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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할머니 - 25세 손녀가 그린 89세 할머니의 시간
정숙진.윤여준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12월
평점 :
동양화와 미술사학을 공부한 25세의 손녀가,
89세 할머니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멋진 그림과 글로 엮어냈다
책 내용 자체도 재밌게 읽었지만,
할머니와 가족들의 순간을 그린 손녀의 그림이
예스런 삽화 내지는 빛바랜 흑백 사진 같이 다가와서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할머니 참 사랑스럽고 소녀 같으시네.. 다복하신 분이야 ^ㅡ^"
저자의 외할머니는 89세의 고령으로..
일제 시대, 해방, 6.25, 분단.. 지난 역사의 격변기를 몸소 살아내신 분이시다.
부유한 집의 막내 딸에서 시작하여,
교사, 산토끼(눈이 동그랗고 키가 작아서 할머니의 별명이셨다고 함) 같은 아내,
소중한 4남매를 길러낸 어머니와 주부의 역할과 삶을 충실하게 살아오시면서
이제는 노년의 성숙함과 단순함에서 나오는 여유와 평안함,
매사에 감사하는 영혼의 자세까지 갖고 계시다.
일반적이고 평범한 한 여성의 삶을 사셨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참..이상적일 정도로 행복한 삶을 살아오신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의 어릴 적 일기나
신혼 때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향한 연서, 노년이 되서 쓴 일기도 담겨 있는데..
할머니의 문학적 재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ㅋ
할머니의 이야기를 손녀가 글로 정리한 부분은 쉽게 술술 읽히지만,
할머니의 어릴 적 일기나 젊을 때 남편에게 쓴 편지는..좀 유치하게 다가왔달까..
특히 중간에 짧고 간단한 영어단어 섞는 거..ㅋㅋ
이거 내가 초딩때 하던 행동인데...! 옛 추억이 떠올라, 읽다가 웃음이 나왔다.
그밖에도 전형적인 비유와 옛날 신파극에서 들어 본 듯한 표현과 말투..ㅎㅎ
식민지, 가난, 전쟁 등으로 당시는 교육받은 여성이 많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에도 할머니는 나름 교육받은 신여성, 엘리트 학생의 삶을 사셨는데도..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우스꽝스러우니..;
이광수나 심훈, 윤동주 같은 그 옛날 많은 문학가들이
지금봐도 재밌는 소설이나 감동적인 시를 쓴 것이 얼마나 글을 잘 쓴 것인지..
비교가 되기도 한다ㅋㅋ
"그래도 할머님.. 문학적 재능보다 더 따뜻하고 좋은 가족들과 일생을 행복하게 함께 하셨으니..좋은 것 같아요.^^"
할머니가 의사 아버지를 만나서 유복하고 평탄한 삶을 사신 것은 사실이지만,
큰 오빠와 큰 형부를 6.25로 한꺼번에 잃는 아픔을 겪기도 하셨다.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상황을 살피시려고 밖에 나갔다가 파편에 맞아 돌아가신 큰 형부의 사연도 안타까웠지만 ㅠㅠ
(이때 갑자기 인민군이 쳐들어 오는 바람에 아버지의 병원은 빼앗기고,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발 딛을 틈 없이 거리에 쌓여 있었다고 한다ㅠㅠ)
의사에 사회주의 책도 많이 읽고, 나름 열린 깨어있던 큰 오빠가
친구를 따라 인민군을 치료하는 병원에 가서 공산주의에 진짜 모습을 보고,
절망하여 음독 자살한 사건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상과 현실은 얼마나 다르고,
전쟁과 이념의 대립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인가?
전쟁을 겪어보지 않고 공산주의를 우습게 여기는 일부 젊은이들은
윗 세대들을 보수 꼴통이라 부르며 경멸하지만,
사실 역사는 그 시간을 진짜 살아오신 분들이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당시에 너무 평범하고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사라지고 잊혀지고만 이야기,
진실들이 궁금하고 알고 싶어진다.
영화 '국제시장'을 비난한 많은 좌파 평론가들과 달리
그 시대를 산 할머니는 국제 시장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시고,
오히려 당시보다 시장 모습 묘사가 약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을 볼 때...
지난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이 왜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주장하고
청렴함을 떠나 반공 보수 정치인에 몰표를 주는지
지금의 세대는 열린 자세로 그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 속에 할머니의 아버님이신 '우당 정규원' 의학 박사의 회고록 내용 중 일부가 담겨 있었는데...
흥미로워서..기회가 되면 그 회고록도 읽어봐야겠다.
한 개인의 소중한 삶의 순간과 궤적을 글과 그림으로 함께 담아낸 기획도 좋았고,
그림의 퀄리티도 좋았다.
할머니의 글은 노년의 일기가 더 감동적이었는데..
단순한 일상과 솔직한 표현이 가져오는 힘 때문일 것이다.
손녀 분이 왜 할머니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게 되었을까? 생각해봤는데..
단지 오래 사시고, 역사를 몸소 살아오셨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할머니가 자랑스럽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면 할머니가 정말 사랑스러우시다..
소녀같은 마음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런 순수함, 사랑스러움, 긍정적이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자세가
평탄하고 현재의 다복한 삶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닌지..결론 내리고 싶다.
할머니의 삶과 손녀의 정성이 담긴 예쁜 책-!
덤으로 생생한 역사 뿐 아니라 인생의 좋은 자세까지 배울 수 있으니
성별과 연령을 떠나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