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이종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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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 일곱 작품이 실린 소설집이다. 
여성의 가족, 직장, 관계에 있어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긴장과 공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소설에서의 오컬트 요소와 공간에서 오는 음산함은 독자가 섬뜩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나는 표제작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과 실린 작품 증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커튼 아래 발>, 그리고 <언니>가 인상적이었다. 


술 취한 남자가 휘두른 빈 쇼핑백에 젊은 남자가 사망했다. 쇼핑백 안에는 과연 아무것도 없었을까? 현장 목격자인 진아가 빈 쇼핑백에 맞아서 죽은 남자를 잊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외상이 없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피가 철철 흐르는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 역시 남편이 휘두르는 보이지 않는 빈 쇼핑백에 맞고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그 빈 쇼핑백 안의 내용물은 휘두르는 사람에 따라, 혹은 피해자에 따라 달라질 터다. 분노, 증오, 외로움, 상실, 고통, 절망 등 대상을 가지리 않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우리는 얼마나 두드려 맞고 사는지.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충격과 고통, 상실감도 클텐데, 범인이 자기를 스토킹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은 살아 남은 자에게 죄책감까지 지운다. 스토커를 두고 '특별히'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어떤 조처도 취해줄 수 없다는 경찰의 말, 얼마나 특별한 해를 끼쳐야 사건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살펴보려나. 


어린시절부터 강박증이 있는 엄마의 부당한 편애 피해자인 딸은 마흔 살이 되도록 상상할 수 없는 언어폭력을 당한다. 마흔 살 딸이 운신도 자유롭지 못한 일흔 살 엄마한테 가정폭력을 당한다면 누가 믿기나 할까? 중년의 딸은 엄마를 위해 자기가 얼마나 큰 것을 포기했는지 몰라주는 것에 대해 서러워 새벽까지 울지만, 엄마가 그녀에게 포기하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엄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녀는 누구의 강요도 없이 결국 엄마를 선택했다. 왜일까?  


노년에 접어든 남자에게 자신은 당신과 다르게 살 거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비정규 계약직을 전전하는 현재의 삶에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다. 죽어서도 밥벌이 터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인생이여.  


ㅡ 


혐오와 질투, 동경, 편견, 콤플렉스 등 욕망을 흔드는 감정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불편함과 자괴감 등 작가는 독자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 안에서 일어나는 여성 혐오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볼 필요성을 갖게 한다. 


귀속말로 들리는 낯선 목소리, 철창 같은 거울, 커튼 밑으로 보이는 두 개의 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DM. 이들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구속과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들과 일상에 스미듯 부유하는 공포를 상징한다. 


​언제까지 욕망을 스스로 거세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좀더 나은 인간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기의 무능함을 탓하며 스스로를 학대해야하는 걸까. 또한 가정과 직장 내 혹은 여타의 관계에서 조여오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폭력과 학대를 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또한 '맞을 만한' 사람은 더더욱 없다. 우리를 불안과 공포로 밀어 넣는 일은 누군가 던진 아주 사소한 한 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잊지 않기를.  


책을 덮고 나니 처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을 읽었을 때가 기억났다.
오랜만에 대놓고 추천!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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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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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테트가 이끄는 무리는 희망호를 타고 티무르의 거대한 쥐군단을 피해 프랑스를 출발해 미국 뉴욕 도착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이미 쥐들한테 잠식된 상태. 바스테트는 회의를 소집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돌아가자니 티무르의 쥐군단이 기다리고 있고, 미국으로 들어가자니 적의 실체를 알 수 없어 불안하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 쥐떼보다 더 강력한 쥐떼들이 몰려와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까. 








 
인류종말을 다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쾌활하기 짝이 없다. 꽤 잔인하고, 꽤 우울한 내용이지만 작가는 무겁지 않게 그리고 있다. 앞선 두 작품ㅡ고양이, 문명ㅡ을 읽지 않아서 바스테트에게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행성>에서 보여지는 그녀는 어딘가 허점이 많다.  


일단 전투에 패하지 않기 위해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여차해서 여신의 존재인 자기가 죽기라도 하면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리게 되므로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기에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라는데... . 공격해 오는 미국 쥐의 무모함에 그 대가를 치르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고작 머릿수 274의 이방의 존재로서 어떻게 그런 천하태명한 말을 하는지. 이러한 철부지같은 말들이 귀엽긴 하다. 지상의 모든 동물 종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바스테트 목표의 맹점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자기를 숭앙하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에 있다.


