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블렛 - 22 Bullet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국내 팬들에게 아니 전세계 영화 팬들에게 ’장 르노하면 레옹이요, 레옹하면 장 르노’가 생각날 정도로 그 고독한 킬러는 마틸다와 함께 화분 하나들고 오래전에 거리를 거닐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나 아니 그전에도 레옹은 존재했지만 그리 임팩트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60을 훌쩍 넘긴 그 레옹이 다시 고독한 킬러로 분연해 돌아왔으니 바로 프랑스 갱스터 무비 <22 블렛>이다. 영화는 실제 1977년 22발의 총을 맞고도 살아난 마피아 두목에서 이야기를 따온 것이라 한다.

그런데 정말로 22발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막말로 엄한데 쏘지 않고서야 가슴쪽만 집중해 쏴도 살 수가 없을터.. 어찌됐든 그는 기적같이 살아났고 그 다음부터 그는 ’임모탈(immortal)’, 이른바 ’죽지 않는 불사조’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그들에게 다시 총구를 겨눠 피의 응징을 한다는게 이 영화의 줄거리자 플롯이다. 참 간단해서 좋다. 시놉시스도 필요없이 복잡한 전개도 없다. 그래도 강호식?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22발의 총성 뒤 살아난 한 남자의 복수극!

영화 시작부터 노모를 모시고 사는 전직 마피아대부 ’찰리’, 하지만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며 가족과 함께 평안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한 남자였다. 늦둥이인지 몰라도 6~7살 돼보이는 어린 아들과 시내에 나갔다가 아들을 먼저 내려놓은 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내리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괴한들 예닐곱 명이 들이닥쳐 그에게 총질을 가한 것이다. 이런 날벼락이란 생각도 잠시 그는 숨을 거둔 마냥 피칠갑을 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돼 대수술을 받는다. 몸속에 박힌 무려 22발의 총알을 꺼내는 수술에서 그는 기적같이 살아난다. 실제 있었던 일처럼 말이다. 



그리고 찰리를 따르는 조직원 몇 명이 이 사건과 관련돼 끄나풀을 잡아서 소위 족친다. 물론 병원을 빠져나온 찰리는 그를 문초해 자신을 죽이려했던 놈들이 누구인지 알게된다. 바로 자신과 소싯적 ’한번 우정은 영원한 우정이다’로 맹세했던 친구 ’자키아’라는 것을 알면서 우선은 지켜보는 요량으로 복수를 잠시 거둔다. 그런데 찰리의 심복이 자키아 조직원에 의해 무참히 죽게되면서 찰리는 더 이상 묵과하지 않고 자키아 일당을 찾아가 선전포고를 한다. "지금 당장은 죽이지 않겠다. 대신 내가 끝까지 살아 있는 한 단 한명씩 죽여 살아남지 못한다"며 으름장을 놓며 본보기로 한 놈을 골로 보낸다. 영화는 이때부터 피 끊는 비정한 복수극을 보인다.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절어도 그에게 권총만이 유일한 수단, 그때부터 자키아 조직원들에게 접근해 하나 둘씩 제거해간다.

이를 지켜본 경찰도 속수무책, 여기 여주인공 여형사는 급기야 그런 찰리를 두둔하기에 이른다. 결국에 자키아 일당이 찰리의 어린 아들을 인질로 잡아가면서 찰리가 거짓 체포되었다고 언론에 흘리고, 찰리는 그들 아지트에 몰래 잡입해 아들을 구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자키아 두목, 예전 그 친구를 찾아가 우리의 우정은 이것밖에 안됐나며, 왜 나를 죽이려 했냐며, 서로 싸우다가 그 저택에 급습한 경찰 특공대에 잡힌 찰리와 자키아.. 과연 둘은 어떻게 됐을까? 누가 풀려나고 누가 잡혔을까? 또 당시 22발을 쏜 일당들중 찰리를 쏘지 않은 자가 있었는데 그는 누구였을까.. 혹시 세 명의 우정을 나눈 친구중 하나?!

