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폴리스맨
베선 로버츠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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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패트릭, 이 모든 얘기를 털어놓는 건 나와 톰 사이가 어땠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사이에 고통만이 아니라 다정함도 있었다는 걸 당신이 알도록. 우리 둘 다 실패했지만 우리 둘 다 노력했다는 걸 알도록.




매리언
열네 살에 처음 만난 톰에게 한눈에 반해 혼자 사랑을 키워왔다. 6년이 흘러 제대하고 경찰이 된 톰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친구 이상의 선을 절대 넘지 않았던 톰이 청혼하자 꿈같이 일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했다. 그에게 그녀보다 더 특별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패트릭
서른네 살, 우연한 작은 사고로 인해 스물두 살의 젊은 경찰과 만나게 됐다. 연인 마이클을 안타깝게 떠나보내고 움츠려들대로 움츠려든 그에게는 벼락같은 만남이었다. 첫눈에 알아본 연인.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리라, 나의 순경님에게. 두 사람은 그 어떤 연인보다 열렬히 사랑했다.  








소설은 1999년 가을에서 시작해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매리언과 패트릭의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점은 등장인물이다. 주요 인물인 세 사람ㅡ매리언, 패트릭, 톰ㅡ외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는 줄리아가 있다. 이들 중에 세 사람이 성소수자다. 즉 매리언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가까운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정이 공유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매리언만이 그들의 상황을 납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매리언이다. 세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매리언에게 그들의 성정체성이 노출되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매리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칼자루를 가차없이 휘두른다. 이처럼 성소수자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소설 전체의 흐름에서 나타내고 있다.  


그 안에서도 톰과 패트릭은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소설에서는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여성이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했던 당시 매리언이 교사직을 고수하겠다고 하자 톰과 패트릭의 의견이 엇갈린다. 패트릭은 매리언이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지만(사실 패트릭의 의도가 명확하지는 않다. 훗날 톰이 매리언과 결별하고 난 후에 그녀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일단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것인지, 진심으로 여성의 지위에 대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톰은 가장으로서 탐탁치 않게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톰의 직업이다. 그는 성소수자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범죄자로 잡아들이는 권력자인 경찰인, 한마디로 톰의 입장 자체가 모순된다는 것이다. 소설 전반에서 톰의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모습이 자주 보여진다. 아마도 톰은 자신의 직업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 그에 따른 폭력까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비겁해질 수 밖에 없었을 터다. 



소설에서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협박해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그들은 불특정다수에 의한 정체불명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다(지금이라고 뭐 얼마나 달라졌으랴마는). 여성으로서 차별적 시선을 느끼는 매리언조차 톰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울부짖으며 남편의 성정체성을 부정했고, 패트릭이 어쩔 수 없이 만난 정신과 의사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이라고 단정했다. 사람들은 동성애가 치료를 요하는 질병이자,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치료 가능하다고 여겼다. 


동성연애자는 범죄자,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여자는 혐오스러운 존재였던 시절에 어쩌면 그들의 불행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육체적 욕망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의 문제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정상성 범위 안에 있다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매리언은 많은 것을 잃는다. 그녀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누군가를 지키길 바랐던 그들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매리언이 죄책감으로 얼룩진 사랑에 진정으로 이별하는 그 순간이 너무 늦어 안타까웠다. 긴 세월 동안 그녀는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고단했을까.  


매리언의 고백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두 남자는 자신들이 매리언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들이 외면하고 기만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면 매리언을 용서할까. 지독하게 아픈 사랑의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읽었다고해서 일장 입바른 소리를 내뱉고 싶지 않다. 아마도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가 여전히 얼마나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그 편협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면할테니.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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