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탄광 마을, 앨버트 가족의 우물에 한 여성이 아기를 버렸다. 이를 목격한 사람은 아홉 살 소녀 테스. 그녀는 언니와 부모에게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며칠 후 아기의 시신이 발견되고, 테스는 이 사건으로 악몽을 꾸고, 엄마 리타는 매번 물을 끓여 사용하는 등 평범한 일상에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먼저 출간된 작가의 <밤의 동물원>을 읽은 터였고, 임팩트 있는 사건의 시작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여겼지만 이 소설은 가족과 이웃, 차별, 공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설의 구성은 꼭지마다 앨버트, 리타, 버지, 테스, 잭이 화자가 되어 현재와 과거를 회상하며 풀어나간다. 
 


1.
공간적 배경인 탄광 마을은 탄광 뿐만 아니라 목화 농사도 짓는다. 시대 배경은 1930년대로써 흑인 차별이 극심하다. 검은 탄을 캐고 갱도 밖으로 나와 새까만 얼굴만 보면 누가 흑인이고, 백인인지 알아 볼 수 없다. 그리고 하는 일 또한 다르지 않으며 갱도 안에서는 똑같이 목숨을 걸고  일한다. 귀천을 따질 상황이 아닌거다. 하지만 그들은 피부색에 따라 보수가 다를 뿐만 아니라 백인들은 흑인들을 향한 근거없는 우월의식에 빠져 있다.  
 
그곳에 나름대로 공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앨버트가 있다. 흑인 노동자에게 친절했고, 그들의 노동을  존중했으며, 선입견과 차별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읽다보면 앨버트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한계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난한 백인들과 백인 기득권 층에 대한 차별과 무시에 대해서는 인지하지만, 왜 인종차별이 존재하는지, 업무 능력이 뛰어난 그들이 왜 보수를 적게 받아야 하는지, 어떠한 근거로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지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는 다수의 사람들이 갖는 한계를 앨버트를 통해서 꼬집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또한 이는 테스의 남매가 목화밭에서 처음으로 일을 하는 장면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목화밭에서 아빠의 제안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삼남매. 테스의 가정도 가난하다. 하지만 땅이 있어 농사를 짓는 덕분에 경기가 어려워도 밥을 굶지는 않는다. 짧은 시간 동안 일을 하다가 지쳐버린 삼남매의 앞에 함께 목화 솜을 따던 흑인 꼬마들이 나타난다. 남매에게는 잠시 지나가는 목화 따기가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점심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일상이다. 삼남매는 점심을 먹는 동안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게끔 흑인 아이들이 자리를 떠나주면 좋겠다. 하지만 점심 식사를 끝낸 후 뭔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한다. 만약 점심을 먹는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백인이었다면 삼남매의 반응은 어땠을까? 
 
120.
하지만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사람들, 탄광 소유의 건물이나 빌린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런 대비책이 없었다.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그들에겐 당장 먹을 것이 없어졌다. 다른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실직한 남자들과 그 가족들이 기댈 곳은 없었다. 어쩌다가 교회에서 지원품을 주거나 친척들이 음식을 제공해주는 일이 있었지만 일시적이었다. 하루가 몇 주가 되고, 그 몇 주가 몇 달이 될 때까지 무작정 굶주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배고픔이 어떤 건지 잘 알지 못했다. 말 그대로 배가 고픈 느낌 말이다. 농사를 지을 땅이 있어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아이들인 우리가 배를 곯았던 적은 없다. 엄마와 아빠가 땀 흘려 키워낸 땅속의 채소를 깨끗하게 씻고 절이고 요리해 내주면 우리는 무엇이든 먹으면 되었다. 비록 고기는 없었지만 엄마의 요리 솜씨 덕분에 그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1. 
사건을 목격한 테스가 악몽에 시달리자 버지는 동생을 위해 범인을 직접 색출하고자 한다. 범인을 잡는다면 테스가 악몽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믿으면서. 범인은 마을 사람 중 하나일 것이라고 확신한 자매는 갓난아기가 있는 집을 일일이 방문해 그들 중 갑자기 아기가 사라진 집 주인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이웃들과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갓난아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방문한 롤라 아줌마의 집. 알고보니 롤라는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이고, 롤라의 딸은 테스의 (친하지 않은)학교 친구다. 두 남편이 먼저 죽고, 지금의 남편도 멀리 떠나 있는 가난한 롤라 아즘마는 열세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과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테스와 버지는 가난때문에 자식을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한다. 이렇듯 선입견으로 사람을 단정하고 그것이 사실인 양 매도하는 경우가 현재도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185.
그녀의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있었고,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최선을 아했지만 롤라는 늘 팔다리 곳곳이 퉁퉁 부은 채 학교에 왔다. 그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과연 다른 곳은 멀쩡한지 알 수 없었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여자아이들이 수없이 많았기에 딱히 새로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

