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무사와 고양이 눈
좌백.진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사당에서 요괴에게 잡아먹힐 뻔한 나현은 반려견 아초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세월이 흘러 나현은 철부지 무사로 성장하고 드디어 강호로 나갈 때가 되자 아버지의 명령으로 아초와 함께 작은 아버지 댁을 향해 길을 떠난다. 아버지가 주신 빠듯한 여비와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주신 비상금까지 흥청망청 쓰고 작은 아버지 댁에 입성하지만 애초에 목적한 강호로 나가기 위한 자금은 고사하고 주작대로의 진 대인 저택으로 가 모산파에서 온 선인을 만나라는 말만 듣고 내쫓기다시피 떠난다.  
 
도사, 나현, 아초. 
탄탄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모산파 도사, 강호에 들어서면 스승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무사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방편도 필요한 초보 강호 무사,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디에든 쓸모가 있을 반인반견 아초. 이 세 파트너의 모험이 시작된다. 
 
개잡종, 개새끼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한때마나 자신을 지켜줬던 유일한 친인의 복수를 하는 중년인, 오로지 장식용으로 소녀들을 이용하는 공자를 위해 목숨을 버린 언니를 대신해 그의 목숨을 거둔 십이와 죽음을 눈 앞에 둔 순간 그녀의 곁에 있던 고양이, 천음절맥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여자 아이에게 기를 불어 넣어준 (요괴의 영혼을 가진)고양이, 절대악을 처리하기 위해 뭉친 여자 무사들, 주군을 향한 충성심으로 죽죽어서도 영혼의 시간을 반복하는 황구 백구 흑구 세 무사. 
 
 
반려동물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무협 단편.연작소설이다. 
누와르는 읽어도 무협이라고는 아주 오래 전 읽다가 던진 초한지(정사 삼국지는 역사서니까 제외)와 일 년전에 읽은 켄 리우의 판타지 무협 <제왕의 위엄>이 전부. 그래서 소설에서 등장하는 무기나 용어 들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읽어다는(사실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읽을 것 까지는 아니었는데).  
  
 
일단 무척 재미있어서 책장이 아주 잘 넘어간다. 도사, 나현, 아초의 케미는 웃음이 절로 나오고,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충성의 무게는 안타깝기만 하다. 뼈 때리는 시의성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고. 
 
<고양이 꼬리>에 등장하는 공자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최상위 계층의 안하무인 캐릭터. 무공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을 위력 삼아 사람을 부리고 풍류와 예술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람을 장식용 소비재로만 아는 오직 인격만 없을 뿐.  
 
'도사'는 어떤가. 속세를 떠난 수행자가 돈이라니!
"나는 아직 수행이 깊지 못해서 솔잎과 이슬만 먹고 살 수도 없고, 사람이 검소하지 못해 기장밥에 고사리 반찬으로 살지도 못한다네. 젊었을 때 잔뜩 벌어서 재물을 쌓아 두고 산 아래 사람들에게 양식을 배달시켜 먹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하지 않겠나. 지금의 고생은 다 그때를 위한 투자라네. 자네도 옷이며 검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것이 좋을 걸세." (p172)
이 얼마나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란 말인가. 도사의 나이 이십 대 중반. 그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의 마음가짐 아닌가(이 대목이 정말 재미있는 게 그는 도교 모산파를 적으로 두고 있다. 도교를 숭상하는 도사가 경제적 노후 대책이라니). 정말 똘똘한 청년 도사님이로구만. 야무지다, 야무져.  
 
 
선의와 신의를 지키는 자들이 약자로 전락하는 세상 이치는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강호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공자나 천룡왕이 치른 댓가가 독자에게 시원함을 던져 주려나. 이처럼 소설은 무협소설임과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담았다. 깔깔 웃다가도 사이사이 안타깝고 애잔한 마음이 드는 건 소설 속 인물들이 익숙하고 친근해서 아닐까.  
 
여운이 길었던 작품은 <들개이빨>과 <고양이 꼬리>.
물론 나현 삼총사는 말할 것도 없이 이후에도 더 만나고 싶다. 
 
 

삶이란 본래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 P219

이별은 딱 이런 방식이 좋지 않을까. 극히 자연스럽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삶이 느닷없이 중단되듯이 그렇게. - P2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