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벽지 - 샬럿 퍼킨스 길먼 단편선 에디션F 4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임현정 옮김 / 궁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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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누런 벽지>를 포함한 단편 스무 작품이 수록됐다. 작가 본인이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사회개혁가였던만큼 수록작에는 우리가 부딪쳐왔던 고정관념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있다. 작가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 방식이 역설적이든 비유적이든 상당히 직접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휴식을 강요하고 신경과민이라고 강제하는 남편에 의해 정신적으로 파멸하는 여성, 여성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한발 더 나아가 사교장에서 춤추고, 산책 몇 번 했다고 대뜸 청혼을 받아들여한다고 우기는 남성 등을 시작으로 당시 만연했던 여성 차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천사를 여성에 비유해 천사가 지성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열망하면서 한 종족으로서의 천사가 멸종했음을 말하는가하면, 실질적 가사노동과 양육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가정의 경제 설계까지 여성이 거의 혼자 전담하면서도 가장의 역할과 경제적 권한은 남성이 독차지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가출한 여성은 무조건 남자와 떠났을 거라는 근거없는 추측과 편견, 가사 노동과 육아로만 하루 일과가 이루어진 여성의 독백을 반어적인 감성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모성애가 본능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엄마의 자격>에서는 이를 두고 상당히 모순적이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설전이 벌어진다. 에스더는 마을 세 곳의 천오백 명에 가까운 인명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한테 모성애가 없다는, 여성적이지 못하다는, 심지어 제 아이를 지키지 못해 아이가 마을 사람들의 짐이 되었다는, 그래서 그녀는 엄마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숭고한 죽음이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의 욕구를 인정하며 자유롭게 사는, 무엇보다 가족애를 넘어선 이타심을 가진 에스더 가족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별난 가족일 뿐이다.  



똑같이 일을 해도 가사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여성의 몫이다. 남편 혹은 연인을 사랑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 이유로 가사 출산 양육이라는 부담을 거의 혼자 감수해야하는 것이 타당한가? 청혼하는 여인의 예술성을 지지하기 위해 결혼 후 요리를 담당하겠다는 남성. 가사 노동을 분담하겠다는 이 남성의 친절함은 당연한 것임에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도 되는지를 자문하는 말다의 혼잣말에 더 씁쓸해진다.   


엘더 씨(엘더 부인의 계획)나 솔로몬 씨(솔로몬 가라사대)처럼 배우자의 말을 곧바로 납득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여성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누런 벽지>의 '나'에 더 가까울지도 모를 일이고. 이 책에서 <전혀 다른 문제로 바뀔 때>는 영리한 작품이다. 남성들을 앞에 두고 남녀의 입장을 바꿔서 서술하는데, 이 말을 들은 남성들의 우격다짐이 볼만하다. 이와는 다르게 작가는 <다섯 소녀>를 통해 여성들이 지향해야하는 지점을 짚는다. 


스무 편의 소설들을 전반적으로 봤을 때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여성의 경제력이다. 그는 여성에게도 그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돈과 경제활동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동업 관계>에서는 벌어다주는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사업을 하겠다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경제활동은 단순히 돈을 번다는 의미를 넘어 일 자체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또한 부부 서로가 원하는 일을 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는 비단 돈 뿐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소설에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여성들이 많다. 이는 당시 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능력이 사장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자립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일 하는 여성보다는 전업주부가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가사 노동에 금전적인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며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가사 노동과 육아는 개인이든 사회든 반드시 누군가가 해야 할, 방치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가족구성원이 공평성을 따지며 마지못해 나눠서 해야하는 하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 활동과 집안 일(가사, 양육, 교육을 포함한)의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그 균형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우리의 고민에 얼마간의 도움을 준다. 다만 소설들이 출간된 시기를 고려할 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고, 확장시켜 사고하는 것은 독자 개인의 몫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균형의 노력은 어느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과 국가가 함께 움직여야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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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점은 등장하는 하녀들마다 모두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하녀가 노예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작품들이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임을 감안할 때 부자연스러운 바는 아니지만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의식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파블스 씨의 마음>은 현대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상황이자 우리가 생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남편은 자기의 욕구를 누르고 가족 부양에 온 힘을 쏟는다. 그런데 정작 아내는 현재 생활에 있어서 남편의 헌신에 대한 감사는 없다. 남편은 아내에게 구태한 여성성을 강요하며 혼자서 죽도록 일하고 중년이 넘어서는 인생무상을 토로한다. 아내는 가정 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점점 잃어가면서 동시에 여러 면에서 지나치게 남편에게 의탁하는 자신을 자조한다. 결과적으로 길게 봤을 때 상대에 대한 헌신에 대해 감사하지도 않고, 두 사람 모두 만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가정 생활이 달라져야한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이 맨 마지막에 실려 있어 좋았는데, 마치 앞의 소설들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새삼 멋지게 늙고 싶어졌다. 



사족.
노년에 접어든 여성은 자식에게 의탁하거나 남겨진 유산으로 살아갈 거라는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깨트려준 모리슨 씨에게 박수를!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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