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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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내가 묻힐 관을 아버지와 내가 만들어야 해요."

나는 이 책을 오해했다. 처음 소개글을 접했을 때 암투병 중인 아버지의 관을 부자가 만드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고, 그래서 내용이 제법 무거울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관을 준비하는 이는 이제 쉰을 바라보는 아들이고 목수의 달인인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며, 아버지도 별 말 없이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들이며 그가 세상과 작별한 이들을 추억하는 과정은 담담하지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제 두 사람은 '영혼의 집(the long home)' 만들기를 시작한다.

나의 예상보다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심하게 좋았다. 내가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오면서 가졌던 수많은 감정들, 부모님과의 관계, 연로하신 부모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 등 공감을 넘어 저자의 글에 이입하면서 그들의 자리에 나와 부모님을 세워두면서 읽었다.

저자는 미국 오하이오의 소도시에서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가정을 꾸리고 집을 고치며 가족, 친구들과의 연대를 이어가면서 살고 있다.
저자는 장인의 죽음 직후, 처음 관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내와 가볍게 주고받던 얘기에서 시작해 결국 자신이 누을 관을 짜자고 결심하지만, 사실 그의 진짜 속내는 암을 진단받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만드는 행위에 있었다.

책은 부자가 관을 만드는 과정만 담고 있지 않다. 저자의 어머니의 죽음, 절친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그들과의 추억과 유품, 아버지와의 대화까지 중년의 남자가 아들로서, 친구로서 갖는 그리움, 소회를 풀어놓는다. 그의 단상들이 한낱 지나가는 독자에 불과한 나의 세세한 감정 들까지 끄집어낼 줄은 몰랐다. 읽는 동안 좋은 시간이었다.

이 책은 저자 아버지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되었다. 여든여섯 살에 돌아가신 담백하고 자상했던 분의 명복을 빈다.
  



■ ■ ■ ■


저자는 '영혼의 집 만들기' 프젝트에서 가장 심란하고 두려운 진실은 언젠가 아버지는 돌아가실 거라는 사실이라고,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더불어 자신은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을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중년의 아들이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에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부모가 정년퇴직을 하고 몸과 뇌가 허물어져가면 자식들은 그들을 신뢰하는 부모가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초단위로 바뀌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퇴물이 되어 어느새 그들의 경험과 연륜은 폐기처분 시켜버린다. 나도 시대를 쫓기에 바빠 노년의 혜안을 무시하거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됐다.

어머니의 죽음과 유품을 정리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인간이 삶을 지탱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존재감이라는 데에 다시 긍정하게 한다.  

114.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할 일을 남겼는데, 아버지에게 책임질 일이 있다는 것은 선물과도 같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옷장을 비우고, 묵주를 분류하여 정리하고, 보석을 감정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정장 외투와 구식 가운들은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연극부에 기증했다. 아버지는 복잡한 삶을 정리하려고 열심히 일했다. (...) 프로젝트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온 마음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며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한 과정, 즉 끊임없는 움직임은 내가 아버지를 알아온 이래로 아버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어느 어르신이 쓸모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몸서리쳐지도록 싫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떤 형태로든 타인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전혀 미치지 못하는 삶은 슬프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함으로써 자식들의 물리적.감정적 소모를 도왔다. 
 
 
저자의 어머니가 그에게 했다는 마지막 한 마디,

"외로워지지 마."


노년의 부모 마음은 다 비슷한가. 삶의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자식이 외로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영원히 혼자만의 세상으로 떠날 당신보다 남아 삶을 버텨내야 하는 자식의 고단함을 더 걱정하는.
   
 
읽으면서 내내 부러웠던 것은 그와 그의 아버지의 작업실이었다. 몸을 써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오랜 로망이기도 하다. 서울 토박이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지만 대식구였고, 탈 서울 이후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생활을 적응하는 데에만 3년 이상이 걸렸지만, 온전한 귀촌 생활은 자신이 없어 마음만 맴맴 돌고 있다(내 친구는 아직 덜 아쉽고, 덜 고픈거라고 제대로 찌른다).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잡생각 없이 몸(노동)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그 시간의 가치를 알기에 요가와 등산을 하지만 노동의 맛과는 또 다르다.

209.
집에 나오면서 전동 대패를 가지고 왔는데, 그걸 작업대에 내려놓은 다음 봉지에 담아온 점심을 그 옆에 나란히 두었다. 할 일을 가지고서 여기 혼자 있는 게 기뻤다. 그곳이 어디든 일을 가지고 혼자 있는 게 나는 좋았다. 나는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싶었다. 잡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노동의 니린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저자가 아내와 나눈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죽은 이가 그리울 때는 그에 대한 추억을 말로 나타내야한다는 것. 그리울 때 그립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삶에 작은 에너지가 된다. 
 
