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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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인이야. 아홉 개의 새싹 중에 가장 늦게 핀 마지막 싹이라 나인이 됐어. 더는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나는 가장 마지막에 눈을 떴어."
그러니까 나인은, 기적이라는 뜻이야. _417


「천 개의 파랑」의 천선란 작가.
아직 접하지 못한 작가였지만, 익숙했다.
이번에 「나인」으로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

SF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올해 초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SF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조금씩 SF의 세계에 들어갔다. 
이런 따뜻한 감성의 SF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인」 역시 따뜻했다.

손톱 사이 자라나는 싹에서 피어난 나인.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나인.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알게되고, 식물들이 들려주는 소리로 학교 선배의 실종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친구들과 함께 실종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데...

속삭이는 잎, 심장을 삼킨 나무, 파도가 치는 숲.
부제에서 느껴지는 잎, 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나인의 성장이 예상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 현재, 미래. 그리고 같은 해에 피어난 승택. 무엇보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모.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실종 사건은 끝났지만, 나인의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나인」은 다른 시선으로 보는 즐거움을 줬으며, 책 속 문장들이 좋았고, 예뻤다. 다름. 우정. 용기. 희망. 우리에게 전해지는 소리가 내게 닿는다.

길을 걷다, 지나가다 괜시리 여러 군데에 시선이 향하게 될 것 같고, 괜시리 우리 집 식물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건네게 한다. 

"안녕?"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벗겨 낸 세상의 비밀을 한 겹씩 먹으면, 어떤 비밀은 소화되고 흡수되어 양분이 되고, 어떤 비밀은 몸 구석구석에 염증을 만든다. 비밀의 한 꺼풀을 먹지 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의 시스템은 그걸 먹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설정되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기가 너무 이르면 소화하지 못해 탈이 나거나 목이 막혀 죽기도 하고, 너무 늦으면 비밀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배출시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텅 빈 몸이 된다. _27

그럼 지모는 외계인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
우리는 그냥 딱 보면 아라아. 아, 쟤도 바깥에서 왔구나. 신호등이 깜빡일 때 걷지 않는 사람들 있잖아. 버스를 탈 때 노인이나 아이를 위해 한발 양보하거나 지하철에서 사람이 다 내려야만 타는 사람. 이상하리만치 느긋하게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야.
왜?
인간들이 정해 둔 규칙을 지키는 거지. 외부인이니까. _56

​살아간다는 건, 적응한다는 건, 익숙해진다는 건, 버텨야 한다는 건, 존속한다는 건, 그러니까 끈질기게 존재한다는 건, 세계라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지한다는 건 지킨다는 것이고 동시에 버린다는 것이다. 지켜야 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고, 버려야 하는 건 존재했던 모두다. _189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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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1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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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X카카오페이지 제1회 영어덜트 소설상 대상 수상작

🔮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41도로 꽁꽁 얼어붙은 세계에서 스노볼은 유일하게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유리 천장이 돔처럼 둘렸고, 그 모습이 장난감 스노볼같이 생겼다고 해서 스노볼로 불리게 됐다. 그리고 고해리처럼 스노볼에 사는 사람들은 액터라고 불리며, 액터의 삶은 리얼리티 드라마로 편집돼 만천하에 방송된다. 고해리는 액터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액터만 할 수 있다는 기상 캐스터에 낙점되며 '최연소 기상 캐스터'라는 기록을 만들어 냈다. _13


"선택받은 자만이 따뜻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냉혹한 '스노볼' 세계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생존 게임

우와, 재밌다! 
SF는 초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좀 시간이 걸리는 편이긴 한데, 「스노볼​」은 세계관이 바로 머리속에 그려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의 등장으로 흐름이 끊이지 않게 몰입감을 주면서 464페이지를 쭈욱 읽어나갔다.

책을 읽으며 장면들이 내 앞에 영상으로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띠지의 "CJ ENM 영상화" 문구에 벌써 영상으로 볼 생각에 기대가 된다. 영상미는 물론이고, 캐스팅도 덩달아 궁금해지네. 두근두근.
영화보는 느낌이면서, 드라마보는 느낌이 함께 들었다. 영화의 영상미와 드라마의 시즌제 느낌이 함께 느껴져서 그런가보다.
 ​「스노볼 1」로 시즌 1을 끝낸 기분이다.
시즌 2의 「스노볼 2」에는 어떤 내용이 나올지 더욱 궁금해진다.

