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폴리스맨
베선 로버츠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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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패트릭, 이 모든 얘기를 털어놓는 건 나와 톰 사이가 어땠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사이에 고통만이 아니라 다정함도 있었다는 걸 당신이 알도록. 우리 둘 다 실패했지만 우리 둘 다 노력했다는 걸 알도록.




매리언
열네 살에 처음 만난 톰에게 한눈에 반해 혼자 사랑을 키워왔다. 6년이 흘러 제대하고 경찰이 된 톰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친구 이상의 선을 절대 넘지 않았던 톰이 청혼하자 꿈같이 일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했다. 그에게 그녀보다 더 특별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패트릭
서른네 살, 우연한 작은 사고로 인해 스물두 살의 젊은 경찰과 만나게 됐다. 연인 마이클을 안타깝게 떠나보내고 움츠려들대로 움츠려든 그에게는 벼락같은 만남이었다. 첫눈에 알아본 연인.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리라, 나의 순경님에게. 두 사람은 그 어떤 연인보다 열렬히 사랑했다.  








소설은 1999년 가을에서 시작해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매리언과 패트릭의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점은 등장인물이다. 주요 인물인 세 사람ㅡ매리언, 패트릭, 톰ㅡ외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는 줄리아가 있다. 이들 중에 세 사람이 성소수자다. 즉 매리언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가까운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정이 공유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매리언만이 그들의 상황을 납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매리언이다. 세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매리언에게 그들의 성정체성이 노출되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매리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칼자루를 가차없이 휘두른다. 이처럼 성소수자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소설 전체의 흐름에서 나타내고 있다.  


그 안에서도 톰과 패트릭은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소설에서는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여성이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했던 당시 매리언이 교사직을 고수하겠다고 하자 톰과 패트릭의 의견이 엇갈린다. 패트릭은 매리언이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지만(사실 패트릭의 의도가 명확하지는 않다. 훗날 톰이 매리언과 결별하고 난 후에 그녀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일단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것인지, 진심으로 여성의 지위에 대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톰은 가장으로서 탐탁치 않게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톰의 직업이다. 그는 성소수자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범죄자로 잡아들이는 권력자인 경찰인, 한마디로 톰의 입장 자체가 모순된다는 것이다. 소설 전반에서 톰의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모습이 자주 보여진다. 아마도 톰은 자신의 직업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 그에 따른 폭력까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비겁해질 수 밖에 없었을 터다. 



소설에서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협박해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그들은 불특정다수에 의한 정체불명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다(지금이라고 뭐 얼마나 달라졌으랴마는). 여성으로서 차별적 시선을 느끼는 매리언조차 톰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울부짖으며 남편의 성정체성을 부정했고, 패트릭이 어쩔 수 없이 만난 정신과 의사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이라고 단정했다. 사람들은 동성애가 치료를 요하는 질병이자,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치료 가능하다고 여겼다. 


동성연애자는 범죄자,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여자는 혐오스러운 존재였던 시절에 어쩌면 그들의 불행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육체적 욕망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의 문제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정상성 범위 안에 있다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매리언은 많은 것을 잃는다. 그녀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누군가를 지키길 바랐던 그들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매리언이 죄책감으로 얼룩진 사랑에 진정으로 이별하는 그 순간이 너무 늦어 안타까웠다. 긴 세월 동안 그녀는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고단했을까.  


매리언의 고백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두 남자는 자신들이 매리언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들이 외면하고 기만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면 매리언을 용서할까. 지독하게 아픈 사랑의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읽었다고해서 일장 입바른 소리를 내뱉고 싶지 않다. 아마도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가 여전히 얼마나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그 편협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면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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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3 - 여명의 기운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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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377년 고구려와 백제의 평양성 전투를 시작으로 하대관과 해평의 반란까지(384년)를 다룬다.  








