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
어맨다 고먼 지음, 정은귀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년 말부터 2021년까지,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전무후무한 팬데믹 시대를 지나왔다. 인류는 14세기의 흑사병, 20세기의 스페인 독감,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신종플루 등 전지구적 전염병 대유행을 겪어왔지만, 특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비드19는 역대 찾아볼 수 없는 전염력으로 인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2022년의 끝을 석 달 앞둔 현재, 많은 나라에서 코비드19 종식을 선언하고 있는 중이다. 


이 시집은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면서 다양한 지점에서 우리가 감내해야했던 수많은 상실과 고통을 직시하면서 이에 대해 탐구함과 동시에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에 무엇을 바탕으로 두어야하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스물세 살이라는 젊음이 돋보인다고 느껴질만큼 구성이나 형식이 독창적이다. 시인의 시어와 분위기는 무겁지 않으나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질병 자체보다 전염병에 대한 불안으로 더 피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악수와 포옹은 선물 같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코비드19가 한창일때 우리는 아무리 반가워도 가벼운 포옹은 고사하고 손끝조차 스치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일까. 여전히 악수를 위해 내미는 손이 때로는 무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한동안 본의 아니게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던 시기. 반강제적 고립은 인간을 마치 상동행동을 하는 감금된 동물처럼 만들었고,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는 사치가 되었으며, 사랑과 책임과 위로는 사라졌다. 어떤 목적도, 기능도 없이 사고가 멈춰버린 채 불안과 우울의 우물에 갇혀버렸다. 


시인은 코비드19 사태를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 한국인 한恨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깊고 짙은 슬픔과 충격을 안겼음을 얘기한다. 동시에 '집단기억'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과연 이 경험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묻는다. 경험을 잊고, 지우고, 검열하고, 왜곡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고통의 과정을 수반할지언정 서로에게 묻고 듣고 공유하며 그 경험이 반복되지 않도록 진실을 말할 것인가를. 포스트 코로나, 그건 우리의 선택이다.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과 소리없는 전염병의 전장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쟁, 전염병 와중에도 여전한 차별과 편견. 이것들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정당한 분노는 당연한 권리이고, 증오가 바이러스가 되지 않도록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할 목표는 보복이 아닌 회복, 지배가 아닌 존엄, 공포가 아닌 자유여야한다고 시인은 역설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편리함보다 본질과 더불어 살아야함을, 타인을 미워하고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더 나은 길을 모색해야 한다. 때로는 위기가 우리를 더 우리 자신이게끔 해주고, 아이러니하게도 고통과 슬픔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확인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생긴 일은 우리를 통해 생겼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늘 생을 품어왔고 살아남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를 형성하는 '관계' 안에서 더 나아질 것이다. 희망은 실질적인 실천을 대동해야 한다. 그전에 우리에게는 충분히 비통해할 시간이 필요하다.  


ㅡ 


시집을 읽으면서 코비드19 발병 직후부터 지금까지, 각종 매체에서 보도되었던 내용들과 개인적인 일상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누군가 밀폐된 공간에서 코를 훌쩍이거나 기침이라도 하면 의심 가득한 가자미 눈을 뜨고, 마스크 대여섯 장을 사기 위해 100미터 이상 줄을 서는 것을 감수하며, 확진자는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당했던 어처구니 없었던 시절. 한겨울 발병한 전염병. 마스크를 쓰고 여름을 나야할 우려가 무색하게 어느새 두 번의 여름을 거쳤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2년을 지나왔다.   


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발견한 건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시인은 전쟁과 팬데믹의 첫걸음은 고립과 단절이라고 얘기한다. 무기와 흉기를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이보다 더 극단적인 폭력이 있을까. 이보다 더 인간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있을까. 더더욱 무서운 것은 어느새 이러한 현상들이 지속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우리 스스로 서로를 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온건한 전쟁은 없으며, 내던져질 수 없는 평화는 없다는 시인의 말이 격하게 와닿는다.  


시인은 팬데믹 뒤에 숨은 진짜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우리의 이야기를 소리내어 이야기하고, 쓰고,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의 제목처럼 우리는 서로를 불러줘야 한다. 그 부름이 모두를 존재하게 할 것이다. 또한 타인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해 줄 것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