부모로서 앨버트는 아이들에게 다른 삶을 보여주고 싶다. 목숨을 건 갱도에서의 삶이 아닌, 뙤약볕에서 목화 솜을 따야하는 고된 삶이 아닌,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바스러지도록 일을 하면서 잭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당시에 온전한 몸으로 되돌아오도록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고, 버지와 잭을 대학에 보낸다. 앨버트를 보면서 세상의 모든 부모는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요즘에는 그것이 너무 과해서 본인과 자식의 인생이 하나라고 여기는 부모들이 많은 것도 우려스럽다. 
 
 
결론.
부검 결과 우물에 던져진 아기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버려졌다. 아이들은 범인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녀에게 누구도 비난이 담긴 손가락질을 할 수 없었다. 죽은 아이를 가장 깊고 슬프게 애도한 사람은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차라리 미쳐버리면 좋을만큼 그 슬픔은 영원할테니까.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이 없는 현실이다. 다만 방식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놓치고 살면 안되는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회사의 높으신 분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가정부와 정원사를 부리는 저택에서 원할 때면 언제든 크림을 넣은 커피와 구운 닭고기를 즐길 수 있는 그분들은 자기 주머니에서 잔돈만 조금 털면 불구가 된 직원에게 일년치 급여를 줄 수 있었지만 절대 그러지 않았다. 돈이 혈관 소겡 퍼진 병균 같은 것이라 해도 그들은 아마 더 많은 돈을 원할 테다. 누군가 열악한 탄광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어도, 그래서 장례식이 끝나면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굶어죽을 상황에 놓여도 그들은 관에다 한두 푼 던져주는 게 다였다. 그야말로 심장이 꽉 막혀 감정이란 게 없는 사람들 같았다. 자기 아이를 죽일 수 있었던 우물의 여자처럼. - P75

나는 늘 실제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점박이든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법이나 다른 규율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았다. 법이나 규율은 울타리를 치고 선을 규정하는데, 왜 그런 선 긋기가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선 안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 선 안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셈이었다. (...) 내가 스스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흑인과 선을 그어놓고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니며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 선들이 스카츠보로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소년들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 P221

우리는 각자 빵을 한 덩이씩만 가졌지만 그걸 반으로 잘라 나눠먹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애들이 밥도 먹지 못하고 일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내가 이 빵을 먹으면서 죄책감까지 맛보지 않도록 사라줘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애들이 눈앞에서 없어지자 죄책감도 금방 사라졌다. "반가웠어"라는 말도 없이 그애들은 일하던 목화밭으로 돌아갔다. 그런뒤 우리 중 누구도 그애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한입까지 먹어치우고 손가락에 묻은 부스러기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함께 묻어 있던 약간의 피와 먼지, 그리고 목화솜까지. 나는 축축한 손가락으로 치마에 붙어 있는 부스러기까지 전부 찍어 먹었고 언니는 치마를 풀밭에 털어버렀다. 그렇게 다 먹어치우고 나자 마치 속쓰림처럼 죄책감이 다시 밀려왔다. - P217

"그런 일을 한 여자라면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겁니다, 감독관님. 못된 여자가 아니고요. 죽은 자식을 데려가 착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우물에 던져버린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 사건이 말해주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감도관님 말씀대로 그 여자가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
(조나) - P170

"사람은 뺏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기 위해 살아가는 거야."
(앨버트) - P161

"최악의 상황은 모르겠다만 아기가 혼자 남겨지는 것, 아무도 없이 완전히 혼자 남겨지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겠지.(...)"
(마셜 선생) - P190

잭은 나보다 더 일찍 그 사살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정답이 동시에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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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의 월든
서머 레인 오크스 지음, 김윤경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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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실내 가드닝이 인기다. 봄에만 극성이던 황사는 옛말이고 계절과 상관없이 (초)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는 어느새 일상용품이 되었다. 이와같은 환경적인 요인과 더불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에 녹색 환경이 안정을 준다는 과학적 사실까지 보태져 많은 이들이 실내 정원을 가꾸고 있다. 그만큼 자연, 즉 흙과 식물의 필요성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도시가, 그리고 도시인들에게 식물이 필요한 이유와 실제로 식물을 가까이 한 후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달라진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들고 있다. 또한 자연 파괴와 그로 인한 복구가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를 성토하며 호소한다.