 
부소갑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고구려와 백제를 보면서 먼저 떠오른 건, 부소갑에서 인삼 농사를 짓고 있는 백성들이었다. 안타깝게도 부소갑이 노른자위같은 땅이라는 사실은 부소갑의 농민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들일텐데 기실, 누가 왕이 된다한들 그들에게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전쟁은 이기든 지든 큰 피해를 남긴다. 2차 평양성 전투가 대왕 구부에게는 한풀이 복수극을 성공적으로 마친 셈이지만, 남편과 젊은 자식을 전쟁터로 보내고 흉년에 군량미까지 바쳐야했던 백성들의 핍박한 삶의 고통에 대해서는 어떤 보상과 위로가 가능할까. 승전을 했으나 전쟁보다 더 지독한 가난과 기아가 기다리고 있는 백성이 할 수 있는 것은 도적질 뿐인데.    


을두미는, 신화는 인간의 마음을 그린 지형도와 같은 것이고,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야기하거나 그림으로 형상화해 놓은 것에 다름 아니라고  했다. 또한 신화란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민족 정신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자'는 것일텐데, 우리는 현재,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하고 있는가.  


ㅡ 


383년 동진과 전진의 비수전투. 이 전투의 결과로 선비족 출신 모용수가 후연을 세워 비상한다. 모용선비가 후연을 세우고 스스로 황제로 칭하며 세력을 키운다는 것은 곧 고구려 서북 국경을 노린다는 것을, 그리고 고구려가 요동지역을 두고 후연과 전쟁을 벌여야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의미했다.  


고구려는 평야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5년 동안 흉년을 겪었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오래도록 곤궁한 생활에 시달려 왔다. 백제 역시 지진이 발생한 데다 대기근이 겹쳐 고구려를 공격할 엄두도 못 내고 있고, 신라는 오래전부터 고구려에 복종하여 대외 관계까지 의지하는 편이었다. 고구려가 신라의 외교까지 연결해 주면서 전진과의 우호 관계가 더욱 돈독해져, 고구려는 서북방 변경에 대해서도 안심하고 있었다. 대기근에서 벗어나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무렵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순탄하기만한 세월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  


ㅡ  


읽으면서 사이사이 들었던 짧은 생각들은, 


머리를 쓰는 데에 있어 사람마다 활성화되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 화적떼들이 '비려'라고 불리는 지우두의 소금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우신은 만약 염수에서 소금 캐는 권리를 갖게 되고, 그것을 고구려까지 운반하여 팔게 된다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부르는 게 값인 소금 채취권과 교역권을 거머쥔다면 고구려는 더욱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우신은 미래 대비책까지 세워놓는다. 집 나간 딸을 찾겠다고 슬픔을 억누르며 방방곡곡을 헤매는 아비가 그 짧은 순간에 이런 계획까지 세웠다는 게 이런저런 이유로 재밌기도 했다.  


추수가 뗏배의 노를 저으면서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부분을 읽다가 문득 아리랑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가 궁금해졌다. 막연히 오래된 우리 터전의 구전민요라는 것과 학교에서 배운 지역적 특성에 대한 상식 정도는 알고 있지만 막상 언제부터 시작됐을까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를 읽으면서 가끔 상상하는 것은 '근초고왕과 광개토왕이 동시대에 살았다면?' 이다. 둘 다 영토확장형 군주라 어지간히 싸웠을 것 같은데... . 여기다 진흥왕까지 보태지면...! 어쩌면 이들이 세대를 달리해서 태어난 것은 신의 오묘한 섭리일지도 모르겠다.   


ㅡ  


담덕은 똘똘하게 자라고 있고 그의 인생에서 그림자가 되어줄 것 같은 마동과 두치를 만났으며, 추수는 해적잡는 일목장군이 되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소진은 여전히 무명대사를 찾아다니고, 소진의 아비 우신은 딸의 뒤를 추적하는 중이다. 동부욕살 하대곤의 가당치도 않았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아버지 무의 뜻과는 다르게 증오와 복수심만 차곡차곡 쌓은 해평의 예상치 못한 인생 행로. 대왕 구와 사유가 그랬듯 다시 한 세대가 저물어간다. 


생뚱맞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피고 지는 게 당연한 순리임에도 어느 순간 늙는다는 건 서글픈 거라고 말씀한 어느 분이 생각났더랬다.  


