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
요하네스 부체 지음, 이기흥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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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대해 맞이해야 한다. / 발터 벤야민 
 
인류가 생긴 이래 자유와 평화는 수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영혼의 평화'에 대해서 말해보자고 한다. 언뜻 듣기에는 고루한 표현이다. 요즘 누가 영혼 운운해 가면서 평화 타령을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다시 질문을 해 보자. '영혼의 평화'란 무엇일까? 저자가 던져 놓은 질문처럼 일종의 휴식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위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완벽한 상태를 일컫는 것일까. 
 
현대의 철학자와 사회학자 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온전한 자유와 평화는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뚜렷한 목적 없이 더 많이 소유해야 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타인과의 비교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평화롭지 않다. 반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시작이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개인이 이룰 수 있는 목표는 한계가 있고, 무엇을 해도 돈이 드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자유롭지도, 평화롭지도 않은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읽는다면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7.
어떤 이들은 '독촉당하고, 닦달당하는 느낌'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현전하는 느낌' 혹은 존재감과 성취감을 좋아할 수도 있다. 가령 '중요한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휴식과 거리가 멀다.  

 
얼마 전 초등생이 "사는 게 힘들어요."라는 말을 했다.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많은 초등생들이 중학생과 다를바 없이 일주일 내내 학원 순례를 한다. 한번 사교육 시장에 진입한 아이들은 그때부터 쫓기는 인생을 시작한다. 남들보다 선행해야 하고, 대학은 현역으로 in 서울 해야하고, 졸업에 맞춰 취업은 말할 것도 없고, 취업을 하면 승진에서 누락될 수 없으니까 아침 저녁으로 학원이나 인강을 들으며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퇴직할 때 까지 시험이고 경쟁이다. 쓰다보니 도대체 이런 인생을 왜 살아야하나 싶지만, 그러한 경쟁 안에서 이룬 성취감 또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67.
우리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떠밀려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절감하는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채워주기에 바쁘고, 아첨을 해서라도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안달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스스로 결단하여 행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에 성찰 없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이러한 열정은 우리를 자주 배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작 '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만도 한데, 이것 역시도 경쟁적으로 이뤄진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휴식이 무엇인지 보다는 요즘 가장 핫한 휴가지는 어디며, SNS에 올리기에 좋은 뷰가 보이는 곳은 어디인지, 방송에서 다뤄진 음식점은 어디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곳에 다녀왔다는 인증샷을 개인 SNS에 업로드하고 구독자 수를 늘리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놀이이자 휴식이다. 결국 현대인은 끝없이 경쟁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에서 행복하다고 느낀다. 과연 행복하다고 느낀 행복감은 행복일까? 
 
 
이에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정신의학에 대해서 언급한다. 
 
97.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 수치로 계산할 수 있게 하여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라. 이는 의심스럽고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 영혼의 불안을 야기하는 근원 중 하나이다. (...) 현실의 삶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늘 "임시방편적인 태도로" 대응하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도망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받아들여 공존하기,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되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비극적인 것을 합리화하는 태도는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로 이것이 성숙한 삶의 태도라 할 수 있다.  
 
106.
"당신은 내일의 주인이 아니면서 지금 누려야 할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삶은 내일로 미끄러지고 우리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 간다."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병적인 동경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고유한 가치와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성공이나 실패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117.
정말 중요하고 커다란 선을 위해서 분수를 지키라고 충고한 에피쿠로스는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삶을 지향했다. 불안정의 원천이 되는 질투를 잠재우면 적지 않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122.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미래만 바라보면서 이 순간 오로지 죽기 살기로 일만 하는 사람은, 우리 시대에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숨 가쁜 분주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점을 게르트 아헨바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시간을 가진 셈이지만, 현재의 짧은 순간이나 "아직 오재 않은" 미래에 시간을 한정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시간의 많은 부분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 즉 잉여인간이 될까봐 불안하다. 존재감 없는 삶, 이것이 사람을 노심초사하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 몰아가게 만든다. 이에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말을 빌어 친구(우정)의 의미와 유용성에 대해서 말한다. 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호신뢰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0-161.
우정의 성공 비결은 친구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고 마구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 완벽한 우정조차, 우리가 우정을 이유로 모든 의문에 답하려 하거나 동경해 마지 얺던 것을 반드시 얻으려 들 경우에는 깨질 위험이 있다. 

 

 
나 하나 스스로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우리는 정작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67.
나는 자신을 한편으로는 타자로 봐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내가 특정한 자아이기는 해도, 유일무이한 자아는 아님을 인정할 때만, "나"는 하나 이상의 '나'임을 실토하고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위의 글에 무척 공감이 갔다. 내가 나를 객관화해서 직시하고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야만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않을 수 있고, 종종 내 몸과 영혼을 놓아주어 쉴 수 있는 시간이 죄스럽지 않을 것이다.  

 

 

"나이 어린 소년도 철학하기를 꺼려서는 안 되고, 나이 많은 노인도 철학하기를 피곤해해서는 안 된다. 영혼의 건강을 얻는 데 너무 이른 나이도 없고, 너무 늦은 나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철학을 할 때가 아니라느니, 때가 이미 지났느니 하는 식으로 둘러대는 이가 있다면, 그는 행복을 느낄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 에피쿠로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더 깊은 경멸을 담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세네카). 지옥은, 장-폴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타인아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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