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바위 게임 -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마이클 슈왈비 지음, 노정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야바위 게임>
부제 :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 마이클 슈월비


26-27.
'심한 불평등의 기준은 무엇인가' (...) 누군가가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을 누리고 있을 때 다른 이들은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언제라도 불평등의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은 어떠한 이들이 삶을 즐기고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반면, 그저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다른 이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함의한다. 나는 적절한 생활수준, 개인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기본적인 인권의 일부로 여긴다. 불평등으로 인해 이러한 권리가 부정된다면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불평등의 관점을 사람들이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통제하고 있는 자원의 종류와 그 힘에 따라 그렇게 가진 자원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지, 누구 때문에 갖게 되었는지, 누구와 함께 나누는지를 살펴야한다고 말한다.


1장. 불평등의 뿌리
불평등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결과이다.
불평등의 역사는 한참을 거슬러 농업혁명까지 올라간다. 잉여 생산물이 생기면서 시작된 불평등은 '착취'를 근본으로 한다. 이후 '계급'이 생기면서 불평등은 심화되고 인종과 젠더라는 사회적 구성물을 만들어 위계 사회를 만들었다.

p75
'인종'은 정치적 개념이다. 인종이라는 정치적 개념은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강화하기 위해 발명된 신화라고 보는 것이 최선이다.(...) 인종을 구분하는 행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인종화racializing''라는 용어가 보다 적절할 것이다. 인종화라는 용어는 우리로 하여금 인종이라는 것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을 규정짓고 대접하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p78-80
'남자'와 '여자'라는 범주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만들어 낸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다른 집단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분명한 창작물이다.(...) 만약 사람들을 남성과 여성 혹은 여자와 남자로 분류할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면, 또는 이러한 범주가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면, 적어도 우리가 아는 식으 젠더 구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종과 젠더를 신체적(생물학적)으로 구분 짓지만, 이러한 분류의 기준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지배세력이 생물학적 근거로 서열을 매기며 고착화시켰다는 점은 역사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2장. 야바위 게임
사회적 제도는 가시적인 논리 혹은 게임의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지만, 그 법칙은 중립적이지 않고 다양한 집단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러한 규칙들이 중첩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불평등이 빚어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p94
규칙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즉 규칙이란 다른 이들과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관념의 집합체다.

우리는 규칙이 만들어지고 적용되는 조건에 의해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공정함이 모든 이에게 같은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현혹되어서도 안된다. 규칙이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한 이들에게만 더 유리한 결과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체적 사례들이 미국내 제도를 바탕으로 두고 있어 우리나라 실정과는 다소 차이(용어, 법 등)가 있으나 전체적인 맥락에 있어서 큰 괴리는 없다.)


3장. 아홉 식구가 사는 골짜기 (이야기)
하나의 시대를 넘어서 실제 세계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자.

'아홉 식구가 사는 골짜기' 이야기에는 Heng부족, Haah부족, Ji부족이 등장한다. 공평하게 나누며 살던 세부족의 골짜기에 약탈자가 침략한다. 세 부족이 숨겨놓은 금을 빼앗기 위해 약탈자 왕은 Heng부족의 젊은이를 잡아 협박한다.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구하려면 금을 숨겨놓은 곳을 말하라고.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금의 위치를 털어놓는 젊은이. 그는 자신의 부족의 몫인 금을 다른 곳에 숨겨놓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차등 없이 공평하게 가진 것을 나누며 살던 골짜기에는 변화가 생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진실을 더 일찍 털어놓지 않았던 젊은이의 죄? 진실을 믿지 않은 혹은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외면했던 후손들의 뻔뻔함? 거기에 Heng부족이 차별이 생긴 원인이 다른 두 부족의 무능려과 게으름이라고 비난하는 적반하장? 아니면 처음부터 정의롭지 못했던 젊은이의 이기적인 행동?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면밀히 생각해 볼 일이다.


4장. 상상력에 족쇄를
사람들은 선택을 하지만, 그들 스스로의 뜻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그 결과를 온전히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것은 불평등을 고착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사람들이 조작된 게임에 순응하도록 하는데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불평등의 재생산에 대해 익숙해져있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는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득을 보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함을 의미한다.