4권에서는 청소년기의 담덕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배 타고 나간 겁없는 두 소년은 어찌 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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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
어맨다 고먼 지음, 정은귀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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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말부터 2021년까지,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전무후무한 팬데믹 시대를 지나왔다. 인류는 14세기의 흑사병, 20세기의 스페인 독감,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신종플루 등 전지구적 전염병 대유행을 겪어왔지만, 특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비드19는 역대 찾아볼 수 없는 전염력으로 인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2022년의 끝을 석 달 앞둔 현재, 많은 나라에서 코비드19 종식을 선언하고 있는 중이다. 


이 시집은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면서 다양한 지점에서 우리가 감내해야했던 수많은 상실과 고통을 직시하면서 이에 대해 탐구함과 동시에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에 무엇을 바탕으로 두어야하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스물세 살이라는 젊음이 돋보인다고 느껴질만큼 구성이나 형식이 독창적이다. 시인의 시어와 분위기는 무겁지 않으나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질병 자체보다 전염병에 대한 불안으로 더 피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악수와 포옹은 선물 같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코비드19가 한창일때 우리는 아무리 반가워도 가벼운 포옹은 고사하고 손끝조차 스치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일까. 여전히 악수를 위해 내미는 손이 때로는 무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한동안 본의 아니게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던 시기. 반강제적 고립은 인간을 마치 상동행동을 하는 감금된 동물처럼 만들었고,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는 사치가 되었으며, 사랑과 책임과 위로는 사라졌다. 어떤 목적도, 기능도 없이 사고가 멈춰버린 채 불안과 우울의 우물에 갇혀버렸다. 


시인은 코비드19 사태를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 한국인 한恨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깊고 짙은 슬픔과 충격을 안겼음을 얘기한다. 동시에 '집단기억'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과연 이 경험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묻는다. 경험을 잊고, 지우고, 검열하고, 왜곡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고통의 과정을 수반할지언정 서로에게 묻고 듣고 공유하며 그 경험이 반복되지 않도록 진실을 말할 것인가를. 포스트 코로나, 그건 우리의 선택이다.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과 소리없는 전염병의 전장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쟁, 전염병 와중에도 여전한 차별과 편견. 이것들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정당한 분노는 당연한 권리이고, 증오가 바이러스가 되지 않도록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할 목표는 보복이 아닌 회복, 지배가 아닌 존엄, 공포가 아닌 자유여야한다고 시인은 역설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편리함보다 본질과 더불어 살아야함을, 타인을 미워하고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더 나은 길을 모색해야 한다. 때로는 위기가 우리를 더 우리 자신이게끔 해주고, 아이러니하게도 고통과 슬픔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확인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생긴 일은 우리를 통해 생겼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늘 생을 품어왔고 살아남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를 형성하는 '관계' 안에서 더 나아질 것이다. 희망은 실질적인 실천을 대동해야 한다. 그전에 우리에게는 충분히 비통해할 시간이 필요하다.  


ㅡ 


시집을 읽으면서 코비드19 발병 직후부터 지금까지, 각종 매체에서 보도되었던 내용들과 개인적인 일상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누군가 밀폐된 공간에서 코를 훌쩍이거나 기침이라도 하면 의심 가득한 가자미 눈을 뜨고, 마스크 대여섯 장을 사기 위해 100미터 이상 줄을 서는 것을 감수하며, 확진자는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당했던 어처구니 없었던 시절. 한겨울 발병한 전염병. 마스크를 쓰고 여름을 나야할 우려가 무색하게 어느새 두 번의 여름을 거쳤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2년을 지나왔다.   


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발견한 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시인은 전쟁과 팬데믹의 첫걸음은 고립과 단절이라고 얘기한다. 무기와 흉기를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이보다 더 극단적인 폭력이 있을까. 이보다 더 인간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있을까. 더더욱 무서운 것은 어느새 이러한 현상들이 지속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우리 스스로 서로를 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온건한 전쟁은 없으며, 내던져질 수 없는 평화는 없다는 시인의 말이 격하게 와닿는다.  


