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 어떤 불가항력적인 위험에 처해진 상황에 맞서 이겨내려는 '사투'(死鬪), 즉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그 현장은 영화적 소재로 차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림 자체가 주는 근원적인 힘이 있기 때문인데, 누구나 보편적인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저마다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해 우리는 나름 사투의 연속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막바지에 몰린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즉 누구의 도움도 없이 고립된 상황에 처해진다면 어떨까? 생각만해도 끔찍하기도 하고, 또 쉽게 일어나질 않을 일이라고 애써 치부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네 사회면을 가끔씩 장식하며 인간의 질긴 위대함을 때론 보기도 하는데, 여기 그런 영화 한 편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인도 청년의 퀴즈왕 먹기 게임을 꽤 담백하게 어디에 치우치지 않게 잘 그려낸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독 '대니 보일', 물론 그 전에 좀비와의 사투를 단순 B급에 머무르지 않고 메시지성이 강한 수작으로 남긴 <28일후>, 또 거슬러 올라가면 그 경쾌한 음악에 맞춰 무한질주하듯 아직도 달리는 뜀박질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 <트레인 스포팅>까지.. '대니 보일' 감독은 그만의 스타일과 감각을 소유하며 스크린을 창조하는 일종의 능력자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인간의 사투를 그려내며 또 다시 주목을 받았는데, 더군다나 이 영화는 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살아난 한 인간을 그렸기에 더욱더 의미가 깊다 할 수 있다. 즉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실제 주인공을 모델로 그 사투의 현장을 그려낸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감동실화'라는 장르 선정에 쉽게 다가설 수 있음을 본다. 그것이 감동이 됐든 아니면 실망이 됐든, 그래도 인간의 사투를 이렇게 임팩트하게 아니, 담백하면서도 밀도감있게 그려냈으니 영화 '127시간'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실화극 <127시간>,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남은 건 오직… 로프, 칼 그리고 500ml 물 한 병 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127시간의 간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년, 홀로 등반에 나선 아론(제임스 프랭코)은 떨어진 암벽에 팔이 짓눌려 고립된다. 그가 가진 것은 산악용 로프와 칼 그리고 500ml의 물 한 병이 전부. 그는 127시간 동안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는 친구, 연인, 가족 그리고 그가 사고 전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침내 살아남기 위한 결심을 굳히고, 탈출을 위해서는 자신의 팔을 잘라야 하는데……



한 남자의 사투 '127시간', 결국 자신의 팔을 자르고 살아남다.

사실 줄거리도 볼 거 없이 한 남자가 홀로 산악 모험을 하던 중, 암벽에 팔이 끼면서 고립돼 그 상황이 제목처럼 '127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투를 그린 것이다. 즉 5일을 넘게 버텨낸 '그 남자가 살아남는 법'을 그린 일종의 다큐스런 영화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많은 주인공이 필요치 않다. 얼마 전 강호가 본 영화 <베리드>처럼 관속에 묻힌 한 남자의 사투를 그리듯 여기서도 오직 한 사람만이 나올 뿐이다. 그대신 여기서는 대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나름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제공됐다. '베리드'처럼 꽉 막힌 공간이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래서 초반에 팔이 끼었을 때 주인공 아론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뭐.. 움직여보면 빠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 암석은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아론은 '오.. 지저스'가 절로 나오게 된다. 절대 빠지지 않을 팔을 애처롭게 보기 시작하며 그만의 사투가 그곳에서 벌어진다. 홀로 고립되다 보니 갖가지 상념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이렇게 고립되기 전 만났던 신선한 처자들과 찍은 비디오를 보기도 하고, 칼로 바위를 깍아도 보고, 목마른 갈증의 욕구가 샘솟아 단지 '마시고 싶다'는 꿈에 부풀고, 유일한 대화 상대인 캠코더 앞에서 녹화를 하는 등, 그는 버티기 위해서 나름 노력한다. 때로는 친구들과 질펀한 파티를 상상하기도 하고,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그곳에 물이 차올라 드디어 암석에서 팔이 빠지는 꿈까지 꾸는 등, 그에게는 온갖 상념으로 가득차 그곳에서 고립된 상황의 돌파구를 찾는다. 즉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며 나름의 위안을 얻는 것인데,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피폐해지고 메말라간다.