'공정한 게임'이라는 틀에 갇혀 실제로 기초부터 공정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의심하지 않는다. 더구나 게임에서 진 사람에 대해서는 그 원인이 자신 스스로 조차도 개인의 무능력으로 몰아간다.

p192-193
지배적인 집단의 관점을 차용하여 그들 자신을 열등한 타자로 간주할 때, 사람들은 일종의 내재화된 억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성취 이데올로기가 조작된 게임과 결합하면, 사람들은 패배했을 때 자신을 탓하게 되고 무력감과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이들은 일종의 내재화된 억압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정규교육 과정과 일상에서 접하는 정보 속에서는 대안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안에 대해 알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다.

사람들은 그동안 좋은 지도자를 뽑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겨왔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없는 세상은 어떨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도자는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p205
새장 밖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탈출은 무의미하다는 현실 정의를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탈출의 첫걸음이다.

p210
저임금을 설명하기 위해 '시장'을 들먹일 때,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상대적 권력 차이는 은폐된다.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자본가들은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 게임의 규칙을 설정할 수 있으며 착취의 상한선과 하한선 역시 제시할 수 있다.

결국 현 시대의 권력은 미디어와 인터넷 등(국민의 상상력을 원하는대로 차단하고 제어할 수 있는) (기술)자원을 얼마나 소유하냐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5장-6장. 행동을 규제하라.
지속적으로 불평등을 생산해내는 조작된 게임은 사람들을 불행하고 분노하게 만들고, 그들은 대체로 저항하며 조작된 게임을 교란할 방색을 모색한다.
책임의 그물과 지는 쪽에 걸도록 만드는 속임수가 없다면, 야바위 게임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없다.

피억압자들에게 외부에 구성된 책임의 그물까지 끌여들여 도덕적 책임감으로 억압한다.

p307
지배적인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이미 만들어진 약탈적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라고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다른 집단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이득을 주는 기존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의 근본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7장. 라니아 O와의 인터뷰
2084년에 98세가 된 라니아를 학생들이 인터뷰한다는 가상의 내용. 2000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들을 조모조목 짚어가며 끊임없이 이어진 불평등의 재생산에 대해 말한다. 라니아의 인터뷰가 독자에 따라 비관적으로 혹은 낙관적이라 볼 수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변화하는 환경을 두려워하면 우리는 불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8장. 불평등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완벽함이 아니라, 현재 불평등을 공고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이해하는 순간 훨씬 더 실현 가능해질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할까? 타자를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모순을 향해 '왜?'라는 질문을 던질 것,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가치들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추구되어 지는지 고민할 것, 연대를 통해 스스로와 사회, 문화를 바꿀 것.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타의에 의해 불평등의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새삼 짚어볼 수 있었다. 요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성적 이상으로강조하는 것이 창의력(상상력)이다. 이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덕목은 아닌 듯 하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감과 연대를 이뤄야할 사람들은 정작 어른들이다.



모든 신비로운 부의 이면에는 망각되어버린 범죄가 있다.
/ '고리오 영감'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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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그리고 테오 - 반 고흐 형제 이야기
데보라 하일리그먼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테오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빈센트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평전을 보여지는 삶과 죽음, 인상에 의존하지 않고 확실한 기록과 세세한 정보에 기반을 두어 왜곡되지 않게, 빈센트의 모습을 최대한 선명하게 그려내겠다고 했다.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사산된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국립중학교 재학 시절 성적이 우수함에도 중퇴하고 화랑 하급 견습생, 물품 창고, 영업.회계 일 등을 거쳐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목사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전도사가 된다. 중산층의 삶을 버리고 스스로 극빈자가 되어 건강을 망치면서까지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지만, 이것이 종교적 열정이 아닌 타고난 정신질환의 증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스물 일곱살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빈센트. 그는 독서와 예술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앞에는 빈곤한 현실이 늘 눈앞에 있었고, 그 구멍을 채워준 동생 테오를 의지하고 사랑했다.

스물 세살 나이에 구필 화랑 총매니저가 되며 승승장구하는 테오. 하는 일마다 중도에 접고 갈피를 못잡는 빈센트. 이십대 두 형제는 위로와 갈등, 화해를 반복하고 둘의 연대감은 더욱 단단해진다.