시인은 팬데믹 뒤에 숨은 진짜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우리의 이야기를 소리내어 이야기하고, 쓰고,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의 제목처럼 우리는 서로를 불러줘야 한다. 그 부름이 모두를 존재하게 할 것이다. 또한 타인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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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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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이야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에세이. 인류애를 우주적 차원에서 풀어내는 작가가 전하는 다정함이 한껏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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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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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부 - 6부 리뷰 



샬럿 브론테는 천국과 지옥, 천사와 괴물이라는 이분법에 대해 에밀리보다 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제인 에어>는 <천로역정>에 나오는 도덕적 교훈주의를 패러디하고, <셜리>는 여성의 '굶주림'의 기원에 대해, <빌레트>는 여성의 자아 거부의 비유와 엄격한 도덕적 설교라는 구조 안에 대안적 여성 미학을 담아 내고 있다. 


<제인 에어>는 그녀의 내적 현실과 그녀를 둘러싼 여성의 현실을 확실히 반영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 평론가들은 <제인 에어>의 여자 주인공이 사회적 운명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데에 혼란스러워했고, 제인의 분노에 경악했다. 작가가 <제인 에어> 에서 짚어낸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버사(로체스터의 아내)가 나타내는 모든 것(감금, 긂주림, 분노, 반항)은 제인이 가진 분노의 경험(억압)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제인과 버사 사이에 놓인 유사성은 여성의 범주를 넘어서고자 애쓰는 여성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ㅡ 


브론테는 <셜리>를 통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계급제도를 역사적으로 다루면서 역사적인 변화와는 아무 관련 없이 보이는 여자 주인공들의 외로운 투쟁과 역사적 변화 사이의 거리를 탐색하는 데 주력한다. 뿐만 아니라 영국 사회에서 성공적인 삶에서 배제되고 착취당한 이들에 대해 역설적인 장면으로 서술한다. 브론테는 노동자 착취를 여성 실업과 연결하면서 여성과 노동자를 소유물로 취급하며 그들을 경시하는 세태를 짚는다.


작가의 지적 중 인상적인 것은 소설 <셜리>에서 셜리, <제인 에어>에서 버사의 출현이 캐럴라인과 제인에게 탈출의 수단이 되어주었다는 점이다. 사실 소설 <셜리>를 읽지 않아 캐럴라인에 대해서 확인하기 어렵지만, 제인의 경우에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사가 아니었으면 제인은 영락없이 중혼의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지점이, 억압이 아니라 자유롭게 제약받지 않은 자아 출현의 신호탄이라고 얘기한다. 


<빌레트>는 가부장적 문화의 미학적 관습이 왜, 어떻게 성차별적인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제도처럼 여자들을 감금시키는지 탐색한다. 이 소설 역시 브론테의 여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자 주인공이 겪는 감금, 탈출, 배제 과정을 그린다. 브론테는 이 소설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을 희생시킨 독재적인 허구를 피하고, 여성에게 있어서 사랑의 끝은 삶의 끝이 아니며 동시에 남성의 낭만주의(모험하는 남성을 기다리는 순종적인 여성)의 기를 꺾는다. 


ㅡ 


19세기 중반의 여성 작가들은 순종(천사)과 자기주장(괴물)이라는 양가적 상황 가운데 남성 지배 문화에서 문제적인 여성 역할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하위문화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조지 엘리엣,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에밀리 디킨스 등 이들 사이에 감지되는 유대를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여성의 하위문화다.  


조지 엘리엇은 습관적으로 자신을 불신했다고 한다. 이는 그녀가 부모로부터 경제적 유산과 부모 사랑의 주요 상속자가 아닌 차선이라는 느낌 때문에 괴로워했다는데,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작가는 <벗겨진 베일>에서 엘리엇이 비상과 추락에 대한 성적으로 젠더화된 두려움, 치명적인 것으로 묘사한 문학적 소외 때문에 사탄의 실패한 열망을 동일시한다고 얘기하는데, 엘리엇 이전부터 가졌던 자기비하와 전혀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에 따르면 엘리엇이 자신을 여성으로서의 여성과 여성 혐오자 등 양가적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이러한 자기 분열을 <벗겨진 베일>에 투영했다. 


