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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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가까이 되는 서양식 대저택에 살고 있는 대가족 이야기.

러시아인 할머니, 이모와 외삼촌이 같이 살고 있고,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공부를 시키며,

아이 넷 가운데 둘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다르다.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가족 개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첫번째 장은 이 집의 아이 넷 중 둘째 리쿠코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두번째 장의 "나"는 다른 인물이다.

그렇다. 할머니 시점부터 막내 우즈키 시점까지 에피소드별로 화자가 바뀌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소설의 전개가 참 신선하다.

나는 그들을 따라 1982년에 갔다가, 1963년에도 가고, 2000년에도 간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붙이며 나 또한 역사를 알고 있는 가족이 된 느낌이다.

가족으로서 행하는 의식과 주고받는 말, 이를 테면 '포옹 혹은 라이스에 소금을' 같은 그런 것들이 제각기 떠다니는 일원들을 한 가족으로 묶어준다.

적과 점이 모여 한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가 된다.

8년 전쯤, 어릴 때 살았던 옛집을 찾아가본 적이 있다. 먼 지방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임에도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다.

가 결국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동네 어귀에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그동안 그 집이며 주변이 얼마나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었다. 이윽고 낯익은 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시작한 순간,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마도 오랜 기억 속의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추억을 마주한다는 생각,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날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감정이었으리라.

젊었던 부모님, 든든하게 털어 놓을수 있었던 단짝 친구들과 산과 바다로 뛰어다니던 기억, 슬플땐 바닷가 바위위에 앉아 있던 추억들. 지난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창업주인 할아버지와 러시아인 할머니, 이모와 외삼촌까지 한집에 사는 대가족.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공부시키는 교육 방침.

더구나 네 아이 중 둘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다르다. 그외 남의 이목을 사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닌 사람들, 그런데 이들 가족이 참 묘하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주변인의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를따라가노라면 예기치 않은 곳에서 크고 작은 수수께끼가 풀리기도 하고, 어느새 동화되어 나 자신이 이들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계절을 함께 지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인생이 담긴 '' 장이 바뀔 때마다 다음 화자는 누구일지 설레는 마음도 없지 않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게 된다. 꽤 두꺼운 분량인데 에피소드로 시공간이 왔다갔다 한다.

그때 우리가 바라보았던 것은 정원 한 모퉁이에 척척 완성되어가는 건물이아니었다. 갓 깎은 나무 벤치도, 새 욕조도 아니었고, 빨갛고 노란 선이 구불구불 들러붙은 배전반도 아니었다. 나와 우즈키가 숨죽인 채 열심히 지켜보았던 것은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정원의 한 모퉁이였다.

벽을 기던 벌레였고,흙이었고, 일찍이 그곳에 세워져 있던 갈퀴와 대빗자루였고, 사라져버린 아라키 씨였고, 할아버지였고, 그곳에 흐르던 시간이었다. 본문 중에서모든 일에 시작과 끝이 있듯 흐르는 시간과 함께 끊임없는 이별과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면서 한 가족의 역사는 그렇게 또 흘러갈 것이다.

우리 삶은 대부분 이유가 있고,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거나, 우리도 모르게 자연히 흘러가게 되는 어떤 힘이 있다.

누군가 한명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대부분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역사는 과거가 아니란다. 지금도 우리는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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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건 사랑스러웠던 어린 고이치의 모습일까,

아니면 그 무렵의 젊고 건방졌던 내 자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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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4-06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과거가 아니고, 우리가 역사의 한가운데 있다는 말이 와닿네요!!

가필드 2022-04-06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나무님 저도 이 문구가 인상적이더라구요 ^^

scott 2022-04-09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이스에 소금이라면
밥에 소금을 치능!ㅎㅎ

반세기에 걸친 3대의 이야기!
어린 고이치 어떻게 성장 했을지 궁금해지는 스토리네요 ^ㅅ^

가필드 2022-04-09 15:58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3대에 걸친 대가족 이야기죠 ^^
러시아 할머니와 일본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우여곡절 스토리지요 댓글 주셔서 감사드려요 스콧님 화창한 주말인데 날씨처럼 행복한 시간되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