빈센트는 경제적 지원과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동생 테오에게 갖는 강박적인 부채감과 가족에게 공헌하고픈 마음으로 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잘 그리고 싶었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랐다. 그래서 드로잉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노력파였다.

삼십대 중반을 넘기면서도 여전히 작품이 팔리지 않는 화가로서 빈센트는 테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해 미안하면서도 또 돈과 물감을 부탁해야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테오는 형에게 그림을 파는 일이나 돈 문제는 자신에게 있어 늘 달고 사는 지병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아버지가 급사하고 테오는 자신의 수입에서 15%를 빈센트에게 보내고 있고, 어머니의 생활비 뿐만 아니라 두 동생에게 돈을 보낸 적도 있다고 하니 테오의 부담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형에게는 건강과 그림에만 신경쓰라고 하다니...

빈센트는 자연에 나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마음이 편했지만 그에게 깊은 울림의 주제는, 그에게 '무한 감각'을 주는 초상화였다고 한다. 조카를 위해 그렸다는 아몬드 나무를 보면 빈센트의 그림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밝은 색감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그림과 이름이 1년만이라도 일찍 회자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테오도 여러모로 여유가 생겨 자신의 몸을 돌볼 틈이 있었다면...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 빈센트 죽음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형이 죽기 전부터 테오의 건강 상태가 최악이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아마 빈센트가 테오의 죽음을 마주했더라면 그의 자책감도 엄청났으리라. 빈센트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테오의 마지막 6개월 동안은 빈센트의 죽음 이상으로 안티깝다. 형제를 모두 아꼈던 테오의 아내 요안나의 상실감이 느껴진다.

강한 여인 요안나. 서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빈센트의 그림도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요안나가 없었다면 후대는 빈센트의 그림을 마주할 수도, 이들의 서신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테오 사후, 빈센트의 그림을 관리하고 가족의 서신을 책으로 출간한 사람. 고흐 형제에게 있어 서로만큼이나 그 둘을 이해하고 보듬어준 여인이다.

아버지와 테오, 가족을 사랑했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준데르트를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던 빈센트. 성향은 다르지만 삶에 있어 많은 부분이 닮았던 빈센트와 테오. 그들의 남다는 연대감과 애정, 그리고 삶의 궤적으로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책을 한동안 안고 있어야 했다.






[책 속 문장]



106.
'누구보다 슬프지만, 늘 기뻐하기를 쉬지 않으심.'
(빈세트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괴를리츠가 빈센트를 바라보는 시선)

137.
"내가 참말로, 너에게 혹은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거나 부담이 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야 한다면, 또 그래서 하릴없이 내 자신이 너에게 불청객이나 사족이 된 기분이 되어 차라리 내가 없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난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거야." (빈센트)

145.
지금 그는 '머리 위를 막아 줄 지붕도 없이, 휴식도 먹을 것도 피신할 곳도 찾지 못하고, 거기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가망도 없는 상태로, 아득한 먼 곳을 향해 부랑아처럼 터벅터벅 걷고 또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73.
빈센트는 이상화 된 여인을 그리지 않고, 그의 눈에 보이는 여인의 모습운 그대로 그렸다. 진짜 사람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왠지 그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녀느 시엔이다. (...) 테오에게 진실을 숨겨야 하는 슬픔. 그것이 바로 진정한 슬픔이다.

223.
"네 안에서 무언가가 '너는 화가가 될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때야말로 네가 붓을 잡아야 할 때야. 그러고 나면 그 목소리도 잠잠해 질거야.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으로써 말이지." (빈센트)

240.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둘(빈센트, 테오)의 관점은 너무도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빈센트는 테오의 돈이 필요하다.

258.
"아무리 세상이 위대한 학교라고 해도, 모든 것의 근본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접해 온 가족과 함께한 생활 속에 있어." (테오)

268.
두 형제에게 보색이란, 서로 나란히 놓임으로써 서로를 보강해 주는 색을 말한다. 즉, 서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는 색이다.

349.
좋은 작품, 좋은 공동체, 이는 바로 빈센트의 이상향이다.