ㅡ 


엘리엇은 <성직 생활의 장면들>과 <벗겨진 베일>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초월적 남성과 내재적 여성 사이의 투쟁이고, 여성의 유일한 힘은 물리석 세계와 맺고 있는 계약에서 나오는 악마적 힘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분노하지 않고, 증오를 자신에게 되돌려 스스로를 벌하는 체념적인 모습은 자기혐오를 보여주는 동시에 남성적 서계에서 여자가 처한 조건에 대한 엘리엇의 태도를 보여준다. 


브론테는 여자가 지적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저주하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보여주며, 여성의 감금과 구속을 그려내면서 남자들이 소유한 권위 있는 자유를 부러워했다. 그에 반해 엘리엇은 지적인 결핍이 초래할 암울한 결과는 인정하지만 이 결핍 덕분에 여자에게는 감정적인 삶이 더 풍부해진다고 암시했고, 남성적 경쟁이 아닌 서로 돕는 동지애에 기초한 고유한 여성 문화의 미덕과 여성의 창의성을 칭송했으며, 남성들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권위 때문에 사실상 남자들이 육체적 심리적 진정성을 경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여성의 특징을 타인에 대한 헌신, 공동체 의식, 자연에 대한 감사, 돌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꼽는다. (중략) 엘리엇은 일이 주는 명확함이 없는 여자들에게는 안정된 자아나 단일한 중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극적 은유를 사용한다. 엘리엇의 여성 인물 중 분장을 두려워하는 인물들이 위험한 속박의 유혹에 치명적으로 이끌리는 이유는 공허에서 생겨난 존재론적인 불안 때문이다. 엘리엇의 여자 주인공들의 삶을 구조짓는 것은 타자성과 부재다.  


ㅡ 


소설은 여성의 불안이나 적대감을 피하거나 쫓아낸다면, 시는 직접적인 화자로 등장하는 여성으로 하여금 실제 삶의 불안이나 적대감을 재연하게 만듦으로써 여성 작가들이 시보다는 소설에 더 가까워지게끔 한다. (중략) 자기희생과 순종이 미덕인 19세기 여성은 '체념'이라는 관에 스스로 들어가 못질을 했다. 


16장에서 문학의 고딕 장르가 여성에게 중요했다는 논평이 눈에 띈다. 19세기의 분열된 자아들이 빈번하게 빠질 수 밖에 없었던 혼란스러운 심리적 상태에 대한 은유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이다. 디킨슨은 참된 시적 강렬함을 지닌 삶은 소설적 허구보다 훨씬 더 극적이라고 확신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당시 여성들의 고뇌가 고딕적 공포보다 훨씬 더 심각했음을, 그리고 그에 대한 정도도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컸음을 알 수 있었다. 잠깐 벗어나 엘리자베스 개스켈과 더불어 우리나라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이 다른 여성들의 자아에 빙의 되는 장면은 이 책에서 언급한 자아분열과 같은 맥락으로써 이에 대해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인 듯 하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여성의 전유물로 취급하는 바느질에 대해 얘기한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아리아드네, 페넬로페, 램지 부인(등대로), 댈레웨이 부인, 디킨슨 등 모든 여자들에게 바느질(뜨개질)은 그들 삶의 고통을 숨기기 위해, 그리고 방어적인 바느질이 필요하지 않을 세계에 대한 전망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이 책에서 언급한 문학 작품들을 접하지 않았어도 읽는 데에 큰 무리는 없지만, 당연히 읽은 경험이 있다면 더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 샬럿 브론테의 <셜리>,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지 않아서 이 작품들에 대해 세부적인 얘기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세 작품을 읽은 후 해당 부분만 다시 발췌독을 해볼 요량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19세기 작품에는 감금, 스토커, 가스라이팅 등 현재 여성 범죄에서 보여지는 양상들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성은 여전히 현실적으로, 상징적으로 '자기만의 방'을 구현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순종을 강요 당하고 있다. 순종과 복종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자아를 각성하고 반기를 드는 순간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된다.


벽돌책임에도 읽는 동안 지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9세기 여성들의 작품을 얼마나 읽고 또 읽었을까. 분량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도대체 이 책을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존경어린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완독 후 만세를 외칠만큼 흠없이 완벽한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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