 

107.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는 데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연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쏟아붓고 많은 자원을 투입했지만, 우리는 대자연의 생태계를 조금도 복원할 수 없었다. 생태계는 겨우 예닐곱 세대가 아닌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기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공감하는 몇 군데가 있었는데, 먼저 '생명 공포증'을 앓는 아이들의 사례가 보고 되었다는 부분이다. 자연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 야외에 나갔을 때 거리낌이 들고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손에 흙이 닿는 것조차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등산 혹은 숲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흙이 더럽다고 바닥에 앉지 못하는 사람, 지렁이나 곤충을 보면 징그럽다고(혹은 무섭다고) 기겁을 하는 아이들을 꽤 많이 보았다. 하지만 평소에 도시 밖으로 나오는 경험이 거의 없으니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설사 나온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시설이 갖춰진 호텔에 투숙하고 정비가 된 관광지만 일주하니 흙을 제대로 딛을 기회도 많지 않다).

다음으로는 식물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얼마나 따끔따끔 찔리던지..... .

도시의 거주자들이 식물을 들일 때 자주하는 질문이,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은 어떤 건가요?"란다(그게 나다). 하지만 식물을 잘 키우려면 다른 질문을 해야한다고 한다. 내가 어떤 식물과 살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식물이 우리 집에 살고 싶은지 물어야한다고. 이 부분을 처음 읽을 때에는 "어째서?"라고 생각했는데, 곰곰 따져보니 그 말이 맞다. 식물마다 적절한 환경이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주거 환경을 식물에 맞춰 바꿀수 없으니 환경에 적응이 가능한 식물을 데려오는 게 현명하다는.

 

180.

먼저 식물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난 뒤, 그 대답이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는지, 내가 식물의 행복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인지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제목, '식물에게 사랑받는 법'.

 내가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이 아닌 식물에게 사랑을 받는다니, 참 기분좋은 말이다.

 

190.

식물에게 사랑받으려면 대자연이 하는 일을 대신 해줘야한다. 반려식물은 대부분 화분에 있기 때문에 숲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엽, 균류와의 공생, 또는 미생물과 기타 유익한 토양과 다양한 결합이 가져오는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최적의 햇빛을 찾는 것부터 젓가락으로 흙 속에 공기가 통하게 하는 것까지 식물이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챙겨줘야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가 짧게나마 일본 정원에 대한 예찬이 나온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우리나라 담양의 소쇄원을 다녀갔으면하는 바램이 있다. 그녀가 소쇄원을 둘러본 후 소회가 어떨지 궁금하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식물을 키우는데 있어서 금손인데, 나는 ㄸ손을 넘어 저주받은 손이라는 말을 들을만큼 식물을 제대로 키워낸 적이 없다. 오래 전, 아빠가 오죽했으면 나한테 돈은 맡겨도 식물은 못 맡긴다고. 엄마도 "네가 얘들한테 관심을 안가져서 그래"라고 훈계를 하셨는데, 이 책에도 보면 관찰이 중요하다고 나온다. 그래서 올해에는 맘먹고 식물 몇 가지를 키워보려고 한다. 마침 책에 나온 몇 가지 팁을 이용해보기로.

아래는 제시한 조건 중에 나에게 맞는 것들 중에 몇 가지.

 

창턱 햇빛이 강하다 / 방임주의 : 에케베리아

창턱 햇빛이 강하다 / 신경을 쓰는 편 : 다육식물

창가가 밝지만 상대적으로 햇빛이 안든다 / 커다란 식물을 수용할 공간이 있다 : 몬스테라

창가가 밝지만 상대적으로 햇빛이 안든다 / 중간 식물을 수용할 공간이 있다 : 스파티필룸

간접광선이 들어온다 / 방임한다 : 엽란

가능한 주의를 기울여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보련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은 이미 화원으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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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 스탠딩에그 커피에세이
에그 2호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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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에그에서 노래하는 에그2호가 쓴 커피 에세이.

