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희에게 드디어 자신만의 방이 생겼다.

이 '방'은
'방'이라는 단어는
열다섯 소녀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

내가 처음 내 방의 문을 잠그고 싶었던 때가 이 때였었지 싶다.
내가 처음 방 안의 내 물건들을 누가 보고 만지는 것이 싫어졌던 때가 이 때였었지 싶다.
내가 처음, 책상의 열쇠 달린 서랍 하나에 일기장이니 '보물'들을 꽁꽁 숨겨놓고 꼭 잠그고 다녔던 것이 이 때 쯤이었지 싶다.

비로소 혼자만의 '나'를 만나가기 시작하는 이 때,
소희는 '나'를 숨기고 포장하게 되어버린다.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문을 닫아버린 것 뿐.
그저 보고 싶은 대로 보도록 놔두었던 것 뿐.

설레임으로 들어섰던,
그녀에게 자신이 '원해온 존재' '기다려진 존재'임을 인식시켜주었던 그 방에서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침범을 당하고,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현실과 맞닥뜨린다.

15년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자신을 찾은 엄마에 대한 복잡한 심경과
단란한 가정의 불청객이 된 듯한 소외감과 미안함,
아이들에게 '불쌍한 애'라는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숨기게 된 진실들...

따뜻한 위로와 포옹을 소망하면서도, 동정받기는 싫은 소희...
자신을 숨김으로써, '나'로서만 보이고 싶었던 소희.

대견하고 안쓰러운 소희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한숨이나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시작하고 했었던 '요즘 애들은...'이란 말을 멈추게 한다.

그래, 그 때처럼 '내 방'만이 나의 안식처였던 적이 있었지...
거친 말투와 행동도,
부모님 마음 아플 거 알면서도, 다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내뱉던 비난들도,
사실은 그저 '방어막'이었던 때가 있었지...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건,
성장한다는 건,
상처받지 않도록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마음을 열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고
상처 또한 그 일부분임을 받아들이고 감내하게 되는 것.

책을 덮을 때,
굳게 닫혀 있던 소희의 방문이 천천히 열리는 것이 보였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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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리스 - 거울 저편의 세계
코넬리아 푼케 지음, 함미라 옮김 / 소담주니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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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울'이란 사물 자체가 인간에게 주는 상징은 참으로 다양하다.
스스로를 보기 위한 도구이면서도 실체가 아닌 허상을 꿈꾸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고,
가끔은 왠지 들여보기 두려운 '심연'의 느낌으로 섬뜩하게도 다가온다.
실체가 아닌 '이미지의 구조물'이기 때문일까? 
'거울 저편의 세계'에 대한 환타지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 또한 이 동경과 공포에 연유할 것이다.

거울 저편엔 새로운 세상이 있다.
그러나, 완전히 '새롭다' 하기엔 자꾸 낯익은 느낌이 든다.
결국은 '이 세계의 변주곡'이랄까...

답답한 현실을 회피하고 점점 거울 저편 세계의 사람이 되어가는 주인공 제이콥의 모습은
컴퓨터 모니터 안에 펼쳐지는 환상과 이미지의 세계에 빠져들어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위협이 우글거리는 전설과 동화의 세계에서는 유명한 보물사냥꾼인 제이콥은
이 세상에선 존재하는지 않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온갖 진귀한 보물들을 찾아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제이콥은 정작 '자신'은 잊고 산다.
거울 저편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였던 아버지의 메세지..
'거울은 오직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만 열린다'는
결국 제이콥의 삶을 요약하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현실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는 동생 빌이 받은 저주로 족쇄가 채워진다.
고일족에게서 입은 상처로 돌인간이 되어가는 빌......
현실로 돌아올 때마다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형이 지어내는 동화라고 믿던 여린 동생 빌이
그 동화 속 저주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돌이 되어가는 저주,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 되는 저주는 
오로지 '진정한 사랑의 힘'만이 풀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든, 저 다른 세상에서든 마찬가지......

변해가는 빌을 두려워하면서도 지키는 클라라의 사랑,
'진짜 자신'이라는 '인간'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제이콥을 지키는 여우의 사랑.

인간의 모습보다 여우의 털가죽에 편안함을 느끼는 여우소녀의 심정에 공감이 간다.
같은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것이 인간이니까.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 혐오스러운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므로...
차라리 다른 존재를 입고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여우는
제이콥의, 어쩌면 대다수 인간들의 또다른 변주이다.

말하는 거울, 황금실을 잣는 물레, 시간을 멈추는 모래시계, 문지르면 금화를 내놓는 손수건, 공주의 황금공, 라푼젤의 머리카락 등 동화 속의 보물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 힘을 발휘하는 모습들도 이 소설의 또다른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까지, 어쩌면 예상했던 대로 제이콥은 거울 저편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거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는 자'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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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어떻게 알았지? - 혼자서 길을 가다가 유괴범을 물리친 빨간모자 이야기 느림보 그림책 26
심미아 글.그림 / 느림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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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는 아마도 아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명작동화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단순한 스토리에, 정확한 주제...