ㅡ 


미국에 살아 남아 있는 인간들은 부족주의를 근간으로 102인 대표단을 구성하고 있다. 의장은 몇 개의 안건을 표결에 부치는데, 마지막 안건이 핵심이다. 내용은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에 대한 구분이다. 원주민은 '시민' 자격을, 이주민은 '거주민' 자격을 두어 이주민이 공동체에 완벽히 '동화'되어 유익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자는 것인데, 이는 인권과 상반되고 차별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시민은 물과 음식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 있어서 우선적인 사용권을 갖으며 시민들의 필요를 먼저 충족시키고 남은 '여분'에 대해서 거주민들이 사용권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이는 만장일치로 통과되는데, 정작 '시민의식'과는 정반대로 역행하는 모습이다. 또한 바스테트가 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고 작전이 성공할 시에 즉시 103번째 고양이 부족 대표로서 총회에 받아 달라고 요청하는데, 이 와중에 백인 대표단 의장이 바스테트의 품종이 순종인지 잡종인지를 따져묻는 장면도 위와 다르지 않다.


그간 읽어본 작가의 작품에는 '뇌' 혹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이번에도 간접적 장치로 사용하는 듯 하다.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안티바이러스 개발이 성공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감염되었던 파일들이 모두 삭제당했다. 인터넷 통신이 가능해진 대신 그동안의 기억(사진, 음악, 영상 등)이 모두 소실되는데, 이로써 인류의 역사는 바스테트가 갖고 있는 ESRAE가 유일하다. 이 설정은 독재를 선호하고 자기를 숭앙하라는 바스테트의 가치를 더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인류가 두어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뉴욕 쥐들의 개체 번식 방식은 인간의 축산 공장을 연상시킨다. 우수 형질을 가진 수컷과 암컷의 교배와 번식을 독려하는 한편, 열등 형질의 새끼는 제거한다. 신체 건강하고 공격성을 갖춘 수컷은 교배의 기회가 주어지고 허약하고 순한 수컷은 자동 거세당한다. 암컷은 새끼들을 낳기만하다가 죽는다. 이 장면은 여타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바스테트와 동료들은 얼떨결에 달려온 포로에게 제3의 눈을 만들어 주고 '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는 '폴'에게 지식을 나눠줌과 동시에 바스테트 자신, 티무르 같은 존재가 하나 더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2권에서 '폴'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ㅡ 


바스테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 캐릭터와는 조금 다르다. 독재를 지지하며 절대지존이 되기를 꿈꾸고, 필요 이상으로 자존심이 강하며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연민과 동정이 뭔지 모르는, 그래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대의보다 일신을 더 우선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독재자 기질을 갖고 있다. 바스테트는 완성된 영웅이 아니고 경험과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영웅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좀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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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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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0년 5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먼 히스파니아의 집정관급 총독으로 부임했고, 로마는 보니파가 실권을 쥐었으며, 와해되고 있다. 






