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톱에 낀 검은 때, 손등의 흉터,  아직 피딱지가 굳지 않은 손바닥의 상처, 그리고 옆에 있는 젊은 여자의 시신. 지아는 이 깊은 산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176.
무덤을 파야겠어. 그리고 시체를 옮겨야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야겠어. 내가 죽인 게 누군지, 왜 죽였는지. 미친 여자는 누군지, 빨간 수염은 또 뭔지도. 카메라에 찍혀있던 사진 세 장은 또 뭘 의미하는지도.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소재로 한 소설은 어린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눈앞에서 군인에 의해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인격 분열 장애를 겪는 지아가 자아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을 미스터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선과 악을 지아와 혜수를 통해 대변하지만 인간의 가장 밑바닥 모습들을 각각의 인물들에 투영하면서 우연과 필연이 연속적으로 엮여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혜수의 등장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는 죄책감에 기인한다. 그 엄청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면 지아는 무의식적으로 혜수를 불러낸다. 결국 두 번째 인격인 혜수가 지아의 정신 세계를 장악하고 지아는 지친 삶을 스스로 끊어내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다가 스스로 두 번째 인격이 되어 혜수의 뒤로 숨어 침잠한다.


주요 공간적 배경이 되는 묵진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최하층 인간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한탕으로 삶을 뒤바꾸고자 하거나 죽지 못해 겨우 살거나, 두 부류만이 존재한다. 묵진으로 향한 혜수는 어떤 부류였을까.    
 


관훈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장면은 독자에게 던지는 '죄악'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혜수를 들이지 않았다면, 22년 전에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 그러나 과거에 대한 가정은 의미없다.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어미와 아비의 심정이 다르지 않으나 관훈은 자신의 죄를 모른 척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불쌍하다는 이유로 진희가 자신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도록 그냥 두지 말았어야 했다.


친절을 가장한 두 얼굴의 재필과 규식. 그들 역시 자신의 욕망에 야비하게 충실했고 그 댓가를 치뤘다. 타인의 고통과 약점을 담보로 욕망을 채우는 이들의 간악함은 드러내놓고 악인을 자처하는 혜수보다 더 끔찍하다.


작가는, 소설에서 혜수는 복수심과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인격이자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서 만들어낸 자아라고 말한다. 묵진에서 자리를 잡은 뒤 이어지는 혜수의 행적은 이 말을 그대로 뒷받침한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장면은 혜수의 집 카드키 비밀번호였다.  
 


왼쪽과 오른쪽처럼 서로 가장 많이 닮았지만 서로 닳을 수 없는 존재. 그러나 결국 지아에게 삶을 내준 혜수.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두 인격 모두 애처롭다.


600쪽이 넘는 소설을 하루에 읽었다.  긴장감, 스토리, 강렬한 메세지까지 상반기에 읽은 장르 소설 중 최고라는 칭찬을 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