특히, 이 시대엔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안전교육의 주제를 확실하게 담고 있죠.

같은 아이이고 평범한 '빨간 모자'가 주인공이라, 아이들은 더 좋아하고 공감하지요.

 

<쳇! 어떻게 알았지?>는 이렇게 친근한 '빨간 모자'의 이야기에

또 다른 여러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다른 모습들로 출연해요.
돼지 삼 형제, 개구리 왕자, 장화 신은 고양이가 그 출연자들이지요~
원래의 동화에선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아이들에게는 실제 사람만큼이나 친근한 이 캐릭터들이

이 그림책 속에선 알고 보니, '위험하고 나쁜' 인물들이에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

아무리 친하게 굴어도, 또 실제 친근한 사람일지라도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라도 안전에 대해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 설사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침착하게 용기를 내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중요한 교훈들을 아이들이 쉽게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아주 잘 쓰인 책이에요.

너무 교조적이거나, '세상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거나 아이들을 겁쟁이로 만들지 않을까 싶은

많은 안전교육동화들과 달리,

이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한 동화랍니다.

 

사랑스런 그림과 당찬 빨간 모자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아이가 꼭 두 번씩 연달아 읽어달라고 하네요.

이렇게 스스로 많이 읽으니, 자연스럽게 작품의 교훈도 몸에 배이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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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아트가이드 (Art Guide) 6
권오숙 지음 / 예경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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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페이지의 이 묵직한 책은

기대 이상이다.

작품들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란 인물 자체가

신비에 둘러싸여져 있는 하나의 전설임을 아는가?

한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작품과 인물들이 태어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이름은 우리가 생각한 한 사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야설이

파다하다.

 

아직 진실은 알 수 없는 그의 삶...

하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그의 작품 속엔 인간의 진실들이 실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그런 그의 희곡 37편 전체를 담은 이 책은 야심차다고 할 밖에...

 

이 책은 작품 설명과 함께,

그 안의 명대사들, 인간 역사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회자될 명언들을 담고 있다.

작품 속 인물과 장면을 담은 280여 점의 그림들 속에선

그가 그린 인물들의 희노애락이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림에 대한 설명들도 무척 상세해서 미술서적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

아름다우면서도 풍요로와, 눈과 마음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기억에 남는 한마디>
죽은 다음에라도 이대로 있어 다오. 그러면 널 죽일지언정 내 사랑은 변치 않으리.  

<오셀로> 중에서,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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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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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LP 판처럼 두 권의 책을 묶고 싶었다는 작가...

여러 가지 디자인적인 아이디어가 벽에 부딪히며 결국은 '책'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그의 이야기에, 결국 빛을 보지 못한 '이 책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모습'들이 못내 아쉽다.

 

열여덟 편의 그의 이야기들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그저, 내가 들여다 본 박민규의 세계, 그 열 여덟 개의 편린들이 내게 남긴 것들은...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하는 희망이다.

삶에서 외면당하고 내몰린 인간들,

그의 이야기 속에 영웅이나 낭만은 없다.

이 물질의 사회가 세뇌하듯 머릿속을 가득 채워놓은 화려한 욕망과 동경 그 뒤,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우리 자신의 모습...

우리 대부분이 겪었거나 보았던, 겪을 수 있는 초라한 절망들.

 

'그러나 더는 살고 싶지 않다. '  ( Side A / 65p, '누런 강 배 한 척' 중에서)

는 사람들...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 (위와 동일)

인 인간을 우리는 그의 세계 곳곳에서 마주한다.

 

하지만,  '갈 수만 있다면 가야만 하는 속성을 지닌' (Side A / 118p, '깊' 중에서)

인간은 그 의미를 잃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릴 뿐이다.

 

결국, 인위란... '이유도 모른 채 오류와 혼돈 속에 벌어지는 모든 행위' (Side A / 282p, '크로만, 운' 중에서)일 뿐.

인간은 그렇게 평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산다는 건 뭘까?'하는 질문에

'서민이 그런 걸 알아 뭘하겠나.'(Side B / 199p,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중에서)

라고밖에는 대답할 길 없는 현실.

 

열 여덟 편의 다채로운 트랙들은

춥고 어두운 눈 속을 걸어가며 '왜?'라는 의미 없는 혼잣말을 이어가는,

'잠시 살아 있는' 한 사내의 모습에서 멈춘다.     (Side B / 301p, '슬' 중에서)

BC 17000년의 이 사내가,

굶주린 아내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다릿살을 베어 지고 가는 이 사내가

그 영겁의 세월을 거치고도 변함없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고결하고도 가여운 존재, '인간'이라고 말하듯.

 

갈수록 춥고 어두워지는...끝이 보이지 않는 빙하기의 세상 속에서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로, 어떤 빛으로...온기로.... 살아가는,

자신을 위해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지켜야 할 누군가, 무언가를 위해

오늘도 '잠시 살아 가는' 그 숨결이

이 세계의 음악들이 다 끝난 다음에도 남아 있다.

 


<기억에 남는 한마디>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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