원로원 보니파가 카이사르의 다음해 집정관 선거에 출마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하건만 이 사람, 늘 예상을 벗어난다. 미련없이 개선식을 포기한다. 카이사르가 지적하는 원로원의 정치적 행보는 로마 제국과 로마의 국고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동료 혹은 정적을 겨냥해 몰락시키거나 극소수의 특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며 그에 대한 피해자는 로마라고 말하는데, 이는 현대의 정당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3권의 핵심은 카이사르의 토지 법안이다.
원로원의 검토를 받고자 제출한 카이사르의 토지법안의 내용과 취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로마는 인구과잉에 시달리고 있고, 분배 곡물은 국고가 부담하기에 버기울 지경에 처해 있다. 폭동과 불안이 만연해 빈민에게 군입대 말고도 다른 기회를 제공하여 인구과잉을 해결해야하는 게 현실이다. 또한 한곳에 정착해 평화롭고 생산적인 시민이 되기를 기다리는 퇴역 군인이 50만여 명이다. 카이사르가 발표한 법은의 내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대 토지로 정착한지 오랜 된 캄파니아 공유지와 로마 군단의 주요 훈련 장소인 카푸아 근처의 공유지를 제외한 이탈리아 반도의 모든 공유지를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고는 동방 속주의 세수가 크게 늘어 사유지를 대량 매입하는 데에 자금이 충분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음을 확인시키고, 이에 따른 조건으로 토지 소유주에게 매매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로부터 분배 토지를 받은 자는 20년 동안 그 땅을 팔거나 떠날 수 없음을 명시한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토지 매매와 분배에 일절 관여치 않기 위해 이 업무를 스무 명의 상급 기사와 원로원 의원으로 구성된 판무관단에게 맡기자고 제안하고, 이를 통과시킨다. 삼두연합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율리아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감수할 수 있는 딸이다. 아우렐리아는 율리아가 아버지를 사랑해서라고 말하지만, 할머니로부터 가문을 위해 파트리키 집안의 여성이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교육받아온 점을 따져보면 과연 아버지에 대한 순전한 사랑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카이사르는 율리아가 브루투스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해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아우렐리아의 말에, 그렇다면 자기는 견딜 수 없을 거라고 소리치는데 왠지 나는 작가가 지나치게 카이사르한테 호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가 이 혼사에서 딸의 행복을 우선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율리아와 폼페이우스의 결혼을 성사시킨 후 좋아하는 아우렐리아와 카이사르의 모습이 그다지 썩 아름답지는 않다.내 기분이 어떻든 폼페이우스와 율리아는 결혼을 결정하고 이틀 후에 이뤄진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스물아홉 살이다(카이사르도 얼마 후 열여덟 살 칼푸르니아와 재혼한다). 아우렐리아는 이 소식에 비수를 꽂을 사람이 브루투스가 아니라 세르빌리아일 거라고 예상하지만, 천만에 말씀. 브루투스의 비수는 정확히 아주 먼 훗날 카이사르를 향하게 될 것이었다. 물론 이 파혼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보니파와 폼페이우스의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끼어 있는 키케로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키케로의 평생 숙적이 될 클로디우스가 파트리키의 신분을 버리고 평민이 되었다. 카이사르 덕분에 평민의 신분을 얻은 클로디우스가 호민관이 되면 폼페이우스를 겨냥해 카이사르의 법안을 모두 철폐시키겠다고 벼르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엉킨 실타래처럼 제 잇속대로 맺고 끊기를 반복하는 피터지는 정치판에서 키케로는 참으로 오랜 시간 살아남는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거기다 그의 죽음 역시 이미 죽은 카이사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니, 역사란 알 수 없는 럭비공이다. 아무튼 키케로는 클로디우스가 재판 없이 로마 시민을 처형하지 못하게 하는 비특별법을 통과시키자 자발적 추방을 선택해 도망갔다.  


카이사르가 브리간티움을 종횡무진 다니며 중요하게 여긴 것은 금이 아니라 로마의 영향력 확대였다. 카이사르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탈리아 갈리아를 원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곳에서 군대를 더 모집해 침략 전쟁을 통해 위대한 정복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집정관 임기가 끝나고 원하는 곳으로 임지를 정한 카이사르는 두 달 동안 마스르 평원에서 자기가 만든 법안이 안전하게 유지되는지 지켜보다가 3월, 먼 갈리아로 말을 달렸다.  

카이사르의 여성편력은 정치적 루머를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의 여성편력은 기정사실이 됐다. 카이사르의 스캔들 대부분은 돈과 불륜이었다(상대가 모두 유부녀였으니 카이사르가 상처한 뒤에도 달라질 건 없었다). 하다못해 나중에는 이집트 여왕 사이에서도 아들이 태어나니, 개인적 소견으로 그의 여성편력은 정치적 루머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5부, 드디어 갈리아 원정기의 시작이다.  



사족
1. 아우렐리아와 카이사르. 닮아도 너무 닮았고, 달라도 너무 다르다. 모자이길 망정이지, 적으로 만나지 않은 게 서로에게 얼마나 다행인가.
2.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와의 전쟁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 제 명을 제가 재촉했다.
3. 아우렐리아, 세르빌리아, 칼푸르니아, 율리아가 식당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데, 이 조합이 식당에서 즐겁게 식사할 조합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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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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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1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겨레>에 연재한 글 26편을 모은 것으로서 가족, 전쟁포로, 일본어, 돈, 죽음, 사랑 등 26개의 주제로 스물네 명의 문학평론가와 시인이 참여했다. 김수영 평전 축약본같은 느낌도 든다.  










