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서서 가만히 - 유물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은 뭐가 좋을까
정명희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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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바라본 밤하늘에서 별을 이어보듯이 유물은 내 앞에 놓였던 무수한 삶과 나를 이어준다. 앞에 놓인 길을 따라 걷고, 힘들면 좀 쉬었다가 다시 다가오는 내일을 맞으라 한다. 이제 당신 차례의 끝말잇기를 들려주기를, 당신의 시선이 닿을 때 세상에 없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_279​


사실 박물관보다는 미술관을 더 좋아한다. 그림도 물론 알면 더 재밌지만, 모르고 봐도 눈이 즐거우니까. 
하지만 『멈춰서서 가만히』를 읽다보면 큐레이터로 일하시는 작가님이 들려주는 박물관의 유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어느 전시에서 특히 옛 복식과 장신구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당시 한참 복식사에 관심이 많았던 때였던 것같다. 
옷을 보며 입었던 사람의 키를 짐작해보는 것으로 시작으로 지금은 바랜듯한 색을 선명했었던 색으로 상상해보며 여러가지 상상에 빠졌던 기억.
어떤 가락지는 헐렁거릴듯 너무 커서 이건 누가 착용했을까? 어떻게 착용했을까하는 여러 궁금증을 던지며 자세히 들여다본 기억이 돋아난다. 

이렇듯 유물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각기 다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그 이야기의 여정과 거기서 뻗어나오는 상상 속으로도 함께.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시작해 유물에 담긴 이야기에 같이 공감받고, 위로받고, 격려받으며 다양한 감정이 춤을 춘다.
그대들의 슬픔이 내게 닿고, 그대들의 소원이 내게 닿아 물든다.

이제 박물관에 가면 어떻게 유물을 바라봐야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몰랐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겠지?
멈춰서서 가만히 유물이 내게 하는 이야기를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깊숙히 빠져든 나를 발견할 것 같은 예감이 마구마구 든다. 

내게 닿아 만들어질 이야기는 나를 어떻게 물들이게 될까?



박물관의 유물은 기억을 되짚어 자신을 찾아줄 이를 기다린다. 모두 떠나고 홀로 남겨지는 것에 무덤덤하기 위해 기억이 돌처럼 굳어졌을 뿐, 그 외로움을 견딘 힘은 기다림일 것이다. 많은 사람 속에서도 나를 찾아 성큼성큼 오는 이를 볼 때의 기쁨이 유물에도 있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며, 한달음에 달려와 가쁜 숨을 내쉬는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유물은 누군가가 다가와 자신의 앞에 섰을 때의 느낌과 오래 나를 바라봐주는 이가 있을 때의 행복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꾸 유물 앞에 서 있는 이들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음이 복잡할 때도, 달리던 일상에서 짬을 내고 싶을 때도, 무엇을 하고 사는 걸까 허탈해지면 어떤 이들은 박물관으로 온다. 무례한 공기를 참아내며 견디는 대신 이곳으로 온다. _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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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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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그리고 그림이 참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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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이야기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4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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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살아가면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고, 당신을 유일하게 사랑하는 생명체가, 아, 인간이, 죽어버린 내 불쌍한 아가만큼 순수하고 다정한 그 인간이, 차라리 죽음이 행복한 것일 정도로 모두에게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 바로 이 피의 이름으로! 들으소서, 오, 신성한 성자들이여, 아무도 돕지 않는 이들에게 늘 힘을 주소서!" _114 「빈자 클라라 수녀회」​
​​

일상을 죄어오는 불안,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고딕 문학의 고전

2월에 고딕 단편집을 읽고, 고딕 문학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에세 시리즈 중 『고딕 이야기』를 특히나 기다려왔다. 
문학에서 고딕은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경이로움, 떠도는 유령의 두려움, 현재를 엄습하는 과거의 공포를 이야기한다(p.360)는 옮긴이의 말로 고딕의 개념적인 용어부터 정리되었고, 7개의 중단편 이야기를 읽으며 고딕 문학의 맛을 알아간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한 편 한 편에 빠져든다. 
전체적으로 질투, 욕심, 배신, 허영심, 이기심, 의심, 두려움 등​ 우리 내면에 내제되어 있는 것들이 커지며 폭발하는 공포를 다루고 있는것 같다.
처음엔 밤에 안 읽는걸 추천하셔서, 환한 대낮에 시작했지만, 솔직히 밤에 봐도 큰 무리는 없는것 같다.
초자연적 현상의 공포의 무서움보다는 우리 안에 내제되어 있는 것을 흔드는 공포가 포인트인 것같다.

