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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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 혹은 어느 지역과 장소의 흥망성쇠 뒤에는 여러 원인과 배경이 따른다.   


이 책에는 한때 번성했으나 현재는 폐허가 된 40곳이 실려있다. 해당하는 장소가 쇠락한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권력에 대한 욕망, 물질적 탐욕, 산업의 쇠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도태, 아픈 역사적 배경,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 등 방치된 채 역사의 뒤안길에서 사라진 곳들이다. 








폴란드 자르노비에츠 원자력 발전소, 스웨덴 그렌게스베리 광산 등은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와 유사한 점이 많아 그냥 읽히지 않았다. 특히 그리스 아테네의 헬리니콘 올림픽 단지의 사례를 읽으면서 최근에는 올림픽 개최가 기피대상이 되어간다는 기사가 기억났다. 경기장과 숙소 등 올림픽에 맞춘 인프라가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 처치 곤란이 되는데다 예전만큼 개최국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올림픽 특수를 노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얼마 전에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의 경우에도 철수를 염두해 둔(본인들은 친환경 측면이라고 우겼지만) 부실한 설비로 뭇매를 맞았는데, 이러한 일이 일본에서 끝날지는 미지수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과거를 다루는 책들은 어쩔 수 없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만든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통사가 아닌 이 책처럼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사례로 접근해 단편적으로 에피소드를 다루는 책들을 단순한 흥미 위주로만 접근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힘들이지 않고 상식 수준으로 읽어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짧은 이야기들이 마치 평행이론처럼 현재 세계 곳곳 어딘가에 끊임없이 대입이 된다.    


또한 한번도 흥해 본 적 없이 가슴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우간다 아켐펜섬이나 혐오시설을 목적으로 한 블랙웰섬, 섬 전체가 하나의 교도소였던 앨커트래즈섬처럼 애초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외면했던 지역들에 대해서 짚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싶다. 



쇠퇴한 명소들이 안타까운 것은 한때 찬란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철거에 들어갈 엄청난 비용과 처치 곤란한 산업 폐기물이 아닐까(너무 현실적인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코비드19처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온라인 쇼핑 전환으로 인한 매장 철수, 산업 및 소비 패턴과 인구학적 변화 등 사회 전반의 변화는 갈수록 빨라져간다. 그때마다 짓고 쓰고 버리고를 반복한다면 버려지거나 쓸모없게 되는 땅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정착지의 조밀화와 인구 밀도는 숨이 막힐 지경으로 치달을 것이 눈에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른다고 할 수 없다. 당장의 유행에 따라 혹은 돈만 좇아 메뚜기떼러첨 몰려다닐 것이 아니라 만들고 버리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으며, 기존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누가 이걸 모르겠냐만.)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은 곳은 포르투갈의 도나시카성,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울라, 크로아티아 쿠파리, 세 군데다.  


한때 다크투어리즘이 유행이었던 기억이 있다. 
대표적인 장소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 장소라고 하는데,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찾아가보는 것도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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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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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하는 서른 세 개의 작품은 저자가 지난 33년간 충격과 감동을 받은 건축물 중에서 엄선한 작품들이다.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로 나누어 소개하는 건축물들 중에는 저자의 이전 저작들에 이미 소개된 건축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각 건축물의 특징, 건설 과정, 저자의 감상 등을 서술하면서 여행자들을 위해 건축물의 건축 연도, 건축가, 주소, 운영 안내 등을 첨부했다.   


르 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 페터 춤토어, 프랭크 게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루이스 칸, 노만 포스터 등 건축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어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건축가들의 작품들이 많다.


저자는 각 건물의 특징과 구조, 다각적 측면의 건축 원리를 사진과 함께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건축은 그 시대와 사회의 반영이자 그 사회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따라서 건축도 정치와 행정과 무관하지 않음을 짚는다.  






 
이 책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 일곱 개나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빌라 사보아.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만드는 다섯 가지 특징인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가로로 긴 창, 옥상 정원을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 부르고 이것을 르 코르뷔지에가 제창했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철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가 만든 건축의 특징인데, 이것이 총결집된 결정체가 '빌라 사보아'다. 르 코르뷔지에를 콘크리트 건물을 유행시켜 건축을 망가뜨린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저자는 그가 재료의 혁신으로 새 시대를 연 건축을 했으며 디자인 측면에서는 혁신을 이룬 건축가로서 진정한 선각자이자 개척자라고 평가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말할만큼 그는 20세기 초반에 팽배했던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무한한 긍정사고가 깔려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기계 문명을 인류를 구원할 희망으로 바라보았다는데 쌓여가는 건설 폐기물과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르 코르뷔지에는 어떤 말을 했을까.


