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보는 기술 - 역술가 박성준이 알려주는 사주, 관상, 풍수의 모든 것
박성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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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주명리는 질적인 해석이 중요하다. 선불교의 용어를 빌면, 체구연마(體究鍊磨)가 중요하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주명리의 음양학이 누군가에겐 단지 정보나 지식 차원에 머물지만, 체구연마를 거친 내공이 있는 이에게는 인생 과제를 풀어주는 밝은 지혜가 된다. 유명 역술가 박성준이 '운명을 보는 기술'의 개론서를 펴냈다. 사주, 관상, 풍수 세 가지 기술의 기본을 알려주는데, 내용의 비중으로 보자면 사주와 관상이 주고, 풍수는 맛보기 정도다.

저자는 운명을 알려주는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일 것을 주문한다. 이러한 신호는 말, 태도, 얼굴 표정이나 작은 사고의 전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운(길흉)이 바뀌는 교운기에 그런 신호들이 나타나는 법이다. 《주역》에도 '견미지저'라 했다. '작은 징후를 보고 큰 변화를 안다'는 말이다. 이런 개운의 신호들에 대한 선인들의 통찰력이 '호사다마'나 '과유불급' 같은 성어에 잘 드러나 있다. 호사다마는 '좋은 일이 생기려 하면 마가 낀다'는 말이다. 과유불급은 운명학의 시각에서 보면, 균형과 조화를 잃으면 운이 트이지 않는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사주팔자도 목화토금수 오행의 균형과 조후가 중요하다.

평범한 장삼이사가 생년월일시로 운명을 읽는 사주팔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개운을 위해서다. 그리고 자기실현을 위해서다. 고전 명리서 《적천수》에 따르면, "성명합일, 복록자수"라 했다. "천성과 운명이 하나가 되면 복록이 저절로 따른다."는 말이다. 그러면 복록을 까먹는 이들은 어떤 부류일까. 저자는 운이 나쁜 사람들의 공통적인 태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가령 '작은 신호를 무시한다, 탐욕과 오만이 크다, 현실을 외면한다, 자기 인식을 못한다, 분노와 집착이 강하다' 등이다.

사주 명식의 재관(財官)을 보면 이성에 대한 태도와 운도 알 수 있다. 남자는 재(내가 극하는 오행)를 보고, 여자는 관(나를 극하는 오행)을 본다. 재는 남자에게 돈과 여자인데, 남녀 공히 재는 돈과 무언가를 관리하고 마무리하는 능력이다. 관은 여자에게 남자를 의미하고, 남녀 공히 관은 명예와 합리성, 참고 인내하고 견디는 힘이다. 따라서 남자의 지갑을 살펴보면,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지갑이 누추하다는 것은 곧 집이 누추하다는 의미이고 아내에게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돈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고 다니는 사람은 일단 여자를 우습게 여길 확률이 높다." 정말 예리한 식견이 아닐 수 없다. 여성분들은 애인이나 배우자의 지갑과 돈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한편, 사주에 관이 없는 무관사주의 여자는 '남자가 잘 안 생긴다'는 의미도 있지만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힘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다.

동양 관상학의 정수를 담은 고전인 《마의상법》은 중국 송나라의 도인 마의도자가 구전한 것을 진단이 정리한 관상서다. 《마의상법》은 상을 크게 여덟 가지로 나눈다. 귀상, 부상, 악상, 빈천상, 고상, 수상, 요상, 위상이다. 좋은 상이 귀상, 부상, 수상, 위상이다. 여기서 눈과 코가 중요한데, 눈은 귀(貴)를 관장하고, 코는 부(富)를 관장한다. 나머지는 피하거나 조심해야 할 상이다. 그중 특히 여섯 가지 천한 상을 '육천상'이라 하는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일을 당하고 그저 웃기만 하는 자, 나가고 물러서는 것에 밝지 못한 자, 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자, 자기 자랑을 일삼는 자, 아부에 능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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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턱 멍키 - 탐닉의 대가
제임스 해밀턴-패터슨 지음, 박명수 옮김 / 로이트리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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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엄마를 엄청 괴롭히는 족속이 있다. 바로 인류다. '인류세', 그건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킨 흉악범이 인간이라는 고소장 이름이다. 인류는 생태 환경을 망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 대지를 망치고 바다를 망치고 대기와 하늘을 망치고 있다. 인간의 의식주는 물론, 아끼는 반려동물이나 최신 스마트폰도 지구 엄마의 건강엔 치명적이다. 지구 엄마는 태풍, 홍수, 가뭄, 지진, 화산, 혹서·혹한 등으로 인류세에 따른 자연의 징벌을 내리고 있다. 이런저런 기후변화는 파국적인 재난을 부른다. 최악에는 인간 문명의 붕괴다. 문제는 기후변화에 이렇다 할 뾰족한 대처방안이 없다는 데 있다. 환경 위기에 대한 개인과 정부의 모든 대처가 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구 엄마를 구원하기 위한 모든 인간의 활동이 실은 새 발의 피보다 못한 셈이다.

