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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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첫문장

 

암 말기 선고를 받고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빅 엔젤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가족을 불러들여 아무도 잊지 못할 자신의 완벽한 마지막 생일 파티를 하고자 마음 먹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의 생일 전날에 100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게 되다니! 

 

13.

'어머니, 아직 돌아가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요. 아시잖아요. 이미 너무 힘들다고요.' 

 

빅 엔젤이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과 그의 생일 파티를 위해 전역에 있는 사돈의 팔촌까지 가족이 하나둘 모여든다.  

 

빅 엔젤의 어머니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과 빅 엔젤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위해 오해와 미움으로 분열되었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솔직한 마음을 서로에게 털어놓고 진실을 얘기하며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따뜻한 소설이다. 

 

데 라 크루스 집안은 멕시코 이민자다. 돈 안토니오는 당시 다수의 가장이 그랬듯 가부장적이고 훈육을 매질로 했지만 든든한 울타리였고 빅 엔젤에게는 영웅같은 존재였다. 어느날 느닷없이 이모부에게 보내져 배를 타게 된 빅 엔젤. 이모부의 학대와 폭력을 더이상 참아낼 수 없없던 그가 생각없이 흔들어 대던 갈고리에 이모부가 맞아 배에서 떨어져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그에 대한 죄책감은 엔젤을 평생토록 짖누른다. 지치고 무서웠던 그 시절을 버틴 빅 엔젤의 한 마디,  

 

244.

"나는 가치 있는 놈이야. 난 가치 있는 놈이야."  

  

 

집으로 돌아온 빅 엔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 돈 안토니오는 경찰 업무를 핑계로 외도를 했던 '미국인' 여성에게로 떠났다. 장남이지만 아직은 어린 빅 엔젤은 졸지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고, 아버지 없는 성탄절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처럼 영웅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를 뺏어간 그 미국인 여자와 그 여자와 아버지의 아들인 리틀 엔젤이, 빅은 죽도록 싫었다. 

 

맏형이 무서웠지만 가까워지고 싶었다. 엄마가 아버지를 쫓아내고 엄마와 둘이 남아 궁핍했던 어느 성탄절, 찾아갈테니 걱정 말라던 형의 전화에 리틀 엔젤은 기뻤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형은 오지 않았다. 그 수모와 절망감. 어쩌면 그 분노가 리틀 엔젤을 살 수 있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삶은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백인 혼혈이라는 손가락질이 왜 내 몫이어야 하는가.   

 열여섯 살에 아버지의 경찰서에서 처음 만난 페를라. 빅 엔젤은 한눈에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두 아들ㅡ인디오, 브라울리오ㅡ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페를라는 빅에게 다가가는 것을 머뭇거리지만 결국 둘은 결혼한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안토니오에게 배우지 못했던 빅 엔젤은 두 아이, 특히 인디오와 관계가 어긋나고 깊은 골이 생긴다. 돌아올 수 없는 브라울리오.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꼭 보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인 인디오. 빅 엔젤은 인디오에게 용서를 받고 싶다.  

 

489.

"네가 보고 싶었다. 넌 내가 보고 싶었니? 널 다시는 못 보게 될까 봐 무서웠다, 아들아."

  

 

소설은 만 이틀 동안 벌어진 일들을 쓰고 있다. 한때는 대가족을 호령했던 빅 엔젤은 일흔 살에 말기암을 진단 받고,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지도, 혼자 용변을 볼 수도, 씻을 수도, 휠체어 없이는 걷지도 못한다. 사랑하는 페를라와 외동딸 미나만이 자신의 곁을 지킬 뿐이다.  

장례식과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병약하고 노쇠한 빅 엔젤을 보고 우울해 하지 않는다. 잠시 놀랄 뿐, 그들은 늘 그랬다는 듯이 욕설을 내뱉고 그들의 시간을 보내면서 지나온 세월을 더듬는다. 남몰래 형부를 짝사랑했던 루피타, 본의 아니게 조카들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꼴이 된 짐보, 화려하지만 방황하는 라 글라리오사, 의붓 아버지와 용서를 주고받고 싶은 인디오, 남자보다 더 집안을 잘 이끌어가는 미나,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오해와 미움으로 거리를 뒀던 빅 엔젤과 리틀 엔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며 깊은 회한을 흘려 보낸다. 

빅 엔젤은 모두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특별한 놈이 아니야.

그냥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빠였지.

일하는 남자였고,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데."

그는 말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p101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을 앞에 둔 그에게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빅 엔젤은 그저 그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때론 비겁했고, 위악을 부렸고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피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삶이 좋았다. 

 

507.

" 좋은 인생이었어."  

깊은 밤, 죽지 말라는 리틀 엔젤의 귀찮은  전화가 그를, 행복하게 한다.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죽음이라. 참으로 우습고도 현실적인 농담이지. 노인들이라면 어린 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하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모든 수고와 욕망과 꿈과 고통과 일과 바람과 기다림과 슬픔이 순식간에 드러낸 실체란 바로 해질녁을 향해 점점 빨라지는 카운트 다운이었다. - P149

"내가 왜 걔들을 두고 가야 해?"
"믿으라고."
"이 거지 같은 데이브 놈아. 넌 망설여본 적도 없어?"
"왜 없겠어. 당연히 있지. (...) 그게 바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거야, 친구. 아무도 피해갈 수 없지. 자네가 의문을 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도 의미 없겠지만. 그게 바로 만사를 현실적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거라고.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서 요정처럼 날갯짓을 하게 시킬 수도 있었고. 우주 유람선에다 럼 펀치와 만나를 실어 보내실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랬다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
- P365

"미겔 엔젤. 죽는 건 어렵지 않아. 다들 죽는다고. 심지어 파리도 죽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죽어가고 있어.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고.(...) 자네의 인생 여정이 나와 조금 다른 것 뿐이야. 죽음이란 시카고행 열차를 잡아타는 것과 같아. 노선은 백만 개나 되고, 기차는 모두 밤에 운행하지. 어떤 기차는 완행이고, 어떤 기차는 급행이야. 하지만 모두 낡고 커다란 기차 보관소에 있어.(...)" - P366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 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 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 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 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 P466

비로소 자신이 왜 아직 죽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불꽃이 휘몰아쳐다. 자신의 각성을 즐기기 위해 살아 있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아직 살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단합시키기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알게 되었다. 이 빛의 회오리가 참 예쁘구나. 바로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아 있었던 거다. 그의 막내 아들. 빅 엔젤은 세상에서 가장 영웅적인 행동을 한 참이었다. 그는 이제 분노가 아니라 기쁨에 차서 씩 웃었다. 세상 모든 책에 쓰인 세상 모든 형사들의 활약을 능가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리틀 엔젤에게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말이다. - P487

매일 오는 그 1분은 모든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황금 거품을 창조하는 것과 같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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