결국 5일째가 되던 날, 그는 결심한다. 더이상 버티기도 힘들고, 어찌됐든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그 암석에 낀 팔을 결국 자르기로 결심한다.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무엇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아론으로서는 최선의 방책인 셈이다. 좀비물을 보듯 가열하게 팔을 슬래셔급으로 잘라내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도 그곳을 기념하듯 디카로 찍어주는 센스.. 분명 이 모습이 웃긴 건 아니지만 그 여유로움에 놀라울 뿐이다. 또한 팔을 어떻게 자를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것은 실화기에 분명 가능한 이야기다. 이후 잘라진 팔을 감싸고 그곳을 뛰쳐나온 그는 물부터 찾아 마시고, 지나가던 산악인을 보고 혼절해 구원을 요청한다. 그 순간 그는 구조돼 결국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그 남자의 가열한 사투를 통해서, 인간의 생존적 몸부림을 보다.

이렇듯 영화는 꽤 정공법으로 영화를 그려냈다. 그 어떤 덧칠없이 한 인간이 고립된 상황에서 보일 수 있는 갖가지 상황을 연출하며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스토리가 아쉽긴 해도 사실 스토리보다는, 그 남자가 죽지 않고 사는 법이 더욱더 중요하게 그려져야 할 상황이기에 그림 연출은 볼만했다. 긴 런닝타임이 아니어서 지루함도 없이 그를 주시하게 되고, 그것은 탄탄의 연기력으로 사투의 현장을 리얼하게 연기한 '제인스 프랭코'의 호연도 한몫 했음이다. 또한 '대니 보일'식의 감각적인 영상이나 음악도 같이 어우려져 마지막 팔을 자르기 전 까지는 실제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영화적 기법에다 실화가 잘 어우러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실제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남자의 사투를 중점적으로 그려낸 실화다. 그것이 감동을 주고 안 주고는 사실 차후의 문제이자, 그것이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바로 감독의 의도도 그렇고, 그것은 '인간의 사투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가이드같은 모습을 보인다. 즉 혼자서 사투의 현장 속 고립된 상황에 있다 보면,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려하며 일종의 삶의 끈을 놓치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결국 영화는 그곳에 초점을 맞춰 그려냈고, 종국에는 팔까지 자르게 된 그 상황에 대한 개연과 필연을 나름 와 닿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지켜보며 이 상황에 동참한 이들에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물음과 함께, 여기 주인공은 그 선택의 기로에서 그렇게 함으로써 사투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것만이 살길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또 인간인 것이다.

여기 실제 주인공 '아론 랜스톤'처럼 말이다. 결국 인간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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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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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호의 레이더에 포착돼 오랜만에 읽게 된 일본 역사소설 <노보우의 성>, 책 앞면에 표지의 모습처럼 무언가 진중함 대신 코믹함이 묻어날 것 같은 이 책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와다 료'의 소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출간되자마자 역사소설 부문에서 120만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의 '이누도 잇신' 감독 연출과 '국민배우'라 불리는 '노무라 만사이' 주연으로 2011년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어 또 다른 화제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다 읽고 난 총평은 진짜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정말 재미난 스토리텔링이었다. 즉 여기 소설 속 이야기에는 실존했던 일본 사무라이들이 등장해 갖가지 개성 강한 캐릭터로 그 현장을 생생하게 활보한다. 또한 그들만의 낭만까지 아우르며, 읽은 이로  하여금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으니 '노보우의 성'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먼저, 역사소설이다보니 역사적 배경이나 사건이 들어가 있다. 여기서는 바로 1582년부터 1590년까지 8년 간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프롤로그를 통해서 일본의 센코쿠(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종1위 '관백'(일본의 천황 대신 정치를 하는 직책)에 오른 아주 유명하고 임팩트한 인물이자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나온다. 그가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부장으로 있던 시절, 수많은 성들을 공략하면서 위명을 떨쳤던 1582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전국시대 상황이 간략이 소개된다. 그러면서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뒤 8년이 지난 덴쇼 18년(1590년) 히데요시는 자신의 저택 '주라쿠다이'에서 전국의 다이묘(바쿠후로부터 1만석 이상의 영지를 받은 장수)을 모아놓고 또 다른 명령을 하달한다.

관백 휘하 장수의 '오시 성' 공략전, 얼간이 '노보우'가 만만치 않다.

아직 점령못한 지역을 교통정리 하는데, 바로 간토 지역으로 그곳에서 유명세를 떨친 호조 가문의 '오다와라'성을 접수하라 지시한다. 그리고 그 호조 가문과 친분을 쌓으며 유지해온 또 다른 '오시'성도 공격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일본 천하를 주름잡는 관백 히데요시가 쳐들어온다니 호조 가문의 '오다와라'성은 물론이요, 나리타 가문이 지켜온 '오시'성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풍전등화 상태, 그래서 이들은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다. 우선 호조 가문의 성주인 우지나오와 우지마사는 오시 성의 성주이자 나리타 가문의 당주 '나리타 우지나가'에게 이쪽을 지원해 달라 요청한다. 그러면서 우지나가가 호조 가문을 돕기 위해서 오다와라 성으로 떠나고 당주 자리가 빈 오시 성은 성대(성을 대신 맡은 성주)로 '나리타 나가치카'가 맡게 된다.

