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부터 단아하고 우아함의 대명사 절대 욕을 안할 것 같은 착한 이미지의 여배우 '수애'가 생애 첫 스릴러물에 도전하면서 화제가 된 영화, 여기에 여러 작품에서 나왔지만 그래도 2003년작 <올드보이>에서 냉철한 카리스마를 보이며 민식이 형님을 15년간 만두만 먹인 이우진역의 '유지태'.. 이 둘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스릴러 영화가 바로 <심야의 FM>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소재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스릴러 장르와는 비주얼부터 다르다. 한정된 공간 그 조그만 라디오 부스안에서 연쇄 살인마와 전화 통화를 하며 극의 몰입과 긴장감을 이끌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범인은 초반부터 밝혀진다. 어느 순간부터 스릴러가 이제는 소위 까놓고 시작하기 시작했다.
수애, 유지태 투 톱의 스릴러물 <심야의 FM>
그러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왜? 왜? 왜? 즉, 그 범인의 범행 목적에 포커스를 맞추며 관객들과 퍼즐맞추기 게임을 즐기는 식이다. 주인공과 그 범인은 무슨 관계였길래 이 지경까지 온 것인가?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이것이 요즈음 한국영화에서 주로 선보이는 스릴러 장르에서 차용하는 플롯들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영화도 그런 점에서 비켜가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심야의 FM>은 그렇게 툭 던져놓은 떡밥을 물고 풀어가는 과정속에서 적당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며 스릴러적 기본 요소에 꽤 충실히 다가섰다. 중반 이후 라디오 부스를 벗어난 추격씬등 반전에 대한 부담없이 담백하게 마무리 짓는 등.. 그래서 별반 다를 것 없는 스릴러같지만 그래서 더욱더 다른 스릴러와 차별화가 느껴지는 영화 <심야의 FM>.. 먼저, 시놉시스는 이렇다.
5년 동안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한 심야의 영화음악실 DJ 선영(수애).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으로 높은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악화된 딸의 건강 때문에 마이크를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노래부터 멘트 하나까지 세심하게 방송을 준비하는 그녀… 하지만 마지막이어서인지 무엇 하나도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걸려오는 정체불명의 청취자 동수(유지태)로부터 시작되는 협박!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그가 이야기하는 미션을 처리하지 않으면 가족들은 죽는다. 물론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그 놈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는 채 가족을 구하기 위해 홀로 범인과 싸워야 하는 선영! 그렇게… 아름답게 끝날 줄만 알았던 그녀의 마지막 2시간 방송이 악몽처럼 변해 그녀를 조여 오기 시작하고, 가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선영과 정체불명의 청취자 동수의 피 말리는 사투가 시작된다.
라디오 DJ와 스토커의 두뇌 게임, 그 진실은 어디에?
이렇게 영화는 잘 나가던 아나운서 출신의 고선영(수애)이 뉴스 방송에서 '정신줄 놓은 사법부'라는 클로징으로 좌천돼 맡게된 라디오 DJ.. 그것이 어느덧 5년이란 긴 세월동안 인기를 구가하며 그녀는 대한민국의 심야 그것도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책임져온 달콤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녀가 유학차 아니 휴식차 해외로 가기위해 마지막 방송을 앞둔 날.. 모종의 전화가 걸려온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선영씨 당신 집에 침입해서 여동생과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협박한다. 물론, 처음에는 장난이려니 넘어가지만 휴대폰 너머로 보이는 영상을 보고 그녀는 깜놀한다. 그리고 그 영상통화로 인질범과 선영은 라디오 연결 게임을 한다. 즉, 이 인질범 한동수(유지태)는 내가 당신을 DJ로써 얼마나 좋아하며 동업자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떠나면 되냐며 근 5년간 틀었던 명곡중 그때 그때 선곡해 틀라고 주문한다. 만약 이를 어길시 여동생은 물론 모두 죽인다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이에 선영은 장난이 아님을 눈치채고 마지막 방송을 위해 준비해둔 모든 자료를 내팽긴 채.. 그놈이 원하는 선곡대로 방송을 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작업이 쉽지가 않다. 수년 전의 노래를 찾아내려는 과정속에 진정 자신을 좋아해 마지막 방송을 보러온 순박하면서도 무언가 음침한 분위기의 스토커 남자가 당시 음악은 무엇이며 멘트는 무엇이었다고 가르쳐준다. 극에서 어찌보면 중요한 인물이다. 마지막까지 대활약?을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인질범 동수의 의도대로 방송이 나가자 수애는 그놈의 의도를 서서히 캐려한다. 물론 둘은 계속 영상전화로 연결한 상태다. 그런 가운데 라디오 방송이 잘못되고 있음을 안 PD가 방송에 훼방을 놓으면서 인질로 잡혀있던 여동생이 죽게된다. 이때부터 수애는 반 미쳐가 패닉상태에 빠지고 더이상 부스 안에서 라디오를 진행못하고 중계차를 동원해 자기 집으로 달려간다. 물론 그 중계차 안에서 계속 라디오를 진행한 채 말이다. 라디오가 중지되면 모두 죽기에...