음악을 하고, 글을 쓰고, 커피를 사랑하는 남자가 참 담백하고 정감있게도 썼다. 툭툭 던지는 물음에 책에다 대답을 하고 있는 나. 그가 가봤다는 카페는 한번쯤은 들러봐야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카뮈의 철학 에세이를 읽다가 머릿속을 환기시키기 위해 커피 한 잔 하는 마음으로 펼쳐 든 책.  

 

커피를 언제 처음 마셔봤냐고? 글쎄...... 기억이 없다.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인 것은 확실하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는 착한(?) 청소년이었으니까(고딩 시절에 나에게 있어 커피는 술과 동격이었다). 커피를 처음 마신 때는 기억이 없지만 커피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계기는 기억이 난다.

사실 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커피 뿐만 아니라 차tea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다(지금도 남들 다 좋다는 허브차 혹은 달달한 레몬청같은 음료는 그닥...). 그러다 7년여전쯤 우연찮게 주변에서 커피 강의가 있었는데, 나야 당연히 관심이 없었지만 가까운 후배가 함께 들어보자고(혼자는 못 간다고) 떼를 쓰다시피 해서 함께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커피 공부가 재밌고, 신기하고, 쓰기만 했던 커피의 다양한 맛을 조금씩 구별해 낼 줄 알게 되고, 로스팅이 뭔지 커핑이 뭔지 하나둘 호기심이 채워져 강의 이후 자격증까지 손에 쥔 걸 보면 우연이 우연으로 끝나지 않은게 다행인 듯 하다. 

 

나의 인생 커피? 

이것도 글쎄......다. 사실 커피를 배우는 게 즐겁기는 했지만, 작가처럼 곳곳을 다니며 다양하게 커피를 맛 본 경험은 많지 않아서...... 굳이 따지자면 '과테말라 안티구아'. 단맛과 신맛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맛이 도드라지지 않는 커피를 좋아한다. 주변에서는 과일향이 나는 원두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집에 누군가 올 때는 블렌딩 한 커피를 주로 내놓게 된다.

애정하는 카페? 

음...... 카페를 잘 안 간다(카페를 운영하는 작가가 들으면 반갑지 않은 말일테지만). 동네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카페에 선택의 폭이 넓어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책 한 권 들고 가 커피 한 잔과 독서에 집중할 만한 카페가, 집과 가까운 곳에는 애석하게도 없다. 대체로 오전 시간에 카페를 독식하는 분들은 삼삼오오 함께 오는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이 소리가 클 수 밖에 없다. 작가가 (운영하는 카페를 포함해) 다녀본 카페같은 장소가 없기도 하거니와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는 커피가 내 입에 제일 잘 맞기도 하다. 그래도 집 근처에 애정하는 카페가 한 곳은 있으면 좋겠다.

(친구는 직접 창업해 보라는데 돈도 없고, 사업은 새가슴이라 못한다, 지금하는 일에 만족하는 걸로.)

 

나에게 있어서 커피를 내리는 시간의 의미? 

뭐 신성하다거나 참선하는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커피를 드립하는 시간은 머릿속을 잠시나마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런저런 일로 생각이 뒤죽박죽일 때(이럴 때는 음악도 올리면 안된다)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그 따뜻함과 커피향이 생각을 좀 가라앉혀준다. 차를 즐기는 사람이 찻물을 우릴 때와 비슷하겠다. 이런 잠깐의 시간이 사람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할 때가 많다.

 

나는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가? 

사실 많은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니 더 그렇다. 작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플랫화이트는 언젠가는 꼭 마셔보련다.

플랫화이트flat white : 에스프레 샷 두 잔에 따뜻한 우유를 넣고 그 위에 아주 약간의 우유 거품을 올린 커피 메뉴.

(에스프레소 샷이 한 잔이면 피콜로라테picolo latte) 

 

책을 읽고는 만들어보고 싶은 커피가 생겼다. '얼음 커피 우유' (p110)

연남동 모 카페의 메뉴라는데, 얼린 커피에 달콤한 무언가를 섞은 우유를 부어 내놓는 음료. 관건은 우유에 섞는 달콤한 그 '무언가'가 관건일 듯한데, 그게 뭔지 궁금하다는. 시럽과는 차원이 다른 달달함이라는데 뭘까......?

