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폴 세잔 
 
 
단조롭고 자신의 과제에 집중하는 삶을 산 세잔.
애써 '삐뚤어진 삶을 살테다' 작정한 사람마냥 은행장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초기의 작품은 살인, 납치같은 우울하고 기괴한 주제를 통해 삶의 본질을 들여다봄으로써 어둡고 섬뜩해 혹독한 비판을 받기 일쑤였다. 그의 인간 관계도 원만하지 않아 친구인 에밀 졸라와도 절교했고, 사실혼 관계였다가 16년만에 법적 아내가 된 오르탕스는 초상화에서조차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도 못했던 세잔은 회화의 본질에 몰두했다. 소설가 로런스는 "40년 동안의 긴 분투 끝에 세잔은 한 알의 사고를 충분히 아는 데 성공했다"라는 말을 했다. 수많은 사과를 그린 세잔은 사과 그 자체만을 직시하고 그에 관련한 실용과 허구성, 고정관념을 모두 걷어냈다. 즉 한 개체의 고유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보이는 그대로 살려낸 것이다. 
 
​
세잔, 자신만의 감각적 세계를 구축한 그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가 되었다. 
 
​
세잔의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는 예술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도 통용된다. 인종, 연령, 성별 등 각각의 카테고리로 묶어 동일시해 개개인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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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일리야 레핀 
 

 
​165.
어떤 예술가도 재능만으로 예술을 할 수는 없다. 한 인간이 가진 재능은 시대적인 요구와 당대에 주어진 예술적인 가능성 속에서 다양하고 굴절되면서 표출된다. 
 

 

일리야 레핀은 알레산드로 3세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피의 정치를 고발하기 위해 1581년 차르 이반 뇌제가 자기 아들을 죽인 사건을 예술로써 소환했다. 그림에서 보여지는 차르 이반 뇌제의 공포와 자책과 후회의 눈빛과 속수무책 체념한 듯 죽어가는 아들의 공허한 눈동자는 안타깝다. 그런데 이 작품 이후 톨스토이를 만나 그의 비폭력 무저항주의와 무소유 정신에 영향을 받은 레핀의 작품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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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ㅣ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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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낀 검은 때, 손등의 흉터,  아직 피딱지가 굳지 않은 손바닥의 상처, 그리고 옆에 있는 젊은 여자의 시신. 지아는 이 깊은 산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176.
무덤을 파야겠어. 그리고 시체를 옮겨야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야겠어. 내가 죽인 게 누군지, 왜 죽였는지. 미친 여자는 누군지, 빨간 수염은 또 뭔지도. 카메라에 찍혀있던 사진 세 장은 또 뭘 의미하는지도.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소재로 한 소설은 어린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눈앞에서 군인에 의해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인격 분열 장애를 겪는 지아가 자아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을 미스터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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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선과 악을 지아와 혜수를 통해 대변하지만 인간의 가장 밑바닥 모습들을 각각의 인물들에 투영하면서 우연과 필연이 연속적으로 엮여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혜수의 등장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는 죄책감에 기인한다. 그 엄청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면 지아는 무의식적으로 혜수를 불러낸다. 결국 두 번째 인격인 혜수가 지아의 정신 세계를 장악하고 지아는 지친 삶을 스스로 끊어내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다가 스스로 두 번째 인격이 되어 혜수의 뒤로 숨어 침잠한다.
​


주요 공간적 배경이 되는 묵진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최하층 인간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한탕으로 삶을 뒤바꾸고자 하거나 죽지 못해 겨우 살거나, 두 부류만이 존재한다. 묵진으로 향한 혜수는 어떤 부류였을까.    
 


관훈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장면은 독자에게 던지는 '죄악'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혜수를 들이지 않았다면, 22년 전에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 그러나 과거에 대한 가정은 의미없다.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어미와 아비의 심정이 다르지 않으나 관훈은 자신의 죄를 모른 척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불쌍하다는 이유로 진희가 자신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도록 그냥 두지 말았어야 했다.


친절을 가장한 두 얼굴의 재필과 규식. 그들 역시 자신의 욕망에 야비하게 충실했고 그 댓가를 치뤘다. 타인의 고통과 약점을 담보로 욕망을 채우는 이들의 간악함은 드러내놓고 악인을 자처하는 혜수보다 더 끔찍하다.


