옹이요, 레옹하면 장 르노’가 생각날 정도로 그 고독한 킬러는 마틸다와 함께 화분 하나들고 오래전에 거리를 거닐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나 아니 그전에도 레옹은 존재했지만 그리 임팩트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60을 훌쩍 넘긴 그 레옹이 다시 고독한 킬러로 분연해 돌아왔으니 바로 프랑스 갱스터 무비 <22 블렛>이다. 영화는 실제 1977년 22발의 총을 맞고도 살아난 마피아 두목에서 이야기를 따온 것이라 한다.

그런데 정말로 22발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막말로 엄한데 쏘지 않고서야 가슴쪽만 집중해 쏴도 살 수가 없을터.. 어찌됐든 그는 기적같이 살아났고 그 다음부터 그는 ’임모탈(immortal)’, 이른바 ’죽지 않는 불사조’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그들에게 다시 총구를 겨눠 피의 응징을 한다는게 이 영화의 줄거리자 플롯이다. 참 간단해서 좋다. 시놉시스도 필요없이 복잡한 전개도 없다. 그래도 강호식?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22발의 총성 뒤 살아난 한 남자의 복수극!

영화 시작부터 노모를 모시고 사는 전직 마피아대부 ’찰리’, 하지만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며 가족과 함께 평안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한 남자였다. 늦둥이인지 몰라도 6~7살 돼보이는 어린 아들과 시내에 나갔다가 아들을 먼저 내려놓은 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내리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괴한들 예닐곱 명이 들이닥쳐 그에게 총질을 가한 것이다. 이런 날벼락이란 생각도 잠시 그는 숨을 거둔 마냥 피칠갑을 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돼 대수술을 받는다. 몸속에 박힌 무려 22발의 총알을 꺼내는 수술에서 그는 기적같이 살아난다. 실제 있었던 일처럼 말이다. 



그리고 찰리를 따르는 조직원 몇 명이 이 사건과 관련돼 끄나풀을 잡아서 소위 족친다. 물론 병원을 빠져나온 찰리는 그를 문초해 자신을 죽이려했던 놈들이 누구인지 알게된다. 바로 자신과 소싯적 ’한번 우정은 영원한 우정이다’로 맹세했던 친구 ’자키아’라는 것을 알면서 우선은 지켜보는 요량으로 복수를 잠시 거둔다. 그런데 찰리의 심복이 자키아 조직원에 의해 무참히 죽게되면서 찰리는 더 이상 묵과하지 않고 자키아 일당을 찾아가 선전포고를 한다. "지금 당장은 죽이지 않겠다. 대신 내가 끝까지 살아 있는 한 단 한명씩 죽여 살아남지 못한다"며 으름장을 놓며 본보기로 한 놈을 골로 보낸다. 영화는 이때부터 피 끊는 비정한 복수극을 보인다.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절어도 그에게 권총만이 유일한 수단, 그때부터 자키아 조직원들에게 접근해 하나 둘씩 제거해간다.

이를 지켜본 경찰도 속수무책, 여기 여주인공 여형사는 급기야 그런 찰리를 두둔하기에 이른다. 결국에 자키아 일당이 찰리의 어린 아들을 인질로 잡아가면서 찰리가 거짓 체포되었다고 언론에 흘리고, 찰리는 그들 아지트에 몰래 잡입해 아들을 구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자키아 두목, 예전 그 친구를 찾아가 우리의 우정은 이것밖에 안됐나며, 왜 나를 죽이려 했냐며, 서로 싸우다가 그 저택에 급습한 경찰 특공대에 잡힌 찰리와 자키아.. 과연 둘은 어떻게 됐을까? 누가 풀려나고 누가 잡혔을까? 또 당시 22발을 쏜 일당들중 찰리를 쏘지 않은 자가 있었는데 그는 누구였을까.. 혹시 세 명의 우정을 나눈 친구중 하나?!