그런데 이 인사가 참 웃긴 게 자신의 이름보다는 바보 얼간이란 뜻의 '노보우' 님으로 불린다는 거. 특히 그 성의 농민들까지 그렇게 부르며 그와 꽤 친숙함을 보이는데 그만큼 나가치카는 백성들과 한 몸으로 매번 농사일을 돕는 등, 그는 사실 무사 기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몸치로 오시 성의 운명을 책임지는 총사령관이 된다. 물론 그 전에 그의 아버지 '나리타 야스스에'가 맡았지만 호조 가문을 위해 도요토미 군에 맞서 싸울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등 홧병에 죽으면서 나가치카가 대신 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얼간이 성대를 도와 줄 나리타 가문의 무사들은 세 명의 걸출한 인물들이 있었다. 하나는 '마사키 단바노카미'로 줄여서 '단바'로 불리는 이는 나가치카와 죽마고우이자, 나리타 가문의 '에이스' 무장이다. 또 다른 인물은 '사카마키 유키에'로 나리타 가문의 스물두 살 젊은 가로(무가의 가신들)로 그는 수많은 병법서를 통달하고 스스로르 '비사문천의 화신'이라 칭하지만, 전투를 치러 보지 못한 풋내기 무사로 혈기왕성한 인물이다.

이와 함께 덩치가 큰 거한에다 최고 무사의 상징인 단바의 '개주창'을 실력으로 빼앗는 것이 삶의 최고 목표인 '이즈미'로 불리는 '시바사키 이즈미노카미' 이렇게 이들 셋 무장이 바로 얼간이 노보우와 함께 오시 성을 지키게 된다. 물론 이외에도 우지나가의 딸이자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무예의 달인으로 검술에도 능하지만 성대 나가치카를 좋아하는 '가이히메'가 있다. 역사적으로 여기 가이히메는 나중에 관백의 첩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이의 계모로 우지나가의 두 번째 부인이자 전설적인 무장 '오타 산라쿠사이'의 딸로 남편 우지나가를 시시한 남자로 여기는 '다마'까지.. 이렇게 나리타 가문의 주요 인사들만 해도 개성이 철철 넘치는 인물들이다.


(센코쿠 시대의 사무라이들, 역시 짧다. 하지만 여기 노보우 '나가치카'는 꽤 키가 큰 인물이다.)

그리고 반대편 여기 오시 성 함락을 위해 뛰어든 무사는 관백의 오른팔로 총애를 받았던 인물 '이시다 미쓰나리'. 이 인물은 나중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전투를 패하며 운명을 달리한 용장이었다. 우선 1590년 그는 오시 성 공략작전을 책임진 총사령관으로 머리가 비상하지만 융통성이 없을 정도로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이와 함께 미쓰나리와 친분이 두터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간파하며 돕는 인물 '오타니 요시쓰구', 그리고 무게만 잡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거만하고 옹졸의 성품으로 '산술의 천하무적'이라 불릴 정도로 계산이 빠른 장수 '나쓰카 마사이에'까지 이렇게 관백 쪽은 세 명의 에이스가 있다.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무장들이 간토 지역에 펼쳐져 있는 성들을 공략하게 되는데, 여기 미쓰나리와 요시쓰구, 마사이에가 바로 오시 성을 공략하면서 나리카 가문의 노보우와 그의 무장들과 함께 공성전을 펼치게 되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이자 뼈대인 것이다.