차례의 1부 '나', 2부 '너', 3부 '우리'가 찰떡같이 어우러지면서 전초밤의 성장 소설 같기도 했다.
등장인물 많은 건 좋아하지 않는데, 뒤로 갈수록 등장인물이 더 많아짐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역할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조연일거라 생각했던 캐릭터들도 장면마다 하나같이 주연 느낌이 물씬 풍긴다. 등장인물들의 각자 다른 매력 포인트를 찾으며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스노볼 2」도 챙겨봐야겠다.


​🔮 "당신들은 신이 아니에요,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대단하지 않다고요. 당신들은 남에게 고통을 줘서도 안 되고, 누군가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착각도 제발 버려요. 그건 당신들이 남의 영혼을 제멋대로 휘저을 핑계밖에 되지 않으니까." _423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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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
정소연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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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목소리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더 큰 권력이다. (...)
아무 말이나 할 수 없는 사람은 세상을 향해 할 말을 고르고 또 고르고, 그 말을 다시 줄이고 또 줄여야 한다. 자신의 말이 전달될 기회가 적고, 주어진 시간이 짧고, 듣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소리의 권력이 작은 사람은 말을 자꾸 줄인다. 최대한 압축한 말은 구호가 된다. _58


정소연 작가님은 SF 작가이자 번역가이자 공익 활동을 하는 변호사이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큰 이유는 SF 작가이면서 변호사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고, 김초엽 작가님의 추천사로 더욱 읽고 싶었다.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은 여러 지면에서 쓴 칼럼, 수필, 역자 후기, 작품 해설이 모아져 있다. 여러 짧막한 글들을 통해 저자가 변호사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여성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SF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 작가님의 여러 시선을 엿볼 수 있다. ​

책 속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생각지 못했던 주민등록 제도에 대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비정규직, 근로환경, 차별, 혐오, 성소수자 등 그만큼 우리가 관심을 갖고 나아가야 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들어는 봤지만, 솔직히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다. 내가 주목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고, 생각지 못했던 점도 꼬집어냈다. 나의 무심함, 무관심, 무감각했던 것에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여성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같은 여성으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으며, 그 속에서도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도 발견해서, 좀 더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

​물론 불편한 지점들도 있었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안의 확신이, 신념이 강하다는 뜻일 것이다. 오히려 좀 더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던 것 같다. 
다양한 목소리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앞으로 외면 하지말고 바라보자는 마음을 잡게했다. 

3부에 실린 역서와 작품 해설을 보니 다른 책들도 접하고 싶어졌고, 작가님의 SF 단편 소설 『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의 「미정의 상자」를 읽은 적이 있는데, 다른 소설도 찾아 읽고 싶어졌다. 


모든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무엇이든 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안 보여도 믿어야 한다. 뭔지 몰라도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에 '하는 일도 있는' 사람, '지금까지 어디 가서 뭐 하다 온' 사람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보이지 않으면 우선 내가 못 봐서라 생각하고, 둘째로도 그저 내가 몰라서라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우리를 지탱한다고, 나는 믿는다. _121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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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친구들 - 세기의 걸작을 만든 은밀하고 매혹적인 만남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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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걸작을 만든 은밀하고 매혹적인 만남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앤디 워홀과 장 미셸 바스키아는 누구나 알 만한 미술사의 유명 커플들이다. 누구나 아는 사연이지 싶어 처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한 명 한 명 화가의 친구들을 따라가는 동안 그들의 사연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서로의 삶뿐 아니라 예술에도 결정타가 된 관계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선 강력하고 파괴적인 전류가 흘렀다. 덕분에 예술가들 사이의 우정이란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_7


『화가의 친구들』의 시작은 너무나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을 시작으로 여러 화가들과 그들의 친구들 이야기가 나온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 오스카 와일드​
20살을 뛰어넘는 우정에서 앙숙으로 변한 관계.
"웃음은 우정을 시작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고, 절교의 방법으로는 단연 최상이다." _오스카 와일드

🔹️살바도르 달리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서로의 삶에, 작품에 깊은 영향을 끼친 불꽃같은 시기가 지나 죽음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게된 이들의 이야기.

🔸️파울 클레 - 바실리 칸딘스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겪으면서도 오래오래 지속된 우정.
"내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동료가 많지는 않았다. 클레는 예외다. 그는 위대하고, 나는 그의 평가를 높이 산다." _칸딘스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 월터 포크스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월터의 죽음으로 다시는 판리홀을 찾지 않았던 터너, 이후 일생의 벗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상실감으로 흔들렸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은 좋았으나 끝은 좋지 못했던 관계, 식지 않은 우정의 관계, 서로 영향을 끼치며 나아간 관계 등 다양한 여러 형태의 관계들을 보여준다.