이렇게 이 영화는 줄거리만 봐도 전형적인 액션 느와르적 장르 냄새가 풀풀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2발의 ’blullet’이라는 총알처럼 이 영화는 총기 액션이 주를 이루는 느와르다. 바로 갱스터 무비들로서 주로 헐리웃 영화들에서 많이 봐온 그림들인데, 하지만 이 영화는 레옹을 만들었던 두 콤비 뤽 베송이 제작하고 장 르노가 주연을 맡은 프랑스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말투 자체가 영어가 아닌 불어, 조금은 시끄러우면서도 무언가 고풍스런 분위기의 유럽 스타일이 물씬 풍긴다. 더군다나 마초적이면서 칙칙한 남자들이 마피아로 나와 비주얼은 나름 성공한 편이다. 또한 배경도 프랑스 남부지방에 있는 항구도시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펼쳐져 풍광도 좋다. 


 
음악이 그나마 살린 느와르, 가족애만 남았다.

그리고 가장 눈여겨 볼만한 아니 눈여겨 들을만한 것이 이 영화에서 하나가 있다. 바로 음악이다. 느와르적 장르가 어떤 비주얼속에서 배신과 음모의 동선를 그려낸다면 이런 그림에 한층 다가서게 하는 것이 음악 바로 OST다. 영화 시작부터 찰리가 차를 몰고가며 듣는 클래식의 선율과 마지막 배웅 나온 친구의 차를 타고 나갈때의 선율, 또 영화 내내 프랑스 가곡인지 몰라도 고풍스런 음악들은 느와르 장르가 갖는 원초적인 비장미를 돋보이는데 한 몫했음이다. 특히 엔딩에서 그 음악은 최고의 장면으로 꼽고 싶을 정도로 강호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건진 것은 느와르 이전에 음악이었다.

하지만 이런 음악적 요소를 뺀 전체적인 영화적 완성도나 구성을 보면은 조금은 허술한 느낌이다. 그 어떤 완벽한 갱스터 무비라 하기에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영화다. 치고박는 액션은 고사하고 오로지 총기액션, 그래도 총기 액션이라도 그 어떤 액티브한 액션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레옹의 ’장 르노’가 이제는 60이 넘다보니 힘에 부쳐하는 느낌이다. 대신에 영화는 이런 느와르속에 가족애를 집어넣었다. 영화 시작부터 찰리의 노모를 보여주듯, 찰리가 거느리고 있는 두 부인과 그 자식들, 심지어 찰리를 쫓는 여형사도 남편을 잃어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그리고 마지막에 찰리의 어린 아들이 인질로 잡혀 구출하는 등 이 영화는 기존의 느와르에 충실하기 보다는 전개 과정 곳곳에 가족을 집어넣고 있다. 자키아쪽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다보니 느와르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가족이라는 주제앞에 각 캐릭터는 힘을 잃고 느와르가 갖는 원초적인 장르적 관습의 재미마저 놓치고 만 느낌이다. 물론 가족애를 그리면서 느와르를 살릴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가족애만 산 느낌이 다분하다. 마지막에도 가족애를 강조했으니 말이다. 결국에 영화가 표방한 느와르적 요소는 약해지고 만 것이다. 아무튼 프랑스식 느와르라 해서 그 어떤 고독과 우수, 그 16년전 레옹의 아우라를 기대하고 본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영화내내 전편을 흐르는 그 비장한 OST 음악들은, "아 이게 느와르 영화구나.."를 되새겨 주는 장치로서 충분히 활용은 잘 되었다.

결국에 <테이큰>의 제작진이 연출한 액션의 완결판이라 자부했던 이 영화 <22 블렛>은 리암 니슨이 납치된 딸을 구하는 그 부성애의 액션 느와르가 보여준 하드보일드 액션에는 약했고, 대신에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뜨거운 부성애와 복수라는 주제만을 답습한 채 ’클라우스 바델트’ 음악 감독이 선사하는 비장미 넘치는 OST만이 귀갓에 맴도는 그런 프랑스식 느와르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이제 60을 넘은 르노옹이기에.. 이제는 쉬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영화 마지막에 가족과 함께 해변가의 거닐며 노을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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