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무척 단순했다.

1. 정유정 작가의 <진이, 지니>의 주인공 보노보가 궁금
2. 버네사 우즈 <보노보 핸드셰이크>을 읽고 재밌어서
3. 김산하 <비숲>을 읽으니 유인원이 더욱 궁금

그래서 검색을 했다.

유인원은
사람,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어려운 학술책이었음 고민했을텐데,
관련 책을 묶어보니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두 권 읽었으니 세 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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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1. 그 스승에 그 제자

글쓴이는 최재천 교수님의 제자다.
글 솜씨도 사제간 어찌 닮았는지..
지루할 틈이 없으며,
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일상의 모습마저
신선하며 재밌다.

2. 동물의 왕국

내가 어릴적엔 TV가 테레비였다.
테레비는 진짜 마법 상자로,
책에서만 보던 동물이 실존함을 알려주는 매체였다.
동물의 왕국을 참 좋아했다.
언젠가 동물들이 사는 저곳을 모두 찾아가야지
다짐 했건만, 지금은 하루하루 일정에 시달리며
개학만 손꼽아 기다리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웃픈!
그래도 좋은 책으로 위안을 삼는다.
한 시절을 동물과 함께한 그의 값진 경험을
내게 나눠준 글쓴이에게 감사한다.


화면이 지배하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여기 사람들처럼 눈앞의 세계에 충실했다. 빈 방을 물끄러미 둘러보았고, 벽에 붙여 놓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본 책은 또 보고, 바닥에 떨어진 이파리는 주워서 돌리고쓰다듬었다. 앞마당에 부는 산들바람에 내 다리털이 흔들리는 것을 보다가 눈을 들어 야자나무 잎의 야성적인 움직임에 감탄했다. 끊임없는벌레의 이민 행렬을 지켜보았고, 음식을 바라보며 식사하였다. 고양이의 기지개를 따라 하고, 물고기가 첨벙거리며 남긴 동심원을 따라갔다.햇빛이 빨래를 밀리는 속도를 목격하고, 달빛으로 박쥐 날개의 실루엣을 분간했다. 

나는 진짜 삶을 살았다. 현실은 충분했다. 증강 현실도
가상현실도, 강화 현실도 모두 불필요했다. 풍요와 연결 속의 빈곤 대신 제한과 단절 속의 자족을 누렸다. 그리고 나는 붓과 색연필을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것이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의세계에서는 따라가기 어려운 긴팔원숭이와 어깨동무도 가능하지 않은가?
- P239

나의 삶은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다. 야생 영장류의 뒤꽁무니를 좇으며 열대 우림을 누빈 이 커리어가 우리 사회에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학계나 동물원 등을 제외한 세상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처음 영장류학으로 사회에 일말의 기여를 한 계기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왔다.

바로 영화 「킹콩이 2005년 말에 세계 동시 개봉을 하게 된 것이다. 건물을 때려 부수고 여자를 납치하는 광폭한 성격의 이 상상 속 괴물이실제 고릴라와 얼마나 비슷한지 기자가 물어 온 것이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는 달리 고릴라는 인간이 자극하지만 않으면 온순한 동물이며 난폭한 모습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또 침팬지라면 때때로 원숭이를 합동으로 사냥해서 잡아먹는 등 살육을 하기도 하지만고릴라는 거의 순전히 채식만 한다는 점도 곁들였다. 인간의 그릇된 편견에 맞서 동료 유인원을 변호해 주었던 것이 내가 전공한 영장류학을사회적으로 활용한 첫 번째 사례였다. - P298

침팬지에서 출발해모든 생명에게로 나아간 그 삶의 빛이 내 가슴 어딘가를 비췄기에 나도 비숲으로 떠날 수 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제인 구달이 동물 대표단과 상봉하는 모습의 그림을 그려 선물했다. 그녀는 몹시 기뻐했다. 나는 오죽하랴.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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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발길이 닿지 못한 어딘가의 먼 우주에 이런 별이 있는지도모른다. 하지만 지구라는 행성은 하나의 원초적인 생명체로부터 종이무던히도 갈라지고 또 갈라져 나와, 지금과 같이 찬란한 다양성을 자랑하는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다. 진화는 생물이 남과 다른 방식으로변화하는 과정이다. 남이 안 먹는 먹이, 남이 못 사는 곳, 남과 전혀 다른 ‘팔자‘로 점점 뻗어 나가 그 모험이 성공하면 자연에 의해 선택된 종이 되고, 실패하면 피안의 세계 속으로 잊혀지게 된다. 한 가지 이상의생물로 구성된 생태계는 정의상 이미 다양성의 개념을 내포한다. 그런데 환경의 조건이 생명이 생장하는 데 호의적일수록 생물은 더욱 다양해지는 경향이 있다. 빛과 물이 풍부하게 주어지면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생물 발전소는 풀 가동에 들어가고,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에 혈안이 된 공장처럼 쉴 새 없이 새 아이디어를 출시한다. 이른바 생물 다양성 핵심지(Biodiversity Hotspot)가 바로 그 현장이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이 열대 우림이 바로 그곳이다. - P146

