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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멋진 신세계'에서 백일 동안 살아볼래, 아님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십일 동안 살아볼래.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멋진 신세계를 택하겠다. 행복과 평화를 지향하고 기술과 예술을 사랑하는 내 눈엔 가부장제가 펄떡거리는 야만인 보호구역이나 '섬' 같은 고독한 유배지가 생지옥처럼 다가온다.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나 야만인 보호구역이 징글징글할 것이다. 멋진 신세계가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점을 제외하면, 오히려 사회주의 공상가들이 설파하던 지상낙원, 현대판 에덴동산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자유분방한 성관계는 물론, 부작용이 전혀 없는 신경안정제인 '소마'가 지급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신세계, 한번 살아보고 싶다. 다만 내가 상류계급이 아니라면, 그건 또 다른 얘기지.
신세계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이렇게 다섯계급으로 나뉘고, 각 계급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차등이 있으며, 계급 수준에 맞게끔 인간들도 부화기에서 배양된다. 알파와 베타 같은 상류층은 한 개의 난자로부터 하나의 태아가 나오지만, 그 밑으로는 대량생산을 허용하는 '보카노프스키 법'에 따라 하나의 난자에서 적게는 여덟 명, 많게는 아흔여섯 명의 일란성 쌍생아들이 나온다. 소설에서 인공부화소 런던 지부장인 토마스 소장은 야심이 큰 알파 계급으로, 버나드 마르크스와 레니나 크라운의 상관이다. 뉴멕시코 지역의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존의 엄마인 린다는 소장을 '토마킨'으로 부른다. 그래, 세례자 요한을 연상시키는 '야만인'의 아버지가 바로 소장이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고도의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에 기반한 디스토피아적인 관리사회를 그리고 있다. 신세계는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를 신격화하여 숭배한다. '오, 하느님'이 아니라 '오, 포드님'이 감탄사다. 신세계는 포디즘과 같은 효율적이며 위생적인 관리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계급사회이지만, 여기엔 스탈린 같은 '빅 브라더'를 떠올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전제주의 사회나 봉건사회와는 결이 다른 나긋나긋한 관리사회의 면모가 강하다. 특히 세계국가의 표어인 '공유, 균등, 안정'을 십계명처럼 중시하고, 소마나 촉감영화 같은 교묘한 오락장치를 통해 심신의 쾌락과 평화를 다스리고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 터부시되는 것은 가부장제적 윤리와 자연적인 노화다. 아버지, 어머니, 결혼, 임신, 출산, 가족, 가정, 일부일처제, 낭만, 로맨스, 노화 같은 표현 자체가 강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적 금기어다. 인공부화소가 인구를 낳는 공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족제도가 불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