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대 2
박경리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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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남자는 자신을 옭아 매어 두었던 끈을 풀고자 선택한 방법은 사랑하는 여인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길이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육촌 동생의 가장 커다란 약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무기로 무서운 여자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남자를 잡아둔다. 그 남자로 인해서 다른 한 남자는 악마같은 여자에게서 숨통이 트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명동의 음악살롱 '녹지대'를 중심으로 모였던 젊은이들도 서서히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로 교체되기 시작한다. 녹지대를 중심으로 모였던 젊은이들의 중심에 있었던? 자칭 시인이라고 불리는 하인애는 김정현이란 남자로 인한 사랑때문에 오ㅣ롭고 허전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서로 사랑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김정현의 사연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의외였으며 그가 처한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인애의 사촌 하숙배는 조각가 민상건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듣고자 한박사의 별장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던 엄마에게 불시에 데리고 간다. 다른 장소에서 이미 민상건을 본 적이 있는 숙배의 엄마 경순은 민상건의 속을 캐보고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지만 헛수고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숙배는 자신의 부질없는 행동에 쓴 웃음만 지울뿐이다.

 

엄마처럼 화려한 삶을 원치 않는 은자는 자신에게 확실을 주지 못하는 남자친구와의 결별을 결심한다. 그를 떠나기 위해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 한철과의 만남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인애의 큰아버지와 앉아 있는 의문 여인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며 한철과의 인연을 만들고 만다.

 

김정현의 마음을 알게 되지만 그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여인의 출현은 인애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뿐이다. 한철이 제안한 섬에서의 생활에 관심을 보이는 인애.... 김정현과의 만남도 섬이란 생각에 어쩌면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상대방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부재다.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랑으로 인해 숙배의 칼날은 자꾸 인애에게 향하고 어느날 듣게 되는 민상건의 말은 충격적이다.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이야기로 인해서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조금은 어색한 말투의 흑백 영화를 보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다. 자신의 아픔과 사랑이 더 처절하고 중요하며 소중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쳐 헤어리기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좌절과 상처가 너무 크다. 사랑으로 인해서 끝없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민상건이나 김정현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이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수예점을 운영하는 여인의 모습은 같은 여자라고 이해하기엔 섬뜩하면서도 무섭다.

 

'녹지대'는 잘 만들어진 한편의 흑백를 보는 듯하다. 지나간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음악살롱의 분위기나 양품점이나 명동의 거리들이 저절로 영상화되어 떠오른다. 故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을 늦게나마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였으며 이 분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게 안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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