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오케스트라는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추도록 무대 앞에 약간 낮게 만들어진 반원형의 공간을 지칭했다.
이 책보다 40년 늦게 출간된 루소의 음악사전 (1754) 에 오면, 그 정의는 달라진다.
이 단어 (오케스트라)는 음악 영역으로 피고들어 지금은 모든 심포니 주자들을 아우르는 말로 쓰인다. 좋은 오케스트라 혹은 나쁜 오케스트라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는 연주의 좋고 나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루소는 오케스트라를 다양한 악기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앙상블로 이해하고 있다. 이 프랑스식 개념은독일로 전해졌고, 1770년경 뮌헨의 궁정악단은 ‘선제후의 오케스트라‘라고 불렸다. - P18
음악 애호가들은 종종 연주 소리만 듣고도 어떤 오케스트라인지 구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한편 정작 가장 정확한 답변을 줄수 있을지도 모르는 지휘자들은 이 질문을 그냥 무시해버린다.
"하나의오케스트라가 어떤 특정한 음향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상상일 뿐이죠.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지휘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음향 숭배자로 알려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말이다.
그리고 영국인 지휘자 네빌 마리너는 오히려 특정한 음향이 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음반을 듣고 어느 것이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의 음향인지 가려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전솔직히 그게 칭찬의 표현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음악을 연주하든 다 똑같게 들린다는 말이니까요."
그래도 사람들은 은근슬쩍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세 가지 스타일로 구분하곤 한다.
첫째는 낭만적이고시적이며 정열적인 ‘독일식‘ 음향이다. 푸르트벵글러나 틸레만으로 대표되는 스타일로 현악기, 그중에서도 특히 저음 현악기의 활의 움직임이크고 굵어 음향이 어두운 것이 특징이다.
둘째는 토스카니니나 무티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로만식‘ 음향으로 가볍고 화려하며 밝은 관악기의음색이 두드러진다.
셋째는 관악기 소리가 우세한 끈적끈적하고 인상적 ‘러시아식‘ 음향이다. 이러한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지휘자는 므라빈스키나 비슈코프이다. - P32
"오케스트라는 유연해야 한다. 프랑스 음향이든 러시아 음향이든 아니면 빈 음향이든, 그 어떤 것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
주빈 메타가 자서전에 남긴 말이다. - P33
오케스트라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 것은 앙상블 자체의 변화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의 오케스트라는 더 이상 소수 상류층의 노리개가 아니다. 제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앙상블이라도 사적인 운영은 가능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그 어마어마한 비용을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보통 국가, 도(주) 혹은 시가 직접 운영하거나 아니면 후원한다.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 행정당국은 맨 먼저 오케스트라의 존재 여부를 검토하곤 한다. 축소나 병합을 고려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해체를 결정하기도 한다. 음악가들은 예산과 청중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야 한다. - P39
전문 연주자 학위를 취득해야 나중에 악장이나 수석 연주자가 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학위를 따고 나면, 연주자들은 오케스트라의 공석을찾기 위해 쉴 새 없이 잡지나 신문, 인터넷을 뒤진다. 보통 50~100군데에 지원하는데, 그나마 운이 좋아야 오디션에 응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다.
오디션에서 상임지휘자와 수석 연주자, 단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으면, 대략 1년간의 수습 기간을 따낼 수 있다. 이기간에 수습 단원은 능력, 끈기, 음악성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품까지 인정받아야 정식 단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특히 인간성은 최종 결정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 P47
하지만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이 받는 보수를 일반적인 교육 수준을 근거로 내세우며 정당하지 않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최상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이지만 항상 권위에 휘둘리고 복종해야만 하는 처지에있다. 과연 다른 직업 분야에도 이런 처지의 엘리트들이 존재할까?
조그마한 실수에도 바로 응징이 뒤따르고, 조금만 늦게 와도 벌금을 물어야한다(리허설 시간은 정말 비싸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의 근무 환경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다.
대체 어느 누가 이런 나쁜 조명 아래에서 일근무하고 싶어 하겠는가?(오케스트라 음악가의 23퍼센트 정도가 눈의 통증을 호소한다)
후덥지근하고 질식할 것 같은 좁은 공간에 갇혀 불편한 자세로 기꺼이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노동력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또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할 마음을 가질 엘리트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군다나 노동 시간도 불규칙하다. 남들이 다 노는 주말에도 쉴 수 없고, 가족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는 일도 거의 드물다. 때로는 연주 여행 때문에 장시간 집을 떠나 있어야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관악기 주자 같은 경우는 식이요법도 철저히 지켜야 하며 시끄러운 소음마저도 견뎌내야 한다. - P51
여성 음악가는 남성 음악가보다 조금이라도 월등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지금은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여성 단원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여성연주자가 핵심적인 지위에 오르려면 남성 음악가보다 훨씬 뛰어나다는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 단원의 채용 문제를놓고 오케스트라 내부에서 저항과 항변이 들곤 했다. 신체적인 나약함이나 연주 여행에서의 숙박 문제를 이유로 여성 음악가들의 영입은 번번이 거부당했다. 게다가 여성 단원이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오랫동안 공석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 P54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또 하나 있다. 불평등한 보수 체계이다.
오케스트라 내에서 여성과 남성 단원이 받는 보수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뿐이 아니다.
보통 오케스트라의 임금 체계는 4등급으로 나뉘는데,
악장, 첼로 수석, 비올라 수석은 별도의 직무 수당을 포함하여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나머지 수석 연주자들은 그 아래 등급의 보수를 받고, 각 악기의 부수석들과 나머지 단원들이 차례로 그 뒤를 따른다.
하지만 지휘자가 받는 보수에 비하면 연주자들의 보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부당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음악가가 기껏 땀 흘려 가꾸어놓은 것을 "그저 조정만 하는 것" 같은데도, 그가 하루 저녁에 버는 액수가 연주자의 한 달 월급의 10배가 되는 경우 적지 않으니 말이다. - P55
게오르크 숄티가 음악가의 거만한 태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휘자는 오랫동안 신체럼 군림하며 연주자의 운명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어왔다는 점이다. 조지셀이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처럼, 리허설 시간에 연주자를 내쫓거나심지어 오케스트라에서 완전히 제명해버리는 독재자들도 있다.
그들에비하면, 발을 굴러대고 고함을 질러대는 토스카니니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번은 그가 끓어오르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지휘봉을 던져 한 음악가의눈을 다치게 한 적이 있었다.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그는 고소를 당했는데, 토리노 법원은 천재를 보통 사람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며 그가 저지른 범죄를 "예술가의 성스러운 광란"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최소한의 벌금형조차 부과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황제 토스카니니‘ 로 군림하고, 그 어떤 법률적인 제재도 그를 함부로 옭아매지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휘자의 위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오늘날의 지휘자는스스로를 오케스트라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오케스트라에게자신의 견해를 강요하지 않으며 오케스트라가 내뿜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전문적인 고음악 앙상블이나 현대음악 연주 단체일수록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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