캐릭터 강한 무사들의 드라마 '노보우의 성',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즉 이야기는 사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개성만점의 일본 사무라이들이 센코쿠시대의 관습처럼 굳어진 무사의 기본 아우라를 지키며 오시 성을 공략하고 수비하면서 펼쳐지는 한바탕 소위 난리 부루스라 보면 쉽다. 처음에는 천하를 가진 관백에게 항복하려다가 얼간이 나가치카가 '아니야, 우린 싸울 꺼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일대 대 공방전이 펼쳐져 1차 전투 때에는 나리타 가문이 승기를 잡는다. 이에 화가 난 미쓰나리는 관백이 자주 썼던 수공을 이용해 오시 성을 혼마루(성의 중심부)만 남기고 모두 물에 담가버리는 계책으로 2차 전투의 승기를 잡는다. 이에 궁지에 몰린 오시 성은 노보우 나가치카가 홀연 단신으로 배를 띄워 한바탕 쇼를 한 후에야 그들이 다시 승기를 잡는 등, 제대로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진짜 드라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기록처럼 오시 성은 결국 관백에게 접수가 되고 마는데, 과연 이 전투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며 누가 이기고 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렇게 철옹성도 아닌 이 보잘 것 없는 시골의 '오시 성'을 관백의 오른팔 미쓰나리는 제대로 공략을 못한 것인데,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니 읽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음이다. 이렇게 역사소설 '노보우의 성'은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 된 1590년 나리카 가문이 지켜온 '오시 성' 전투기록을 참고로 소설적 재미를 가미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드라마다.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일본역사가 중국역사보다 좀 낯설어 시대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이 소설 속에는 필요한 배경적 이야기가 있다면 페이지마다 어느 가문의 내력과 시대배경을 친철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대신에 일본의 그 부르기 힘든 이름 때문에, 초반까지는 읽는데 애를 좀 먹는 게 있다.

즉 각 무장들 이름을 기억하고, 누구 가문의 이름은 헷갈려 메모까지 적으며 읽었던 '노보우 성', 물론 중반 이후부터는 그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며 한 편의 드라마를 몰입해서 보듯 생생한 재미를 선사했음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위에서도 자세히 적었지만 여기 주인공 바보 얼간이로 불리면서 키 큰 멀대처럼 아무런 표정 변화없는 나가치카의 캐릭터부터 그의 조력자 단바, 유키에, 이즈미, 반대편 관백의 장수들 미쓰나리, 요시쓰구, 마사이에 등 개성이 강한 무사들의 향연장으로 빠져들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역사소설은 진중함 보다는 특히 마지막에는 센코쿠 시대 무사들의 낭만을 일깨우는 맛도 선보이며, 새로운 감각으로 일본역사상 가장 기이했다는 오시 성 전투를 통속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무언가 메시지를 담아낸 아주 담백함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오시 성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얼간이 '노보우'라 불린 '나리타 나가치카'가 있었고, 그가 이른바 '지장 덕장 용장'을 능가하는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운짱'이 아니었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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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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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어느 시골의 꼬마 녀석들이 산으로 도룡뇽을 잡으러 갔다가, 그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라 통칭하며 찾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이들을 찾은 건 한참 뒤 뼈만 남은 유골이었고, 그렇게 아이들을 해친 범인은 아직도 못 잡은 희대의 미제사건으로 남겨져 아이들의 영혼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바로 1991년 3월 26일 대구에서 발생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모두가 기억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고, 또 세월의 풍파 속에 잊혀져가고 있었지만.. 우리네 기억 속 저편의 심연으로 사라진 아이들이 2011년 스크린으로 다시 부활해 돌아왔다. 바로 영화 속에서 그려낸 '개구리소년 사건 일지'는 아래와 같다.

20년 전 사라진 개구리 소년들, 영화 <아이들...>로 부활하다.

   
 

1991년 03월 26일 

* 기초의회 선거일 사건 발생. 
* 아이들의 부모들이 신고하지만 선거일이라 초반대응 미흡
* 토압산 일대 수색 작업(헬기, 4백여명 수색 인원 동원)
* 실종인 아이 중 한명인 종호에게서 전화가 왔으나 종호 엄마의 실수로 추적 버튼을 누르지 못함 

1993년 그리고...

* 다큐멘터리 피디 강지승 대구로 발령
* 저수지 수색작업, 아이들 발견되지 않음
* 무당의 점괘에 따라 나주 쓰레기장 수색 작업, 아이들 발견되지 않음
* 국립과학대학 황우혁 교수가 자신의 가설에 따라 범인 지목
* 종호집의 화장실, 골방, 뒷벽 사이 등 수색작업 시작된다.

 
   

이렇게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거의 비슷한 사건 일지의 양상을 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알고 싶다'류의 다큐가 아니기에 영화적으로 옮겨진 그림들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사건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반추작용은 물론이요, 영화기에 실종사건이 주는 근원의 스릴러적 요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은 꽤 근접하게 실제 벌어졌던 실화와 실종이 주는 미스터리 요소를 어우르게 그려냈고, 마지막에는 아이들 유골 앞에서 그들 부모들이 겪어왔을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듯 찢어지는 가슴으로 통한의 눈물을 쏟으며 영화는 숙연하게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이제는 공소시효가 사라진 이 사건을 명시하며 영화는 또 다른 기분을 마지막까지 괴어오르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큐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상업성을 추구한 영화가 바라본 '개구리 실종사건'의 실화극은 어떻게 다루어졌을까? 간단히 살펴보면 영화는 긴 호흡의 2시간이 넘는(132분) 영화다. 그렇기에 마치 축구 경기의 전후반을 나눈 듯한 인상이 깊게 배어져 있다. 즉 전반과 후반으로 나눠서 전반에는 아이들을 찾기 위한 노력을 그려냈고, 후반에는 그 아이들을 해친 범인을 쫓는 미스터리적 요소로 그려냈다. 물론 그 범인은 영화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이 전후반의 공격과 수비는 유기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꽤 상충되게 부딪쳐 영화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무게감마저 상쇄시켜 버리는 다소 악재로 다가온 느낌이 다분하다.



