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 아처는 전환점이었다. 
서구 언론과 대중이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냉전 시대의무시무시한 대결이 벌어진 그 순간은 느리지만 확실히 감지되는 해빙의 계기가 되었다. 

레이건 정부는 반(反)소련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대처는 모스크바에 손을내밀기로 결심했다. <총리는 <악의 제국》이라는 말을 넘어서서, 서방이 어떻게 냉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보았다.> 한 고위급 보좌관의 말이다. 

크렘린의 의심증도 특히안드로포프가 1984년 2월에 세상을 떠난 뒤 수그러들기 시작했다.KGB 요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여전히 핵전쟁 준비의 징후를찾아보아야 했지만, 라이언 작전의 동력은 서서히 시들어 갔다. - P284

<소련의 우리 정보원들은 주로 군대와 군사 R&D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고르디옙스키가 우리에게 준 것은 지도자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정보였다. 우리에게는 아주 희귀한 정보였다.> 레이건은 보고서를 읽고 크게 감탄했다. 소련 체제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누군가 목숨을 걸고 전해 준 정보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 P285

세상을 바꿔 놓은 스파이들의 전당에는 소수의 선별된 사람들만 들어가 있다.

그 사람 중 한 명이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다. 

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KGB의 내부를 열어젖혀, 소련 정보기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하지 않는지 뿐만 아니라 크렘린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계획을 꾸미는지까지 보여 주었다.
그 덕분에 서방은 소련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꿨다. 
고르디옙스키는 목숨을 걸고조국을 배신해 세상을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었다. 기밀로 분류된 CIA 내부 검토서는 에이블 아처 사건을 <냉전의 마지막 격동>이라고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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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코 페르미,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데이비드 N. 슈워츠 지음, 김희봉 옮김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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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결론은 냉정하고 차갑다. 그것에 온기를 넣어 함께 하는 생명체 모두가 안녕히 살게 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페르미는 오로지 과학에만 관심을 둔 사람이었다. 문학, 철학, 음악, 미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기, 편지, 메모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머리와 가슴에 생각을 품고 살다 멀리 떠나버린 사람이다. 그가 남긴 대중을 위한 저작은 이탈리아 로마 시절에 쓴 물리학 책뿐. 과학자라도 자신의 연구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 문학, 예술 등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할텐데..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하는 천재였다. 사실 그런 천재가 많으면 세상은 더 똑똑해질수 있지만, 따뜻하게 살기는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평전으로 [존 폰 노이만]에 대해 읽고 싶은데 책들이 품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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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행동은, 아주 샅샅이 훑듯이 들여다보면 점점 의심스러워 보일 수 있다. - P231

영국과 미국 첩보 기관의 관계는 형제 관계와 조금 비슷하다. 서로 친하지만 경쟁심이 있고, 서로 잘 지내면서도 질투하고, 서로를 응원하면서도 싸움을 벌이기 일쑤라는 점이 그렇다. 영국과 미국은 모두 과거에 공산주의자가 고위직에 침투한 사건을 겪었으며, 서로 상대를 다 믿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의심을 계속 품고 있었다. 이미 확립된 합의에 따라 두 나라는 중간에 가로챈 적국의 통신 정보를 공유했으나, 인간 정보원에게서 수집한 정보의 공유에는 그리 후하지 않았다. 미국도 영국도 모두 상대가 전혀 알지 못하는 스파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정보원에게서 나온 <생산물>은 꼭 알아야 하는 사람에게만 제공되었는데, <꼭 알아야 하는 사람>의 정의는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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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스파이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념, 정치, 애국심 때문에 스파이가 되지만 탐욕 때문에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경제적 보상의 매력이 그 정도다. 반면 섹스, 협박, 오만, 복수심, 실망감 때문에 첩보의 세계로 끌려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비밀스러운 세계에서 맛볼 수 있는 동지 의식과 자신이 남보다 앞서 있다는 독특한 느낌이 동기가 되기도 한다. 용감하고 원칙을 지키는 스파이가 있는가 하면, 욕심 많고 비겁한 스파이도 있다. - P105

스탈린 치하에서 첩보망을 지휘했던 사람 중 하나인 파벨 수도플라토프는 서방 국가에서 첩자를 포섭하려고 나선 부하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운명이나 타고난 환경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찾아라,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고, 권력과 영향력을 갈망하지만 쉽지 않은 주변 여건에 좌절한 못난이들……. 이런 이들은 모두 우리와 협력하면서 독특한 보상을 얻는다. 영향력과 권력을 갖춘 조직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덕분에 그들은 주위의 잘생기고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 P106

KGB는 사람이 첩자가 되는 네 가지 주요 동기를 오래전부터 MICE라고 불렀다. 
돈money, 이념ideology, 강압coercion, 자존심 ego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약이다.
- P106

모든 스파이에게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첩보 활동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요소 중 하나(그리고 첩보 활동에 관한 중요한 믿음 중 하나)는 스파이와 그의 상관, 정보원과 담당관 사이의 감정적인 유대감이다. 스파이는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며 비밀스러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원한다. 자신이 소중하고 신뢰받는 존재라는 느낌과 보람을 원한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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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회상에 따르면 페르미는 설명하는 것을 즐겼고, 
특히 바로 이해하지못하는 학생들에게 거듭 설명해주는 것을 즐겼다.
추는 또한 페르미는
"모든 것을 아는 마지막 사람"인데, 
그가 이론과 실험에 모두 뛰어날 뿐만 아니라 당대의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 천체물리학에서 지구물리학까지 입자물리학에서 응집물질물리학까지 모든 분야에 통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P447

스타인버거에 따르면, 페르미는 이렇게 강조했다.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을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자기 능력을 신뢰하는 정도를 넘어서 확신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어야 하고, 학생이 똑똑한지 평균인지 평균 이하인지에 무관하게, 그들을 모두 존중하면서 대해야 한다." - P448

거기에 비해 페르미는 드문 평정심으로 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대개는 현실적이고 얼마간 비관적이었던 평소의 인생관 속에서 받아들였다. 페르미에게는 과학이 종교의 기능을 완전히 대신했다. 그는 살았던 것과 똑같이 죽었으며,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사색을 할 필요가 없었다.
페르미로서는 자기의 삶은 그의 비범한 정신이 꺼지는 순간에 끝나지만, 그의 업적은 계속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 - P469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과학자도 그들이 태어난 시대의 포로이다.  -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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