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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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탄광 마을, 앨버트 가족의 우물에 한 여성이 아기를 버렸다. 이를 목격한 사람은 아홉 살 소녀 테스. 그녀는 언니와 부모에게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며칠 후 아기의 시신이 발견되고, 테스는 이 사건으로 악몽을 꾸고, 엄마 리타는 매번 물을 끓여 사용하는 등 평범한 일상에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먼저 출간된 작가의 <밤의 동물원>을 읽은 터였고, 임팩트 있는 사건의 시작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여겼지만 이 소설은 가족과 이웃, 차별, 공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설의 구성은 꼭지마다 앨버트, 리타, 버지, 테스, 잭이 화자가 되어 현재와 과거를 회상하며 풀어나간다. 
 


1.
공간적 배경인 탄광 마을은 탄광 뿐만 아니라 목화 농사도 짓는다. 시대 배경은 1930년대로써 흑인 차별이 극심하다. 검은 탄을 캐고 갱도 밖으로 나와 새까만 얼굴만 보면 누가 흑인이고, 백인인지 알아 볼 수 없다. 그리고 하는 일 또한 다르지 않으며 갱도 안에서는 똑같이 목숨을 걸고  일한다. 귀천을 따질 상황이 아닌거다. 하지만 그들은 피부색에 따라 보수가 다를 뿐만 아니라 백인들은 흑인들을 향한 근거없는 우월의식에 빠져 있다.  
 
그곳에 나름대로 공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앨버트가 있다. 흑인 노동자에게 친절했고, 그들의 노동을  존중했으며, 선입견과 차별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읽다보면 앨버트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한계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난한 백인들과 백인 기득권 층에 대한 차별과 무시에 대해서는 인지하지만, 왜 인종차별이 존재하는지, 업무 능력이 뛰어난 그들이 왜 보수를 적게 받아야 하는지, 어떠한 근거로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지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는 다수의 사람들이 갖는 한계를 앨버트를 통해서 꼬집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또한 이는 테스의 남매가 목화밭에서 처음으로 일을 하는 장면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목화밭에서 아빠의 제안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삼남매. 테스의 가정도 가난하다. 하지만 땅이 있어 농사를 짓는 덕분에 경기가 어려워도 밥을 굶지는 않는다. 짧은 시간 동안 일을 하다가 지쳐버린 삼남매의 앞에 함께 목화 솜을 따던 흑인 꼬마들이 나타난다. 남매에게는 잠시 지나가는 목화 따기가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점심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일상이다. 삼남매는 점심을 먹는 동안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게끔 흑인 아이들이 자리를 떠나주면 좋겠다. 하지만 점심 식사를 끝낸 후 뭔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한다. 만약 점심을 먹는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백인이었다면 삼남매의 반응은 어땠을까? 
 
120.
하지만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사람들, 탄광 소유의 건물이나 빌린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런 대비책이 없었다.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그들에겐 당장 먹을 것이 없어졌다. 다른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실직한 남자들과 그 가족들이 기댈 곳은 없었다. 어쩌다가 교회에서 지원품을 주거나 친척들이 음식을 제공해주는 일이 있었지만 일시적이었다. 하루가 몇 주가 되고, 그 몇 주가 몇 달이 될 때까지 무작정 굶주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배고픔이 어떤 건지 잘 알지 못했다. 말 그대로 배가 고픈 느낌 말이다. 농사를 지을 땅이 있어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아이들인 우리가 배를 곯았던 적은 없다. 엄마와 아빠가 땀 흘려 키워낸 땅속의 채소를 깨끗하게 씻고 절이고 요리해 내주면 우리는 무엇이든 먹으면 되었다. 비록 고기는 없었지만 엄마의 요리 솜씨 덕분에 그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1. 
사건을 목격한 테스가 악몽에 시달리자 버지는 동생을 위해 범인을 직접 색출하고자 한다. 범인을 잡는다면 테스가 악몽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믿으면서. 범인은 마을 사람 중 하나일 것이라고 확신한 자매는 갓난아기가 있는 집을 일일이 방문해 그들 중 갑자기 아기가 사라진 집 주인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이웃들과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갓난아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방문한 롤라 아줌마의 집. 알고보니 롤라는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이고, 롤라의 딸은 테스의 (친하지 않은)학교 친구다. 두 남편이 먼저 죽고, 지금의 남편도 멀리 떠나 있는 가난한 롤라 아즘마는 열세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과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테스와 버지는 가난때문에 자식을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한다. 이렇듯 선입견으로 사람을 단정하고 그것이 사실인 양 매도하는 경우가 현재도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185.
그녀의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있었고,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최선을 아했지만 롤라는 늘 팔다리 곳곳이 퉁퉁 부은 채 학교에 왔다. 그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과연 다른 곳은 멀쩡한지 알 수 없었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여자아이들이 수없이 많았기에 딱히 새로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