 

로마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커피의 끝에 도달해 봤다는 작가. 한국에서 먹는 에스프레소와는 많이 다를까? 이것도 궁금하다는. 

 

언제부터인가 마시던 커피만 마시고, 내리던 커피만 내리고, 사던 원두만 샀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용기를내서(용기까지...) 모험심을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채로운 것이 늘 좋은 건 아니지만, 때로는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볼 필요도 있으니까.

 

 

'사람과의 관계도

그가 말한 아메리카노처럼 '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것일 텐데

나는 왜 그리 성급하게 그를 놓아버렸을까?'

 

(p142)

 

 

 

 

이 겨울, 책 제목처럼 마주한 사람과 커피 향을 맡으며 섞이고 녹아들 시간을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기다려 주자.

 

 

 

 

사람과의 관계도 그가 말한 아메리카노처럼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것일 텐데 나는 왜 그리 성급하게 그를 놓아버렸을까?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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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
요하네스 부체 지음, 이기흥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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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대해 맞이해야 한다. / 발터 벤야민 
 
인류가 생긴 이래 자유와 평화는 수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영혼의 평화'에 대해서 말해보자고 한다. 언뜻 듣기에는 고루한 표현이다. 요즘 누가 영혼 운운해 가면서 평화 타령을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다시 질문을 해 보자. '영혼의 평화'란 무엇일까? 저자가 던져 놓은 질문처럼 일종의 휴식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위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완벽한 상태를 일컫는 것일까. 
 
현대의 철학자와 사회학자 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온전한 자유와 평화는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뚜렷한 목적 없이 더 많이 소유해야 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타인과의 비교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평화롭지 않다. 반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시작이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개인이 이룰 수 있는 목표는 한계가 있고, 무엇을 해도 돈이 드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자유롭지도, 평화롭지도 않은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읽는다면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7.
어떤 이들은 '독촉당하고, 닦달당하는 느낌'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현전하는 느낌' 혹은 존재감과 성취감을 좋아할 수도 있다. 가령 '중요한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휴식과 거리가 멀다.  

 
얼마 전 초등생이 "사는 게 힘들어요."라는 말을 했다.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많은 초등생들이 중학생과 다를바 없이 일주일 내내 학원 순례를 한다. 한번 사교육 시장에 진입한 아이들은 그때부터 쫓기는 인생을 시작한다. 남들보다 선행해야 하고, 대학은 현역으로 in 서울 해야하고, 졸업에 맞춰 취업은 말할 것도 없고, 취업을 하면 승진에서 누락될 수 없으니까 아침 저녁으로 학원이나 인강을 들으며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퇴직할 때 까지 시험이고 경쟁이다. 쓰다보니 도대체 이런 인생을 왜 살아야하나 싶지만, 그러한 경쟁 안에서 이룬 성취감 또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67.
우리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떠밀려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절감하는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채워주기에 바쁘고, 아첨을 해서라도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안달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스스로 결단하여 행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에 성찰 없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이러한 열정은 우리를 자주 배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작 '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만도 한데, 이것 역시도 경쟁적으로 이뤄진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휴식이 무엇인지 보다는 요즘 가장 핫한 휴가지는 어디며, SNS에 올리기에 좋은 뷰가 보이는 곳은 어디인지, 방송에서 다뤄진 음식점은 어디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곳에 다녀왔다는 인증샷을 개인 SNS에 업로드하고 구독자 수를 늘리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놀이이자 휴식이다. 결국 현대인은 끝없이 경쟁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에서 행복하다고 느낀다. 과연 행복하다고 느낀 행복감은 행복일까? 
 
 
이에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정신의학에 대해서 언급한다. 
 
97.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 수치로 계산할 수 있게 하여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라. 이는 의심스럽고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 영혼의 불안을 야기하는 근원 중 하나이다. (...) 현실의 삶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늘 "임시방편적인 태도로" 대응하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도망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받아들여 공존하기,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되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비극적인 것을 합리화하는 태도는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로 이것이 성숙한 삶의 태도라 할 수 있다.  
 
