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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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전거를 개조하고 변형하고, 다시 조립한 행복표 자전거가 틀림없었다. 지난 이십 년간 어디에 있던 걸까? 어떤 곳을 지나온 것일까? 68



책을 읽기에 앞서 작가를 소개하는 띠지의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리브로 앵쉴레르 수상 작가" "대만 최초 맨부커상 노미네이트" 이 문구 덕분에 과연 우밍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감이 생겼다.

1992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상가가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사라졌다. 그로부터 이십 년 후, 사라진 자전거의 궤적을 쫓던 청 앞에 아버지의 자전거가 나타난다.

아버지의 자전거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는 단순히 자전거 자체가 아닌 더 큰 세계를 품고 있었다. 자전거에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한데 모아지며 각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점차 확장되어간다. 각자의 의미와 감정이 담겨져 있던 자전거에는 그들의 역사들이 겹겹이 쌓여져가고 있었다. 나조차도 처음 실려있던 자전거 그림을 보았을 땐 단순히 정보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야기들이 쌓아지며 다시 나타나는 자전거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게도 의미가 더해지는 듯했다.

곳곳에 전쟁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이 소설은 또 하나의 역사의 이면을 품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 속 환상적인 요소를 통해 몽환적인 슬픔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스며든 전쟁의 상흔들과 전쟁으로 인해 동물들에게 새겨진 죽음과 고통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에겐 끝나지 않은, 생생함 속에서 시간이 계속 이어져가는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는 건 한 사람의 인생과 진정으로 만나는 것과 같아요."라는 압바스의 말처럼 《도둑맞은 자전거》를 펼치며 그들의 인생을 만나보는건 어떨까?



"사비나에게 자전거를 주면서 단 한 가지 조건만 걸었어요. 자전거 주인이나 자전거와 관련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돌려주라는 것이요. 사실 난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청 선생이 내 앞에 있네요." 360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 어째서 시간에 마모되고도 여전히 겨울잠을 자듯 어디선가 살아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이야기는 늘 깨어나 숨결을 따라 우리 몸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늘처럼 척추를 따라 머릿속으로 들어간 뒤 때로는 뜨겁게 또 때로는 차갑게 심장을 찔러댄다. 433


[비채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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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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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불만과 고민은 언제나 피를 흘리는 상처 같았다. 그 피는 언제 멎었을까. 언제 아물었을까. 상처는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눈에 보인다. 아팠던 시절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나이 먹는 건 이런 것이다. 146, 「나와 나」


미야베 미유키, 영화 <화차>의 원작소설 작가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읽어보긴 처음이다. 작년부터 유명 작가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생기고 있어서,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물씬 생겼다. 

『안녕의 의식』은 미야베 미유키의 첫 SF 소설집으로,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SF로 풀어 8편의 단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직 SF 소설이 좀 어렵게 느껴졌는데, 『안녕의 의식』은 SF 소설이라기보단 현실을 살짝 비틀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나'에 대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는 소설이었고, 섬뜩함과 따스함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요즘 개인적으로 생각의 늪에 빠져 좀처럼 벗어나고 있질 못해서 그런가 특히 「나와 나」와 「별에 소원을」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나와 나」를 읽으며 내 모습을 대입해본다. 10년 혹은 2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과거의 내가 상상했던 미래와 다른 나를 보며 실망할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후회할까? 「별에 소원을」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보는 모습이 스스로의 심성을 반영한다면, 지금의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다시금 차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과거의 나에겐 희망을, 지금의 나에겐 사랑을, 미래의 나에겐 용기를 건네주고 싶다.

이밖에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곳곳에 아이러니함을 남겨주는 이야기도, 조금씩 조여오는 긴장감과 공포심에 두려움을 느낀 이야기도 담겨있다. 이야기마다 여러 각도로 생각을 뻗어나가게 하며,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세계에서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면 좋겠다. 이 세계에는 인간보다 로봇이 어울린다. 아니라면 다들 저렇게, 저 여자애처럼, 로봇을 위해 울고 로봇을 걱정하며 로봇과 마음을 나누려 할 리 없다. 로봇을 하나 조립할 때마다 나는 인간에게서 멀어져간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아무리 해도, 로봇은 되지 못한다. 그것이 답답해서, 원통해서……. 나는 때때로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로봇은 결코 하지 않는 행위이지만. 194, 「안녕의 의식」​


[비채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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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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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시 정각에 우는 부엉이 영감의 소리를 듣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달팽이'는 어떨까?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새로 열 식당 이름은 '달팽이'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좋았어! 롤케이크처럼 이불을 둘둘 만 채 혼자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의 땅'이다. (75)


오가와 이토의 다른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달팽이 식당』 서평단 모집글에 관심이 갔고,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책이라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링고, 남자친구가 살림살이를 싹 다 가져가 텅 비어있는 집. 믿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마주한 링고는 실어증 증세를 보인다. 구석에 유일하게 남겨진 할머니의 마지막 겨된장 항아리와 함께 오래도록 가지 않았던 고향으로 내려간다. 돌아온 고향에서 달팽이 식당을 열며 다시 시작하는 링고와 달팽이 식당을 찾아오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손님들. 그렇게 달팽이 식당으로 들어가본다. 