378.
"그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존의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언제냐고요?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테오)

387.
그의 삶은 예술이 전부이다.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자신과 테오를 위해서다. 늘 언제나, 테오를 위해.

394.
빈센트는 테오에 대한 걱정으로 속이 탄다.
테오는 빈센트에 대한 걱정으로 속이 탄다.
두 사람 다, 때로는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느낀다. (...)
그 두 사람은 '운명의 동반자'이다.



[빈센트 형이 없는 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빈센트 형이 없는 나는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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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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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읽어야지 마음만 먹던 책이였는데,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단 어렵게 쓰이지 않아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 방식들이라 좋았다. 누군가는 식상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식상한 것조차 실천을 못하는 사람도 많고, 기본을 지키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인지라... 아는 것을 다시 짚어보고 공감되는 몇 가지들을 메모해 본다.


글쓰기를 위한 연장을 신중하게 선택하라. 그렇다고 문구점에서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금물.
나는 B5 사이즈나 그보다 조금 작은 노트를 선호한다. 필기구는 HB 연필. 사실 볼펜을 썼던 기간이 긴데 나는 여전히 연필이 좋다.

'첫 생각'을 놓치지 말아라.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이 부분은 공감이 많이 된다. 쓰고 난 후 고치고 고치다 보면 제자리에 와 있는 경우가 많다.

글감 노트 만들기.
읽으면서 헉! 했다. 글감, 그때 그때 생각나는 문구들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지에 기껏 적어놓고 나중에는 다 버렸다는... 작은 전용 수첩을 갖고 다녀야겠다는 생각.

세부 묘사를 이용하라. 세부 묘사는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종종 '이렇게까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일 필요가 있을까?'싶은 장면들을 만나곤 한다. 지금 되짚어보니 저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만약 내가 읽었던 소설들의 장면들을 간단하게 몇 줄로 서술했다는 가정을 하고 상상을 해보니 그 소설을 무슨 맛으로 읽었겠는가 싶다.

저자는 글을 쓸 공간은 방 하나에 비가 새지 않고 창이 하나 있고 난방만 된다면 그만이라고 했다. 이렇게 소박한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거기에 나무 책상과 의자만 하나 있으면 끝. 나는 몇 년전 책상 하나 구하려고 오프라인 매장부터 온라인 매장까지 뒤졌던 적이 있었다. 요즘에는 시스템 가구라고 해서 무척 깔끔하면서 뭔가 그럴듯 하다. 소재는 대부분 스틸. 하지만 너무 비대해서... 맘에 드는 나무 책상 하나 사기에도 쉽지 않았다. (맘에 드는 건 가격이 어마무지... 😵)
(참고로 원서의 출간년도는 1986년이다.)

자신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시켜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 보라고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잘 듣지 않던 헤비메탈에 영혼을 던져보기도 하고, 계획없이 운전대를 틀어보기도 하고, 책 읽기에 최적화(?) 되어 있는 나의 자리에서 벗어나보기도 한다. 소소하지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 좋은 경험이더라.

자기가 쓴 글을 쓰자마자 다시 읽어 보지는 말라.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기 전에는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고 한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말도 이해가 된다. 종종 한두달 전 일기를 읽다보면 정말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여러 의미에서).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으라는 문장에 "응?" 했는데, 읽다보니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듣자, 분석하지 말고!



20.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39.
스스로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결코 편하게 앉아서 사탕이나 먹으며 살겠다는 핑곗거리로 삼지 말라.

62.
나는 수업 계획을 미리 세워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에 겁먹지 않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충실하려 애쓴다. 그리고 매번 이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결이 있다면, 마음을 계속 열어 두고 있는 것이다.

