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평점 :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 사이에 피는 모데미풀 꽃은 정말, 정말이지 예쁘다. 만개한 꽃은 내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한 송이 한 송이가 별 모양이다. 포기를 이루며 무더기로 모여 나면 마치 하늘의 별들이 후두두 쏟아져 내려 반짝반짝 땅에 박힌 것 같다. (194)
식물을 사랑하는 다정한 마음과 제대로 지키려는 절박함으로, 집요하게 추적하고 꼼꼼히 들여다본 풀의 기록, 나무의 기록
식물책을 많이 접하진 않았지만, 읽을 때마다 식물이 내게 전해주는 기운이 좋았던 기억이 나서 골라본 책이다. 자신의 일을 식물들을 좇아 그들의 이야기를 사람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에서부터 식물에 담긴 세월과 시간들을 섬세하고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저자의 모습에 덩달아 나도 로맨틱해진다.
암벽, 절벽, 파도, 비무장지대 등 전국 방방곡곡 직접 발로 뛰며 식물의 세계에 들어가는 저자와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나 전문 지식들이 곁들어져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진다. 정말이지 처음 듣는 식물부터 너무나 다양하고 새로웠던 식물 명칭들과 함께하는 신기한 식물의 세계에 들어왔다. 중간중간 사진들도 담겨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불법 채취, 불법 거래, 개발과 훼손, 멸종 위기 등의 이러한 단어들이 주는 안타까움과 경각심을 던져주며, 초록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 내게 전해져 온다. 살아남기 위한 식물들의 생존, 자신의 삶을 개척할 줄 아는 식물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식물들이 던져주는 질문들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우리 곁에 항상 있는 식물들의 언어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초록들을 좀 더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길을 가다 괜히 멈추어 서서 초록을 들여다보는 시간, 나도 같이 풀멍하는 시간.
싸리가 지면 여름이 가고, 꽃싸리가 피면 가을이 온다. (117)
울릉도에 있는 나의 소중한 비밀의 숲에는 배경이 서로 다른 식물들이 모여 산다. 자연의 질서를 어기지 않고 저마다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거나 조금씩 차지하면서, 아웅다웅 서로 건강하게 경쟁하며 그들의 서식지인 숲을 지킨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내게 숲이 속삭였다. 지구라는 별에서 자신의 서식지를 지키는 일에 가장 서툰 생명은 아마도 인간일 거라고. 나지막하지만 분명히 단호한 어조였다. (223)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