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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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라는 직업을 갖고 남부럽지 않게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살던 이반 일리치가 성공의 정점에서 갑자기 원인 모를 병에 죽어갑니다. 서서히 죽어가는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고통스럽게 되묻습니다.



이렇게 핵심 줄거리는 참 간단합니다.



책이 참 얇네. 가볍게 빨리 읽을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쉽게 읽히지 않았던 책입니다.



요즘처럼 책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첫 페이지를 읽다가 덮어버렸을 거예요. 일단 등장인물의 이름부터가 너무 길고 낯설고, 시대 배경조차 익숙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진중하게 차분히 읽어보니 정말 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저도 ‘나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그 생각을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개인적인 요약



품위, 가벼움, 유쾌함을 추구하다가 어느 순간 진심이 없어진 삶.

그러한 삶 속 인간관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낱낱이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

왜 내 주변은 이렇게 거짓으로 가득했던 것일까?


이반 일리치가 결혼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서였다.

우선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

자만심이 채워졌고, 동시에 고위층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일을 행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p31

훌륭한 귀족 가문의 아가씨에게 청혼했던 이유가 참 아쉽습니다. 그런데 이반 일리치를 나무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삶 속에서도 이렇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 선택했던 큰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가.

나의 진심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잘 가는 길인가.



많은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항상 품위 있게 사교계에서 인정받으며 사는 것이 삶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하고 (중략)



이반 일리치가 보기에 아내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삶의 유쾌함과 품격을 ‘제멋대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질투하는가 하면, 자기에게만 신경을 써달라고 매달리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서 거칠고 불유쾌한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중략)



그는 인생의 문제를 심각하지 않고 가볍고 적당하게 대하는 것으로써 이런 불유쾌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는 아내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는 무시하고 전과 다름없이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p32


시작부터가 잘못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아니, 시작을 잘못했더라도 충분히 고쳐낼 수 있었는데 이반 일리치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결혼을 표면적인 상황을 중요시하여 선택했더라도 부부로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 서로를 알아봐 주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진심으로 배려하고 맞춰갔다면 죽는 순간 그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싶었습니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아내를 포함한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너무하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거짓말로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시 읽어보고 생각해 보니, 이반 일리치가 조금만 주변을 ‘진심‘으로 돌아봐주었다면. 그렇게 주변이 ‘거짓‘과 ‘기망‘으로만 가득 차게 보이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성공 가도를 달리기 이전에 가족들과 충분히 돈독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을 그 시절에. 일과 명예, 그리고 자신의 만족과 성공에만 집중을 했던 모습이 결국 미래의 아픔을 예견했구나 싶습니다.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남과 전혀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분명 카이사르는 인간이었고 따라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 이반일리치, 나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나.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중략)

p73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했던가. 싶었습니다.

내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오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소리 내어 울고 싶었고 그런 자신을 누군가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같이 울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법원 동료인 셰베끄 판사가 찾아오자 울며 동정을 구하는 대신 이반 일리치는 심각하고 엄하게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타성적으로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하고는 거듭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다. 그 주변의, 그리고 그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p85

내 안에, 우리 안에, 이반 일리치가 살아 있지 않을까요.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입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습니다.



세상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삶을 다시 돌아보고 후회하고 눈물짓는, 하지만 결국은 용서하고 떠나는 모습..



‘품위‘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표면적인 모습을 지키며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속이 텅 비어버린 듯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마지막에 모든 것이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서 얼마 전 보았던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잘 가는 길인 건가.


혹은 진심 없는 위로와 진심 없는 동정. 진심 아닌 칭찬...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거짓된 위로와 동정, 주변의 시선에 따라 만들어진 목표, 하얀 거짓말.. 이것이 과연 죽음에 이르렀을 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


너무나 짧은 책이지만 결코 짧지 않습니다.


많은 철학적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맴돕니다.


삶과 죽음. 그 속의 나.

오늘 하루 어떠한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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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5-15 15: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찌보면 대단할것 없는 줄거리인데 가볍게 지나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아서 저도
짧지않다 느꼈어요. 톨스토이는
그런면에서 위대한 작가겠죠^^*

가필드 2022-05-15 16:57   좋아요 3 | URL
동감입니다 ^^미미님 무엇보다 감정의 디테일을 잘 표현하시는 부분에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mini74 2022-05-16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다른가 했더니 출판사가 다르군요. 인생도 그런거같아요 별거 아닌거 같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깊고 외롭고 혼자 떠나야 하고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