1921년에 태어난 김수영은 우리말보다 일본어가 더 익숙하고, 해방 후 오히려 우리말이 낯설은 세대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청년기에 해방을 맞고, 전쟁까지 겪은 그가 언어 이민를 통해 일본과 냉전의 억압, 전쟁 후 미국의 억압,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해 직시한다. 김수영은 자신과 같은 세대의 사람이 일본어로 글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민족과 민중 의식이 없다는 해석은 왜곡이라고 말한다. 그가 위태롭게 본 것은 우물 속 개구리 같은 민족과 민중 개념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작가들에 대한 좁은 시각과 편견을 우려하면서, 일본어로 부조리한 역사를 기록하는 작가들이 있음을 언급한다. 김응교 시인이 쓴 글, '지리멸렬의 시대에 유대인 카프카가 써야 했던 독일어처럼, 김수영에게 일본어는 소수자 언어가 아닐까. '친일문학=일본어 사용 / 민족문학=한국어 사용'이라는 낡은 이항대립은 그의 글쓰기 앞에서 박살 난다. 양극단 사이에서 아픈 몸으로 걸으며, 이국어를 통해 세계 지성을 습득하고, 결국 그는 모국어로 거대한 뿌리를, 아프지 않을 때까지, 온몸으로 썼다.'는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두 번의 이주 경험을 통해 김수영은 본인이 살던 세계에서 바라던 것들을 버려두고 돌아와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떠한 의식과 감정에도 과잉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현실의 이면을 들춰내 환기한다. 김수영은 산문 <내가 겪은 포로 생활>에서 포로는 인간이 아니었고 생명이 없는 것이었다고 썼다. 포로수용소는 전쟁터와 다름없이 참혹한 곳이다. 석방 후 포로수용소의 처참함을 알 리 없는 이들과 섞여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던 김수영은 자신을 저 혼자 돌아가는 팽이에 빗대어 표현했다. 수용소의 처참함을 당연히 알 리 없건만, 그럼에도 나는 팽이에 빗댄 그의 심경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김수영에게 전통은 불완전한 시간이요, 결여의 대상이면서 바로 보아야 할 역사이자 삶의 태도였다. 이는 앞서 얘기한 언어에 대한 인식과 이어진다. 문학적 본질 속에 전통이 내재되어있고, 그것을 일상적 언어와 고유한 내면으로 승화해야 함은 역사가 곧 인간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ㅡ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분단, 냉전과 이념, 혁명과 반동의 역사 등 평생 이분법적 대립에서 갈등한 김수영은 이에 대한 해소가 시대의 과제이자 시의 과제로 인식했고,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꽃을 통해 은유한다. 김수영이 관찰하는 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즉 생명과 죽음과 살고자하는 의지(혁명)와 자유의 몸짓이다.  


시 <"김일성만세">를 통해 시인은 불온사상을 인정하는 것이 언론 자유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치적 사상을 몰아내고 개인의 신념의 여부와 관계없이 문학의 공간이 보장되어야만 시인(뿐만 아니라)이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저항과 혁명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김수영에게 어떤 수식을 붙인다면 혁명시인 쪽이 더 어울린다고 썼다. 비록 전투적인 혁명을 주도하는 문인이었다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반공을 강조하는 군사정권 시대에 시인과 예술인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주장하고, 5.16쿠데타 이후 혁명을 실패한 과거가 아닌 미래에 되살아날 것임을 시로써 노래한 그가 혁명시인이라는 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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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동하거나 해결책을 찾아나서지 않는다. 그는 산문 <일기초>에서 '돈을 버는 일에 게을러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의무'이며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제일 불손하고 욕된 시간'이라고 썼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돈에 초연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 '돈'을 통해 경제적 궁핍에 정신적으로 시달렸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의 설움은 이 모순에서 비롯된다. 엄경희 문학평론가는 김수영이 이러한 모순에서 오는 설움을 감내하고 그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토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자발적 선택이자 자발적 소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이 설움은 긍지를 포함한 정념이라고 본다. 이러한 정신의 결연함을 통해 생활에 흡수되지 않은 자의 정신세계를 보존했던 것이라고. 


김수영은 밥벌이를 위한 번역을 '세상에서 가장 욕된 시간'이며 '지긋지긋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번역은 그에게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기에 모멸감을 안긴 존재였지만 동시에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고 했을 만큼 타자와의 소통의 수단이자 진정으로 세계를 호흡하는 창구였다. 