르 코르뷔지에의 유작인 피르미니 성당의 신도 좌석배치에 대한 설명에서 신(혹은 설계자)와 '나'의 관계에 따라서 선택해서 앉는 자리가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하나 된 공동체를 완성을 의미하는 설계. 멋지다.  


ㅡ 


수호성인을 기리기 위한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은 농부들이 직접 2년간 시공했다고 하는데 저자의 말대로 제작 과정이 감동적이다. 마을 주민들의 봉사 활동으로 지어졌기에 시공의 시간이 느릴 수 밖에 없었는데, 거기다 모두 수작업이었고 철근을 넣지 않은 진흙, 자갈, 석회 등을 다진 콘크리트라서 표면이 퇴적층 같은 느낌이 난다. 저자가 이 과정을 그림 및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는데 건축적으로 독특함은 물론 주민들의 신실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 사진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 당진의 신리성지에 있는 경당이 생각났다. 언덕 위에 있는 경당과 느낌이 비슷한데, 여행 당시 내부를 들어가볼 수 없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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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섬 도시라는 특성상 11월 이후 만조에 1층까지 물이 잠기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면 집집마다 현관에 차수벽을 설치한다고 한다. 상습적 침수 지역에서 해가 바뀌어도 똑같은 피해가 발행하는 우리나라가 떠올려졌다. 이러한 피해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지되어 왔음에도 바뀌지 않고 있다. 며칠 사이에 기습적 폭우가 내리고 장마도 얼마 남지 않았으며 이번 여름에는 7년 만에 역대급 폭우도 예보되어 있다. 그들이 '지구촌'만 아니라 당장 시급한 우리나라의 민생도 살펴봐주기를 바람한다. 저자는 독일 국회의사당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국격'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와같은 사례에도 필요한 단어가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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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건축물은 두 개.
먼저 '더글러스 하우스'다. 푸른 초록 사이에 우뚝 솟은 하얀색 건물. 사진으로 보면 호숫가에 위치해 정면으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고 진입로가 집 후면에 있는데 마치 숲을 지나는 듯한 느낌이다. 모든 디자인의 초기 단계부터 그리드에 맞추어 시공 시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을 차단했다는 리처드 마이어의 완벽주의는 내부 구조에 대한 설명만 읽어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에 우리나라 아파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데 대형 건설사조차도 툭하면 불거져나오는 부실 시공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지 알만하다(물론 돈에 관련된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두 번째는 캐나다의 '해비타트 67'. 1967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158세대로서 세대별로 모양이 다르고 테라스가 있다(발코니가 아니고). 조립식 아파트인데 세포 증식의 원리를 이용한 디자인 개념인 '메타볼리즘'을 적용했다. 우리나라 아파트에도 두세 가지의 타입이 있기는 하지만 세대별 큰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세대 안에서 야외 환경을 접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책에 실린 해비타트의 내부 사진을 보면 1967년에 지은 아파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세련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연도가 그렇게 오래되었다면 재건축 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라면 질색하는 나도 해비타트같은 아파트라면 군말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홍콩 HSBC 빌딩 1층 광장이 일요일이면 홍콩의 가정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인 도우미들의 쉼터가 된다는 내용과 함께 사진이 실려있다. 애초에 노먼 포스터는 풍수지리사의 반대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였으나 의도치 않게 사회적 약자의 쉼터가 되었다고.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의견에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진 안의 수많은 외국의 여성도우미들이 휴일조차 집이 아닌 길 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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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꼽은 훌륭한 건축물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건축물 자재 및 재료 간의 조화와 기능을 살리는, 개인의 보호와 다름을 인정하는 동시에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자연을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등,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아주 사소한 곳까지 세세하게 사용자의 편의와 안전, 그리고 오랜 기간 보존을 염두한, 그러면서도 미적 욕구를 놓치지 않는 디테일이 살아있다. 


언젠가 쓴 기억이 있는데, 조선시대 서원, 수원화성, 강화성당처럼 건축물 자체가 한 시대를 반영한 역사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행을 다닐 때 건축물에 맞춰 일정을 정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성당이나 사찰이 있으면 가능한 들르는 편이다(물론 그 이유도 건축에 있는 건 아니었고). 그런데 이 책을 비롯해 건축에 관련한 책을 읽다보면 건축물을 테마로 하는 여행을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건축에 관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건축도 빼놓을 수 없는 듯 하다. 


몇 년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 혹은 미술관 순례를 다룬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어서 독자들은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간접적으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를 갖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일이 다녀볼 수 없는 건축물이나 혹은 여행 중에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들에 대해 건축가와 더불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책제목처럼 맛난 건축 기행을 경험할 수 있다.  