이렇게 이 영화는 줄거리만 봐도 전형적인 액션 느와르적 장르 냄새가 풀풀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2발의 ’blullet’이라는 총알처럼 이 영화는 총기 액션이 주를 이루는 느와르다. 바로 갱스터 무비들로서 주로 헐리웃 영화들에서 많이 봐온 그림들인데, 하지만 이 영화는 레옹을 만들었던 두 콤비 뤽 베송이 제작하고 장 르노가 주연을 맡은 프랑스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말투 자체가 영어가 아닌 불어, 조금은 시끄러우면서도 무언가 고풍스런 분위기의 유럽 스타일이 물씬 풍긴다. 더군다나 마초적이면서 칙칙한 남자들이 마피아로 나와 비주얼은 나름 성공한 편이다. 또한 배경도 프랑스 남부지방에 있는 항구도시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펼쳐져 풍광도 좋다. 


 
음악이 그나마 살린 느와르, 가족애만 남았다.

그리고 가장 눈여겨 볼만한 아니 눈여겨 들을만한 것이 이 영화에서 하나가 있다. 바로 음악이다. 느와르적 장르가 어떤 비주얼속에서 배신과 음모의 동선를 그려낸다면 이런 그림에 한층 다가서게 하는 것이 음악 바로 OST다. 영화 시작부터 찰리가 차를 몰고가며 듣는 클래식의 선율과 마지막 배웅 나온 친구의 차를 타고 나갈때의 선율, 또 영화 내내 프랑스 가곡인지 몰라도 고풍스런 음악들은 느와르 장르가 갖는 원초적인 비장미를 돋보이는데 한 몫했음이다. 특히 엔딩에서 그 음악은 최고의 장면으로 꼽고 싶을 정도로 강호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건진 것은 느와르 이전에 음악이었다.

하지만 이런 음악적 요소를 뺀 전체적인 영화적 완성도나 구성을 보면은 조금은 허술한 느낌이다. 그 어떤 완벽한 갱스터 무비라 하기에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영화다. 치고박는 액션은 고사하고 오로지 총기액션, 그래도 총기 액션이라도 그 어떤 액티브한 액션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레옹의 ’장 르노’가 이제는 60이 넘다보니 힘에 부쳐하는 느낌이다. 대신에 영화는 이런 느와르속에 가족애를 집어넣었다. 영화 시작부터 찰리의 노모를 보여주듯, 찰리가 거느리고 있는 두 부인과 그 자식들, 심지어 찰리를 쫓는 여형사도 남편을 잃어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그리고 마지막에 찰리의 어린 아들이 인질로 잡혀 구출하는 등 이 영화는 기존의 느와르에 충실하기 보다는 전개 과정 곳곳에 가족을 집어넣고 있다. 자키아쪽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다보니 느와르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가족이라는 주제앞에 각 캐릭터는 힘을 잃고 느와르가 갖는 원초적인 장르적 관습의 재미마저 놓치고 만 느낌이다. 물론 가족애를 그리면서 느와르를 살릴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가족애만 산 느낌이 다분하다. 마지막에도 가족애를 강조했으니 말이다. 결국에 영화가 표방한 느와르적 요소는 약해지고 만 것이다. 아무튼 프랑스식 느와르라 해서 그 어떤 고독과 우수, 그 16년전 레옹의 아우라를 기대하고 본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영화내내 전편을 흐르는 그 비장한 OST 음악들은, "아 이게 느와르 영화구나.."를 되새겨 주는 장치로서 충분히 활용은 잘 되었다.

결국에 <테이큰>의 제작진이 연출한 액션의 완결판이라 자부했던 이 영화 <22 블렛>은 리암 니슨이 납치된 딸을 구하는 그 부성애의 액션 느와르가 보여준 하드보일드 액션에는 약했고, 대신에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뜨거운 부성애와 복수라는 주제만을 답습한 채 ’클라우스 바델트’ 음악 감독이 선사하는 비장미 넘치는 OST만이 귀갓에 맴도는 그런 프랑스식 느와르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이제 60을 넘은 르노옹이기에.. 이제는 쉬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영화 마지막에 가족과 함께 해변가의 거닐며 노을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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