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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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 치엔은 캘리포니아 차이나타운의 중의다. 동서양 의학을 접목시켜 인정받는 의사였으나 인종과 이민자 차별에 의해 종합병원에서는 고용되지 못했다. 차이나타운에서 명성이 자자한 덕분에 그는 차이나타운의 어린 매춘 노예들을 빼돌려 캘리포니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당들'에게는 거슬리는 일이었지만, 그들도 타오에게 진료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 그가 경찰을 끌어들이지 않는 한 묵인했다. 유일하게 타오를 공공의 위험인물로 여기는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성공한 포주인 '아 토이'였다. 그에게는 손익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였다. 이는 타오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영국과 칠레 혼혈인 엘레사와 중국인 타오의 결합을 온전히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은밀하게 불교식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두 자녀 럭키와 린은 서류상 사생아로 올라가 있었다. 중국인을 개처럼 받아들이는 미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두 아이들은 어머니의 성 소머스를 물려받았다. 타오는 평생을 미국 땅에서 보냈어도 죽은 뒤 몸은 홍콩에 묻히기를 소망했다.  


타오는 의원을 운영하고, 엘리사는 찻집을 경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았다. 하지만 타오의 수입은 대부분은 중국인 일용 노동자들이나 매춘부 소녀들을 구하는 데 쓰였기 때문에 엘레사의 수입이 가족을 부양했다. 엘리사는 아이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동화되어 중국인이나 히스패닉계가 겪는 제약을 격지 않고 살기를 바랐다. 인종 때문에 배척당한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은 린은 그녀의 바람대로 성장했지만 럭키는 자기 혈통에 대한 자긍심으로 어머니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타오는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인내가, 정의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엘리사 역시 타오가 가진 신념과 낯선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부부의 한평생은 살면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해와 배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두 사람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참 아름다운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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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7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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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혁명은 중단되어야 하고 공화정이 시작되어야 해. 헌법에는 의무 대신 권리가, 도덕 대신 안녕이, 처벌 대신 정당방위가 들어가야 해. 또한 모든 개인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고, 자신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해. 개인이 똑똑하건 똑똑하지 않건, 교육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선하건 악하건 상관없이 국가는 그걸 보장해야 하네. (...) 인간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해. 물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거나, 타인의 즐거움을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 (에로 드 세셸) 



얼마 전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에서 헤세가 추천한 뷔히너의 세 작품이 모두 들어있는 책이다. 이름만 들어본 작가였는데, 헤세가 무려 세 작품이 추천했으니 궁금해 한 번은 읽어봐야지 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기를 시작한다.  


첫 작품은 <당통의 죽음>. 제목을 읽고 아마 조르주 당통에 대한 이야기지싶었는데, 맞다. 희곡은 마라의 죽음 이후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대립이 절정에 다다르는 시점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코뱅 클럽에서 하나로 시작되었으나 분열되어 지롱드당과 자코뱅당의 대립만으로도 모자라 자코뱅당 내에서 극좌파에 해당하는 산악파까지, 정치 파벌과 참혹한 살육은 끝을 모른다.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단두대에 세우고, 계급과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밧줄에 목을 매단다. 피가 피를 부르는 싸움에 시민들까지 다 때려죽이기에는 단두대의 칼날이 너무 느리다고 외친다. 아비는 고주망태, 무기력한 어미, 매춘으로 부모를 먹여살리는 어린 딸. 이 아귀다툼 와중에 곤두박질치는 건 민초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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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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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나의 장남 마티아스 로드리게스 데 산타 크루스는 유럽의 유명 박물관을 모두 섭렵하여 예술에도 일가견이 있고 고전 시인이라면 누구의 시든 한 편쯤 읊을 수 있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집 안의 서재를 이용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댄디하게 말끔한 차림새와 자유로운 영혼까지,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최고의 배필감이라고 여겼지만 정작 본인은 독신주의자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성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거리낌없이 직업 여성을 찾았다.  


마티아스는 시를 무척 좋아하고 시구의 아름다움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비관적이고 음울한 광기에 매료되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런 면에서 세베로와는 아주 달랐다.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는 마티아스 때문에 골치를 앓고 파울리나와 펠리시아노.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사촌지간이다. 이성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이며 보이는 것을 믿는 세베로, 지나치다싶을만큼 감성적이고 스스로를 학대하고 위악을 덮어쓰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마티아스.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인생의 행로를 걷게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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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 샬럿 퍼킨스 길먼 단편선 에디션F 4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임현정 옮김 / 궁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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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누런 벽지>를 포함한 단편 스무 작품이 수록됐다. 작가 본인이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사회개혁가였던만큼 수록작에는 우리가 부딪쳐왔던 고정관념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있다. 작가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 방식이 역설적이든 비유적이든 상당히 직접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휴식을 강요하고 신경과민이라고 강제하는 남편에 의해 정신적으로 파멸하는 여성, 여성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한발 더 나아가 사교장에서 춤추고, 산책 몇 번 했다고 대뜸 청혼을 받아들여한다고 우기는 남성 등을 시작으로 당시 만연했던 여성 차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천사를 여성에 비유해 천사가 지성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열망하면서 한 종족으로서의 천사가 멸종했음을 말하는가하면, 실질적 가사노동과 양육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가정의 경제 설계까지 여성이 거의 혼자 전담하면서도 가장의 역할과 경제적 권한은 남성이 독차지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가출한 여성은 무조건 남자와 떠났을 거라는 근거없는 추측과 편견, 가사 노동과 육아로만 하루 일과가 이루어진 여성의 독백을 반어적인 감성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모성애가 본능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엄마의 자격>에서는 이를 두고 상당히 모순적이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설전이 벌어진다. 에스더는 마을 세 곳의 천오백 명에 가까운 인명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한테 모성애가 없다는, 여성적이지 못하다는, 심지어 제 아이를 지키지 못해 아이가 마을 사람들의 짐이 되었다는, 그래서 그녀는 엄마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숭고한 죽음이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의 욕구를 인정하며 자유롭게 사는, 무엇보다 가족애를 넘어선 이타심을 가진 에스더 가족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별난 가족일 뿐이다.  



