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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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테트가 이끄는 무리는 희망호를 타고 티무르의 거대한 쥐군단을 피해 프랑스를 출발해 미국 뉴욕 도착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이미 쥐들한테 잠식된 상태. 바스테트는 회의를 소집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돌아가자니 티무르의 쥐군단이 기다리고 있고, 미국으로 들어가자니 적의 실체를 알 수 없어 불안하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 쥐떼보다 더 강력한 쥐떼들이 몰려와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까. 








 
인류종말을 다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쾌활하기 짝이 없다. 꽤 잔인하고, 꽤 우울한 내용이지만 작가는 무겁지 않게 그리고 있다. 앞선 두 작품ㅡ고양이, 문명ㅡ을 읽지 않아서 바스테트에게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행성>에서 보여지는 그녀는 어딘가 허점이 많다.  


일단 전투에 패하지 않기 위해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여차해서 여신의 존재인 자기가 죽기라도 하면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리게 되므로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기에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라는데... . 공격해 오는 미국 쥐의 무모함에 그 대가를 치르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고작 머릿수 274의 이방의 존재로서 어떻게 그런 천하태명한 말을 하는지. 이러한 철부지같은 말들이 귀엽긴 하다. 지상의 모든 동물 종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바스테트 목표의 맹점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자기를 숭앙하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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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아 남아 있는 인간들은 부족주의를 근간으로 102인 대표단을 구성하고 있다. 의장은 몇 개의 안건을 표결에 부치는데, 마지막 안건이 핵심이다. 내용은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에 대한 구분이다. 원주민은 '시민' 자격을, 이주민은 '거주민' 자격을 두어 이주민이 공동체에 완벽히 '동화'되어 유익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자는 것인데, 이는 인권과 상반되고 차별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시민은 물과 음식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 있어서 우선적인 사용권을 갖으며 시민들의 필요를 먼저 충족시키고 남은 '여분'에 대해서 거주민들이 사용권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이는 만장일치로 통과되는데, 정작 '시민의식'과는 정반대로 역행하는 모습이다. 또한 바스테트가 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고 작전이 성공할 시에 즉시 103번째 고양이 부족 대표로서 총회에 받아 달라고 요청하는데, 이 와중에 백인 대표단 의장이 바스테트의 품종이 순종인지 잡종인지를 따져묻는 장면도 위와 다르지 않다.


그간 읽어본 작가의 작품에는 '뇌' 혹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이번에도 간접적 장치로 사용하는 듯 하다.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안티바이러스 개발이 성공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감염되었던 파일들이 모두 삭제당했다. 인터넷 통신이 가능해진 대신 그동안의 기억(사진, 음악, 영상 등)이 모두 소실되는데, 이로써 인류의 역사는 바스테트가 갖고 있는 ESRAE가 유일하다. 이 설정은 독재를 선호하고 자기를 숭앙하라는 바스테트의 가치를 더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인류가 두어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뉴욕 쥐들의 개체 번식 방식은 인간의 축산 공장을 연상시킨다. 우수 형질을 가진 수컷과 암컷의 교배와 번식을 독려하는 한편, 열등 형질의 새끼는 제거한다. 신체 건강하고 공격성을 갖춘 수컷은 교배의 기회가 주어지고 허약하고 순한 수컷은 자동 거세당한다. 암컷은 새끼들을 낳기만하다가 죽는다. 이 장면은 여타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바스테트와 동료들은 얼떨결에 달려온 포로에게 제3의 눈을 만들어 주고 '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는 '폴'에게 지식을 나눠줌과 동시에 바스테트 자신, 티무르 같은 존재가 하나 더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2권에서 '폴'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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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테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 캐릭터와는 조금 다르다. 독재를 지지하며 절대지존이 되기를 꿈꾸고, 필요 이상으로 자존심이 강하며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연민과 동정이 뭔지 모르는, 그래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대의보다 일신을 더 우선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독재자 기질을 갖고 있다. 바스테트는 완성된 영웅이 아니고 경험과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영웅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좀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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