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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두 장의 LP 판처럼 두 권의 책을 묶고 싶었다는 작가...
여러 가지 디자인적인 아이디어가 벽에 부딪히며 결국은 '책'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그의 이야기에, 결국 빛을 보지 못한 '이 책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모습'들이 못내 아쉽다.
열여덟 편의 그의 이야기들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그저, 내가 들여다 본 박민규의 세계, 그 열 여덟 개의 편린들이 내게 남긴 것들은...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하는 희망이다.
삶에서 외면당하고 내몰린 인간들,
그의 이야기 속에 영웅이나 낭만은 없다.
이 물질의 사회가 세뇌하듯 머릿속을 가득 채워놓은 화려한 욕망과 동경 그 뒤,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우리 자신의 모습...
우리 대부분이 겪었거나 보았던, 겪을 수 있는 초라한 절망들.
'그러나 더는 살고 싶지 않다. ' ( Side A / 65p, '누런 강 배 한 척' 중에서)
는 사람들...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 (위와 동일)
인 인간을 우리는 그의 세계 곳곳에서 마주한다.
하지만, '갈 수만 있다면 가야만 하는 속성을 지닌' (Side A / 118p, '깊' 중에서)
인간은 그 의미를 잃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릴 뿐이다.
결국, 인위란... '이유도 모른 채 오류와 혼돈 속에 벌어지는 모든 행위' (Side A / 282p, '크로만, 운' 중에서)일 뿐.
인간은 그렇게 평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산다는 건 뭘까?'하는 질문에
'서민이 그런 걸 알아 뭘하겠나.'(Side B / 199p,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중에서)
라고밖에는 대답할 길 없는 현실.
열 여덟 편의 다채로운 트랙들은
춥고 어두운 눈 속을 걸어가며 '왜?'라는 의미 없는 혼잣말을 이어가는,
'잠시 살아 있는' 한 사내의 모습에서 멈춘다. (Side B / 301p, '슬' 중에서)
BC 17000년의 이 사내가,
굶주린 아내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다릿살을 베어 지고 가는 이 사내가
그 영겁의 세월을 거치고도 변함없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고결하고도 가여운 존재, '인간'이라고 말하듯.
갈수록 춥고 어두워지는...끝이 보이지 않는 빙하기의 세상 속에서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로, 어떤 빛으로...온기로.... 살아가는,
자신을 위해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지켜야 할 누군가, 무언가를 위해
오늘도 '잠시 살아 가는' 그 숨결이
이 세계의 음악들이 다 끝난 다음에도 남아 있다.
<기억에 남는 한마디>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