똑같이 일을 해도 가사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여성의 몫이다. 남편 혹은 연인을 사랑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 이유로 가사 출산 양육이라는 부담을 거의 혼자 감수해야하는 것이 타당한가? 청혼하는 여인의 예술성을 지지하기 위해 결혼 후 요리를 담당하겠다는 남성. 가사 노동을 분담하겠다는 이 남성의 친절함은 당연한 것임에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도 되는지를 자문하는 말다의 혼잣말에 더 씁쓸해진다.   


엘더 씨(엘더 부인의 계획)나 솔로몬 씨(솔로몬 가라사대)처럼 배우자의 말을 곧바로 납득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여성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누런 벽지>의 '나'에 더 가까울지도 모를 일이고. 이 책에서 <전혀 다른 문제로 바뀔 때>는 영리한 작품이다. 남성들을 앞에 두고 남녀의 입장을 바꿔서 서술하는데, 이 말을 들은 남성들의 우격다짐이 볼만하다. 이와는 다르게 작가는 <다섯 소녀>를 통해 여성들이 지향해야하는 지점을 짚는다. 


스무 편의 소설들을 전반적으로 봤을 때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여성의 경제력이다. 그는 여성에게도 그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돈과 경제활동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동업 관계>에서는 벌어다주는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사업을 하겠다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경제활동은 단순히 돈을 번다는 의미를 넘어 일 자체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또한 부부 서로가 원하는 일을 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는 비단 돈 뿐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소설에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여성들이 많다. 이는 당시 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능력이 사장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자립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일 하는 여성보다는 전업주부가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가사 노동에 금전적인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며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가사 노동과 육아는 개인이든 사회든 반드시 누군가가 해야 할, 방치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가족구성원이 공평성을 따지며 마지못해 나눠서 해야하는 하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 활동과 집안 일(가사, 양육, 교육을 포함한)의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그 균형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우리의 고민에 얼마간의 도움을 준다. 다만 소설들이 출간된 시기를 고려할 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고, 확장시켜 사고하는 것은 독자 개인의 몫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균형의 노력은 어느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과 국가가 함께 움직여야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ㅡ 


비록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점은 등장하는 하녀들마다 모두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하녀가 노예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작품들이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임을 감안할 때 부자연스러운 바는 아니지만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의식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파블스 씨의 마음>은 현대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상황이자 우리가 생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남편은 자기의 욕구를 누르고 가족 부양에 온 힘을 쏟는다. 그런데 정작 아내는 현재 생활에 있어서 남편의 헌신에 대한 감사는 없다. 남편은 아내에게 구태한 여성성을 강요하며 혼자서 죽도록 일하고 중년이 넘어서는 인생무상을 토로한다. 아내는 가정 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점점 잃어가면서 동시에 여러 면에서 지나치게 남편에게 의탁하는 자신을 자조한다. 결과적으로 길게 봤을 때 상대에 대한 헌신에 대해 감사하지도 않고, 두 사람 모두 만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가정 생활이 달라져야한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이 맨 마지막에 실려 있어 좋았는데, 마치 앞의 소설들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새삼 멋지게 늙고 싶어졌다. 



사족.
노년에 접어든 여성은 자식에게 의탁하거나 남겨진 유산으로 살아갈 거라는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깨트려준 모리슨 씨에게 박수를!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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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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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에 존경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세베로 델 바예는 어찌할 바를 모르던 어머니에 의해 카톨릭 학교로 보내진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 아들을 어머니는 다시 군대에 보냈고 그는 예비역 장교로 제대했지만, 여전히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고 다녔다.  


당시 비타협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겪고 있었던 칠레는 젊은이 사이에 퍼져나가는 자유주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귀족이자 극우파였던 델 바예의 집안에서 보헤미안처럼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세베로를 그냥 놔둘리 없었고, 집안의 어른들이 나서서 그를 미국에 있는 파울리나 고모에게 보내기로 합의한다. 그런데 벌로 보내는 미국행이었건만 세베레는 쾌재를 부른다. 보수주의자가 사탄이라고 믿으면서 칠레를 변화시키고 정화하고 싶었던 세베로는 미국에서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싶었던 차였다.  


세베로가 미국에 도착하자 파울리나는 그를 군대로 보내버리라는 집안의 지시와는 다르게 조카가 원하는대로 변호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세베로는 파울리나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성장한다.  


ㅡ 


세베로도 보통내기는 아니다. 할아버지의 밀서를 뜯어서 먼저 읽고 바다에 던져버리고 위조해서 고모에게 보여주다니. 그 고모에 그 조카라서 그런가. 단박에 위조 편지를 알아챈 파울리나도 평범치 않고,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조카를 이해해주는 모습이 멋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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