67.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공교육이 저지르는 가장 끔찍한 질문은 타고난 시인이자 소설가인 어린 학생들에게서, 그들의 문학을 빼앗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문학 수업은, 어린이들에게 문학 작품을 읽게 한 다음 곧바로 문학에 '대해서'만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130.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과 차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136.
그 대상들에게 선의의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216.
글쓰기에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223.
모범생이 되기 위한 모범생은 되지 말라.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이야기꾼은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배워 나간다.
/ 그레이스 팔레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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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세상에서 처음 눈을 뜬 아이처럼 그 풍경을 바라보며 경탄하는 것, 이렇게 경탄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 카뮈

예술, 문학, 철학, 자연, 과학, 사회 등 다각적 관점에서 인문학을 만나 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왜 미학을 공부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다른 것(현실 혹은 세계)들의 만남이다. 예술이 이끄는 다른 영역과 만남으로 우리는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둘째, 감각의 쇄신. 좋은 예술작품은 감각을 쇄신한다. 이는 곧 생활의 쇄신으로 이어진다.

셋째, 넘어가는 능력. 각자의 삶이 감각을 넘고 사고를 전환함으로써 일상을 초월해 다른 온기와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더 넓고 깊은 지평으로 나아가기. 넘어섬을 통해 좌절을 겪더라도 삶을 개선을 의지를 키우게 된다.

다섯째, 자기 삶을 향유하는 일. 인생에 있어 영원한 완성을 이뤄낼 수는 없겠지만 심미적 경험은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심미적 경험이 삶의 변형에 이어지지 못한다면,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동안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나도 이 책을 통해 심미적 경험으로 잠시나마 삶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였을까?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를 보고 있자면 나는 지금의 내 모습,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본다. 조각배에 올라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매달리고, 배를 물어 뜯고, 아구 다툼을 한다. 배를 노 젓는 이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을 할 뿐이며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을 외면한 채 배 위에서 강을 건너고 있다. 이 정도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라 투르의 [점쟁이 여자]는 정말 재밌다.
네 사람이 모여 있지만 시선도 손짓도 모두 제각각이다. 가운데 젊은 남성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젊은 두 여성과 늙은 점쟁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 남자, 나중에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이 봄, 비록 미세먼지 때문에 망설여지더라도 벚꽃 피는 어느날에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유쾌한 이들과 즐거운 식사를 나눠야겠다.

43.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것에 배어 있는 작가의 흔적ㅡ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는 어떻게 이 세상을 표현했고, 어떻게 자기 삶을 살았을까? 예술도 결국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한 방식인 까닭이다.

73.
인간의 이념은 찬란하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것에 못 미친다. 간극은 그래서 생겨난다. 삶의 간극과 균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인간 능력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 자체의 모순성에서 오기도 한다.

88.
슬퍼해야 할 것은 이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우리의 무감각일 것이다.

97.
수백 개의 무대가 있다면, 이 무대 뒤의 사연이란 수천, 수만 개에 이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어두운 배경 아래 잠겨 있는 것이다. 예술이 묻는 것은 바로 이것이고, 그림 감상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도 바로 이 배경 아래 잠긴 사연들이다.

127.
삶의 정경은 창문의 안과 밖, 여기 이곳과 저기 저 너머, 나의 이쪽 현실과 그들의 그 밖 현실 사이의 경계를 지금의 내가 얼마나 넘을 수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 넘어섬, 아니 넘어서려는 의지야말로 비루한 일상에 품위를 부여하는 낭만적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143.
모든 인공적인 것은 사멸한다. 사람은 기막힐 만큼 짧고도 부박한 삶을 산다.

154-155.
창조성이란 자신만의 고유성이면서 동시에 대상으로 확대 된 객관성을 뜻한다. 그래서 좋은 글은 자신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를 함께 담는다. 그러므로 글쓰기란 나의 생각을 너의 생각으로 넓혀가고, 그들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불러들인다.(...) '나로 돌아온다'라는 것은 좁게는 자기 반성이지만, 넓게는 내가 서 있는 현실의 테두리를 돌아본다는 뜻이다. 네게로 나아가는 것은 너를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나의 이해를 통해 우리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함이다. 즉, 타자 지향과 자기 회귀는 주체의 동일한 자기 확대 운동 속에 있다.

182.
삶에는 잘못된 가르침과 전제가 무척 많다. 삶은 버겁고 위험하며 혼란스럽지만, 이 복잡함은 역설적으로 무겁게가 아니라 경쾌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마치 관광객처럼 여기에서 저기로 떼지어 다니며, 안내서에 없는 것은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매일매일 고갈시켜 가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이런 피상성을 너무 늦기 전에, 그래서 회복 불가능 하기 전에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눈으로는 수없이 보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옹졸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278.
그 노력은 강제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관심과 흥미 그리고 탐구로 추동돼야 한다. 단순히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영화를 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묻고 보고 답변하며 또다시 탐구하는 절차 속에서 조금씩 체화된다. 교양은 수동적 주입이 아니라 적극적 형성의 과정인 것이다.