밀림에 가 보지 않은 이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밀림에 있다 보면 얼굴이 까맣게 탈 것이라는 생각이다. 검게 그을리기는커녕 더 하얘져서 나오기도 한다. 식물들이 서로 햇빛
경쟁하느라 숲의 지붕이 촘촘히 덮이기 때문이다. 밀림의 속은 오히려어두운 곳이다. 어쩌다 큰 나무 하나가 쓰러지면 그 틈으로 금색 빛이쏟아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숲의 수관부(canopy)에서 다 차지하고서 남은 빛의 조각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지는 정도이다. 

두 번째 오해는 밀림에 들어서는 순간 온갖 동물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운이 억세게 좋은 날엔 그런 인상을 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조용히 걷고, 긴 시간을 투자하면서 차분히 기다려야지만야생 동물과 만나는 상복을 거머쥘 수가 있다. 수많은 종이 모여 살지만, 동시에 그 안에 수도 없이 많은 먹고 먹히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무 뒤에 누가 있을지 걱정 안 하고 유유히 다니던 녀석들은 자연 선택에 의해 일찍이 제거되었다. - P148

현실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먼 미지의 자연이 신비로운 것은 우리 모두가 실은 양서류이기 때문이다. 물과 뭍 모두를 드나들어야 하는 개구리처럼, 인공과 자연이라는 이 두 가지 세계를 고향으로 둔 생명체들이다. 물과 에너지, 그리고 식량을 공급 받는 문명의 품을 벗어나서는 하루도 생활하기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녹색 빛으로 안구를정화해야 하고 야생의 기운을 갈구한다. 한쪽에만 몸을 깊이 담갔다간반쪽짜리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열탕과 냉탕을 왕복하며 체온을 조절하듯 문명과 자연을 적절히 버무리려 한다. - P159

야생에서도 군중은 존재한다. 곡식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이동하는메뚜기 떼, 저녁 하늘에서 펼쳐지는 찌르레기의 군무도 있다. 그러나자연에서 발견되는 그 어느 집단도, 인간의 줄기차고 일관된 얼굴 없는 군상에 비견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동종에 둘러싸여 지내면서도, 동시에 그 중 절대 다수와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이다. 우리가 사는 생태계를 단일 종 체제로 전락시키고 그종의 개체 수는 무한 증식시키는 두 가지의 악수를 두면서 제일 먼저증발해 버린 것이 있다. 바로 관계이다. - P208

그래서 필요한 것이 생활의 발견이다. 갑자기 루틴을 깨고 평소에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것도 좋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게다가 잘못하면 잠시 맛을 본 어떤 특별한 경험 덕분에 오히려 일상이상대적으로 초라해질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린다. 이보다는 대단치 않은 사물과 광경에서도 정신과 감각의 신선함을 찾고 여유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효과적이다. 선반에 늘 꽂혀 있던 책을 갑자기 꺼내 보는 마음, 벽에 언제나 걸려 있던 그림을 오늘따라 응시해 보는 정성, 가장 주목할 만하지 않은 것에 때때로 주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능력의소유자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애초부터 이런 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자신이 살던 세계를 떠남으로써 기존에 누리던 삶을 돌아보고생활을 재발견할 기회를 얻는다. 현재 속한 곳과 다르면 다를수록 그간극의 크기 덕분에 묻혀 있던 면모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 P225

떠남에 소요되는 시간뿐 아니라 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공간적 경험이 보다 정직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어떻게든 보내고 나면 사라지고, 심지어는 ‘죽여‘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공간은 몸으로 직접 통과해야 하며 집이 여기인 한, 간 만큼 똑같이 되짚어 돌아와야 한다. 잠을 자버리거나 눈 감고 외면하는 것이 가능한 시간적 경험에 비해, 공간적 경험은 보다 확실한 물리적 실재성을 지닌다. 목적지가 저산 꼭대기라면 내가 서 있는 이 지점에서 그곳까지 한 뼘 한 뼘의 대지를 전부 더듬으며 가야 하는 것이다. 한발 한 발 디디다 보면 어느 정도의 힘을 들여야 어느 정도 진척되는지 체험할 수 있다. 내 보폭은 얼마인지, 팔을 쭉 뻗으면 어디까지 닿는지 몸소 측정한다. 돌을 밟을까 흙을 밟을까 그때그때 헤아리고 순간순간 결정한다. 솔방울의 알참, 새소리의 액체성이 똑똑히 오감을 타고 들어온다. 인식과 감흥은 촘촘해진다. 그리고 경험은 완전해진다. 권태와 무의미의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는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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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구눙할리문쌀락 국립공원의
긴팔원숭이들은 털빛마저 신비롭고, 우아하다.