'낙수장'을 비롯해 전작과 중복되는 점도 있지만, 이 책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불편한 마음은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책을 덮자니 문득 담양의 소쇄원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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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리커버 특별판)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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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등 일곱 가지 주제로 나누어 시를 통해 현재 우리의 현실을 통찰한다. '통찰'이라고 썼지만 그의 글은 어려운 어휘나 지식을 나열하지 않는다. 수수하면서 편안한 어투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제대로 쉬는 법을 잘 모른다고 썼다. 이 말에 참 공감이 되는 이유는 당장에 책 한 권을 읽는 데에도 이득을 따지는 우리네 모습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독서는 수능에 필요한 학습의 연장선이며, 2030 세대에게는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성적 및 목표 지향적인 '공부'가 즐겁기는 어렵다. 놀이라고 해봐야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여행도 맛집 혹은 핫스팟 인증이 거의 차지하고 있다. 중년 이상이라고 크게 다르려나. 캠핑이나 차박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정 오롯이 나를 위한 놀이이자 쉼의 시간이 맞는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노동은 어떨까? 즐거운 노동이란 존재할 수 없는 걸까? 사실 노동 자체는 불행하지 않다. 지위와 계급을 부여하고, 경쟁을 부추겨 불안감을 키우고, 우리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고, 밥그릇을 쥐고 있는 노동이기에 '노동=불행'이라는 공식이 정석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에 있어서 사회 구조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다만 일과 삶을 대립적 관계가 아닌 동반자적 관계로 살아가보자고 말하는 듯 하다. 나는 저자가 교육을 두고 말한 "우리는 공부의 프로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라는 말에서 이에 대한 생각을 이어간다. 모든 공부와 노동이 밥벌이의 수단이 되지 않는다면, 삶을 대하는 감정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ㅡ 


책에서 류시화 시인의 '패랭이꽃'(p134)을 읽는 순간 가슴에 확 박혀왔다. 이 부분을 읽을 때 관계에 있어 고단함을 느끼고 있었서였을까. '나를 힘들게 한 것은 /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를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거기에 마음은 단층單層이 아니라 단층斷層이라는 저자의 말씀에 고개를 한동안 주억거렸다. 간혹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다칠 것 같지 않은데도 여전히 종종 덜 흔들리고, 상처가 덜 오래갈뿐 여전히 아프다. 저자는 너무 세게 결심하지 말자고 하는데,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슬픔과 우울함이 흘러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지하실에 환기도 해주고.  


읽다가 문득, "아... 그랬구나, 의식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사랑조차 '성공'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가 지닌 교환 가치에 사랑도 포함하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상을 먼저 확정하고 사랑에 빠지려고하니, 갈수록 사랑이 더 어려워질수밖에... . 사랑을 받을만한(?) 대상을 발견하려면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하고, 그렇게 어렵사리 시작한 사랑이다보니 '성공'에 대한 욕구는 커질테고. 20대 친구들한테 자주 말한다. 연애 하시라. 돈이 없어도, 취직을 못해도. 때마침 좋아하는 이성복 시인의 시가 한 편 실려있다.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제목만으로도 훅 들어온 시가 있다. 주용일 시인의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 그렇더라. 밤하늘은 올려다보지만, 그 하늘에서 별을 찾아보지 않은 지 한참이다. 시구 '별이 뜨지 않는 밤하늘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노래가 없는 생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는데 그런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
요즘 내 마음이다. 


ㅡ 


나는 지금도 저자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가끔 꺼내보곤 한다. 누군가 어차피 삶은 죽을 때까지 미완이라고 했다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 않은가.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인이든 나만 숙제를 마치지 못 할 것같은 불안에 동동거리는 그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책이다. 


의도치 않게 이 책을 읽을 당시 문제가 생겨 감정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사실 책을 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다. 날짜가 약속되어 있는 책이라 어쩔 수 없이 펼쳤는데 몇 편의 시와 저자의 문장들이 진정제 역할을 해주었다. 또 이렇게 한숨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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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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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소월, 화가 천경자의 시그림집이다. 
시 백오십 편과 그림 서른네 점이 실려있는데, 이들의 만남이 이 책은 처음이 아니다. 1958년 여원사에서 출간한 김소월의 <소월시선>의 표지 그림이 천경자 화가의 그림이었다.   





 



강렬한 색감으로 알려진 화가의 그림과 소리없이 처절하게 전해지는 시인의 시가 얼핏 어울릴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정한이 뒤엉킨 설움이 화가의 그림을 통해 더 강하게 전해지더라는. 


개인적으로 김소월 시 중에서 독보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시어詩語다. 사람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어휘를 이토록 자유자재로 써내려가는 시인이 얼마나 될까. 끈적거리는 미사어구도 없고, 달콤한 사탕발림도 없다.  


그의 시를 소리내서 읽다보면 어휘들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돌아다닌다. 그 문구들이 고백이 되고, 회한이 되고,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면서.  