일곱 편 중 「늙은 보모 이야기」, 「빈자 클라라 수녀회」, 「굽은 나뭇가지」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늙은 보모 이야기」는 내가 생각할 때 딱 고딕 소설의 느낌이 물씬 풍겼고, 짧지만 강력했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로 공포의 분위기를 풍겨주며, 저택의 숨겨져 있는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질투, 비극의 시작.​

「빈자 클라리 수녀회」와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는 '저주'라는 같은 소재를 다르게 풀어간다. 
왜 저주는 잘못한 당사자가 아닌 대를 이어 나타날까 생각해봤는데, 계속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점점 커져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공포가 그 사람을 옭아매어 저주로 표현한 것같다.
「빈자 클라리 수녀회」는 중편이라 이야기가 한데 모아지는 스케일이 커서 읽는 즐거움이 컸다.
결국은 고통을 받는 건 저주를 내린 당사자. 저주의 시작인 사람의 진정한 사과의 부재. 참으로 모순적이었고, 결말까지 참으로 안타까웠던 이야기.
의심의 씨앗이 날로 커져 결국은 부자가 서로 믿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비극을 그린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

지금의 현실과도 충분히 맞닿아 있는 「굽은 나뭇가지」.
부모와 자녀의 미묘한 그 관계.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길 바라고, 그 자식은 다른 세계를 맛보고 허영심과 욕심이 가득찬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며 우리 인간의 다양한 내면의 모습을 휘젓는 모습을 보며 지금의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그리는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과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느낄 수밖에 없는 근원적 두려움(p.362)을 느끼고 싶다면.
일곱 편의 탄탄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고딕 이야기​』를 펼쳐보세요. ​



다소 망설인 후 벤저민은 200파운드를 받는 것에 동의하고 그 돈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업을 시작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래놓고도 그는 스타킹에 모인 15파운드를 갖고 싶은 기이한 갈망을 품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건 아버지의 상속인인 자신의 돈이라고. 그는 곧 그날 저녁 평소 베시에게 보이던 상냥함을 잃을 채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다. 아버지가 열심히 벌어 소박한 생활로 저축한, 곧 소유하게 될 200파운드보다 가질 수 없는 15파운드에 더 집착했다. _283 「굽은 나뭇가지」​


[에세 서포터즈 활동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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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노크
케이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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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통수치는 반전의 반전의 반전! 똑, 똑, 똑,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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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 머시기 - 이어령의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이어령 지음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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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만약 건드리는 것마다 금덩이로 변화시키는 지팡이가 있다면, 나는 지식이라는 금덩이가 아니라 지식을 창조하는 상상력의 지팡이, 지혜의 지팡이를 놓고 가려고 합니다. _50


이어령이 80년 독서와 글쓰기 인생에서 길어낸 언어적 상상력과 창조의 근원에 관하여

이 책에는 2001년 이화여자대학교 고별 강연부터 2014년 세계번역가대회 기조 강연까지 8개의 강연과 대담이 수록되어 있다.
서로 독립된 강연이지만, 부제 '이어령의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에서 느껴지듯이 말, 글, 책에서 전하는 '언어'가 주는 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말은 씨앗이다."

언어에 대한 남다른 감각으로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시간.
언어가 주는 무한한 확장과 가능성의 세계를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쉬운듯 어려운듯 이어령 선생님이 들려주는 강연 속에 축적된 지식과 더불어 깊이있는 사유를 통해 선생님의 삶과 창조의 근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강의를 이제 육성으로 듣지 못하고, 남아있는 글로써 접할 수 없다는 생각에 줄어드는 페이지가 너무나 아쉬웠다.
과거의 강연이지만 현재와도 맞닿아있어 새겨봐야할 글이 많았고, 나에게도 여러 질문을 던져준다.

말의 세계. 말의 아름다움. 나아가 말의 두려움까지.
읽으면서 내 안의 부족한 것이 많이 드러나면서 앎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무한하게 뻗어나갈 것을 생각해본다.
나로부터 뻗어나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언어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Word가 World를 바꾼다.



언어의 속도에 반응해서 뒤쫓아가는 사람, 창조적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는 사람, 소비하는 사람,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데 여러분은 언어를 소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뒤쫓아가는 사람이 되지도 말고,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언어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자기 인생과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에요. 그것이 바로 글쓰기이고 말하기의 핵심입니다. 뒤쫓아가지 말라는 것. _192


'사람'은 '살다'에서 나왔어요. '살다'에 '암'을 붙여서 '사람'이 된 거예요. '사람'이 '살다'에서 나왔기 때문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사람'의 친구가 되는 거예요. 나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왜냐하면 그 속에는 '살자'라는 말이 들어 있고, '생명'이라는 말이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_232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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