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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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하는 서른 세 개의 작품은 저자가 지난 33년간 충격과 감동을 받은 건축물 중에서 엄선한 작품들이다.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로 나누어 소개하는 건축물들 중에는 저자의 이전 저작들에 이미 소개된 건축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각 건축물의 특징, 건설 과정, 저자의 감상 등을 서술하면서 여행자들을 위해 건축물의 건축 연도, 건축가, 주소, 운영 안내 등을 첨부했다.   


르 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 페터 춤토어, 프랭크 게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루이스 칸, 노만 포스터 등 건축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어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건축가들의 작품들이 많다.


저자는 각 건물의 특징과 구조, 다각적 측면의 건축 원리를 사진과 함께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건축은 그 시대와 사회의 반영이자 그 사회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따라서 건축도 정치와 행정과 무관하지 않음을 짚는다.  






 
이 책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 일곱 개나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빌라 사보아.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만드는 다섯 가지 특징인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가로로 긴 창, 옥상 정원을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 부르고 이것을 르 코르뷔지에가 제창했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철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가 만든 건축의 특징인데, 이것이 총결집된 결정체가 '빌라 사보아'다. 르 코르뷔지에를 콘크리트 건물을 유행시켜 건축을 망가뜨린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저자는 그가 재료의 혁신으로 새 시대를 연 건축을 했으며 디자인 측면에서는 혁신을 이룬 건축가로서 진정한 선각자이자 개척자라고 평가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말할만큼 그는 20세기 초반에 팽배했던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무한한 긍정사고가 깔려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기계 문명을 인류를 구원할 희망으로 바라보았다는데 쌓여가는 건설 폐기물과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르 코르뷔지에는 어떤 말을 했을까.


르 코르뷔지에의 유작인 피르미니 성당의 신도 좌석배치에 대한 설명에서 신(혹은 설계자)와 '나'의 관계에 따라서 선택해서 앉는 자리가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하나 된 공동체를 완성을 의미하는 설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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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성인을 기리기 위한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은 농부들이 직접 2년간 시공했다고 하는데 저자의 말대로 제작 과정이 감동적이다. 마을 주민들의 봉사 활동으로 지어졌기에 시공의 시간이 느릴 수 밖에 없었는데, 거기다 모두 수작업이었고 철근을 넣지 않은 진흙, 자갈, 석회 등을 다진 콘크리트라서 표면이 퇴적층 같은 느낌이 난다. 저자가 이 과정을 그림 및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는데 건축적으로 독특함은 물론 주민들의 신실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 사진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 당진의 신리성지에 있는 경당이 생각났다. 언덕 위에 있는 경당과 느낌이 비슷한데, 여행 당시 내부를 들어가볼 수 없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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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섬 도시라는 특성상 11월 이후 만조에 1층까지 물이 잠기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면 집집마다 현관에 차수벽을 설치한다고 한다. 상습적 침수 지역에서 해가 바뀌어도 똑같은 피해가 발행하는 우리나라가 떠올려졌다. 이러한 피해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지되어 왔음에도 바뀌지 않고 있다. 며칠 사이에 기습적 폭우가 내리고 장마도 얼마 남지 않았으며 이번 여름에는 7년 만에 역대급 폭우도 예보되어 있다. 그들이 '지구촌'만 아니라 당장 시급한 우리나라의 민생도 살펴봐주기를 바람한다. 저자는 독일 국회의사당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국격'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와같은 사례에도 필요한 단어가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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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건축물은 두 개.
먼저 '더글러스 하우스'다. 푸른 초록 사이에 우뚝 솟은 하얀색 건물. 사진으로 보면 호숫가에 위치해 정면으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고 진입로가 집 후면에 있는데 마치 숲을 지나는 듯한 느낌이다. 모든 디자인의 초기 단계부터 그리드에 맞추어 시공 시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을 차단했다는 리처드 마이어의 완벽주의는 내부 구조에 대한 설명만 읽어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에 우리나라 아파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데 대형 건설사조차도 툭하면 불거져나오는 부실 시공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지 알만하다(물론 돈에 관련된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두 번째는 캐나다의 '해비타트 67'. 1967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158세대로서 세대별로 모양이 다르고 테라스가 있다(발코니가 아니고). 조립식 아파트인데 세포 증식의 원리를 이용한 디자인 개념인 '메타볼리즘'을 적용했다. 우리나라 아파트에도 두세 가지의 타입이 있기는 하지만 세대별 큰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세대 안에서 야외 환경을 접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책에 실린 해비타트의 내부 사진을 보면 1967년에 지은 아파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세련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연도가 그렇게 오래되었다면 재건축 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라면 질색하는 나도 해비타트같은 아파트라면 군말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홍콩 HSBC 빌딩 1층 광장이 일요일이면 홍콩의 가정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인 도우미들의 쉼터가 된다는 내용과 함께 사진이 실려있다. 애초에 노먼 포스터는 풍수지리사의 반대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였으나 의도치 않게 사회적 약자의 쉼터가 되었다고.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의견에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진 안의 수많은 외국의 여성도우미들이 휴일조차 집이 아닌 길 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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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꼽은 훌륭한 건축물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건축물 자재 및 재료 간의 조화와 기능을 살리는, 개인의 보호와 다름을 인정하는 동시에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자연을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등,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아주 사소한 곳까지 세세하게 사용자의 편의와 안전, 그리고 오랜 기간 보존을 염두한, 그러면서도 미적 욕구를 놓치지 않는 디테일이 살아있다. 


언젠가 쓴 기억이 있는데, 조선시대 서원, 수원화성, 강화성당처럼 건축물 자체가 한 시대를 반영한 역사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행을 다닐 때 건축물에 맞춰 일정을 정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성당이나 사찰이 있으면 가능한 들르는 편이다(물론 그 이유도 건축에 있는 건 아니었고). 그런데 이 책을 비롯해 건축에 관련한 책을 읽다보면 건축물을 테마로 하는 여행을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건축에 관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건축도 빼놓을 수 없는 듯 하다. 


몇 년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 혹은 미술관 순례를 다룬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어서 독자들은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간접적으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를 갖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일이 다녀볼 수 없는 건축물이나 혹은 여행 중에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들에 대해 건축가와 더불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책제목처럼 맛난 건축 기행을 경험할 수 있다.  


'낙수장'을 비롯해 전작과 중복되는 점도 있지만, 이 책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불편한 마음은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책을 덮자니 문득 담양의 소쇄원에 가고 싶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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