김수영은 작가로서 자신을 신경 쓰이게 하고 혼동시키며 지속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문제 세 가지를 든다. 죽음과 가난과 매명이다. 가난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문제이자 자본주의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다.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더 나아가 부자가 되기 위해 매문과 매명을 한다. 김수영은 이에 대한 비굴과 허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 뿐만 아니라 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김행숙 시인은 이 대목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얘기한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언급하는데, 경제활동이 직.간접적으로 어려웠던 여성이 글쓰기에서 배척되어왔던 현실과 김수영 시인이 처한 상황은 결이 조금 다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 예술가의 활동을 박탈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할테지만.  


ㅡ 


김수영은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모습과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와 입장 등 스스로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가장의 입장에서) 가족에 대한 기대나 집착, 사물, 사랑과의 거리두기의 필요성을 말하는데,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다. 동시에 한때 그릇되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를 살아온 앞선 세대를 비판하면서도 점차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의 모습에 닮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함을 얘기하는 것으로 읽혔다. 


ㅡ 


김수영은 관념보다는 '온몸'으로 쓰는 '신체적 글쓰기'를 했다. 그는 죽음을 삶에 대한 각성의 계기로 삼았고, 죽음은 각성된 생명과 새로운 출발을 독려하는, 한마디로 삶을 깨어 있게 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구체적 현실의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아의 한계를 온전히 깨닫는다. 김수이 문학평론가는 김수영을 통해 사랑과 욕망이 공존하는, '인간의 복잡성이자 모순이며 문학사의 난제'를 말하는데, 여기에 무척 공감한다. 



이 책의 부제가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인데, 개인적으로 스물여섯 편의 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성찰 '혁명' '자유'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돌아보고, 사회를 돌아보며 물질주의에 함몰된 세상의 성찰과 성찰을 통해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혁명과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자유. 이것이 김수영을 대변하는 단어들이 아닐까싶다.  




 사족 

김수영의 아내를 대상으로 하는 여성혐오, 그리고 그와 동일시 하는 자기혐오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시인으로서 돈의 속박에서 자유롭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가 자격지심이 되어 생활력이 강한 아내를 통해 스스로를 향한 분노를 쏟아낸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에 대한 글을 쓴 노혜경 시인이 말한 대로 그가 폭력가장임은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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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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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의 검토를 받고자 제출한 카이사르의 토지법안의 내용과 취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로마는 인구과잉에 시달리고 있고, 분배 곡물은 국고가 부담하기에 버기울 지경에 처해 있다. 폭동과 불안이 만연해 빈민에게 군입대 말고도 다른 기회를 제공하여 인구과잉을 해결해야하는 게 현실이다. 또한 한곳에 정착해 평화롭고 생산적인 시민이 되기를 기다리는 퇴역 군인이 50만여 명이다. 카이사르가 발표한 법은의 내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대 토지로 정착한지 오랜 된 캄파니아 공유지와 로마 군단의 주요 훈련 장소인 카푸아 근처의 공유지를 제외한 이탈리아 반도의 모든 공유지를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고는 동방 속주의 세수가 크게 늘어 사유지를 대량 매입하는 데에 자금이 충분기 떄문에 큰 무리가 없음을 확인시키고, 이에 따른 조건으로 토지 소유주에게 매매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로부터 분배 토지를 받은 자는 20년 동안 그 땅을 팔거나 떠날 수 없음을 명시한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토지 입과 분배에 일절 관여치 않기 위해 이 업무를 스무 명의 상급 기사와 원로원 의원으로 구성된 판무관단에게 맡기자고 제안한다. 


카토와 비불루스는 말을 잃었다. 비불루스는 카이사르가 술피키우스법 혹은 룰루스법을 고쳐서 들고 나오기를 바랐으나, 카이사르가 그렇게 허투른 사람이던가. 카토는 카이사르가 검토를 바라고 제출한 100장이 넘는 법안을 잘근잘근 씹어서 읽어서 함정을 찾아내리라 벼르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같은 성정을 갖춘 카토의 시각에서 보자면 카이사르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성적으로 난잡하고(카토 관점에서), 규율 따위는 무시하는 듯 하다가도 귀족적 자부심과 로마법은 충실한 사람으로 도대체 종잡을 수 없고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앞뒤, 겉과 속이 한결같은 카토가 얼마나 싫어할지 짐작이 된다. 그래도 잘한 건 인정하고 협업을 해야지, 어떻게든 파헤치려고만 하면 되겠나. 그야말로 현재의 정당 정치를 보는 것 같다. 다르다면 카토는 개인의 잇속 때문이 아니라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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