왜 그랬을까? 우선 전반에는 다큐멘터리 PD로 전도가 유망했던 강지승(박용우)이라는 인물이 이 사건을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즉 임팩트하고 무언가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함인데, 혼자서는 할 수 없기에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에는 범인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며 '인지부조화'에 대해서 설파해온 황우혁(류승룡) 교수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들은 이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수많은 잘못된 루머 중에서 취사 선택한 것이 바로 '암매장설', 그리고 범인은 실종된 아이들 부모 중 종호 아버지(성지루)를 지목해 강PD와 황교수는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며 그 집을 샅샅히 파고 헤친다. 하지만 발견된 것은 딸랑 여자아이 신발 하나, 그들 부모는 애당초 범인이 아니었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궁지에 몰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여파로 물러난다.

실화와 스릴러 요소의 상충적인 충돌, 그래도 '아이들'은 잊혀지지 않기를...

그러면서 시간이 10여 년이 흘러 그 아이들이 올라갔다는 산에서 유골이 발견되며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한다. 즉 아이들의 죽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자 그 유골의 과학적 분석과 남몰래 범인 쫓기에 주력해온 박 형사(성동일)의 노력으로 한 범인이 지목된다. 그리고 아직도 아이들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강PD가 그 범인을 쫓기에 이른 추격자의 모습으로 분전한다. 결국 범인이라 지목된 이와 마주친 도축장, 그는 소를 단숨에 때려잡을 정도의 포스를 지닌 도살업자로 그와 육박전을 벌인 강PD, 죽기 직전까지 몰린 그에게 범인이라는 그 사내는 한마디 던진다. "내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있어.. 증거가 있냐고.." 하면서 쓸쓸히 퇴장하는 가상의 범인..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 까만 화면이 사라진다. 결국 아이들 유골이 가지런히 모셔놓은 현장에서 가슴 찢어지게 울분을 쏟아내는 부모들을 바라보며, 과거로 돌아가 산으로 올라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보이며 영화는 갈무리된다. 

이렇듯 영화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에서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은 실화가 주는 근원적인 사건의 깔끄장한 요소를 끄집어내며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후반으로 나누어진 그림들은 유기적이지 못하게, 전반은 아이들 부모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현장을 그리며 나름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이마저도 허망하게 끝내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군다나 후반에는 세월이 흘러 아이들 유골이 발견된 후 일종의 가설로 범인을 내세우며, 이것을 마치 영화 '추격자' 버전처럼 그려냈다. 그런 그림은 분명 스릴러적 요소가 있지만 밀도감은 없이 영화와는 무관한 번외편으로 묻히고 말았다.

즉 이런 그림들이 따로 놀듯 그려진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서로 충돌시켜 그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는 부족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 실종돼 죽은 아이들의 실화적 요소까지 묻히고 만 것은 아닐지다. 이제는 공소시효까지 사라진 사건이 되버렸지만, 어딘가 아이들의 원귀가 떠돌듯 그들은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원죄적 의식이자 우리 모두가 이 영화에서 보게 되는 아주 근원적인 메시지다. 아이들은 사라졌지만 영원히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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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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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년의 포스를 자랑하는 매력적인 남자, 아니 이제 우리나이로 환갑(52년생)이 된 '리암 니슨'옹이 또 하나의 액션 스릴러 영화로 우리를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강호가 좋아하는 배우. 훤칠한 키에 무언가 지적인 매력과 중후한 목소리로 무장한 그만의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인데, 그는 2008년작 유괴된 딸을 구하는 아비의 미친 액션 존재감을 선보인 <테이큰> 이후 이상하게 액션 스릴러 장르로 변모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그 영화가 유명했기 때문인데.. 물론 이후 <애프터 라이프><클로이>를 통해서는 액션보다는 지적이고 중후한 매력을 선보였고, <A특공대>에서는 '한니발' 역을 맡으며 한바탕 액션을 선보였으며, <타이탄>에서는 모든 신들의 신 '제우스'역으로, <쓰리 데이즈>에서는 주인공 '러셀 크로우'와 함께 조연급으로 출연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언노운>으로 또 다시 액션 스릴러에 방점을 찍으며 돌아왔다. 이렇게 보니 리암 니슨도 은근히 다작을 하는 것 같은데,  그만큼 그가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폭이 넓다는 반증인 셈. 그래서 이번 '언노운'도 은근히 기대를 했고, 보고 나니 대만족은 아니어도 이 정도면 나름 괜찮게 만든 영화가 아니었나 자평하고 싶다. 더군다나 영화를 보기 전, 이번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 바로 <오펀:천사의 비밀>로 임팩트한 공포 스릴러의 반전을 선보인 감독(하우메 콜렛 세라)이라서 기대를 모았다. 즉 영화 '오펀'처럼 이 액션 스릴러도 '무언가 대단한 반전이 있을꺼야' 하는 기대치를 준 가운데, 영화내내 제목처럼 '언노운'(unknown), 알려지지 않은 알 수 없는, 그 어떤 존재에 대한 실체를 파헤친 그 이야기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사라진 72시간 액션을 재구성하라 | 72시간 후 사라진 인생, 나를 되찾아야 한다!