하지만 이미 달려간 집에서는 아이들은 물론 살인마 동수는 자리를 뜬 상태다. 그리고 계속 걸려오는 전화, 그가 이끄는대로 어떤 행선지로 가게 된다. 물론 경찰은 동수가 전에 벌어졌던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임을 알고 이미 추적을 하고 있는 상태다. 이제 수애에게 남은 건 오로지 두 딸의 행방과 살아 있는지의 여부다. 결국 차로 추격끝에 그놈의 아지트에 도착한 선영, 이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그녀는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또 그녀의 어린 두 딸은 과연 살아 남았을까.. 또 위기에 처할때 그를 도와준 이는 누구였을까.. 마지막에 그런 그림들이 정석대로 그대로 펼쳐진다. 아주 그것도 솔리드하면서 담백하게 말이다.
소 영웅주의에 빠진 사이코패스 스토커, 한동수
이렇게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딱히 영화 전체적인 구도나 플롯만 놓고보면 크게 반향을 일으킬 소재가 아닐 수 있다. 라디오 방송의 DJ를 사랑했던 아니, 딱 잘라 말한다면 사랑보다는 그녀가 진행하는 그 음악에 매번 심취해 현실과 환상을 구분 못하는 어느 한 미친 사이코패스적 스토커의 살인적 행위라 볼 수 있다. 즉, 여기서 동수는 당신과 나는 동업자라 말하면서 그 룰을 깨면 안 된다면서 그녀의 방송을 저지한 것이다. "왜 날 두고 가려고 하는가.. 계속 방송을 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이런 동수의 성정 밑바탕에는 그가 틀어달라고 주문했던 명곡과 명화에 깊은 관련이 있다.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브>의 '트래비시'를 모티브로 <볼륨을 높여라>, <퐁네프의 연인들>의 대사와 음악등이 곳곳에서 차용돼 극의 분위기를 한층 돋군다.
그렇다면 여기 연쇄 살인마 한동수의 악마적 기질의 근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선영의 라디오 방송을 5년간 열혈적으로 청취하면서 그녀가 내뱉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며 그녀의 말속에서 그는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영화에서 발견하고 라디오를 통해서 자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 사회적 인격장애로 표출돼 영화 <택시 드라이브>에서 사회의 악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고민 때문에 불면증에 걸린 택시 운전사 바로 '트래비시'로 그는 변모한다. 그리고 그 택시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 선영의 라디오 멘트에서 선택 취사하는 비뚤어진 자기애적 감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감성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 즉 쓰레기를 처단하는데 쓴다.
이른바 소 영웅주의 빠진 사이코패스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중심에 자신과 연장선에서 동업자로 생각해온 선영에게 눈길을 돌려 이렇게 심야에 인질극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질극은 기존의 스릴러 장르와는 다르게 이리저리 동선을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공간 라디오 부스와 어둠속에 갇힌 집안, 그리고 그들을 연결시키는 전화 통화, 어찌보면 은밀한 라디오의 속성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시키는대로 또 그 이유도 모른 채 달려간 중반까지는 나름 몰입감과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다른데 볼 틈이 없다. 왜 이 남자가 이토록 그녀에게 매달렸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개된 장소가 아닌 어찌보면 비공개의 장소에서 자신의 치부를 하나하나씩 꺼내드는 연쇄 살인마 한동수..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이 냉혹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오대수를 그렇게 파국으로 이끌며 끊임없이 던진 질문과 죄의 추궁, 그냥 툭 내던진 어떤 말에 대한 단죄,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살인자와 숨겨진 사정과 피해자의 과거까지.. 어떻게 보면 그 <올드보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우진에서 좀더 진일보한 사이코패스로 변모된 한동수는 그래서 더욱더 닮아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수애의 연기 또한 좋았다. 첫 스릴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DJ로서의 역할은 물론 중반 이후 딸을 구하기 위한 몸을 사리지 않는 싱글맘의 처절한 사투는 분명 이 배우가 강단이 있음을 보게 된다. 기존의 이미지를 불식시킬 정도로 말이다.
올 가을 색다른 스릴러를 원한다면 <심야의 FM> 강추!!
아무튼 오랜만에 괜찮은 스릴러물을 본 것 같다. 간만에 딴데 안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목을 집중시켜 적절한 긴장감과 동선을 유지시킨 스릴러도 간만이다. 항상 범인은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마지만,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가는 재미와 극의 주인공과 무슨 관계인지 알아가는 재미, 또 그들의 사투는 어떻게 마무리되고 반전은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재미 등 스릴러는 이렇게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영화다. 대신에 기존에 잔혹한 스릴러였던 <악마를 보았다>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는 분명히 느낌이 다르고, 그 비주얼적 잔혹의 강도는 그것보다 약한 편이다. 하지만 잔혹이 약하다해서 스릴감이 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전적인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스릴러적 상황이 깨고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긴장과 서스펜스, 그것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속도감있게 유지한 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즉,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감있게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스릴러가 지향해야 할 기본적 요소이자 색다른 맛으로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여담으로, 강호가 읽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 2편 <인 더 풀> 소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첫 장 '도우미'편에서 섹시하고 아주 잘 나가는 도우미가 있다. 그런데 그 도우미는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고 바라본다는 예의 그 스토커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리며 '이라부'를 찾아간다. 이때 이라부 정신과 의사는 스토커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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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란 관계망상의 일종인데, 처음에는 현실도피에서 시작되는 거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이 세상 다른 사람 탓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거지. 죄의식이 하나도 없어. 요컨대 자신만의 거울을 가지고 있는 거지. 거기에 비치는 자신은 너무 멋지고, 이성의 눈길을 끌어야 마땅하고, 남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거지. 그러니까 자신을 의심하지 않아. 자의식과잉이라고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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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바로 여기 극중 '한동수'가 이런 스토커였던 것이다.
대신에 그는 단단히 미친 놈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