사진을 몇 번씩 본다.

특히 영장류는 동물중에서도 사회성이 발달된 종류로서 친지, 친구, 적수, 애인 등을 세세하게 따지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정교한 사회 구조 없이 그저 큰 무리를 이루고 사는 동물과 바로 이런 점에서 다른 것이다. 

우리자신을 생각하면 단번에 이해가 된다. 사람이 넘치는 도시에 살면서도우리는 고독하다. 단순히 군중에 둘러싸인 것만으로는 오히려 불행하다. 진정한 관계가, 고유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영장류에게도 ‘영장류 관계‘가 절실하다. - P79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하나 존재한다. 대단한 발견에 집착하는 탐험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금의 왕국을 상상하며 엘도라도를 찾아 나선 수많은 탐험가들이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듯이, 대상화된 목적지나 목표물을 가진 탐험은 원하는 게 너무 강한 나머지 눈앞에 펼쳐진 보물을 쉬이 놓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성취에 대한 의지를바탕으로 공간에 완전히 몸을 담고되, 물속을 유영하듯 세상을 감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을 발견할지는 거의 전적으로 탐험을 하는자에게 달려 있다. 가장 멋진 광경을 보고도 시큰둥한 이가 있는가 하면, 채 몇 걸음 가지 않아도 스펀지처럼 진수를 빨아들이는 이가 있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 조금은 후자 쪽으로 기운 사람이라 스스로 말하고 싶다.  - P91

우뚝 선거대한 무화과나무가 생물 다양성의 총화를 눈앞에서 보여 주듯이 온갖 동물의 만찬장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작 나만 못 끼고 있는 기분을 아는가. 밀림의 열매를 억지로 먹으려면 한두 개 삼킬 순 있다. 그런데 실제로 먹어 보니 긴팔원숭이가 먹는 대부분의 과일은 쓰거나 신맛이라 무슨 맛으로 먹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그걸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물론 토착민들은 내가 감히 견줄 수 없는생활의 지혜를 갖고 있어 야생의 숲에서도 필요한 자원을 채취하고 가공할 줄 안다. 하지만 그런 노하우는 내게 요원하다. - P97

도시에서는 어떻게 하기가 곤란한 음식물 쓰레기가 여기서는 소중한자원으로 즉각 접수되어 자동적으로 처리된다. 순식간에 개미가 달려들고, 균류가 작업에 들어간다. 조금만 지나면 찌꺼기가 남은 흔적조차 없다. 물론 동물들이 내가 원하는 것만 처리해 주지는 않는다. 아직먹고 있는 중인 음식물도 자신들의 일거리로 여기는 일이 태반이다. 아끼던 책 한 권이 흰개미들의 잔칫상이 된 것을 안 시점은 이미 식사가상당히 진행된 후였다. 어찌나 맛있게도 지속적으로 갉아먹었는지 등고선 멋들어진 단면이 생겨 버렸다. 잘 안 보는 책도 많은데 하필 아끼는 이것을! - P98

그런데 동물 중에서도 영장류를 쫓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이들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 말고도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서일까? 

아침에 기지개를 켜고, 밥 먹다 낮잠 자고, 서로 엉켜 올라타며 놀다가, 해가지면 잠자리에 든다. 울다가 웃고, 먹고 싸고, 싸우다 화해하는 생활,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이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반복되는 이주행성 생활 패턴은 우리네 사는 모습을 꼭 빼닮았다. 

그래서인지 영장류 연구는 동물을 관찰한다는 경험과 더불어 누군가의 스토커가 되어 버린 기분마저 들게 하는 특징이 있다. 

관찰을 당하는 영장류의 반응도 남다르다. 동물들은 대개 정신없이 자기 일을 하거나, 도망가거나, 무관심하다. 영장류는 쳐다보는 자를 쳐다본다. 대체 넌 뭐 하는 녀석인고?한심한 듯 묻는 눈초리로 대면하고 응시한다. - P111

문명 속에 살다가 밀림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 가지는 이곳에서 감수성과 감각이 완전히 열린다는점이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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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핸드셰이크 - 우리가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버네사 우즈 지음, 김진원 옮김 / 디플롯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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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연구, 콩고 역사, 과학자의 일상까지 세 가지 모두 찬찬히 살펴 볼 수 있는 책. 버네사 우즈가 보노보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책. 웃다가 금세 코끝이 찡해지는 책.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과학자들의 책까지 읽을까 고민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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