106.
"당신은 내일의 주인이 아니면서 지금 누려야 할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삶은 내일로 미끄러지고 우리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 간다."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병적인 동경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고유한 가치와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성공이나 실패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117.
정말 중요하고 커다란 선을 위해서 분수를 지키라고 충고한 에피쿠로스는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삶을 지향했다. 불안정의 원천이 되는 질투를 잠재우면 적지 않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122.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미래만 바라보면서 이 순간 오로지 죽기 살기로 일만 하는 사람은, 우리 시대에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숨 가쁜 분주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점을 게르트 아헨바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시간을 가진 셈이지만, 현재의 짧은 순간이나 "아직 오재 않은" 미래에 시간을 한정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시간의 많은 부분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 즉 잉여인간이 될까봐 불안하다. 존재감 없는 삶, 이것이 사람을 노심초사하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 몰아가게 만든다. 이에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말을 빌어 친구(우정)의 의미와 유용성에 대해서 말한다. 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호신뢰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0-161.
우정의 성공 비결은 친구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고 마구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 완벽한 우정조차, 우리가 우정을 이유로 모든 의문에 답하려 하거나 동경해 마지 얺던 것을 반드시 얻으려 들 경우에는 깨질 위험이 있다. 

 

 
나 하나 스스로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우리는 정작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67.
나는 자신을 한편으로는 타자로 봐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내가 특정한 자아이기는 해도, 유일무이한 자아는 아님을 인정할 때만, "나"는 하나 이상의 '나'임을 실토하고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위의 글에 무척 공감이 갔다. 내가 나를 객관화해서 직시하고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야만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않을 수 있고, 종종 내 몸과 영혼을 놓아주어 쉴 수 있는 시간이 죄스럽지 않을 것이다.  

 

 

"나이 어린 소년도 철학하기를 꺼려서는 안 되고, 나이 많은 노인도 철학하기를 피곤해해서는 안 된다. 영혼의 건강을 얻는 데 너무 이른 나이도 없고, 너무 늦은 나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철학을 할 때가 아니라느니, 때가 이미 지났느니 하는 식으로 둘러대는 이가 있다면, 그는 행복을 느낄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 에피쿠로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더 깊은 경멸을 담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세네카). 지옥은, 장-폴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타인아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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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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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첫문장

 

암 말기 선고를 받고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빅 엔젤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가족을 불러들여 아무도 잊지 못할 자신의 완벽한 마지막 생일 파티를 하고자 마음 먹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의 생일 전날에 100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게 되다니! 

 

13.

'어머니, 아직 돌아가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요. 아시잖아요. 이미 너무 힘들다고요.' 

 

빅 엔젤이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과 그의 생일 파티를 위해 전역에 있는 사돈의 팔촌까지 가족이 하나둘 모여든다.  

 

빅 엔젤의 어머니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과 빅 엔젤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위해 오해와 미움으로 분열되었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솔직한 마음을 서로에게 털어놓고 진실을 얘기하며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따뜻한 소설이다. 

 

데 라 크루스 집안은 멕시코 이민자다. 돈 안토니오는 당시 다수의 가장이 그랬듯 가부장적이고 훈육을 매질로 했지만 든든한 울타리였고 빅 엔젤에게는 영웅같은 존재였다. 어느날 느닷없이 이모부에게 보내져 배를 타게 된 빅 엔젤. 이모부의 학대와 폭력을 더이상 참아낼 수 없없던 그가 생각없이 흔들어 대던 갈고리에 이모부가 맞아 배에서 떨어져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그에 대한 죄책감은 엔젤을 평생토록 짖누른다. 지치고 무서웠던 그 시절을 버틴 빅 엔젤의 한 마디,  

 

244.

"나는 가치 있는 놈이야. 난 가치 있는 놈이야."  

  

 

집으로 돌아온 빅 엔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 돈 안토니오는 경찰 업무를 핑계로 외도를 했던 '미국인' 여성에게로 떠났다. 장남이지만 아직은 어린 빅 엔젤은 졸지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고, 아버지 없는 성탄절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처럼 영웅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를 뺏어간 그 미국인 여자와 그 여자와 아버지의 아들인 리틀 엔젤이, 빅은 죽도록 싫었다. 

 

맏형이 무서웠지만 가까워지고 싶었다. 엄마가 아버지를 쫓아내고 엄마와 둘이 남아 궁핍했던 어느 성탄절, 찾아갈테니 걱정 말라던 형의 전화에 리틀 엔젤은 기뻤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형은 오지 않았다. 그 수모와 절망감. 어쩌면 그 분노가 리틀 엔젤을 살 수 있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삶은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백인 혼혈이라는 손가락질이 왜 내 몫이어야 하는가.   