작가는, 소설에서 혜수는 복수심과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인격이자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서 만들어낸 자아라고 말한다. 묵진에서 자리를 잡은 뒤 이어지는 혜수의 행적은 이 말을 그대로 뒷받침한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장면은 혜수의 집 카드키 비밀번호였다.  
 


왼쪽과 오른쪽처럼 서로 가장 많이 닮았지만 서로 닳을 수 없는 존재. 그러나 결국 지아에게 삶을 내준 혜수.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두 인격 모두 애처롭다.


600쪽이 넘는 소설을 하루에 읽었다.  긴장감, 스토리, 강렬한 메세지까지 상반기에 읽은 장르 소설 중 최고라는 칭찬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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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조르주 쇠라 

 
 
생명력은 없지만 순간, 찰라를 예술로 승화시킨 신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린 조르주 쇠라가 지향하는 바는 조화였다. 저자는 과학과 체계에 의존하는 회화가 예술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물음과 비슷한 이유로 쇠라의 그림에 감흥을 받은 기억이 없다. 조금더 솔직해지자면 그림이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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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옥 - 노비가 된 성삼문의 딸
전군표 지음 / 난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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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계유정난을 시작으로 훈구파 세력과 대립하고 개혁정치의 뜻을 품었으나 재위 13년만에 죽은 예종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효옥은 단종 복위 사건으로 처형당한 사육신 성삼문의 딸로서 유일한 생존 혈육이다. 노비로 전락한 후 20년만에 면천된 그녀와 예종의 독살설에 상상력을 입혀 살려냈다.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삶의 목표가 다른 형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충신이 간신이되고 간신이 일시에 충신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이미 지나치도록 알고 있기에 비록 허구지만 효옥의 삶에만 집중했다.  
 



 


계유정난 2년 후, 단종 복위가 세 치 혀 한 마디로 들통나면서 충신들의 목이 다 달아났고 남은 건 그들의 가족이다.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늙은 노모를 비롯한 모든 여자들은 노비가 되었다. 
 


성승 일가의 여인들은 열두 살 어린 효옥만 남겨둔 채 강물에 몸을 던졌다. 효옥은 운성위 박종우의 집으로 보내졌고, 자유의 몸이 된 순심과 바우 모자가 스스로 노비가 되어 효옥을 따라 박종우의 집으로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단단해져가는 바우는 그림자처럼 효옥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효옥은 어느날 찾아온 김시습 덕분에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한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됐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술 한 잔 올릴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스치듯 지나간 인연을 잊지 못하는 수양의 둘째 아들 황은 형이 죽은 후 세자가 된 이후에도 효옥을 챙겼다. 차라리 잊고 살았으면 좋을 인연이련만. 이를 안 정희왕후는 박종우를 불러 은밀히 효옥을 처치할 것을 지시하고, 세자와 왕후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은 제 아비의 심중을 핑계삼아 그의 아들 박선규가 효옥을 겁탈하려고 덫을 놓는다. 이에 바우와 몸싸움이 벌어져 박선규는 제 칼에 제 명을 단축하고 바우와 효옥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리고 새끼줄 꼬아 놓은 듯 끊어지지 않는 세 사람의 운명.
아직 여물지 못했고, 벼리지 못했던 개혁의 칼날은 젊은 그들을 향했다. 
 
 
ㅡ
 
 


역사 소설의 스포일러는 역사적 사실이며, 매력은 '그랬더라면'이라는 상상에 있다. 효옥과 바우가 원호의 말대로 애초에 땅에 스미듯 살았더라면, 혹은 예종이 좀더 치밀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더라면, 혹은 효옥이 그대로 명나라로 떠났더라면... .  

 
사대부 집안의 딸이 아닌 노비로 산 세월이 더 길었던 효옥은 이 소설에서 당시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자주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도망자 신세가 된 후 스스로 이름을 바꾸고, 양반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은세공 장인으로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신의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척하는 모습은 양반과 노비라는 두 신분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신분제의 모순을 직접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아침에 모든 가족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것도 모자라 노비 신세로 전락한 가혹한 운명 앞에서 효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버지가 당부한 대로 살아남는 것 뿐이었다. 아버지의 바람은 복수도 원한도 없이 자신의 딸이 무명으로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여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지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효옥은 사대부 집안에서 벗어나고서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모순이지 않은가.
 


소설의 마지막,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해 애달프고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져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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