그럼 친환경에너지와 같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지구 엄마의 건강과 장수에 과연 도움이 될까. 답은 부정적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지구 엄마의 생태 건강에 죄를 짓게 된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적용도 여전히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정열적인 전도사들은 지구 온도의 상승과 빙하의 해빙과 해수면 상승의 위기를 보고도 못 본채 한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일부 정치 엘리트들은 지구온난화의 진실성을 부인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구온난화와 생태 위기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환경 위기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한 줌의 노력이 오히려 지구온난화의 악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곤 한다. 사실 인류의 활동 자체가 지구 엄마의 건강엔 파괴적인 것이다. 영국의 환경론자 제임스 해밀턴-패터슨은 애완동물, 정원 가꾸기와 같은 소박한 일상부터 스포츠, 패션, 관광, 헬스와 같은 취미 활동까지 모두 지구 엄마의 건강에 해롭다고 지적한다. 저소비와 미니멀리즘, 무소유 같은 반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이 지구 엄마의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도 결국은 한계 상황에 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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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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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은 독서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병에 걸렸을 때 무협지를 펼쳐들곤 한다. 거기엔 주인공이 중상을 입고 내상을 치료하는 회복 과정이 꽤 자세히 나오곤 하는데, 그게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된다. 같은 이치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독자라면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진 유명 작가나 그런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찾아보면 좋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내 인생의 사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듯이, 혼자 길 잃은 채 절망하고 있는 우울증 여환자라면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미친 여자'의 작품이 바로 본인 이야기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미국의 작가 수잰 스캔런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한 자전적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마음의 고통을 토로하는 자기성찰적인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이야기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지적이고 예민하다. 저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시기가 마침 내가 군복무하던 때와 겹치는 바람에, 군대와 정신병동이라는 대표적인 규율 공간이 갖는 제약과 복속의 의미군에 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저자는 뉴욕주립정신의학연구소 5층 병동에서 삼년간 머물렀다.

저자는 프로이트류의 대화나 프로작 같은 향정신성 약품이 아니라 독서와 쓰기가 자신을 구원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읽기와 다시 읽기가 자기치유의 효과가 있음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과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통해 깨닫게 된다. 저자의 우울증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이 크게 작용했는데, 두 소설 모두 모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면, "딸에게 어머니, 어머니에게 딸. 역사의 무게, 역사의 폭력." 그런 식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자기돌봄의 시작이자 의미치료의 유능한 도구다. 저자는 뒤라스, 토니 모리슨, 에이드리언 리치, 에리카 종, 엘리스 워커 같은 마음의 고통에 천착했던 여자 작가들의 작품에 접속하면서,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지적인 삶"은 물론 "살아감의 다른 방식들"을 깨닫게 된다. "책들은 나에게 다른 삶을, 더 크고 더 잘 떠받쳐주는 틀을, 삶을 긍정하는 틀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읽기와 쓰기가 나를 성장시키는 자기돌봄의 활동이라고 확신한다. 작가 조앤 디디온은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했는데, 쓰기의 효과는 생각의 정리뿐만이 아니다. 불안, 우울, 상실, 소외, 절망 등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글쓰기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서사의 글쓰기는 자기돌봄의 행위이자 자기치료의 회복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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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죽음에 관한 철학
나이토 리에코 지음, 오정화 옮김 / 이사빛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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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의 짙은 그림자가 한국에도 드리웠다. 다름아닌 '다사사회'다. 다사사회란 "노인의 증가로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 인구가 점차 감소하는 사회 형태"를 말한다. 인구 급감과 더불어 청년 자살, 중장년 고독사, 실버세대 안락사 등의 이슈도 전보다 더 뜨거워졌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이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일본의 종교학자 나이토 리에코는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생관을 소개한다. '죽음에 대한 백과사전'을 목표로 했다는 저자는, 키르케고르, 니체, 헤겔, 하이데거 같은 철인들의 주저와 사생관을 소개하고, 성경(예수)이나 경전들(석가모니)은 물론, 일부 과학자의 견해까지 전하고 있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자아내기 위해 저자가 직접 그린 곳곳의 일러스트가 어두운 주제가 주는 정신적 부담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실존주의의 시조' 키르케고르에게서 시작한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사생관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자는 항상 신과 속세의 차원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고 있으며, 그 질적 변증법의 결과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철학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기초한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은 '관계'에 전념하는 존재이며, 그 관계란 신의 차원인 무한성(영원한 것)과 속세의 차원인 유한성(시간적인 것)의 관계다. 다시 말해서, 키르케고르의 눈에 비친 인간은 무한성과 유한성, 우연성과 필연성, 육체와 정신이라는 모순되고 상반된 조건에 놓인 존재다.