인상깊었던 건 화가와 화가 사이의 관계보다는 화가와 시인, 화가와 과학자, 화가와 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시인은 시로, 화가는 그림으로 두 사람의 우정을 증거로 남기고, 과학자의 영향으로 작품에 자기만의 색체가 뚜렷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며, 식물학자의 영향으로 검은색이 가득했던 화풍이 환상처럼 색이 만개한 그림을 그리게 되는 등 예상치 못했던 관계에서 영향을 받아 작품에 빛을 주는 느낌에 그들의 관계가 더욱 빛났다.

화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주변 사람과의 이야기로 색다른 느낌을 주었고, 다양한 우정(혹은 절교)의 모습에 흥미롭게 읽었다.

 
우정은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관계라는 걸 말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넘실대는 파도처럼 그 안에는 온갖 감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화가들 역시 그 미묘한 관계들을 통해 성장해서 자기 세계를 탄탄하게 세워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_9​

예술가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인연이 끝나고 난 뒤 무시무시한 파도가 덮쳐올 각오를 해야 한다. _63


[어크로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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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들
에마 스토넥스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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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들』은 1900년 12월, 스코틀랜드 앞바다의 엘런모어 섬의 등대에서 세 명의 등대지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구상한 소설이다. 


20년 전인 1972년 겨울, 콘월 지방의 랜즈엔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의 한 등대에서 등대원 세 명이 자취를 감췄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일련의 단서들이 남아 있었다. 출입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두 개의 벽시계는 같은 시각에 멈추어 있었으며, 식탁에는 식사를 앞둔 식기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임 등대원의 기상 일지에는 폭풍이 그 타워를 맴돌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하늘은 맑았다. 어떤 기이한 운명이 이 불운한 세 남자에게 닥쳤던 걸까? _36


교대 근무할 등대지기를 태운 구호선이 바다 위의 타워 등대로 향하고, 등대에 도착한 사람들은 텅텅 빈 등대를 마주하며 이 책은 시작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모험 소설가 댄 샤프가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려 하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1972년과 1992년.. 20년 간격의 세월을 반복 서술하며 점점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한다.​

1972년 세 명의 등대지기 아서, 빌, 빈스의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해 등대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등대지기 삶이란 단조로움 속의 외로움과 고립감의 싸움이며, 세 명의 각자 관계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심리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1992년 그들의 가족 혹은 연인인 헬렌, 제니, 미셸은 20년이 지난 후 남아있는 사람들의 각자가 이 사건을 생각하는 방향 또한 다르다. 진실을 알아내는 것과 묻는 것.

무엇보다 이 책 챕터별 끊기가 제대로다! 드라마 보는 기분이다.
제일 궁금한 1972년 부분에서 딱 중요한 부분에서 끊고 1992년으로 가고,
1992년에서는 3명의 인물이 각자 인터뷰하며 혼자 이야기하는 듯한 서술 방식이 그들의 고통과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하는 궁금증을 일으키며 다시 1972년으로의 반복.
중간중간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하고, 각자의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된다. 

등대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바다에 대한 묘사가 좋았다. 
등대지기들의 심리와 바다 묘사가 어우러져 나 또한 흐린 안개 낀 망망대해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조리는 요란한 바다와 조용한 바다를 알고 있다. 너무도 결연하고 성난 굽이침 위에서 당신이 탄 배가 인류의 마지막 까막임처럼 느껴진 나머지 믿지도 않는 것을 믿게 만드는 바다, 천국과 지옥 아니, 저 위에 있는 게 뭐고 저 아래 도사리는 게 뭐든 그 중간쯤인 것 같은 바다를 알고 있다. 옛날에 한 어부가 두 얼굴을 가진 바다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둘 다 받아들여야 해, 좋은 것과 나쁜 것 둘 다. 그리고 어느 하나도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네. _14

육지 사람에게 바다는 변함없는 것이겠지만, 조리가 알기로 바다는 변함이 없지 않다. 바다는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으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버린다. _23

오후가 되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타워에 눈이 내리면 기묘하다. 방위를 가늠할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지붕 위에 쌓이는 눈이나 어느 농부의 밭을 뒤덮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눈은 그저 하늘에서 계속해서 내리기만 하고 하늘은 뼈다귀 색이다. 바다는 조용히 눈을 받아들인다. 저 아래, 칙칙한 금속 색깔의 움직임이 없는 물. 등대에서 일하기 전에는 바다가 항상 같은 색이라고 생각했고, 파란색이나 녹색 외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파랗거나 녹색인 적이 거의 없다. 바다는 온갖 색깔이며 거의 대부분은 검은색이거나 갈색, 누런색, 황금색, 때로 마구 휘저을 때는 분홍색이 된다. _207


[다산북스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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