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평점 :
민음사에서 펴낸 '나의 미카엘', 소설은 아니지만 작가 아모스 오즈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광신자 치유' 같은 책을 통해 접한 아모스 오즈는 쭉 관심있는 작가였다.
그저 이스라엘 작가라는 이유로, 그의 작품과 사상을 떠나 내게 특별한 관심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난 기독교인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유대 민족을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알기 때문이다.
문학은 한 국가의 문화, 정신, 역사, 뿌리, 한 시대의 분위기, 복합적인 단면 등
많은 것을 짐작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이기에...
이스라엘의 현재를 이해하고, 보다 가까이하고자 하는 이유에서
그의 소설이나 글을 주목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 대표 작가로 알려진 그가 지난 2018년 사망했을 때...
부고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안 좋고,, 안타깝고 슬펐다.
오래 살아서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유익하고 가치있는 역할을 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어쨌든 작가 이름만 봐도 아픈 마음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소설 '유다'를 안 읽을 수 없었고,
첫 장 읽기를 시작하자 마자, 이건 내 취향의 작품이라는 것을 바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슈무엘 아쉬를 묘사, 설명하는 부분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다가 느낀 전율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암튼 뭔가 부족하고 생각 많고 흥분되어 있는 캐릭터는 흥미롭고 좋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공부도 그만 두려는 슈무엘의 눈에 마침 들어온 구인공고-
5시간(좀 길긴 하지만)동안 학식이 깊고 지적인 일흔살의 장애인 남성과 대화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무료로 숙소 제공과 함께 소액 월급까지 지급한다..도우미가 아니라 순수한 대화 상대로,
학식과 교양을 바탕으로한 교류와 토론의 시간을 가지면 되는 것~
어쨌든 그렇게 슈무엘 아쉬는 아탈리야 아브라바넬과 게르숌 발드를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심도 있는 토론과 역사와 인물의 해석, 주제를 파고드는 논쟁, 대화가 펼쳐진다.
소설 유다의 구성이 되는 주요 인물은 이 세 명이지만,
주제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고 배신자로 불리는 '가룟 유다',
매혹적인 여성 아탈리야의 아버지이자 이스라엘의 건국을 반대해서
역시 배신자로 몰린 '쉐알티엘 아브라바넬'도 상징적 인물로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아모스 오즈는 유다와 아브라바넬을 통해, 자신을 변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솔직히 소설 속에서 유다를 '한 순간도 예수를 떠나지 않고 그를 부인하지 않았던
유일한 기독교인, 그가 하느님이라고 믿었던 유일한 기독교인, 십자가에서 내려 오리라
믿었던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성경에는 가룟유다가 돈을 탐하는 자였다고 나오고, 실제로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다.
자살하기 전에 돈을 그대로 남겼기 때문에,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변명해도 소용없는 것이..
이미 그 전에 그는 제자 중 돈궤를 맡는 자로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비싼 향유를 드린 것을 보고
(뒤로 몰래 그 돈을 빼돌릴 수 없게 되어) 분개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고..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쓸 수 있었는데, 못 쓰게 되었다고 위선적인 분노를 했었다;
또 예수님을 팔 때는 그의 정치적 야욕, 권세욕이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서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배신한 것이기에
물론 단지 돈이 전부의 목적은 아니었다해도,
어쨌든 가룟 유다 내면의 분노와 실망, 탐욕이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룟 유다 안에 마귀가 들어갔다는 직접적인 구절까지 있다.
신앙적으로 보면 유다는 한 순간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유일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단 한번도 된 적이 없는 인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죽었을 때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자'라는 평에는 동의하게 된다.
그가 회개했다면 좋았을텐데...유다를 떠올리면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픈 것이 사실이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회개하여 교회의 기둥이 된 베드로와 다르게
유다는 회개 없는 자살을 택하여.. 다시 한 번 어리석은 결말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씀까지 들은 가여운 인물이다.
이처럼 신약 성경에 따른 기독교적 해석으론 가룟 유다에 대한 다른 해석은 불가하지만,
아모스 오즈의 문학적 세계와 사상에서는 가룟유다와 아브라바넬은 전혀 다른 상징과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믿음의 배신자가 아니라, 더 큰 믿음을 추구했던 자였다며 새로운 관점에서 평하고 있다.
마치 작가 아모스 오즈가 '두 국가 해결책'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공존
갈등의 종식을 주장한 것을 국가와 민족의 배신이라 평하는 무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분열과 갈등이 종교적 신념과 민족 뿌리와도 같은 가치관과 맞닿아 있을 때..
그 분열과 갈등, 폭력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 가운데서 양립과 평화를 순진하게 주장하는 자는 간교한 마귀에게 속은 배신자일 뿐인 것인가?
아모스 오즈의 정치적 주장은 실현될 수 없는 한 개인의 이상주의,
신의 계획과 뜻을 모르는 몽매한 자의 소리였을 뿐일까..?
오히려 그의 죽음과 남겨진 마지막 소설을 통해,
나는 그가 남긴 이야기와 속 뜻을 더 깊이 새겨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