마틴 해리스 박사(리암 리슨)는 베를린 출장 중 교통사고를 당하고 72시간 만에 깨어난다. 하지만 부인(재뉴어리 존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남자(에이단 퀸)가 그녀의 곁에서 자기 행세를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 모두 그를 이상하게 몰아가고 급기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로부터 공격까지 당한다. 사고 당시 택시를 운전했던 여인(다이앤 크루거)의 도움으로 마틴은 이 이상한 일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점점 자신의 정체와 자신의 기억마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거대한 음모에 맞서야 함을 알게 되는데...



위처럼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한다. 여기서 리암니슨은 대학교수인 박사인 '마틴'으로 나온다. 아주 예쁜 금발의 아내와 출장차 베를린으로 온 그. 호텔에 투숙하러 가는데 공항에서 자신의 가방을 놓고 온 것을 알고 다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급히 간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교통사고가 나면서 위처럼 그 택시가 시내 강가로 추락하고 만다. 택시 드라이버인 여자가 그를 구해주더니 현장에서 사라지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3일 간 72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그. 잠시 과거의 기억이 안 나는가 싶었지만, 금세 자신의 이름 '마틴 해리스'를 떠올리고 아내가 있는 호텔 리셉션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더군다나 그 옆에는 자신이 남편이라고 우기는 작자가 버티고 있다. 오 지저스.. 웬 날벼락, 불과 몇 시간 전에 사랑을 속삭이던 아내가 웬 외간 남자랑 같이 있고, 자신을 몰라보다니.. 그는 미칠 노릇이다.

교통사고로 자신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정체' 밝히기, '언노운'

이때부터 그는 백방으로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서 뛴다. 택시를 몰았던 묘령의 백인 여자를 찾아가 보지만, 그는 독일에 불법체류자로 이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그를 처음에는 멀리한다. 다시 병원에도 찾아갔지만 그를 기억상실증 환자 취급만 할 뿐이다. 더군다나 낌새가 이상한 게 자신을 노리고 있는 두 명의 킬러가 시시각각 죽이려 한다. 백면서생같은 분위기의 마틴에게는 일촉즉발의 위기인 것인데, 그러면서 그는 병원 간호사가 일러준 어느 노신사를 찾아가 이번 사건 수사를 의뢰한다. 그 노신사는 바로 독일이 갈라졌던 동독시절 보안 비밀경찰로, 마틴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조력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위기에 봉착하는데, 결국 마틴은 강물에 잠수된 택시에서 자신을 살려준 그 여자와 함께 자신을 인생의 궁지로 몬 이 사건의 내막, 즉 자신이 '마틴 해리스'이고 그 여자는 내 아내가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중반 이후 마틴의 존재 입증 위에다 또 다른 이야기를 덧칠해 그의 새로운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스릴러 장르가 가지는 근원적인 재미, 즉 극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대전제를 깔고,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이 '왜 나를 몰라보는 것일까?' 라는 데서 출발하며 영화 곳곳에 심어놓은 요소들로 극의 긴강감과 몰입감을 높인다. 바로 여기서도 마틴이 분명 자신이 진짜 마틴인 것을 인지하고 파고 들어갔지만, 그가 접촉했던 어떤 과학자가 사우디 왕자의 후원을 받아 전세계에 무상으로 배포할 혁기적인 식량자원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며 '마틴'은 그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보는 이들은 마틴이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을 눈치 챈 상대방, 즉 적들이 그를 택시 사고사로 위장해 '마틴'이라는 인물을 지우고 새로운 인물로 내세워 그 사건에 끼어들게 만들 것일까 하는 근원적이고 일반적인 추리를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마틴은 정말 존재했던 인물일까? 아니면 마틴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그 정체와 진실은 과학자를 구하려는 과정에서 다소 때꾼하지만 의도되게 해명하듯 밝혀진다.