 열여섯 살에 아버지의 경찰서에서 처음 만난 페를라. 빅 엔젤은 한눈에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두 아들ㅡ인디오, 브라울리오ㅡ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페를라는 빅에게 다가가는 것을 머뭇거리지만 결국 둘은 결혼한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안토니오에게 배우지 못했던 빅 엔젤은 두 아이, 특히 인디오와 관계가 어긋나고 깊은 골이 생긴다. 돌아올 수 없는 브라울리오.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꼭 보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인 인디오. 빅 엔젤은 인디오에게 용서를 받고 싶다.  

 

489.

"네가 보고 싶었다. 넌 내가 보고 싶었니? 널 다시는 못 보게 될까 봐 무서웠다, 아들아."

  

 

소설은 만 이틀 동안 벌어진 일들을 쓰고 있다. 한때는 대가족을 호령했던 빅 엔젤은 일흔 살에 말기암을 진단 받고,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지도, 혼자 용변을 볼 수도, 씻을 수도, 휠체어 없이는 걷지도 못한다. 사랑하는 페를라와 외동딸 미나만이 자신의 곁을 지킬 뿐이다.  

장례식과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병약하고 노쇠한 빅 엔젤을 보고 우울해 하지 않는다. 잠시 놀랄 뿐, 그들은 늘 그랬다는 듯이 욕설을 내뱉고 그들의 시간을 보내면서 지나온 세월을 더듬는다. 남몰래 형부를 짝사랑했던 루피타, 본의 아니게 조카들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꼴이 된 짐보, 화려하지만 방황하는 라 글라리오사, 의붓 아버지와 용서를 주고받고 싶은 인디오, 남자보다 더 집안을 잘 이끌어가는 미나,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오해와 미움으로 거리를 뒀던 빅 엔젤과 리틀 엔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며 깊은 회한을 흘려 보낸다. 

빅 엔젤은 모두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특별한 놈이 아니야.

그냥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빠였지.

일하는 남자였고,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데."

그는 말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p101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을 앞에 둔 그에게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빅 엔젤은 그저 그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때론 비겁했고, 위악을 부렸고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피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삶이 좋았다. 

 

507.

" 좋은 인생이었어."  

깊은 밤, 죽지 말라는 리틀 엔젤의 귀찮은  전화가 그를, 행복하게 한다.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죽음이라. 참으로 우습고도 현실적인 농담이지. 노인들이라면 어린 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하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모든 수고와 욕망과 꿈과 고통과 일과 바람과 기다림과 슬픔이 순식간에 드러낸 실체란 바로 해질녁을 향해 점점 빨라지는 카운트 다운이었다. - P149

"내가 왜 걔들을 두고 가야 해?"
"믿으라고."
"이 거지 같은 데이브 놈아. 넌 망설여본 적도 없어?"
"왜 없겠어. 당연히 있지. (...) 그게 바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거야, 친구. 아무도 피해갈 수 없지. 자네가 의문을 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도 의미 없겠지만. 그게 바로 만사를 현실적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거라고.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서 요정처럼 날갯짓을 하게 시킬 수도 있었고. 우주 유람선에다 럼 펀치와 만나를 실어 보내실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랬다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
- P365

"미겔 엔젤. 죽는 건 어렵지 않아. 다들 죽는다고. 심지어 파리도 죽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죽어가고 있어.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고.(...) 자네의 인생 여정이 나와 조금 다른 것 뿐이야. 죽음이란 시카고행 열차를 잡아타는 것과 같아. 노선은 백만 개나 되고, 기차는 모두 밤에 운행하지. 어떤 기차는 완행이고, 어떤 기차는 급행이야. 하지만 모두 낡고 커다란 기차 보관소에 있어.(...)" - P366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 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 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 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 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 P466

비로소 자신이 왜 아직 죽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불꽃이 휘몰아쳐다. 자신의 각성을 즐기기 위해 살아 있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아직 살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단합시키기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알게 되었다. 이 빛의 회오리가 참 예쁘구나. 바로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아 있었던 거다. 그의 막내 아들. 빅 엔젤은 세상에서 가장 영웅적인 행동을 한 참이었다. 그는 이제 분노가 아니라 기쁨에 차서 씩 웃었다. 세상 모든 책에 쓰인 세상 모든 형사들의 활약을 능가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리틀 엔젤에게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말이다. - P487

매일 오는 그 1분은 모든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황금 거품을 창조하는 것과 같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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