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발길이 닿지 못한 어딘가의 먼 우주에 이런 별이 있는지도모른다. 하지만 지구라는 행성은 하나의 원초적인 생명체로부터 종이무던히도 갈라지고 또 갈라져 나와, 지금과 같이 찬란한 다양성을 자랑하는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다. 진화는 생물이 남과 다른 방식으로변화하는 과정이다. 남이 안 먹는 먹이, 남이 못 사는 곳, 남과 전혀 다른 ‘팔자‘로 점점 뻗어 나가 그 모험이 성공하면 자연에 의해 선택된 종이 되고, 실패하면 피안의 세계 속으로 잊혀지게 된다. 한 가지 이상의생물로 구성된 생태계는 정의상 이미 다양성의 개념을 내포한다. 그런데 환경의 조건이 생명이 생장하는 데 호의적일수록 생물은 더욱 다양해지는 경향이 있다. 빛과 물이 풍부하게 주어지면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생물 발전소는 풀 가동에 들어가고,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에 혈안이 된 공장처럼 쉴 새 없이 새 아이디어를 출시한다. 이른바 생물 다양성 핵심지(Biodiversity Hotspot)가 바로 그 현장이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이 열대 우림이 바로 그곳이다. - P146
밀림에 가 보지 않은 이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밀림에 있다 보면 얼굴이 까맣게 탈 것이라는 생각이다. 검게 그을리기는커녕 더 하얘져서 나오기도 한다. 식물들이 서로 햇빛 경쟁하느라 숲의 지붕이 촘촘히 덮이기 때문이다. 밀림의 속은 오히려어두운 곳이다. 어쩌다 큰 나무 하나가 쓰러지면 그 틈으로 금색 빛이쏟아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숲의 수관부(canopy)에서 다 차지하고서 남은 빛의 조각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지는 정도이다.
두 번째 오해는 밀림에 들어서는 순간 온갖 동물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운이 억세게 좋은 날엔 그런 인상을 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조용히 걷고, 긴 시간을 투자하면서 차분히 기다려야지만야생 동물과 만나는 상복을 거머쥘 수가 있다. 수많은 종이 모여 살지만, 동시에 그 안에 수도 없이 많은 먹고 먹히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무 뒤에 누가 있을지 걱정 안 하고 유유히 다니던 녀석들은 자연 선택에 의해 일찍이 제거되었다. - P148
현실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먼 미지의 자연이 신비로운 것은 우리 모두가 실은 양서류이기 때문이다. 물과 뭍 모두를 드나들어야 하는 개구리처럼, 인공과 자연이라는 이 두 가지 세계를 고향으로 둔 생명체들이다. 물과 에너지, 그리고 식량을 공급 받는 문명의 품을 벗어나서는 하루도 생활하기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녹색 빛으로 안구를정화해야 하고 야생의 기운을 갈구한다. 한쪽에만 몸을 깊이 담갔다간반쪽짜리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열탕과 냉탕을 왕복하며 체온을 조절하듯 문명과 자연을 적절히 버무리려 한다. - P159
야생에서도 군중은 존재한다. 곡식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이동하는메뚜기 떼, 저녁 하늘에서 펼쳐지는 찌르레기의 군무도 있다. 그러나자연에서 발견되는 그 어느 집단도, 인간의 줄기차고 일관된 얼굴 없는 군상에 비견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동종에 둘러싸여 지내면서도, 동시에 그 중 절대 다수와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이다. 우리가 사는 생태계를 단일 종 체제로 전락시키고 그종의 개체 수는 무한 증식시키는 두 가지의 악수를 두면서 제일 먼저증발해 버린 것이 있다. 바로 관계이다. - P208
그래서 필요한 것이 생활의 발견이다. 갑자기 루틴을 깨고 평소에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것도 좋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게다가 잘못하면 잠시 맛을 본 어떤 특별한 경험 덕분에 오히려 일상이상대적으로 초라해질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린다. 이보다는 대단치 않은 사물과 광경에서도 정신과 감각의 신선함을 찾고 여유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효과적이다. 선반에 늘 꽂혀 있던 책을 갑자기 꺼내 보는 마음, 벽에 언제나 걸려 있던 그림을 오늘따라 응시해 보는 정성, 가장 주목할 만하지 않은 것에 때때로 주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능력의소유자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애초부터 이런 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자신이 살던 세계를 떠남으로써 기존에 누리던 삶을 돌아보고생활을 재발견할 기회를 얻는다. 현재 속한 곳과 다르면 다를수록 그간극의 크기 덕분에 묻혀 있던 면모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 P225
떠남에 소요되는 시간뿐 아니라 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공간적 경험이 보다 정직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어떻게든 보내고 나면 사라지고, 심지어는 ‘죽여‘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공간은 몸으로 직접 통과해야 하며 집이 여기인 한, 간 만큼 똑같이 되짚어 돌아와야 한다. 잠을 자버리거나 눈 감고 외면하는 것이 가능한 시간적 경험에 비해, 공간적 경험은 보다 확실한 물리적 실재성을 지닌다. 목적지가 저산 꼭대기라면 내가 서 있는 이 지점에서 그곳까지 한 뼘 한 뼘의 대지를 전부 더듬으며 가야 하는 것이다. 한발 한 발 디디다 보면 어느 정도의 힘을 들여야 어느 정도 진척되는지 체험할 수 있다. 내 보폭은 얼마인지, 팔을 쭉 뻗으면 어디까지 닿는지 몸소 측정한다. 돌을 밟을까 흙을 밟을까 그때그때 헤아리고 순간순간 결정한다. 솔방울의 알참, 새소리의 액체성이 똑똑히 오감을 타고 들어온다. 인식과 감흥은 촘촘해진다. 그리고 경험은 완전해진다. 권태와 무의미의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는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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