'리암 니슨'의 자아찾기 게임 '언노운', 그는 누구였을까? 혹시...

이렇게 영화는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알 수 없는', '알려지지 않은' 그 어떤 정체를 파헤치는 액션 스릴러물이다. 그렇기에 이를 좇는 재미, 즉 정체를 알아가는 재미가 근원에 깔려있고, 그것은 '리암 니슨'의 포스대로 제대로 발현이 돼 극의 몰입감을 충분히 주었다. 다만 전작 '테이큰'처럼 큰 액션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여지는 있다. 여기서는 그런 액션은 마지막에 제대로 한 건 터뜨리고 그 전에는 상대방을 엣지있게 제압하는 리암 니슨을 찾아보긴 힘들다. 대신에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같이 고생한 미모의 여자 택시 드라이버로 분전한 '다이앤 크루거'가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독일 출생답게 꽤 매력적인 유럽피안 스타일로 남성들에게는 영화내내 또 다르게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마틴의 부인보다 더 예뻤다는.. ㅎ 

결국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드러내기 전까지 곳곳에 장치들이 숨어 있어 꽤 몰입감있게 지켜보게 하는 근원적 힘이 있다. 즉, 택시 드라이버로 분전한 그녀도 비밀스러운 게 그녀가 일부러 사고사로 위장한 간자인 것인지,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도 분명 그들과 한통속인 건 아닌지, 또 자신을 몰라보는 아내 또한 분명 그들에게 협박을 당해 이렇게 당하고 있는 것인지.. 일반적인 스릴러적 장치와 코드로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찌보면 택시를 타고 가다 사고난 그 장면에서 '마틴'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죽다 살아난 혼수상태 72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잊어 버렸던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더 이상의 스포일러가 되기에 여기서 줄인다.

아무튼 '리암 니슨'이 또 다시 액션 스릴러를 들고 나왔기에 기대가 되면서 본 '언노운', 하지만 마지막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이 다소 때꾼하게 이미 의도된 것처럼 풀어내는 모양새가 좀 아쉽긴 하다. 그것은 감독의 전 작품이었던 영화 '오펀'에서 꽤 신선하게 그려낸 그 미친 소녀의 정체를 마지막에 그렇게 드러내듯 이 영화도 해명하듯이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오펀'이 더욱더 임팩트 했지마는, 어찌보면 여기서 '마틴'의 정체는 사실 다 보고나면 충분히 예상이 가는 그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혀 사전 정보없이 이 영화를 지켜보는 마지막 전까지는 스릴러답게 꽤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액션 스릴러가 기본으로 원용하는 코드인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의 대전제 앞에 자신을 죽이려는 킬러들, 내가 죽지 않으려면 그들의 정체를 반드시 알아내 죽여야 한다. 그 순간 나의 정체도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 '마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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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이자 80년대 선봉파(전위파, 아방가르드파)의 기수였던 '위화''쑤퉁'에 대해서는 이미 몇 번 언급을 했었는데, 현재 강호는 '쑤퉁'의 작품을 저번에 켈렉한 후 <나, 제왕의 생애>, <이혼 지침서> 등을 접했다. 그러다 알라딘 도서에 50만원 넘게 쌓인 적립금이 이제는 매달 얼마씩 만료일이 다가오면서 책을 사야 되는 상황에 이른 거. 그래서 이왕지사 '쑤퉁'을 더 파볼 요량으로 그의 책들을 알아보다가 국내에 번역 출간된 신작을 고르게 됐다. 제목도 같은 네 자로 하나는 <화씨 비가>요, 또 하나는 <성북지대>다. 그래서 강호가 해왔듯이 이 두 권의 책을 간략히 소개해 본다.



먼저 <화씨비가>는 1970~90년대 중국 남부에서 살아가는 한 하층민 가족의 삶을 그린 쑤퉁의 장편소설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비극이자 쑤퉁만이 그려낸 인간 세상의 쓰디쓴 풍경이 가열하게 펼쳐져 있다는 소개다. 소설의 이야기는 "죽은 아버지 화진더우 망령의 서술로 진행된다. 아내의 자살로 화진더우는 복수심에 불타 아내가 다니던 공장에 불을 지르고 감옥에서 자살한다. 세상에 남겨진 것은 그의 누이와 다섯 명의 아이들이다. 화진더우의 아이들을 기르는 일은 줄곧 '고모'로 지칭되는 누이에게 오롯이 남겨진다. 화진더우는 망령이 되어 가족 곁을 떠돌며 남은 피붙이들의 가난하고 처참한 생활을 부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는데..."