부모로서 앨버트는 아이들에게 다른 삶을 보여주고 싶다. 목숨을 건 갱도에서의 삶이 아닌, 뙤약볕에서 목화 솜을 따야하는 고된 삶이 아닌,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바스러지도록 일을 하면서 잭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당시에 온전한 몸으로 되돌아오도록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고, 버지와 잭을 대학에 보낸다. 앨버트를 보면서 세상의 모든 부모는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요즘에는 그것이 너무 과해서 본인과 자식의 인생이 하나라고 여기는 부모들이 많은 것도 우려스럽다. 
 
 
결론.
부검 결과 우물에 던져진 아기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버려졌다. 아이들은 범인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녀에게 누구도 비난이 담긴 손가락질을 할 수 없었다. 죽은 아이를 가장 깊고 슬프게 애도한 사람은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차라리 미쳐버리면 좋을만큼 그 슬픔은 영원할테니까.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이 없는 현실이다. 다만 방식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놓치고 살면 안되는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회사의 높으신 분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가정부와 정원사를 부리는 저택에서 원할 때면 언제든 크림을 넣은 커피와 구운 닭고기를 즐길 수 있는 그분들은 자기 주머니에서 잔돈만 조금 털면 불구가 된 직원에게 일년치 급여를 줄 수 있었지만 절대 그러지 않았다. 돈이 혈관 소겡 퍼진 병균 같은 것이라 해도 그들은 아마 더 많은 돈을 원할 테다. 누군가 열악한 탄광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어도, 그래서 장례식이 끝나면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굶어죽을 상황에 놓여도 그들은 관에다 한두 푼 던져주는 게 다였다. 그야말로 심장이 꽉 막혀 감정이란 게 없는 사람들 같았다. 자기 아이를 죽일 수 있었던 우물의 여자처럼. - P75

나는 늘 실제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점박이든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법이나 다른 규율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았다. 법이나 규율은 울타리를 치고 선을 규정하는데, 왜 그런 선 긋기가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선 안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 선 안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셈이었다. (...) 내가 스스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흑인과 선을 그어놓고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니며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 선들이 스카츠보로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소년들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 P221

우리는 각자 빵을 한 덩이씩만 가졌지만 그걸 반으로 잘라 나눠먹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애들이 밥도 먹지 못하고 일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내가 이 빵을 먹으면서 죄책감까지 맛보지 않도록 사라줘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애들이 눈앞에서 없어지자 죄책감도 금방 사라졌다. "반가웠어"라는 말도 없이 그애들은 일하던 목화밭으로 돌아갔다. 그런뒤 우리 중 누구도 그애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한입까지 먹어치우고 손가락에 묻은 부스러기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함께 묻어 있던 약간의 피와 먼지, 그리고 목화솜까지. 나는 축축한 손가락으로 치마에 붙어 있는 부스러기까지 전부 찍어 먹었고 언니는 치마를 풀밭에 털어버렀다. 그렇게 다 먹어치우고 나자 마치 속쓰림처럼 죄책감이 다시 밀려왔다. - P217

"그런 일을 한 여자라면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겁니다, 감독관님. 못된 여자가 아니고요. 죽은 자식을 데려가 착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우물에 던져버린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 사건이 말해주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감도관님 말씀대로 그 여자가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
(조나) - P170

"사람은 뺏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기 위해 살아가는 거야."
(앨버트) - P161

"최악의 상황은 모르겠다만 아기가 혼자 남겨지는 것, 아무도 없이 완전히 혼자 남겨지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겠지.(...)"
(마셜 선생) - P190

잭은 나보다 더 일찍 그 사살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정답이 동시에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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