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리커버 특별판)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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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등 일곱 가지 주제로 나누어 시를 통해 현재 우리의 현실을 통찰한다. '통찰'이라고 썼지만 그의 글은 어려운 어휘나 지식을 나열하지 않는다. 수수하면서 편안한 어투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제대로 쉬는 법을 잘 모른다고 썼다. 이 말에 참 공감이 되는 이유는 당장에 책 한 권을 읽는 데에도 이득을 따지는 우리네 모습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독서는 수능에 필요한 학습의 연장선이며, 2030 세대에게는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성적 및 목표 지향적인 '공부'가 즐겁기는 어렵다. 놀이라고 해봐야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여행도 맛집 혹은 핫스팟 인증이 거의 차지하고 있다. 중년 이상이라고 크게 다르려나. 캠핑이나 차박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정 오롯이 나를 위한 놀이이자 쉼의 시간이 맞는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노동은 어떨까? 즐거운 노동이란 존재할 수 없는 걸까? 사실 노동 자체는 불행하지 않다. 지위와 계급을 부여하고, 경쟁을 부추겨 불안감을 키우고, 우리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고, 밥그릇을 쥐고 있는 노동이기에 '노동=불행'이라는 공식이 정석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에 있어서 사회 구조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다만 일과 삶을 대립적 관계가 아닌 동반자적 관계로 살아가보자고 말하는 듯 하다. 나는 저자가 교육을 두고 말한 "우리는 공부의 프로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라는 말에서 이에 대한 생각을 이어간다. 모든 공부와 노동이 밥벌이의 수단이 되지 않는다면, 삶을 대하는 감정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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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류시화 시인의 '패랭이꽃'(p134)을 읽는 순간 가슴에 확 박혀왔다. 이 부분을 읽을 때 관계에 있어 고단함을 느끼고 있었서였을까. '나를 힘들게 한 것은 /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를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거기에 마음은 단층單層이 아니라 단층斷層이라는 저자의 말씀에 고개를 한동안 주억거렸다. 간혹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다칠 것 같지 않은데도 여전히 종종 덜 흔들리고, 상처가 덜 오래갈뿐 여전히 아프다. 저자는 너무 세게 결심하지 말자고 하는데,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슬픔과 우울함이 흘러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지하실에 환기도 해주고.  


읽다가 문득, "아... 그랬구나, 의식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사랑조차 '성공'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가 지닌 교환 가치에 사랑도 포함하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상을 먼저 확정하고 사랑에 빠지려고하니, 갈수록 사랑이 더 어려워질수밖에... . 사랑을 받을만한(?) 대상을 발견하려면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하고, 그렇게 어렵사리 시작한 사랑이다보니 '성공'에 대한 욕구는 커질테고. 20대 친구들한테 자주 말한다. 연애 하시라. 돈이 없어도, 취직을 못해도. 때마침 좋아하는 이성복 시인의 시가 한 편 실려있다.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제목만으로도 훅 들어온 시가 있다. 주용일 시인의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 그렇더라. 밤하늘은 올려다보지만, 그 하늘에서 별을 찾아보지 않은 지 한참이다. 시구 '별이 뜨지 않는 밤하늘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노래가 없는 생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는데 그런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
요즘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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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저자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가끔 꺼내보곤 한다. 누군가 어차피 삶은 죽을 때까지 미완이라고 했다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 않은가.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인이든 나만 숙제를 마치지 못 할 것같은 불안에 동동거리는 그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책이다. 


의도치 않게 이 책을 읽을 당시 문제가 생겨 감정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사실 책을 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다. 날짜가 약속되어 있는 책이라 어쩔 수 없이 펼쳤는데 몇 편의 시와 저자의 문장들이 진정제 역할을 해주었다. 또 이렇게 한숨 쉬어간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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