정재찬 교수는 여는 글에서 김소월이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고 사람들이 여전히 소월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를 오직 시 '진달래꽃' 하나만으로 설명한다. 글에는 교과서적인 내용도 있지만, 글에서 공감이 되는 키워드는 '감각', '정서', '자유시', 그리고 '반복과 변주의 어울임'이었다.  


김소월의 시를 두고 촌스럽다고 말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처럼 감정을 나누고 관계에 공을 들이는 것을 '소모'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한 생애가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내기가 가능한 일인가. 살다보면 사랑, 슬픔, 원망, 고통, 체념, 절망, 외로움, 그림움 등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만 가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이 마음을 너무나 절묘하게 그려낸 시가 바로 소월의 시요, 노래다.  


같은 시를 읽더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감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시집마다 눈에 들어오는 시가 여느 때와 달리하기도 한다. 김소월의 시 중에서 '개여울' '봄비'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번에 꽂힌 시는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이다. 이 시와 '봄비'를 읽으면서 몇몇 이들이 생각나 울컥하고 말았다.  


시인은 자신이 고작 서른 몇 해를 살다 떠날 것을 몰랐을텐데, 시들은 왜 마치 그가 짧은 삶을 알았던 것인 양 느껴질까. 


그저 읽기만 해도 아련하고 먹먹해지는 이 시들에, 화가 천경자의 그림은 그 감흥을 더해준다. 화가의 원색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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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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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노년의 어머니가 자살로 판명난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소설은 '범인 찾기'라는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 서술하면서 엘레나의 짧은 여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비롯한 고정관념, 사회 제도의 부조리와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엘레나가 이사벨을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보면, 집에서 기차역까지 걸어간 다음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서 내리고 택시로 환승하면 된다. 보통의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일이지만 엘레나에게는 여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자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는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고개를 들 수 없고, 침을 흘리고, 치마가 말려올라가도 제 손으로 내릴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단지 하나, '엄마'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일찌감치 리타의 사건을 자살로 종결했다.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엘레나의 입을 막기 위해 마지못해 만나러온 순경 아베야네다는 어느 순간부터 엘레네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그 일이 마치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된 듯 느낀다. 아마 아베야네다는 파킨슨 병으로 몸을 운신하지 못하고, 자식을 잃었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아 분노하며,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60대 여성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이 두 사람은 각자에게 필요한 위로를 서로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경찰로서의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다른 한 사람은 잃어버린 엄마의 정체성과 자식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데에 자위하며.  


ㅡ 


엘레나의 기억을 좇다보면 질병이나 장애로 불편을 겪는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거울처럼 보게 된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야하거나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라는 선입견과 편견의 시선이 드러난다.  


작가는 중증 질환이나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의료보험 및 복지 혜택을 적절하게 받지 못하고 있는 제도의 문제점과 환자의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경제적.정서적 고립, 그리고 탁상공론식 행정과 관료주의를 지적한다. 읽다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소설의 배경은 아르헨티나다. 리타와 엘레나의 상황이 한국이라고 다르겠는가. 


엘레나는 다층적으로 벽과 대면한다. 파킨슨 환자라는 벽, 여성이라는 벽, 장애인이라는 벽, 그리고 노인이라는 벽. 그런데 리타의 남자 친구는 곱사등이다. 그런 이유로 엘레나는 그가 리타의 남자친구로서 탐탁치 않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녀 자신이 파킨슨 병에 의해 신체적으로 그와 비슷한 외형을 갖게 된다. 엘레나는 파킨슨 병으로 인해 고개를 들지 못해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오로지 다리와 발만 볼 수 있다. 더구나 엘레나는 인류가 늘 그래왔듯 불행 혹은 형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는 여성명사를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 사회가 여성과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아주 잘 짚고 있다.  


ㅡ 


소설은 잘못된 관습이 출산의 감동과 엄마로서의 사명감을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음을 얘기한다.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여성은(그리고 이사벨은),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격과 신뢰성까지 의심을 받는다. 


아주 묘하게 리타와 이사벨에게서 서로의 모습이 겹쳐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수갑에 두 손이 채워진 것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채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 끝으로 내몰리는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등 뒤에서 이들을 내몬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리타의 분노에 찬 외침은 살인자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람, 같은 사건, 그러나 다른 기억.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가 될 수 없었던 여자, 집착에 가까운 모성애와 자식에 대해 다 안다고 착각하는 여자. 어쩌면 두 사람은 다른 듯 하지만 오히려 양극단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서 있는듯 하다. 리타, 엘레나, 이사벨까지. 그들은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ㅡ 


일평생 리타가 무서워했던 비. 그러나 그 무서움까지 눌러 버린 더 큰 두려움과 고단함.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든 희망이 있기 마련이라는 그 말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들리다니.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절정은 p227부터 p234에 걸쳐 주고받는 세 사람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리타 사건의 내막을 독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할 말이 많은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사회비평 읽는 독서모임에서 진행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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