291.
좋은 사회란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폭력 이외의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이다. 이런 사회는 비극의 원인을 특정인에게 덮어씌우기보다는 그가 그 일을 하기까지 사회는, 이웃은 그리고 가족과 동료는 무엇을 했나를 먼저 성찰한다. 인간적 삶의 체계란 전가와 배제의 체제가 아니라 이해와 공존의 체제인 까닭이다.

298.
인문학은 나의 현재의 느낌ㅡ현재적 순간의 충일된 느낌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느낌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언어로 표현되며, 표현된 언어는 다시 성찰의 대상으로써 결정과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으로 나아간다. 감정ㅡ사고ㅡ언어ㅡ결정ㅡ판단ㅡ행위는 반성적 과정 속에서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런 경로 속에서 인간은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이렇게 돌아보는 가운데 주체성의 내용을, 그 정체성의 성격을 꾸려나간다.

339.
한 사회에 숨통이 트인다는 것은 그 사회가 생기를 얻어간다는 뜻이다. 문화의 문제가 '삶의 세부적인 면에 충실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경제적, 정치적 조건에 지탱되면서 무엇보다 내용적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는 문화적 유연화의 많은 것이 개인과 사회가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잃지 않는 데서 시작됨을 말해준다.


생각한다는 것은 빈자리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자리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 '꽃 진 자리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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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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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골 마을 핸래티에서 자란 로즈가 가족간의 애증, 사랑, 결혼, 독립 등의 굴곡을 겪으며 가난과 그 시대 여성이 갖는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인생 여정을 열 개의 단편연작으로 엮은 소설이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자식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 딸의 허영과 꿈을 받이들이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보다 더 높은 권위에 자리하는 남동생,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 더 나은 세상에 진입하고 싶은 딸.

소설 속 로즈의 모습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여성이다. 어린 시절에는 (의붓)어머니를 바짝 약올려 매를 맞기도 하고, 외모와 성에 대한 호기심, 멋지게 보이는 동성 친구를 우상처럼 흠모하기도 하는 사춘기 시절을 지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지만 앞날의 두려움과 경제적 여유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하는.

로즈의 평탄한 삶이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친구 조슬린의 남편인 클리퍼드에게 빠진, 그때부터 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패트릭에 대한 순수하지 못했던 마음을 안고 결혼한 그때부터 그녀의 이혼은 예정된 일이였을까.

딸인 애나를 전남편에게 보내면서까지 로즈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단지 클리퍼드와의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혼을 기점으로 로즈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고자 했던 건 아닐까? 그건 [거지 소녀]에서 언급했던,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환상. 누구나 쫓지만 누구도 가졌노라고 장담할 수 없는 그것.

로즈를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 여겼던 클리퍼드, 그녀가 내연녀일 뿐이었던 톰, 로즈를 진심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를 사이먼, 하지만 사이먼의 마음은 로즈도 독자도 알 수가 없다. 로즈는 이 남자들을 정말 사랑했을까?

이 소설에서 플로와 로즈의 관계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플로와 로즈.
두 사람은 의붓 모녀지간이다. 하지만 두 여자의 갈등에 있어서 그러한 관계가 주는 영향은 없어 보인다. 그저 시대적으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제한적이고, 그 시대에 이상적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역할을 잘 수행함에 있어서 스스로 자긍심을 가졌던 여성들(플로와 같은)이 있었던 만큼 로즈에 대한 플로의 행동은 그녀가 친어머니였다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싶다.