죽음에 대해 부모와 담담히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든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모르는 척 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슬픔은 독이 아닌 정화가 되지 않을까...... . 
  




나는 가을날 떡갈나무 같다

떡갈나무 이파리 죽어서 땅에 떨어진다
내 몸 죽어서 따응로 돌아가듯이

그러나 떨갈나무 여전히 살아서 봄을 기다린다
내 영혼도 그렇게 살아남아
영원한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2018년 5월 아버지의 시

"내가 묻힐 관을 아버지와 내가 만들어야 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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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을 지워 드립니다 - 기시미 이치로의 방구석 1열 인생 상담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환미 옮김 / 부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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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행복, 실패와 불행을

동일시하게 된 이후로

인간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미키 기요시

아들러 심리학 카운슬러인 기시미 이치로가 우리나라 영화 열아홉 편을 끌어와 등장 인물들과의 상담을 통해 사랑, 결혼, 부부, 부모, 자아, 인생, 관계에 대해서 짚어본다. 책에서 언급한 영화 중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와 <버닝>을 제외하면 모두 본 영화라서 정황을 알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영화의 내용을 모른다고 해서 책을 읽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자의 <미움 받을 용기>가 기억에 남아 있는 독자라면 만족하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저서를 아껴준 타국 독자들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 역사,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 이 글을 쓰기 위해 한국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제들을 다뤄보자는 생각을 실행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 ■ ■ ■

 

사랑하면 결혼을 하고, 결혼 후에는 내 집 마련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듯 현재 보다는 미래를 설계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함께 있는 현재가 충분한지를 먼저 들여다보라고,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한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어 '사랑이란 상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며,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외일수도 있지만 미래가 필요 없는 게 사랑이라고. 

결혼은 완전한 평등을 토대로 해야하며 대상을 향해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것도, 행복하게 해달라는 것도 올바른 결혼은 아니므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신뢰를 쌓고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와 같은 관계 방식은 연인이나 부부가 아니더라도 모든 관계에 있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상대가 완전한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동등한 대화를 이끌 수 있다. 나는 상사니까, 부모니까, 선생이니까, 선배니까, 어른이니까처럼 경험과 연륜이 많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만 버린다면 가정과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관계 문제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동의했던 내용 중 하나는 지금 겪는 문제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이를 역사적 문제에서 왜곡시켜 적용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현재의 내 모습에서 누구를 탓해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물론 유년 시절의 가정폭력을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며 이는 그것과는 별개다). 문제 해결의 중심을 타자에 놓으면 해결은 요원하다. 그 중심에 자신을 놓아야만 길이 보인다. 남 탓은 해결을 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동의 내용 중 또 하나는 자신으로서 살라는 것. 엄마, 아빠,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아닌 그 자신으로. 자식을 보호하지 말고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기 방어기제를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비난이 두려운 건 아닌지, 아이가 상처받고 책임져야 할 부분을 자신의 몫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는 온전한 자립이 아니라 그저 부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반항에 불과한 건 아닌지, 진정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부딪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부모는 아이의 이런 준비를 못미더워 보호라는 핑계로 일방적 강요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공감했던 부분은 우리는 행복과 성공을 동일하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행복과 성공이 다름은 분명히 알지만, 우리는 대체로 (경제적으로)성공한 사람은 행복하고, 돈이 많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는 거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친구들을 만날 때 가끔 좋은(?) 차를 타고 거침없이 돈을 쓰는 이를 보면 뭔가 걱정없이 살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작은 행복과 대비되는 큰 행복이란 없으며 큰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닌 성공 혹은 행운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때론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변명을 늘어 놓지만, 변명 이전에 그 선택을 자신이 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만 어느 때에라도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다. 실패가 온전히 내 몫이 될 때, 언젠가 찾아오게 될 성취감 또한 온전히 내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나의 실패를 내 것으로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지금의 이 삶이 실전이다. 그래서 언젠가 더 괜찮아질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를 충만하게 살고자 한다.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그 어디든 완전한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정과 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되레 이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완전함과는 거리가 먼, 부정과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이상을 찾아낼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단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상의 일단一端, 혹은 편린을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오히려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현실 세계에서 이상을 떠올린다는 것은, 불완전하지만 이 세계에 이상이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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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
이현민 지음 / 새빛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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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를 아우른 책으로 보여져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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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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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느 리즈는 프랑스 보리바주 호텔 128호실 협탁 서랍에서 원고를 발견한다. 소설의 내용에 깊이 빠진 그녀는 작가가 실수로 두고 갔다고 여겨 156쪽에 기재되어 있는 주소로 편지와 함께 소설을 보낸다. 그러나 원고의 주인인 실베스트로로부터 돌아온 답은 그녀를 매우 놀라게 한다. 
 