창고였던 공간을 하나씩 고쳐가며, 취향에 맞게 달팽이 식당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부터 '달팽이'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렇게 달팽이 식당이 완성되고, 달팽이호같은 달팽이만의 것이 하나씩 채워지는 과정이 느리지만 조용하게 마음 속에 안착된다. 

시골의 풍경 속 달팽이호를 타며 스쳐 지나가는 링고의 모습이 보인다. 달팽이 식당의 주변 풍경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달팽이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작고 아담한듯 편안한 분위기를 느껴진다. 자연의 소리와 음식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섞인다. 맛있는 냄새가 전해져온다. 내 앞에 음식이 놓여진다. 달팽이 식당의 식탁에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한다. 링고가 만들어주는 나만을 위한 음식, 그 음식이 나에게 어떤 위로와 용기, 기운을 줄지 무척이나 설레며 기대가 된다. 

요리의 세계로 이끌어 준 할머니, 그 추억의 맛과 그리움이 어느새 소박하고 따스한 분위기인 달팽이 식당에 녹아져 있다. 정성이 가득한 음식, 그 음식에 담겨있는 링고의 따뜻한 마음이 손님들에게 닿는다. 저마다의 사연들, 음식에 담긴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받고, 사랑이 시작된다. 그리고 오래도록 쌓아온 엄마와의 오해도 풀리며 링고 자신 또한 치유의 시간을 맞이한다.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초반 엘메스를 위해 음식을 연구하며 먹이는 모습에 조금은 감동 받았는데, 엘메스의 결말이 엉엉. 나의 환상을 조금 깨버렸다. 사람에게 전해져오는 마음도 좋았지만, 거식증 토끼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어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상실감, 그리움, 추억. 위로와 용기, 사랑 그리고 화해.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달팽이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간다. 



요리를 만든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 내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황홀해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한겨울 밤하늘에 대고 몇 번을 소리쳐도 부족할 정도였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목이 쉴 때까지 모두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아주 잠깐 눈이 그친 하늘에는 무수한 빛들이 모닥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169)


[알에이치코리아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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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 여관의 괴담
오시마 기요아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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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길을 갑니다. 그림자밟기라는 묘한 이미지 여관(집 관련 소재 좋아함) 괴담=결제각. 최근 괴담에 꽃혀서 그런가 재미있게 읽었어요.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톤도 좋았고, 이러한 미묘한 분위기의 궁금증 돋는 결말도 나름 이 책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끝나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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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섬 아르테 미스터리 8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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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쓰기 유코는 죽기 직전에 예언을 남겼어. 이른바 생애 마지막 예언이야.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지…… 올 여름 8월 25일부터 26일 새벽에 걸쳐 무쿠이 섬에서 여섯 명이 죽는다, 라고." (44)


『즈우노메 인형』을 읽고, 같은 작가의 신작 소식에 눈여겨봤다 읽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런 예언의 날에 꼭 그곳으로 가는 장면을 보면, 참 답답했다. 아니, 저기를 왜 가냐고, 안 가면 되는걸 꼭 그렇게 들어가서 죽고... (절레절레) 난 쫄보라 갈 생각조차 안하겠지만, 어쨌든 이래야 영화든 드라마든 이야기가 시작되는거지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는 안되고. 이 책 역시 그렇게 시작한다.

처음 시작은 자살 시도를 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였지만, 선착장에서 섬에 들어가면 위험하다고 말리는 여자부터 시작해, 예언의 날이라며 받아주지 않는 숙소, 그렇게 섬의 분위기는 기이하게 흐른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잇따라 일어나고, 갈수록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늘어나면서 예언이 맞아 떨어지는데.. ​

섬의 특유한 분위기와 빼곡히 놓여져 있는 깜장벌레(벌레가 아닌 장식품), 자욱한 연기들, 그리고 외지인을 적대시 여기는 섬사람들의 분위기가 조금은 기괴하게 느껴졌다. 이런 분위기에 더해 미스터리 비중이 확연히 높아 궁금증을 높인다. 그리고 밝혀지는 원령의 실체에 섬사람들의 모습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예언이 맞아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말의 무게와 함께 우리는 어떤 말에 사로 잡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이었던 결말은... 정말이지 결말 전까지 흡입력있고 만족하며 읽어서 개인적인 별점이 높았는데, 쌩뚱맞은 결말에 잉? 응? 아? 허! 하며 별이 바사삭했다. 나 원래 이런 서술트릭 좋아하는데, 이건 왜... 난 이 장면이 진정한 호러였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주려고 한 것 같았지만, 알고나니 몇몇 장면이 스치긴 하지만, 난 설득되지 못했다. 엉엉. 근데 또 결말에 만족하는 분들도 계실테니, 이것은 지극히 개인의 취향임을 밝힙니다. 



"……이상하다, 기이하단 걸 알면서도 버릴 수 없는 말. 뿌리치고 싶어도 뿌리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그게 바로 저주예요. 그걸 그대로 놔두면 어느새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되죠."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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