플로가 늙어 누군가를 보살펴야할 때, 그녀 곁에 있는 이는 친아들 브라이언이 아닌 로즈다. 두 여자의 오랜 세월 쌓아 진 애증은 여느 모녀와 다를 바 없다. 이혼하고 사랑에 버림 받고, 벌이가 그저 그래도 로즈가 돌아 온 집에는 플로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이는 한 시대를 약자로서 함께 겪어 온 동지애로써의 이해와 공감이 아니였을까.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스케일이 크다거나 극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자꾸 읽게되는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에서 내 삶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지난 날의 향수를 넘어 현재의 나 자신과 내 주변인들을 돌아보게끔 한다.

나는 그녀의 글에서 담담하지만 보통 사람이 갖는 힘을 느낀다.




[장엄한 매질]


37.
끝장을 봐야하는 이유는 결국 부분 적으로는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인 걸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고, 가장 무시무시한 허튼짓도 정당화 될 수 있고 그 행위에 어울리는 감정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의 관객에게ㅡ교훈을 깨닫더라도 깨달음을 표시할 수도 없을 상대에게ㅡ증명하기 위해서일까?



[특권]


73.
로즈는 그런 상실과 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 그녀가 배운 바에 의하면 인생이란 대체로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 이야기를 자꾸만 들추며 코라를 점점 더 나쁘게 묘사하는 플로를 보면 그녀가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토록 긴 시간이 흘렀는데, 그리고 이제 아무 소용도 없는데, 로즈는 플로가 자꾸 경고하고 자신을 바꾸려 한다고 여겼다.



[자몽 반 개]


89-90.
아버지에게 플로는 바람직한 여자의 전형이었다. 로즈는 그것을 알았고 실제로도 아버지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활달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거나 비축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빠릿빠릿해야 하고 흥정과 관리에 능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식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고 아이같아야 하며, 지도나 긴 단어나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우습게 보고, 아기자기하면서 알쏭달쏭한 생각, 미신, 전통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로즈가 망신거리인 것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 그러나 뭔가가 잘못되어 바람직한 종류의 여자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거지 소녀]


131.
헨쇼 박사는 가난을 그저 불우함이나 결핍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지만 가난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흉한 막대기 모양 전등을 사용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했다. 시도 때도 없이 돈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새로 산 물건을 놓고 악담을 하며 그것을 공짜로 얻은 건지 아닌지 입씨름하는 것을 의미했다. 플로가 정면 창문에 사서 단 비닐 커튼이나 가짜 레이스 따위를 두고 자부심과 질투가 난무하는 것을 의미했다. 뿐만 아니라 문 뒤에 박은 못에 옷을 걸고 욕실에서 나는 소리를 죄다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경건하고 발랄하고 조금은 외설적인 경고를 담은 수많은 액자로 벽을 장식하는 것을 의미했다.



[섭리]


256.
직접 가서 보지 않더라도 아이의 금발과 흰 살결, 윤기 흐르는 눈썹과, 자세히 봐야 보이는 투명하리만치 미세한 털이 일어나 불빛을 반사하는 옆모습을 놀랍고도 두려운 기쁨을 느끼며 그려볼 수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그녀는 가정적인 삶을 이해했고 안식처의 의미를 알았으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271.
상살과 행운의 연속. 그녀가 과거나 미래에, 사랑에, 혹은 그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때,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다.


[사이먼의 행운]


301.
그 무엇이 밤새 어두운 부엌에 앉아 연인을 기다리는 로즈 나이의 여자보다 더 절박할 수 있을까? 로즈는 이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냈고 모든 것을 혼자서 했다. 그녀는 도대체 배우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사이먼을 고리로 바꿔 거기에 온 희망을 걸어놓은 그녀는 이제 그를 결코 그 사람 자신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305.
패트릭 이후로 단 한번도 그녀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적이, 그런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다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모두.

311.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재앙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줄거리에 의심의 여지를 남기는 초점의 이동으로부터, 새로운 판단과 해법을 요구하면서 온당치 않고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창문을 열어젖히는 어긋남으로부터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스펠링]


324.
남매는 싸웠고 누이는 눈물을 머금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로즈는 느꼈다. 그 모든 것의 한꺼풀 아래에서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주, 아주, 오랜 경쟁ㅡ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 누가 더 좋은 직업을 선택했는가?ㅡ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갈구한 것일까? 그것은 상대방의 인정, 아마도 둘 다 기꺼이 줄 의향은 있지만 아직은 아닌 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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