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들 결혼과 행복을 연관시키려 하는지." 등장인물 중 한 여자의 이 짧은 한 마디가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그리고, 결혼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아닐까? 결혼을 통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열릴 거라는 착각은 가지지 마라는. 결혼하는 여자들은 모두 꿈을 꾼다. 결혼과 사랑이 함께하는 꿈. 하지만, 삶은 - 생활은 우리를 끝없는 공허감 속으로 몰아넣으며, '부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의미한 부부관계라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 양 만든다. 결혼생활만큼 무서운 습관도 없는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우리를 흔드는 것은 다른 세계, 다른 삶에 대한 갈망...... 완벽한 듯 보이는 부부들이 겪는 갈등과 소외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인생의 안식처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그 불행한 결혼의 당사자들. 열세명의 등장인물들이 부지불식간에 묘한 관계로 얽히며 그들 결혼의 와해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불온하지만, 또 현실이고, 그렇기에 씁쓸하다. 그러나, 배울 것은 있다. 많이 들어온 말이지만 '결혼은 또다른 연애의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다른 연애를 꿈꾸는 한, 어떤 연인도 머무를 수 없다. 어떤 믿음도 존재할 수 없다. 유독 '부부'는 인간 관계의 모든 법칙과 예의와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기에 결혼과 행복은 함께 있을 수 없는 것 아닐까?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여고생 시절이 있었다.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어른이 되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서 그 사고방식까지 흡수해버렸던 걸까.. 그 다짐을 잊고 무슨 숙제라도 해 치우듯 결혼해 버렸다. 물론, 행복하다.. 안정된 가정과 친밀함, 아기가 주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데 없다. 하지만, 결혼 3년... 서서히 '아내'이며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 죽어가는 나를 본다. 가끔은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한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의 첫 에피소드에서 "남자는 다 살인자다."라는 문장을 읽고, 순식간에 거기 공감하는 나 자신에게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남편에 대한, 자식에 대한 깊고 진한 애증이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동감하게 된 소설. 그러나, 그렇기에 "여기 대한민국에서 뿐이 아니라, 어느 엄마든..어느 아내든 겪는 고통이고 상실이구나..."하면서 오히려 위로를 받은 소설이었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았던 <프린세스 브라이드> 황당하면서도 낭만적인 이야기 진행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공주를 찾아서>란 책이 눈에 띄어 책장을 펼쳤다가 '버터컵 공주'라는 여주인공 이름에 그 옛날의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들뜬 마음으로 책을 빌려와 신나게 읽었다. 너무나 재미있는 책... 책의 구성 또한 아주 독특하다. 다 읽고 나서 완전히 작가에게 농락(?)당한 배신감마저 느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반전... 대단한 작가의 대단한 이야기이다.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우울하실 때나 의기소침하실 때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어도 재미있어 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와 그 공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꾼(영화에선 '머슴'으로 번역했었다..^^:), 공주와 약혼했으면서도 목숨을 노리는 악랄한 왕자와 세살에서 가장 고통스런 고문기계를 발명하는 잔인한 백작, 왕실에서 파문당해 마법의 힘을 잊어가는 전설의 마법사와 그 아내 마녀, 세상에서 가장 힘센 거인과 가장 훌륭한 검객, 가장 명민한 책략가로 이루어진 3인조, 무시무시한 해적, 검은 마법의 숲 등... 동화가 가진 모든 환상적인 요소가 총망라된 소설이다.
작년에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약간 소름끼치는 기분으로 매료되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제작된 것을 보고 그 작품이 원작인 줄 알았었다. 그러다, 동명의 이 소설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고전 작가인 피츠제럴드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작품의 설정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다. 노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늙어간다는 설정. 소설 자체는 아주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이다. 모두가 늙어가는 세상 속에서 혼자 젊어지는 운명을 타고 난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갈지...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벤자민 버튼은 운명에 순응한다. 아니, 순응하는 법을 배워간다. 사회도 그 사실을 은폐하고 싶어하나, 결국에는 기만적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벤자민 같은 생을 부여받는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더 행복할까? 삶이 준 지혜와 건강한 신체와 의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더 의미있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피츠제럴드의 이 짧은 단편은 우리에게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상 속의 반전을 선사하며 동시에 너무도 당연한 진실이었던 '시간', '삶'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