대표작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이고, 절망이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배반과 냉담, 이른바 '믿음의 결여'를 뜻한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크게 '절망이라고 의식하지 않는 패턴'과 '의식하면서도 절망에 빠지는 패턴'으로 나누었다. 저자는 이런 키르케고르의 사생관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신약성서의 〈나사로의 부활〉〈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요한계시록〉은 물론, 헤겔의 변증법과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언급하고, 심지어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일부 에피소드까지 참조하고 있다.

한편, 키르케고르의 사생관 정반대편에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가 위치한다. "그리스도교의 사생관은 신자의 부활과 천년왕국 이후 인류가 다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런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적 가치관과 사생관을 과감히 전복시켰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직선적인 시계열에 맞서 원환(둥근 고리) 모델의 사생관인 '영원 회귀'를 강조한다. 영원 회귀는 마치 무간지옥의 세계처럼 완전히 똑같은 인생의 무한반복을 전제로 한다. 니체는 또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통해 일신교의 종말과 다신교적 가치관의 부활을 꾀하면서, 신이 아닌 자신의 행동규범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강인하고 주체적인 인생관을 내세운다. 영원 회귀와 초인을 강조한 니체의 허무주의를 삶에 비관적인 쇼펜하우어의 것과는 달리 '능동적인 허무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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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이렇게 읽어라 - 무기력하고 괴로운 현실에 상상력과 자유를
니헤이 지카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알파미디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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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을 하겠다. 하루키 팬이지만 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좋다. 하루키 소설은 카프카적인 분위기나 묵시록적 세계관 때문인지 거듭해서 읽기가 어렵다. 왠지 모르게 하루키 소설은 나를 진지하게 만든다. 텍스트를 연구 분석하듯이 읽게 만든다. 가령 소설에 드러난 하루키 코드들을 연신 체크하게 된다. 작가 장석주에 따르면, "현실과 비현실의 혼재, 관계의 파탄, 작중 인물들의 혼란과 긴여행, 성애, 고급스런 기호와 취향의 편린들, 갑자기 나타난 조력자에게 도움받기" 등이 바로 그런 하루키 코드들이다.

다시 말해서, 복수로 존재하는 세계인 패러렐 월드, 가족 해체와 중산층의 와해, 투명한 슬픔과 허무주의, 히키코모리 현상, 개인 자아의 문제 등이 '하루키 월드'의 이런저런 특색이다. 덕분에 귤을 까먹거나 침대에 뒹굴면서 하루키 소설을 읽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하루키 에세이는 얼마든지 그런 일이 가능하다. 솔직하고 담박한 고백체, 취미나 취향을 말하는 잔잔한 목소리 덕분에 자주 손이 가게 된다. 하루키의 산문과 잡문은 거듭해서 읽게 만드는 묘한 편안함이 있다.

하루키 연구자 니헤이 지카코는 하루키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자유로운 삶에 대한 탐구'라고 주장한다. 하루키 소설의 테마가 '자유'라는 주장은 하루키 작품이 사소설과 1인칭 시점이 많고, 권위주의와 광신주의에 대한 개인의 저항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이 간다. 다만 자유라는 테마는 '순문학'이 갖는 너무나 당연한 사명이기에 특별히 인상적인 느낌이 오진 않는다. 넬슨 만델라는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사슬을 끊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의 소명과 소설가의 진정성이 바로 그러한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노르웨이의 숲』, 『1Q84』, 『해변의 카프카』 같은 하루키 소설의 대표작에는 늘 사회적 소수에 해당하는 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자유로운 삶의 어려움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 「코끼리의 소멸」, 「빵가게 재습격」 등과 같은 단편 소설들도 부자유를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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