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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평점 :
그런 불만과 고민은 언제나 피를 흘리는 상처 같았다. 그 피는 언제 멎었을까. 언제 아물었을까. 상처는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눈에 보인다. 아팠던 시절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나이 먹는 건 이런 것이다. 146, 「나와 나」
미야베 미유키, 영화 <화차>의 원작소설 작가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읽어보긴 처음이다. 작년부터 유명 작가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생기고 있어서,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물씬 생겼다.
『안녕의 의식』은 미야베 미유키의 첫 SF 소설집으로,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SF로 풀어 8편의 단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직 SF 소설이 좀 어렵게 느껴졌는데, 『안녕의 의식』은 SF 소설이라기보단 현실을 살짝 비틀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나'에 대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는 소설이었고, 섬뜩함과 따스함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요즘 개인적으로 생각의 늪에 빠져 좀처럼 벗어나고 있질 못해서 그런가 특히 「나와 나」와 「별에 소원을」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나와 나」를 읽으며 내 모습을 대입해본다. 10년 혹은 2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과거의 내가 상상했던 미래와 다른 나를 보며 실망할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후회할까? 「별에 소원을」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보는 모습이 스스로의 심성을 반영한다면, 지금의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다시금 차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과거의 나에겐 희망을, 지금의 나에겐 사랑을, 미래의 나에겐 용기를 건네주고 싶다.
이밖에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곳곳에 아이러니함을 남겨주는 이야기도, 조금씩 조여오는 긴장감과 공포심에 두려움을 느낀 이야기도 담겨있다. 이야기마다 여러 각도로 생각을 뻗어나가게 하며,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세계에서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면 좋겠다. 이 세계에는 인간보다 로봇이 어울린다. 아니라면 다들 저렇게, 저 여자애처럼, 로봇을 위해 울고 로봇을 걱정하며 로봇과 마음을 나누려 할 리 없다. 로봇을 하나 조립할 때마다 나는 인간에게서 멀어져간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아무리 해도, 로봇은 되지 못한다. 그것이 답답해서, 원통해서……. 나는 때때로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로봇은 결코 하지 않는 행위이지만. 194, 「안녕의 의식」
[비채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