그 소설을 쓴 사람은 실베스트로가 맞지만, 그 원고는 33년 전 그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분실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미완의 원고였고, 그것이 삼십 여년이 지나 완성된 원고로 안느 리즈에 의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사실. 이에 안느는 캐나다에서 잃어버린 원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프랑스 바닷가 호텔 방 협탁 서랍에 있었던 건지 추적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제 안느는 하나둘 공범을 끌어들여 색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강간으로 인해 임신을 하고 아이를 입양보낸 후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우울증을 겪는 나이마, 용기가 없어 짝사랑하는 여성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청년 로메오, 한때는 교수였으나 도박 중독으로 가족을 놓치고, 안느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어머니의 외도를 알게 된 윌리엄, 사랑하는 여인과의 미래를 꿈꾸던 바로 그 순간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다비드, 치매로 기억을 잃었지만 무의식에서도 사랑하는 그의 이름에 반응을 보이는 드니즈, 청소년 시절 부모의 부재로 방황을 했던 엘비르, 젊은 시절 병약한 몸 때문에 사랑했던 연인을 보냈지만 잊지 못하고 중년의 나이가 된 작가 클레르, 교통사고로 인해 남편과 뱃속의 아이를 잃은 후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기, 공황 장애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바깥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실베스트로.
  
위의 인물 들은 대부분 원고를  한 번 쯤은 읽었고, 이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소설 내에서 원고의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원고를 쓴 이가 청년이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담은 연애소설이라는 정도만 짐작할 따름이다. 그래서 독자는 원고의 어떤 내용으로 인해 그들이 삶을 위로 받고 정화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사실 이 소설에서 주요 인물들은 원고를 읽은 사람들이 아닌,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한두가지 아픔을 안고 살 듯이 실베스트로를 비롯한 등장인물 대부분은 크고 작은 사연이 있다. 그들은 서로서로 편지를 통해 오히려 가까운 주변인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했던 스스로의 민낯을 털어놓으며 추처럼 달고 있었던 짐을 조금씩 내려놓고 자신도 모르게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중심에는 물론 안느가 있다. 버럭버럭 화를 내며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는 실베스트로를 당근과 채찍으로 설득하고, 마기와 윌리엄 사이에서 두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원고를 추적하기 위해 홈즈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대상을 설득하고 앙해를 구하며 이해시키기 위해 편지를 쓰고 또 쓴다. 안느가 이러는 이유가 뭘까? 
물론 직업적 성향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녀는 사람과 세상에 애정이 많은 사람일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연에 일일이 교감하고 글을 나눌 수 없을테니 말이다. 냉소적인 내 친구라면, "다 살만하니까 하는 짓이야."라고 하겠지만. 사는 게 마냥 좋기만 한 사람도 없고, 마냥 좋다고 하더라도 안느처럼 마음 쓰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마음.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전자계정을 사용한다. 그래도 연말카드나 축하카드 정도는 여전히 손글씨를 쓰고 있고, 마음이 동할때는 연필로 꽉꽉 눌러 써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일기는 지금도 따박따박 손으로 쓰고 있고. 한때는 우표를 백 장씩 사놓고 사용할 떄도 있었는데... . 그래서 나는 편지가 주는 위력을 충분히 납득한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2016년임을 감안하면, 시대착오적인 소설일 수도 있다. 전화, 문자, 이메일 등 불과 몇 초만에 전송이 가능한 혁신적인 통신시대에 손편지라니, 가당키나한가 (일단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원거리에 있는 그들이 안느의 편지에 반응을 했던 건 그녀의 성실하게 눌러 쓴 글자 하나하나 때문일테다. 그녀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나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동참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소설에 들어가기 전에 지명과 인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실제했던 일임을 명시한다. 그저 낭만적인 허구로 여겨졌을 등장인물의 위안과 평온이, 그리고 그들이 어딘가에 실제한다는 사실에, 나는 독자로서 기쁘다.
 