한 가족의 애절한 가족사 '화씨비가', 인간 세상의 쓰디쓴 풍경을 말하다.

이렇듯 내용만 보면 얼추 죽어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고자 했던 영화 <사랑과 영혼>이 생각나는 시퀀스다. 하지만 여기 주인공인 '화진더우'는 죽어서도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 채 남은 가족들이 현실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쑤퉁은 이 지점에서 남겨진 가족을 지켜보는 그의 시선을 통해서 절망을 끝까지 지켜보는 방식을 택하며 현실에 저항하는 일종의 차별화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그래서 멸시받는 하층민들의 처참한 삶을 망령이 되어 떠도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비극적으로 그려냈고, 종국에는 무너져가는 가정,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자녀들이 각기 처한 슬픈 현실을 고개 돌리지 않은 채 끝까지 지켜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끝까지 탐구했다는 문학적 평가다. 그러면서 그 속에는 애절함은 물론이요, 처연하면서도 웃음이 배어나는 하지만 결국에는 쓰라리지만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인간 세상의 쓰디쓴 풍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말이 필요없는 쑤퉁의 신작이다. 가족 구성원으로 죽을때까지 삶을 영위하는 우리들에게 꼭 한번 읽고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소설이다.



또 하나의 장편소설은 앞 표지부터 아주 인상적인 네 명의 소년 아니면 청년들이 보인다. 그렇다. 이 소설은 바로 쑤퉁 최고의 청춘소설이라는 <성북지대>다. 그와 함께 이 소설은 쑤퉁이 최초로 털어놓는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성장소설이다. 그래서 재미는 물론 '쑤퉁'의 청춘시절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은근히 기대가 되는 소설이다. 왜 유명한 작가들의 경우 성장시절에 아주 거기시한 사연들이 많지 않는가? 살짝이든 많이든 비켜난 그 시절 인생의 각도를 말이다.

쑤퉁의 자전적인 청춘소설 '성북지대', 우리네 쓰린 청춘을 반추한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문화대혁명의 풍파를 겪은 지난 세대의 은원이 가시지 않은 그 시절, 중국 강남 유역의 한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가정으로부터도 학교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겉도는 '불량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가감 없이 그려낸 작품이라는 소개다. 중심 이야기는 "세 개의 커다란 굴뚝이 상징물처럼 자리 잡은 성북지대. 성북지대의 변두리 '참죽나무길'에서 자란 소년들에게는 당장의 현실도 앞으로 닥칠 미래도 모두 흐릿하기만 할 뿐이다. 소년들은 학교로부터 쫓겨나고 불량청소년으로 낙인찍히고 그들의 인생은 점점 더 어긋나기만 한다. 그들은 결국 동네 여자아이를 강간하거나, 다른 동네 청년들과 힘겨루기를 하다 횡사할 뿐이다."

이렇듯 이 소설은 청춘의 성장소설이지만 이른바 '나쁜 녀석들'을 통해서 쓰라린 유년 시절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쑤퉁 자신이 실제로 오래도록 거주했던 참죽나무길을 배경으로 소시민들의 일상과 희로애락을 담아냈다는 평가다. 그중에서도 나이 많은 어른들보다는 소년소녀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시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월에 대한 애틋함을 청춘소설로 아름답게 그려내며, 종국에는 "불온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섬세하면서도 무자비하게 그려내었다"는 평가를 받은 대표적인 인기작인 것이다. 이 또한 여러 말이 필요없는 장편소설로 누구에게나 쓰리지만 그리운 유년 시절이 있듯이,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네 청춘의 한 시절을 만끽해 보자. 중국이나 우리나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쑤퉁의 두 권의 신작 장편소설을 간단히 살펴봤는데, 하나는 죽어서도 망령이 되어버린 한 아버지의 시선으로 가족의 비극과 애절한 사연을 담은 이야기 <화씨 비가>, 또 하나는 쑤퉁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진 청춘의 성장소설로 쓰리지만 때로는 불온했던 그 시절을 반추케 하는 청춘잔혹사라 불릴만한 <성북지대>.. 이 겨울이 다가기 전, 여기 애절함이 묻어나는 한 가족과 껌 좀 씹어본 나쁜 녀석들을 통해 우리네 삶의 풍경과 청춘의 편린을 되살려보는 건 어떨까 싶다. 이래서 소설이 재밌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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