 
 

살면서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것들은 진통제도 듣지 않는 만성 통증처럼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답니다. - P25

기억을 갉아먹는 암 덩어리만큼 비열한 게 또 있을까? - P145

우리는 왜 사춘기 때만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사랑에 빠져드는 걸까요? 나이 먹은 사람들은 오히려 아직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듯 더욱 망설이잖아요. 이상하지 않아요? - P286

소설이라는 배가 우리를 태우고 멀리까지 데려가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고 우리를 영원히 변화시킨다는 것도 알죠.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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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무사와 고양이 눈
좌백.진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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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당에서 요괴에게 잡아먹힐 뻔한 나현은 반려견 아초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세월이 흘러 나현은 철부지 무사로 성장하고 드디어 강호로 나갈 때가 되자 아버지의 명령으로 아초와 함께 작은 아버지 댁을 향해 길을 떠난다. 아버지가 주신 빠듯한 여비와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주신 비상금까지 흥청망청 쓰고 작은 아버지 댁에 입성하지만 애초에 목적한 강호로 나가기 위한 자금은 고사하고 주작대로의 진 대인 저택으로 가 모산파에서 온 선인을 만나라는 말만 듣고 내쫓기다시피 떠난다.  
 
도사, 나현, 아초. 
탄탄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모산파 도사, 강호에 들어서면 스승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무사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방편도 필요한 초보 강호 무사,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디에든 쓸모가 있을 반인반견 아초. 이 세 파트너의 모험이 시작된다. 
 
개잡종, 개새끼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한때마나 자신을 지켜줬던 유일한 친인의 복수를 하는 중년인, 오로지 장식용으로 소녀들을 이용하는 공자를 위해 목숨을 버린 언니를 대신해 그의 목숨을 거둔 십이와 죽음을 눈 앞에 둔 순간 그녀의 곁에 있던 고양이, 천음절맥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여자 아이에게 기를 불어 넣어준 (요괴의 영혼을 가진)고양이, 절대악을 처리하기 위해 뭉친 여자 무사들, 주군을 향한 충성심으로 죽죽어서도 영혼의 시간을 반복하는 황구 백구 흑구 세 무사. 
 
 
반려동물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무협 단편.연작소설이다. 
누와르는 읽어도 무협이라고는 아주 오래 전 읽다가 던진 초한지(정사 삼국지는 역사서니까 제외)와 일 년전에 읽은 켄 리우의 판타지 무협 <제왕의 위엄>이 전부. 그래서 소설에서 등장하는 무기나 용어 들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읽어다는(사실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읽을 것 까지는 아니었는데).  
  
 
일단 무척 재미있어서 책장이 아주 잘 넘어간다. 도사, 나현, 아초의 케미는 웃음이 절로 나오고,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충성의 무게는 안타깝기만 하다. 뼈 때리는 시의성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고. 
 
<고양이 꼬리>에 등장하는 공자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최상위 계층의 안하무인 캐릭터. 무공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을 위력 삼아 사람을 부리고 풍류와 예술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람을 장식용 소비재로만 아는 오직 인격만 없을 뿐.  
 
'도사'는 어떤가. 속세를 떠난 수행자가 돈이라니!
"나는 아직 수행이 깊지 못해서 솔잎과 이슬만 먹고 살 수도 없고, 사람이 검소하지 못해 기장밥에 고사리 반찬으로 살지도 못한다네. 젊었을 때 잔뜩 벌어서 재물을 쌓아 두고 산 아래 사람들에게 양식을 배달시켜 먹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하지 않겠나. 지금의 고생은 다 그때를 위한 투자라네. 자네도 옷이며 검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것이 좋을 걸세." (p172)
이 얼마나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란 말인가. 도사의 나이 이십 대 중반. 그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의 마음가짐 아닌가(이 대목이 정말 재미있는 게 그는 도교 모산파를 적으로 두고 있다. 도교를 숭상하는 도사가 경제적 노후 대책이라니). 정말 똘똘한 청년 도사님이로구만. 야무지다, 야무져.  
 
 
선의와 신의를 지키는 자들이 약자로 전락하는 세상 이치는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강호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공자나 천룡왕이 치른 댓가가 독자에게 시원함을 던져 주려나. 이처럼 소설은 무협소설임과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담았다. 깔깔 웃다가도 사이사이 안타깝고 애잔한 마음이 드는 건 소설 속 인물들이 익숙하고 친근해서 아닐까.  
 
여운이 길었던 작품은 <들개이빨>과 <고양이 꼬리>.
물론 나현 삼총사는 말할 것도 없이 이후에도 더 만나고 싶다. 
 
 

삶이란 본래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 P219

이별은 딱 이런 방식이 좋지 않을까. 극히 자연스럽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삶이 느닷없이 중단되듯이 그렇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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